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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성폭력 방관, 재판부=가해자 보호'...문예계 반성폭력운동 '집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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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대학=성폭력 방관, 재판부=가해자 보호'...문예계 반성폭력운동 '집담회'

전북여성문화예술인연대 등 7개 문화예술계 반성폭력운동단위, 성추행 교수 무죄판결 파기환송 촉구 집담회 개최

전북시민행동, (사)성폭력예방치료센터

전북여성문화예술인연대를 비롯한 7개 문화예술계 반성폭력운동단위가 27일 문화예술계 박 교수 성추행 사건의 무죄판결 파기환송을 대법원에 요구하는 긴급집담회를 개최했다.

<성폭력을 방관하는 대학, 가해자를 보호하는 재판부>란 주제로 진행된 이날 긴급집담회.

전북 전주의 사립대 A 교수 성추행 사건은 지난 2018년 3월부터 언론에 보도돼 왔다.

그는 1심 선고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지만, 지난해 10월 항소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집담회는 A 교수 사건에 대한 2심 재판과정과 실형선고 후에도 가해자를 징계하지 않은 대학의 문제를 중심으로 예술대학, 재판부, 지역예술계의 가부장성과 폐쇄성을 다뤘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는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전북시민행동과 함께 전날인 26일 대법원 앞에서 '전주 모대학 교수 문화예술계 미투 사건 대법원 파기환송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본 사건의 공정한 판결을 대법원에 요구했다.

다음은 이날 진행된 긴급집담회을 속기록을 통해 들여다본다.

◆이산 (마임창작자)

2018년 가해자의 성폭력 사실들이 공연계의 미투로 인해 여러 건이 밝혀졌다. 이 중 2건이 기소돼 재판. 학생이 싫다고 했는데도 허벅지를 주물러달라고 했던 사건, 겸임 교수를 본인 차로 따로 불러내어 추행한 사건. 가해자의 자살 소동으로 더 이슈가 되었는데, 취재기자의 연락을 받자마자 가해자는 자살 소동을 벌였고, 피해자 중 한 명의 실명을 넣어 성추행이 없었다는 내용의 유서를 언론에 발송했다.

2018년 3월 제자 성추행 교수가 극단적인 선택 시도했다 보도. 4월 8일에 가해자가 경찰수사를 받았다. 4월 26일에 검찰 송치가 되었다는 기사가 보도됐다. 2019년 8월 1심이 선고하려 했으나, 가해자 변호인들이 세부정황에 대한 내용 계속 제출하고, 주변 학생들의 탄원서도 내고 변론 재개 요청, 검찰 송치된지 1년 반도 넘어서 1심까지 판결, 그 과정에서 피해자가 많이 지치지 않았을까 싶다.

2020년 6월에는 2심 판사가 가해자를 보석으로 석방. 가해자는 2심 재판을 자유롭게 준비하게 됨. 10월 28일 2심 무죄 판결이 나고 나서 같은해 11월 상고했다는 내용 보도됨. 1심과 2심의 결과가 다르다보니 재판부에서 좀 심혈을 기울여서 보지 않을까하는 기대가 있었고, 2심 재판부가 노골적으로 편파적이었기 때문에 살펴보리라 생각했다.

2심 재판부 주심은 검은 옷 입고 방청연대 간 여성들 보고 "재판은 여론으로 하는 거 아니다"라고 짜증스럽게 말했고, 피해자들은 1심에서 말한 내용인데도 2심에서 반복해서 진술을 해야했고 판사가 사건의 세세한 사항을 이것저것 많이 질문했다.

그렇다면 이렇게까지 반복적으로 묻고 세세하게 묻는 신문이라면 당연히 말을 할 때 다른 말을 하게 될 수도 있는 환경이지 않았을까. 반면 가해자는 거의 신문하지 않았다.

대법 선고가 오는 2월 4일로 선고가 잡혔다라는 고지를 지난 18일에 받았다. 그래서 지난 19일부터 집담회를 기획해서 연락을 한 거다. 지난해 12월 30일 법리검토 시작했는데 선고가 이렇게 빨리 고지가 된 것이라면 2심 결과를 확정하려고 하는 것 같아서 이렇게 긴급 집담회를 하게 됐다.

1심에서는 "피해자의 피해 사실이 중요부분에서 일관된다. 경험하지 않으면 진술하기 어려운 구체적인 진술들이 있다", 그리고 피해자가 처음부터 고소를 결심한 것이 아니고 주변에서부터 알리고 취재 사실에 응하면서 이렇게 되었다는 것 등을 판단해서 피해자 진술 신빙성 있고 판단하고 징역형 선고.

그런데 2심에서는 이러한 내용들이 아예 사라졌다. 피해자 진술의 세부사실들을 일관성 없다고 문제삼고 피고인 주장은 입증 증거 없거나 취약해도 받아들여 무죄를 선고했다.

◆송원 (전북여성문화예술인연대)

지금 전라북도에서 이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전북문화예술계에서 이 사건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설명드리려고 한다.

이 사건이 지역 언론사를 통해서 보도되고, 재학생들과 졸업생들이 당시에 다음 아고라라는 청원 게시판 중심으로 시민들을 향해 문제적인 교수와 학교의 방관적 태도에 대해 목소리를 내달라는 운동을 벌였다. 그때 정말 많은 분노와 목소리가 있었다. 졸업생들도 연명을 하고 그랬었는데, 학교에서는 "이런 식으로 문제제기를 하면 우리 과는 사라진다"라면서 선배들이 후배들 입단속을 했다.

이 문제를 공론화하고 토론하는 것 자체가 우리 사이의 불화를 만드는 것라고 하며, 아무도 말을 못하게 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학생들이 초반에는 자신의 성추행 피해 등을 교수들과 상의를 했는데, 교수들은 학생들 입막음을 하려 했다. 학교가 학생들 보호하는 조치는 하지 않고 자신들이 해야하는 분명한 역할을 하고 있지 않다.

재판 중에 공연예술계에서는 "박교수가 무혐의다"라는 말이 돌았다. 그 말이 어떻게 들렸냐면, "이 사람은 억울한데 왜 재판에 붙들려서 저렇게 고생하고 있냐"로 들렸다. 피해자들은 그 때 정말 불안해했다. 이 사건은 이길 수 없을 거라는 인식이 있었다.

문화예술계 안의 어떠한 단체도 이 사건에 대해 지지하거나 성명 내지 않았다. 그래서 미약하지만 전북문화예술연대라도 연대를 하고 있는 상황. 지금 지역 전라북도에서는 미투로 지목된 가해자들이 모두 활동을 시작했는데, 이런 분위기가 A교수 사건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전에 문화예술계에서 어떤 협회가 피해자를 감싸는 행위를 했는데 가해자가 협회 상대로 명예훼손이라며 3000만 원 손해배상소송을 걸었다. "사과하지 않아야 한다. 사과하면 불리하다. 돈이 있고 권력이 있으면 없던 일로 만들 수 있다"는 인식이 가해자들 사이에 퍼져나가고 있다.

버티는 것. 이러한 상황들이 지역사회에도 악영향을 주고 있다.

재판과정을 대부분 모니터링 했다. 재판 과정 안에서도 많은 2차 가해가 있었다. 피해자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하는 주장이 받아들여지는 것이 굉장히 화가 났다. 가해사실은 사라지고 피해자가 어떤 사람인지만 남았다. 조력하는 단체들, 시민들도 절망적인 감정을 느끼고 어느 순간 무력한 느낌을 받는다.

이게 될까? 가능할까? 라는 질문이 나오기 때문에 전국적인 관심과 연대가 필요하다. 잘못한 사람 벌 받게 해달라는 요구 딱 하나인데, 이 요구의 실현을 위해서 어렵게 돌고 돌아야한다는 사실이 너무 답답하고 힘들다. 전국적으로 관심을 갖고 연대하면 이 간단하고 숭고한 진리가 실현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오늘 전주에서 서울까지 왔다.

◆김윤진 (무용인희망연대 오롯 위드유)

송원님 얘기를 듣고 나니까 절망스러워서 가슴이 아프고 화가 나서 머리가 하얘진 것 같다. 2년 전 류교수 사건에서도 피해자를 압박하고 재판에서 위증하고 이런 패턴들이 똑같이 반복되는 것을 듣고 있으려니 굉장히 가슴이 답답하다.

예술의 특성상 주관적인 평가, 판단이 정말 중요하다. 공인된 시험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그런 부분이 악용되는 지점이 있는데, 학생들이 교수의 수업을 듣고, 성적을 받고, 다른 전공과 달리 스펙을 쌓고 취업을 하는 루트가 아니라 대학 내 활동 뿐 아니라 졸업 이후에도 공연활동을 하려면 추천이라던지 소속이라던지 교수들의 영향력이 막강하기 때문이다.

교수가 주는 평가와 학생들의 향후 사회생활은 긴밀하게 연결이 되어있다는 점이 이런 성추행 사건과 연결되는 지점이 아닐까 싶다. 예술을 자기 전공으로 삼고 희망하는 순간부터, 중고등학교 떄부터 그 교수와의 연결이 시작된다. 대학에 와서 배우고, 대학을 졸업해서도 그 교수들의 네트워크의 연장선으로 이어져 사회생활을 한다. 공식적인 오디션의 기회는 많지 않고 소개로 기회를 잡는 것이 압도적으로 많은데, 나를 뽑는 사람이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교수들에게 묻는다.

학교는 피해자를 보호해야하는데, 오히려 학생들을 입막음한다.

우리과가 없어질지 모른다는 협박. 문제제기를 함으로써 과 전체가 공중분해되어 버린다는 두려움을 학생들이 느끼는 것. 이런 패턴 류교수 건에서도 같았다.

피해자는 이상한 사람이라는 발언도 똑같다. 가해자의 이 거대한 권력에 대해 재판부가 깊이 있게 다뤄줬어야 했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게 답답하다.

A교수 사건에 대해서 전북지역에 연대하는 송원님 말씀을 듣고, 지지하는 분들도 힘을 잃어가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것에 대해서 정말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이런 지점들을 무겁게 생각해서 대법원이 파기환송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강윤지(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

서울예술대학교, 세종대학교, 중앙대학교, 청주대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 이화여자대학교, 백석대학교, 명지전문대학교, 경성대학교.

지난 2018년을 기점으로 이외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예술대학에서 #METOO 운동이 일어났다.

저는 청주대 미투 운동의 실무자임자로서 당시를 회상한다.

우리는 이것이 미투라는 이름으로 거론될 수 있으리라곤 상상해보지 못했다. 그(가해자)는 언제나 모든 것을 허용받을 수 있는 존재였고 그에게 "잘못했다"고 말할 수 있는지를 몰랐다.

'교수님'이란 존재는, 내 평생을 바칠 만한 가치가 있는 소중한 '연극'을 알려주는 사람이었다. 예술을 배울 기회가 도처에 깔려 있었다면 달라질 수도 있었겠지만 그 기회는 희소했다. 예술대에서 '교수'는 내가 갈망하는 모든 것들을 유일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었고, 인맥·혈연·지연·학연이 강력히 작동되는 예술계에서 내 미래를 송두리째 날려버릴 수 있는 사람, 동시에 졸업 후에도 계속 연극을 할 수 있게 만들어줄 사람, 그에게 실수라도 하면 언제든 선배나 조교들에게 혼나 마땅했던 연극제작 실습 중에 술을 마시며 교육을 하더라도 누구도 막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본 사건의 재판장님께 비슷한 이야기의 탄원서도 써서 냈고, 이런 이야기를 여러 번 했다. 가 닿을 수 있을 언어들을 찾고 쓰고 지우고 고민하기를 반복했다. 예술대학 내 위계적인 구조는 비예술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이다. 공연제작 실습 중에 교수님이 만지면 아무도 아무 말도 안 한다. 불편함을 느끼지 못해서가 아니고 성희롱이 뭔지 몰라서도 아니다. 우리는 형태가 없는 것들을 배웠다. 발음, 소리, 몸의 중심, 눈을 깜박이는 방식, 걸음걸이 보폭 하나로 캐릭터를 창조한다. 교육과 성희롱이 반복적으로 교차되면 상황은 복잡해진다.

가해자는 언제든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변명하고 도망갈 수 있다. 당시 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냐고 묻는다면 그것이 예술대학 내의 전반의 수직적인 구조 때문이라고 백번도 넘게 매번 다른 언어로 말할 수 있다. 그것이 선의일 것이라고 믿고 싶었던 우리의 선의 때문이었다. 교육일 것이라고 믿고 싶었고, 스승을 잃고 싶지 않았고, 연극제작 실습 중에 다른 학생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던 우리의 선의 때문이었다. 그 선의를 지켜주지 못했던 건 스승이라는 이름으로,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농락해왔던 가해자의 책임이다.

"교수와 학생 사이에 위계가 있다"

재판부가 이것을 모른다는 것을 더 이상 납득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 "교수가 학생을 만졌다" 이것이 문제라는 것을 이렇게 열심히 증명해야 하는 명제가 아니지 않나.

이 사건이 오늘날까지 이르게 된 것은 결코 재판부가 예술대학의 특수성, 이런 것을 몰라서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학생과 여성, 피해자의 목소리를 결코 받아들이고 싶어 하지 않음이 교수와 남성, 기득권의 목소리를 너무 쉽게 이해하고 이입하고 있다.

피해자를 의심하고 싶어하고 기득권의 힘을 지속시키고 싶어하는 관성과 악습이 고스란히 작동되고 있다.

연대의 동력은 언제나 분노에서 찾아왔다. 오늘 여기에서, 연대할 것을, 그리고 다시는 선의로 '폭력'을 눈감아 주지 않을 것을 이 사건을 끝까지 지켜보고 있을 것을 이야기한다.

◆송진희 (부산문화예술계 반성폭력연대)

쉽지 않은 긴 과정에서 말하고 싸우고 행동해주시는 당사자, 조력자들께 응원과 연대의 마음을 보낸다.

예술 대학 내 성폭력에 대해 대학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말씀드리려고 한다. 예술대학에서 성폭력 문제를 책임지지 않고 방임하는 태도를 갖고 있다. 교수의 권력을 이용해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폭력은 피해자가 다수인 경우가 많다. 심각한 사건도 교수 파면은 얻기 힘든 결과다. 지원했던 사건 중에서 가해자가 3개월 정직 받았는데 2년 후에 학과장이 된 사례 있었다. 학교는 성폭력사실을 알았음에도 학과장으로 선임한 것이다.

사회에서는 성폭력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져가는데 대학은 아직도 경각심이 부족하고 가해 교수에게 여전히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 대학이 적극적으로 조치를 취하지 않고 교수들의 성폭력을 용인하고 재생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해도 무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대학 내 성폭력 문제들에 대한 질문을 더 강력하게 해야한다. 대학에 센터라든가 성폭력에 대응할 수 있는 공식기관들이 있기 때문에 1차적으로 피해사실을 학내에 신고하게 되는데 저희가 진행한 사건들 중 대부분은 제대로 된 피해사실 접수 처리과정이 부족했다.

예를 들어 조사하는 과정에서 2차피해가 발생한다거나 피해자와 연대자들을 소란을 일으키는 사람들로 취급하는 등의 상황이 너무 많았다. 가해교수의 소속학과 교수들이 피해자를 향해 그만둘 것을 종용하는 등 피해자의 입을 막는 행위가 반복되었다.

피해자는 가해자 한 사람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대학교와, 더 많은 사람들과 싸워야하는 상황이 된다.

이 사건에서도 피해자와 가해자에는 힘의 차이가 기울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판과정이 가해자 중심으로 흐르고 있다. 가해자가 지역사회 내에서 교수라는 지위를 갖고 감독으로 활동하는 위치성, 영향력 등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생각한다. 세대교체가 일어나지 않은 지역이나 예술계에서는 가해자가 힘이 정말 클 것인데 그 힘에 대한 과시가 재판과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피해자를 비난하는 대학과 재판부의 모습은 많이 닮아있다. 피해자·조력자·연대자들이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지만, 사회적 안전장치가 없고 또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 마음이 힘들다. 제도적인 부분들, 법적인 부분들, 문화예술계와 연결해서 해결해야하는 부분들로 성폭력의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 예술대학에서 발생하는 성폭력 문제를 이번의 제대로 된 판결을 통해 바로잡을 수 있으면 좋겠고, 또 연대하였으면 좋겠다.

◆김화용(여성예술인연대)

예술대 안에서 발생하는 성희롱 성폭력 사건들을 살펴보면 문화예술계 내에서 위계로 인해 이뤄지는 폭력들과 유사한 부분이 있다고 보여진다.

교수와 학생의 위계의 차이는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말하기 어려운 환경을 만든다. 예술계의 특성까지 포함해서 보면, 예술계 교수라는 지위가 외부 심사위원, 자문 등 결정을 내리는 위치에 많이 있다. 최근 서울문화재단 창작기금 심사위원에 성폭력 가해한 예술대 교수 포함돼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대학 내 성폭력이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고, 처벌도 솜방망이처벌이다보니 이런 일이 발생한다. 사건을 실질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추후 가해 사실을 파악할 수 있는 내용을 남겨놓지 못한 채로 종결해버리기 때문에 더 어려운 경우도 있다.

예술대 내 성폭력은 교수가 절대로 학교 내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전통예술이나 클래식 음악 무용 등은 도제교육방식이 남아있고, 선생님의 위치가 갓 예술계에 진입할 때만 중요한 게 아니라, 처음 예술을 알게 된 순간부터 졸업하고 활동할 때까지 긴밀하게 연결이 되어있다. 예민한 입시과정에서도 영향을 끼치고 창작활동, 구직활동에도 영향을 끼치는 관계. 그래서 피해사실을 수면 위로 올리는 게 진짜 쉽지 않다. 반대로 얘기하면, 가해자는 자신의 힘과 영향력을 더욱 믿고 이런 가해를 반복적으로 저지른다.

예술계 미투를 통해 이슈가 가시화가 되었는데, 큰 프로젝트 예술 감독이라던가 큰 권력을 가진 남성들이 대거 가해자로 지목이 되었다. 많은 여성 예술인들, 예술을 수행하는 사람들 있는데도 불구하고 결정권자 위치는 철저히 남성중심문화로 구성되어 온 것과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지금 벌어지는 학생들이나 예술계에 막 진입하는 약한 존재인 약자들의 눈으로 현장을 바라봤을 때 가해자의 영향력은 어마어마하다.

예술대학 내 성폭력은 예술계 성폭력의 발단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다. 그나마 학교라는 조직 안에 있는데도 학생들이 절망감을 느끼고 밖으로 나가게 되면, 프리랜서가 많은 예술인들의 미래를 생각했을 때 더 해결되지 못하는 일들이 많아질 거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학생들은 학업에 매진해야 하는데, 학교는 가해자 보호에 급급하고, 다시 학생들은 투쟁현장에 나서게 되고. 이 사건을 대법원이 어떻게 처리를 하느냐에 따라 학생들의 자존감, 미래, 활동영역 등이 많이 달라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신희주 (여성문화예술연합)

2018년 문화예술계의 미투운동으로 공론화된 사건의 현재를 마주할 때마다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문화예술 대학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의 다층적인 문제와 미흡한 해결 시스템에 대한 비판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지만, 대학 당국과 정부 부처는 여전히 굳건하게 귀를 닫고 있다. 작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발표한 <미투운동 이후 문화예술계 대학생의 성폭력 피해 현황과 향후 대응과제> 연구보고서를 통해 문화예술계 대학 정책의 문제점을 다시금 밝히고 사건을 중심으로 개선 방안 제시하려 한다.

미투 운동을 통해 대학 내 성폭력이 다수 고발된 후, 교육부는 2018년 4월 <대학 내 권력형 성폭력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 촉구 간담회>를 열고, '교육 분야 성희롱·성폭력 근절 추진단'과 '교육 분야 근절 자문위원회'를 운영하였다. 이를 통해 2019년 6월월 '교육 분야 성희롱·성폭력 근절대책 추진 현황 및 향후 계획'을 발표했다. 교육부 산하에 '대학 성희롱·성폭력 근절지원 중앙센터'를 운영하는 등 신고 대응체계가 강화되었으며, 교원의 징계 시효를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하고 사립학교 징계위원회 의결 절차를 국공립학교 기준으로 강화하는 등의 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 전주 A교수의 성추행 사건을 통해 알 수 있듯, 여전히 대학 현장에는 사법처리의 결과를 따르겠다며 교내 성폭력 사건을 방관하는 일이 빈번하다. 이는 사립학교가 다수이며 '대학의 자율운영을 기본으로 하는 교육정책 현실'상, 각 대학과 대학별 전담기구가 성희롱·성폭력 근절 대책을 시행하는 주체가 되기 때문이다.

A교수와 같은 가해자들은 교수로서 학교 내에서 권력을 가질 뿐만 아니라 현역 예술가이자 심사위원, 평론가 등으로 피해자의 졸업 이후의 예술가로서의 삶에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학내 성폭력 문제 해결을 대학 자율에 맡겨버린 환경, 프리랜서가 다수이기 때문에 구속력 있는 조직이 없는 예술계라는 환경 속에서 피해자는 이중적인 고통을 겪게 되는 것이다. 즉 문화예술계 대학은 '공적 규율 장치가 적은 두 분야'가 겹치는 사각지대라고 할 수 있다.

◇미투운동 이후 문화예술계 대학생의 성폭력 피해 현황과 향후 대응과제

'문화예술계 대학 정책'에서는 '대학 예술계열 학과의 특성'을 세 가지로 꼽고 있다.

첫 번째 특징은 비전임 교원의 비율 높다는 점이다. 2018년 전체 전임교원의 평균 비율이 44.9%인 것에 반해, 대학 예체능계열의 전임교원은 23.4%로 평균에 훨씬 못 미친다. 과거 비전임교원, 즉 시간 강사는 교원의 지위가 없기 때문에, 성폭력 가해자인 경우에도 학교 징계제도의 적용 대상이 되지 않았었다. 작년 고등교육법(강사법)의 개정으로 징계가 가능하게 되었다.

두 번째 특성은 A교수 성추행 사건과 마찬가지로, 학교 밖 사설 교육기관이나 문화예술 행사 등에서 성폭력 피해가 다수 발생한다는 점이다.

세 번째는 문화예술계 대학의 교원과 학생의 성비가 불균형하다는 점이다.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대학 이상의 교육기관 중 예체능 학과를 보유한 대학은 총 1864개이다. 재학생 성비를 살펴보면 여학생은 61.6%, 남학생은 34.8%이지만, 전임교원의 성비는 남성 63.9%, 여성 36.1%로 성별 비율이 뒤바뀐다. 이렇게 불균형한 성비는 조직 내 성희롱·성폭력에 취약한 환경을 조성하는 요인이 된다.

◇미투운동 이후 문화예술계 대학생의 성폭력 피해 현황과 향후 대응과제

정책 개선방안은 크게 정부 부처의 역할과 대학 및 전담기구의 역할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우선 문화예술계 대학에 초점을 둔 정책을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문체부와 교육부의 협조를 강화해야 한다. 대학마다 예산 및 역량에 있어 편차가 크기 때문에 개별 대학에서 피해자 지원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학교 외부의 법·의료적 지원체계로 연계해야한다.

또한 가해 교수가 현업 예술가로서 지원을 받거나 심사를 할 수 없도록 징계제도를 연계할 필요가 있다. 대학과 문화예술계에서 상호 적용되는 징계제도가 작동되어야 한다. 그리고 문화예술계 대학의 정기적인 성차별 실태조사를 통해 개선 방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많은 부분이 대학 자율에 맡겨진 상황에서, 대학 내 성폭력 근절을 위해선 대학 및 전담기구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무엇보다 대학은 성희롱 고충처리기구 운영을 내실화해야한다.

형식적으로만 운영하는 형태에서 벗어나 성희롱 고충처리기구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예산 책정, 규정 개선, 자율성 보장, 연계 체계 구축 등이 필요하다.

문화예술계 대학 내 성폭력 근절에 장기적인 대안은 성비 균형과 성인지 관점 교육이다. 대학 구성원들이 문화예술 콘텐츠와 작품 창작, 비평에 있어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성인지 관점을 체화할 수 있도록 교과를 개설하는 방편을 마련해야 한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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