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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가까운 이곳, 4.3의 상자가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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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가까운 이곳, 4.3의 상자가 열리고 있다

[박물관의 '주름'] 임흥순<우리를 갈라놓는 것들>

임흥순<우리를 갈라놓는 것들> 국립현대미술관(서울관) 현대차 시리즈
전시기간 2017. 11. 30 - 2018. 4. 8.

전시가 끝났다. 이 시점에 글을 씀으로써 독자들을 화나게 할지 모른다. 전시가 다 끝난 마당에 전시를 이야기한다는 것이. 내 연재를 첫 글(☞ 바로 가기)에서 전시비평이라기보다 교육비평이라 한 까닭은 바로 전체를 보고 말하겠다는 것과 다름이 아니다. 전시를 읽는 또 다른 시선은 교육이기 때문에, 이런 저런 세미나도 보고 연관된 교육프로그램도 살피는데 이번 전시의 경우 전시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이점을 양해해 주기 바란다. 교육은 그렇게 전시 뒤편에 있다.

이 전시는 국가폭력을 체험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주제로 한다. 여성들이 당시에 느낀 것들을 담담하게 비춘다. 전시에 등장하는 사건 중 제주 4.3사건은 아직 사회적으로 완전히 정의가 내려지지 못했다. 소위 특별법은 '진상규명과 희생자를 옹호' 하는데 두었다. 가해자를 벌주자 말하지는 못하고 있다. 예술이 사회를 말한다고 할 때 관람객이 어떤 사회를 생각하도록 해야 하는 것일까.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이미 할머니가 되었다. 전시는 가족들이 할머니를 기억하는 방식으로 기획됐다. 설명은 짧고, 여운은 깊었다. 이들이 말하는 바는 색으로서 같다. 그 과거는 '빨갛다'는 것. 그것이 이 전시의 진실이다. 그들은 자신이 아직도 '빨갱이'라고 인식했다. 빨간색은 곳곳에서 우리를 놀라게 한다. 시위에서 늘 등장하는 빨강색은 놀라운 집단 정체성으로 그 실체를 체감하게 한다.

온통 빨간 벽 앞에 서서

전시장 앞의 벽은 온통 빨간색이었다. 빨강은 저편 창에서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큰 빨강을 마주한 것은 처음이다. 그 벽 앞에 서니 차라리 두려움이 없어졌다. 빨강을 만질 수 있었다. 빨강을 눈에 넣을 수 있었다. 빨강이 만든 현대사의 슬픈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김동일․정정화․고계연․이정숙은 시대를 잘못 만난 여성이다. 정정화는 1900년생이고, 김동일과 고계연은 1932년생으로 동갑이다. 이정숙은 1944년생이다. 정정화는 독립운동가로, 김동일과 고계연은 한라산과 지리산 빨치산으로, 이정숙은 베트남전쟁과 이라크 전쟁을 겪은 인물이다.

ⓒ국립현대미술관

내가 만난 빨강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김동일 할머니가 좋아했다던 그 빨강은 나도 좋아했던 색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처음 만난 색이다. 선생님이 와서는 그 색은 틀렸다며 연두색으로 칠하란다. 그때 기분이 지금도 느껴진다. "난 빨강이 좋은데... 연두색은 마음에 안 드는데..." 빨강은 3학년이 되어 새롭게 다가왔다. 나와 같은 해에 태어난 이승복이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쳤다는 이야기. 그리고 이어진 선생님의 빨갱이 설명은 이렇게 남았다. "머리에 뿔이 달리고 얼굴은 새빨간 도깨비들." 나는 그 이상한 이야기를 1919년생이었던 아버지께 저녁 밥상에서 전했다. 돌아온 이야기는 "그곳에도 우리말을 쓰는 사람이 살고 있다"는 짤막한 말. 그리고 이어진 이상한 긴 침묵. 아무도 뒤를 잇지 못하고 밥을 구겨 넣던 낯선 시간. 묵직한 침묵과 무거운 분위기가 지금도 느껴진다. 이상한 저녁 밥상이었다. 내가 겪은 유년시절의 빨강은 그렇게 나를 만들어왔다. 빨강은 부적이었다. 잡귀를 몰아냈던 수수팥떡의 그 붉은 기운.

'우리'는 어떤 우리인가

임흥순은 다큐멘터리 작가가 아니다. 그는 예술가다. 이 작품에서 그는 거리두기를 하지 않았다. 그는 '우리'가 되었다. 그는 우리의 상처받은 경험을 살려내는 데 시선을 모았다. 임흥순의 '우리' 속으로 들어가 보자. 그가 말하는 '우리'는 차마 말 할 수 없는 우리다. 적어도 그는 우리를 작품 속에 가두어 놓는데 성공한 것 같다. 임흥순은 <위로공단>으로 이미 잘 알려진 작가다. 알려졌다고 해서 작가가 작품을 소홀히 할 수는 없다는 걸 그는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에서 보여준다. 작품은 여성을 향해 있었고, 앞에서도 그랬듯이 출연자들이 어떤 경로로든 자신들의 경험을 담아내도록 했다. 과거만이 아니라 오늘, 여기를 그리고 싶은 작가의 소망을 느끼게 된다. 죽을 고비를 무릅쓰고 넘어온 탈북소녀도 작품에 등장한다. 그는 연기를 한 게 아니라, 작품을 통해 온전히 현재를 살고 있다는 사실을 관객에게 알린다.

전시장은 컴컴한 좁은 벽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벽 앞에 우뚝 선 사물은 두 손을 높이 들어 외치는 사천왕상의 모습이다. 다른 경계로 들어서는 순간이다. 생경한 그 존재는 붉은 빛으로 몸 전체를 감쌌다. 어둠 속에서 유일한 빛은 붉은 색이다. 주먹을 움켜 쥔 석상은 우리들을 잠자코 있게 한다. 깜깜한 어둠 속 화면은 서서히 숫자를 헤아리면서 열리는데, 개기일식 장면이다. 달과 해가 하나가 되는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밝은 해를 검은 해가 딱 '맞춘다.' 그리고 시작된 물소리, 바람소리, 그리고 다시 정적.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는 영화였다. 화면은 세 장면으로 나누어 진행된다. 등장하는 인물은 죄다 여성이다. 그것도 이미 세상을 떠났거나, 살아있어도 이미 훌쩍 나이가 든 우리의 언니들이다. 이들의 삶의 여정을 그린 이 영화도 아닌 작품은 '행복'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걸 부끄럽게 했다. '주말 미술관 나들이를 하면 행복할까' 생각하는 도시인의 낭만을 훼손했다. 무참하게도.

전시장은 고요했다. 어둠을 틈타 귀퉁이를 찾아 앉은 나는 관객들의 숨죽임이 낯설었다. 이게 무엇이기에 이렇게 숨죽이고 보아야 하나. 전시장은 적막이 가득했다. 모두가 그렇게 전시를 보았다. 중간에 나가는 이는 아주 적거나 없었다. 왜? 다시 물었다. 전시가 무엇이기에. 무엇을 담았기에. 영화는 제주와 광주를 거쳐 서울과 미국으로까지 이동한다. 작가는 혈육을 만나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그 누군가의 자녀로, 그 누군가의 가족으로 살아낸 사람들을 모았다. 깨진 유리 거울을 다시 붙여 금 간 자국들 속에서 과거를 말하기 시작한다.

영화처럼 전시는 끝났고 다음 전시장으로 이동해야 했지만, 발길을 옮길 수 없었다. 전시가 말하는 것은 영화가 아니었다. 우두커니 서서 자막이 다 오를때까지 참가한 사람들의 이름을 확인했다. 일본에 있는 친구의 이름도 보였고, 무엇보다 누가 이 전시를 기획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미술관은 무엇하는 곳인가를 늘 살피는 기획자의 이름도 등장했다. 전시를 보는 2018년 우리는 제주의 4.3 할머니들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한국사람이라는 사실. 그것을 확인한 순간, 멈칫하게 했다.

전시는 대상이 아니다

임흥순의 전시에는 그 자신이 들어 있었다. 그는 주술사처럼 '언니'들의 마음을 오가면서 우리에게 진실을 주문했다. 그의 마음을 읽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가 잘 운다는 사실이 작가의 진심을 말해주고도 충분했다. 그는 왜 울까? 장난 끼가 발동하여 작가에게 직접 물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무데서나 우는 것은 아니고... 술을 한잔하면 울음이 터져요"라고 했다. 아마 나도 그랬을 것이다. 어찌 울지 않고 이 이야기를 가슴 속에 담을 수 있겠나.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애국정신으로 무장한 '파랑'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왜 우는가, 먼저 보낸 사람 앞에서 우리는 함께 하지 못해 운다. 감정이 복받칠 때 운다. 감정이 시키는 대로 우는 것이 아니다. 진실을 말하고 싶을 때 감정이 먼저 말한다. 그렇게 우리는 울음으로 말한다. 우리는 기쁠 때도 울고 슬플 때도 울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도 운다. 울음은 현실을 고발하는 행위일 것이다. 현실을 감당할 수 없을 때, 망연자실할 때 이를 표현하기 위해, 함께 하기 위해 운다. 당사자가 아닌 타인의 울음은 타인의 현실을 함께 한다는 자세와 다름이 아닐 것이다. 울음은 안도감을 주기도 한다. 아마 작가 임흥순도 그래서 눈물을 흘리지 않았을까. 이 영화도 아닌 것이 영화 같은 인생을 이야기하는 순간, 우리는 울지 않을 수 없다.

제주 4.3사건은 해방 후 희망과 좌절을 보여준다. 지리산 빨치산도 '박멸'해야 했던 해방기. 누군가는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나 '우리나라 만세'를 맘껏 부를 수도 없었던 때. 우리는 미국의 원조를 기대하며 그들에게 의존했다. 의존은 불씨를 만들었고, 그 결과가 제주 4.3으로, 지리산 빨치산 토벌로 이어졌다. 정의의 깃발은 반공으로 덧칠되어 하늘을 찔렀다. 그 하늘 아래에서 사람은 없었다. 오로지 붉은 빛이 경계선으로 남았을 뿐. 한반도에서 미소양국의 대결은 38선을 긋고, 그 너머의 가족을 그리워해서는 안 되는 존재로 규정했다. 진실을 말하지 못하게 할 입막음이 필요했을 것이다. 제주와 지리산이 '닥치고'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4.3이 일어난 건 아닐까. 그런 못된 상상을 해 본다.

ⓒpixabay.com

우리가 원했던 해방은 그렇게 다가왔고, 우리가 원치 않았던 분단이 현실이 된다. 제주 사람들은 저항했다. 그런 용기는 어디서 나왔을까. 그들의 해방 행위는 참신한 의견이 될 수도 있었지만, 그것은 '위험한 것'으로 일축되었다. 제주 4.3을 일으킨 이들은 국가에서 보기에 나쁜 자들이었다. 그래서 극우 청년들과 연합한 국가는 '정의롭게' 지리산과 한라산에서 부정의한 딱지들을 제거했다. 사람들을 총칼로 위협하면서 국가는 정당성을 찾아야만 했다. 그들을 죽인 은폐된 정당성은 단 한마디면 충분했다.

"빨갱이 자식들."

노무현 정부 들어서야 한국은 이들의 아픔을 겨우 한 자락 받아들였다. 터무니없이 미진했다. 지난 4월 3일, 문재인 정부가 드디어 오래된 국가를 대표하여 사과했다. 현실에서 4.3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예술이 사회문제를 다루는 방식은 공감일 것이다. 나는 임흥순의 작품에서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이 무엇인가. '갈라놓는 것들'이란.

작품을 보고 걸어 나오는 지점에 옷들이 옷걸이에 즐비하다. 옷들에는 마치 새 것처럼 상표가 부착되어 있다. 자세히 보니 상표가 아니라 부고장이었다. 김동일 할머니가 2017년 4월 말에 돌아가셨다는 글. 김동일 할머니가 보관했던 옷들이란다. 할머니가 살았던 방의 온기가 풍겨왔다. 할머니 '냄새'가 얼핏 그려졌다. 수북이 쌓인 뜨개질한 작품들은 묻는다. 이것을 어디에 쓰면 좋겠냐고. 관람객은 노트에 연필로 적는다. 간직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주거나. 김동일 할머니 이야기를 담아서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고.

ⓒpixabay.com

"한라산의 낙락장송이 되어라"

김동일 할머니는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살아있는 우리에게 당부한다. 그 죽음은 헛된 죽음이 아니라고. 몇 번을 강조한다. 그 말씀에는 헛된 죽음을 만들지 말라는 뜻이 쟁쟁하다. 이들의 고통을 우리가 가슴으로 받아들일 때 새로운 삶이 열릴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할머니들 흔적의 부스러기들을 모은다. 서사적 이미지들은 "믿음, 신념, 사랑, 배신, 증오, 공포, 유령"으로 수집되었다. 그것은 전해진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를 새로운 이야기로 구성했다. 우리 모두가 나눌 거대한 이야기로 탈바꿈시키고자 했다. '살아있는 혼'으로 되살려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그의 작품에서 우리를 갈라놓는 '그것'들은 차마 적대할 수 없는 '정의로 무장한 국가'다. 그 앞에서 두려움 없이 선 유령은 민중(民衆)을 대변한다. 유령은 흰 바지로 안방을 배회하고 다시 밖으로 나가 깨진 무쇠 솥 위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갓 지은 쌀밥 위를 떠돌다 사라진다. 백의와 백반은 온 산천에 흩뿌려져 흙이 되고 낙엽이 되었다. 작가는 "미술관을 완전히 새로운 공간, 산자와 죽은 자가 공존하는 이계(異界)"로 만들어버렸다. 서울관은 1979. 10. 26일. 부서진 권력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수습한 공간이었다. 그리고 오늘, 2018. 4. 6일. 우리는 새로운 평화의 역사를 쓰기 위해 분주하다.

할머니들이 소환한 기억은 한반도의 남쪽 지리산과 한라산 자락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그것은 베트남으로, 이란과 이라크로도 이동했다. 고통의 시작과 끝이 어디인지를 말하고자하는 작품은 그 역사가 끊임없이 계속됨을 알린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영웅 만들기로 국가주의가 팽배하다는 사실, 교육이 그렇게 자본을 따라가면서, 혹은 자본을 흉보면서도 자본에 종속되어 간다는 사실을 다시 공개한다. 홍콩의 이주 여성들, 그림자 노동으로 살아야 하는 가사노동자들을 고발한다. 그 고발자는 루마니아 작가다. 한국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현직 미학자도 초대되었다. 그의 말에 '제3세계'가 반복되자, 루마니아 작가는 '제3세계'를 지적한다. 그렇게 우리는 강대국 미국의 그림자로, 때론 아시아를 이용하여 상업자본주의의 생태계를 질타하면서도 때론 즐긴다. 우리 몸에 밴 강대국의 논리가 나도 모르게 툭툭 튀어나올 정도로 자본의 맹아로 살고 있다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해 보이지 않는다.

▲ 임흥순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 ⓒ국립현대미술관

1948. 5. 9일 개기일식은 깨달음을 위한 현상이었을까. "5월 9일은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국회의원 선거일로 이미 공포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날이 마침 일식이 있는 날이라고 뒤늦게 알려져 선거는 하루 연기된 10일 치르기로 결정되었고, 선거를 앞둔 9일에는 아시아의 대부분 지역에 개기일식이 일어나 온통 어둠에 잠겨 버렸다."

전시장은 12곳의 상징들로 촘촘히 구성되었다. 근대의 산물인 계단에 우리는 앉았다. 영화를 보는 관객석이지만, 다른 의미에서 일제강점기 건축물이다. 계곡은 산과 낙엽으로, 지게와 막대기만 남은 바위덩어리들로 재현되었다. 이곳은 떠난 자와 남은 자가 침묵으로 만나는 묵언의 장소처럼 보였다. 우두커니 남은 배. 그 배는 정정화 할머니 독립운동의 매개체이자, 고계연 할머니의 시름을 달려주는 낚싯배이기도 했고, 일본으로 떠나야만 했던 조천읍 김동일 할머니의 타향살이로도 느껴졌다. 낙락장송으로 남고 싶은 할머니들의 깊은 울음을 드러내는 장치다.

제7전시실에서는 <환생>이 상영되었다. 이 공간에는 이라크 전쟁과 베트남 전쟁 피해여성들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이정숙 할머니의 경험담도 그곳에서 볼 수 있다. 위문공연에 나선 이정숙 할머니는 이라크에 가서도 전쟁을 경험해야 했다. 미국의 제국주의에 맞서 아시아의 역사를 다른 지점에서 보게 한 전시였다. 전쟁의 피해는 고스란히 여성과 아이들에게 남는다.

우리의 짧은 현대사에서 제주 4.3과 지리산 빨치산 소탕은 적어도 그땐 정당했는지 모른다. 오늘날에 과거를 돌아보면, 그 사건은 북에서 내려온 반공주의자, 청년단의 분노와 결합하여 제주를 박멸하고 지리산을 토벌한 학살이다. 누가 왜, 걷지도 못하는 젖먹이들을 빨갱이로 몰아세울 수 있단 말인가. 제주 4.3의 상자가 열리고 있다. 이 판도라의 상자가 앞으로 어떤 의미를 던져줄지 새삼 생각해 보게 된다. 우리 사회는 아직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점에서, 피해자의 희생을 애도한다. 우리는 피해자만이 아니라, 가해자와 방조자, 동조자도 함께 기억해야 한다. 그것만이 우리가 과거를 기억하는 올바른 방식이다.

ⓒpixabay.com

관람자와 나눈 이야기들

거의 하루 종일 심포지엄이 열렸다. 참석자는 저녁 늦은 시간까지 이어졌다. 이런 관심은 오랜만에 볼 수 있었다. 왜 그들은 늦은 저녁에 배고픔을 견디면서까지 심포지엄에 참가했을까. 그들에게 이 전시의 의미는 무엇일까. 어떻게 국민이 되고 어떻게 국민이 될 수 없는지를 생각해 본 것일까. 그들에게 현대사는 무슨 의미였을까.

전시장의 둥근 기둥에 부드러운 털실이 감겼고, 그 사이 사이에 관람자들의 감상이 갈피로 끼워졌다. 사람들은 그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정했다. 어떤 이는 맨 아래 바닥에, 어떤 이는 맨 위로 자리를 잡았다. 그들의 말은 놀라움과 격정을 담았고 오늘과 겹치는 내용을 전했다. 정치가 무엇인지를 묻는, 새로운 질문도 들을 수 있었다. 이명박, 10.26. 저항과 항쟁의 사건들을 거침없이 말하는 이도 있었다. 새롭게 태어나고 있는 관람자들을 보면서 희망을 조심스럽게 말해도 될 것 같았다. 어둡고 서늘한 기운이 우리를 감싸고 있을지라도, 온기가 느껴진다면 '봄은 올 것'이기 때문에.

전시를 본다는 것은 의미를 재구성한다는 것과 같다. 우리는 아직 전시에 익숙지 않다. 우리에게는 익숙한 것에 끌려 다니거나, 그것을 추종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현실을 고려하면, 관람자는 작품에서 자신을 길어올리는 데에 익숙지 않은 듯하다. 뮤지엄 리터러시에 보다 더 집중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이 작품은 어떤 작품보다 우리의 결기를 다졌다. 우리는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전시를 통해 더 깊이 생각하는 계기를 얻었다.

ⓒpixabay.com

기획자와 작가의 협업

예술이 할 수 있는 일은 "예술로 말하는 것"일 테다. 이는 역사가 말하는 방식과 태도와 다르다. 다름이 미술을 더욱 새롭게 한다. 미술은 흰 벽에 액자로 존재하지 않아도 된다. 살아있는 음성과 행위, 그 장소를 찾아 그들을 위로해야 한다. 임흥순의 작품에서 줄기차게 드러나는 것은 위로다. 그에게 작품은 모든 이를 위한 제의이기 때문에, 그에게 있어 작품은 운명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다 못한 삶을 이어주고, 그들의 뜻을 품고, 그들을 불러내어 우리 앞에 서게 하는 굿판을 그는 좋아하는 듯하다. 작가의 혼을 읽어낸 또 한 사람이 있다.

훌륭하다 할 만한 이는 큐레이터 강수정이다. 자신이 어떻게 서 있어야 하는지, 그 위치를 잘 조정하는 사람으로 보인다. 그가 생각하는 사람들은 모두 예술이 되게 하려는 듯하다. 그는 예술의 눈으로 사람을 보고, 예술의 눈으로 작품을 보겠지만, 그 보다 더 큰 의미는 그가 '지금 여기' 한국에서 숨을 내쉬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예술을 지키지만, 예술이 삶과 분리되기를 원치 않는다. 끊임없이 예술에 삶을 불어 넣고 삶에 예술을 잡아매는 사람이다. 그의 혼은 그래서 여기서도 살고 저기서도 산다. 이리저리 시점을 옮기면서 말한다. 우리는 살아 있어야 한다고. 그것만이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다고.

우리가 아껴야 하는 사람들은 그들만이 아니다. 대중이 작품에 가까이 가게끔 한 제도와 정책, 후원이 있었다. 현대미술관은 국가의 것이고, 이 전시는 현대자동차가 후원했다. 기업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고 이 작품을 지원했을 것이다. 국가는 이런 작품 속에서 우리가 더 행복해지고 더 사람다워지고 더 정의롭고 예술처럼 잘살아 내도록 돕는 일을 해야 한다. 관람객은 이런 작품을 보면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어떤 자리에서 어떤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는가'를 물어야 할 것이다. 청와대가 가까운 이 미술관. 가로수가 벚꽃으로 다시 피어나고 있다. 향기로운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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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명숙

교육학박사. 성공회대 연구교수. 박물관의 전문직인 정학예사. 박물관교육의 새로운 교육콘텐츠를 개발하는 기관 <새롭게보는박물관학교> 대표. 박물관은 일반대중들에게 아직은 낯선 곳이다. 박물관에서 성찰하고 존재의 의미를 찾는 방법을 안내하는데 마음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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