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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닝구'와 '빽바지'의 추억…지금 이 논쟁이 李정부에 도움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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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닝구'와 '빽바지'의 추억…지금 이 논쟁이 李정부에 도움이 될까?

[박세열 칼럼] '재래식' 아닌 '신식' 언론인들이 지금 하고 있는 일들

정치란 무릇 사람들(유권자)의 감정을 다루는 종합 예술이다. 그런 면에서 감성적 이유로 정책과 정치인에 대한 호오가 갈리는 것은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 없다. 정치 칼럼이나 정치 비평도 마찬가지다. 아마도 이 칼럼이 나간 후 'OOO 기자는 B다'라거나 'OOO 기자는 A다'라는 식의 레테르가 붙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그런 건 본질적 문제가 아니다.

유시민 작가의 'ABC 분류법'이 화제다. 유시민 작가가 이제와서 'ABC 분류는 지지층 대상이 아니라 정치인을 분류한 것'이라거나, '벤다이아그램 크기가 A가 작고 B가 크다' 라거나 하는 '저작권 주장'을 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이미 텍스트는 발화자에서 벗어나는 순간 그의 것이 아니다. 의미도 경계도 불분명한 'ABC분류법'이 시중에 유통되는 순간, 호사가들은 이런 저런 방식으로 이걸 놀이처럼 이용한다. 유시민 작가가 뜻도 불분명한 '재래언론'이란 말을 시중에 유통시킨 것처럼 말이다. ABC 분류법이란 게 '확증된 이론'도 아니고 그냥 '현상 분석'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건 유시민 본인이 그런 분류법의 '피해자'였다는 점이다. 20여년 전 유시민 작가가 '현역 정치인'이었을 때 유행했던 이른바 '난닝구 와 빽바지' 논쟁에서 유시민은 자신이 '빽바지'로 불리는 것에 대해, 나아가 당시 여권 지지층을 '난닝구'와 '빽바지'라는 경박하고 조롱섞인 말로 분류하고 희화화하는 데 불쾌감을 드러낸 바 있다.

노무현 정부 중반 즈음에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의 내분을 두고 '난닝구'와 '빽바지'라는 말이 호사가들의 입길에 올랐다. '재래식 언론'들도 마구 받아 썼다. 이 말이 탄생한 건 2003년 민주당의 분당 과정에서였다. 그해 17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은 ‘사수파’와 ‘신당 창당파’로 나뉘었다. 2003년 9월 4일 민주당 당무회의장에 러닝셔츠(난닝구) 차림의 50대 남성이 난입해 "민주당 사수"를 외쳤다. 이때부터 난닝구는 '호남 지역주의'와 '민주당 기득권 당권파'를 상징하게 된다.

그보다 앞선 2003년 4월 재보선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개혁국민정당 유시민 작가는 국회 본회의장에서 베이지색 면바지(빽바지)를 입고 등장했다. '동료 국회의원'들로부터 야유가 터져 나왔고, 한나라당(지금의 국민의힘) 의원들은 집단 퇴장했다. '빽바지'는 민주당 개혁파, 혹은 요새 말로 하면 기득권 양당의 패권 정치를 비판했던 '노란 물결', 즉 '뉴노무현'의 상징이다.

그리고 2년 후 2005년 4월 열린우리당 전당대회에서 '난닝구'와 '빽바지' 분류법이 당을 흔들었다. 유시민 작가 등 개혁당 출신들과 그 지지자들은 '기간당원제'와 '당원민주주의'(지금 더불어민주당의 '당원주권론'과 비슷해 보이지 않은가?)'를 내걸고 문희상 등 구 민주당계 인사 등을 '실용파'로 부르고 '난닝구'들을 저격하며 공세를 폈다. 당의장 문희상은 '개혁' 대신 '실용주의' 노선으로 방향을 틀었으나, 이후 선거에서 연전연패 하면서 수렁에 빠져든다. 어느새 '노무현 정신'은 실종되고, 이 싸움은 극심한 내분으로 치닿는다.

'난닝구'와 '빽바지' 논란 과정에서 손석희 씨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한 유시민 작가의 반응을 보자.

손석희 : 이른바 뭡니까? 난닝구 논쟁, 빽바지 논쟁, 이런 것들이 당에서 나온 것 자체가…."

유시민 : 당에서 나온 얘기가 아니고요. 그것은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판에서 당원들끼리 주고받은 논란인데 그걸 정치인들이 들고가서 기자들한테 얘기한 것이 문제고, 그리고 일반 네티즌들이 뭐라고 얘기하든 그것은 그 사람들의 문제지 당의 논쟁은 아닙니다. 침소봉대 해서 25만 명의 당원 중에 한 10명이 그런 논란을 주고받았다고 해가지고 그것을 무슨 난닝구-빽바지 논쟁이라고 보도하는 그 자체가 저는 우스운 일이라고 생각하고요. (...)그러니까 제가 당의 진로에 관해서 무려 17쪽짜리 논문을 발표하고 3쪽짜리 요약본을 배포해도 어느 언론도 그런 건전한 노선논쟁에 대해서는 보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난닝구니 빽바지니 하는 감정적 용어가 튀어나오면 바로 헤드라인으로 뜨거든요. 그런 태도가 언론에도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국회의원으로, '정치 플레이어'로 뛰었던 유시민 작가 입장에선 '난닝구와 빽바지' 논쟁은 가소로운 일이고, 정치의 본질을 외면하는 호사가들의 희화화라고 봤다. 그리고 '난닝구'와 '빽바지' 논쟁이 애초 의미를 벗어나 이용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지금 '정치 플레이어'가 아닌 유시민 작가는 장외에서 민주당에 'ABC 분류법'을 던졌고, 역시 호사가들은 'B아무개' 식으로 '이재명을 이용하는 이익집단'을 색출해 낙인 찍는 놀이에 빠져들었다. '난닝구'와 '빽바지' 분류법이 표류하면서 끊임없이 새 의미로 옷을 갈아입고 민주당 계열 정당의 내분 때마다 유령처럼 따라붙었던 것처럼. 'ABC 분류법'도 이런 저런 프레임으로 자가 진화하면서 아마 이 정부 끝까지 따라붙을 운명일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한번 내뱉어진 텍스트는 발화자의 것이 아니다.

옛날 이야기를 한 김에, 조금 과하게 확장 해석하면 유시민과 같은 '빽바지'의 후예들은 이해찬 대선 캠프에 있었고, '난닝구'의 후예들은 정동영 대선 캠프로 갔다. 정동영 캠프에 있던 이 중 하나가 지금의 이재명 대통령이다. 20여년 후 대통령에 당선될 당시 초보 정치인 이재명은 '난닝구'였을까? 당시 여권의 극심한 분열을 지켜봤던 이재명 대통령이, 지금 여권의 내분 조짐을 어떻게 보고 있을지 궁금하다.

짚고 넘어가고자 하는 건 '난닝구와 빽바지'니, 'ABC론'이니 하는 논쟁이 아니다. 이재명 정권 출범 1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벌어지는 '권력 투쟁'이 몹시 낮설다는 점이다. 20여 년 전 노무현 정부 시절은 여소야대 국면이었다. 안정적 국정 운영을 위한 의석수 늘리는 전략을 목표로, 당 내에서 '개혁파'와 '실용파'가 노선 투쟁을 하는 게 볼썽사납더라도 꽤나 바람직한 모습으로 평가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여소야대가 아니다. 여당은 민주화 이후 역대 어느 정권보다 많은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 '안정적인 상황'이다.

그런 와중에 여권 내 '권력 다툼'으로 비치는 낙인 찍기가 유행처럼 번지는 건 집권 여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안감'을 오히려 자극하는 일이다. 정권 초에 '차기 주자는 누구누구'니 하는 말들을 대놓고 하는 여당과 여당을 지지하는 '스피커'들을,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 '계엄'과 '탄핵'과 같은 정치적 격동의 시기에는 유시민이나 김어준 같은 '영웅적 스피커'들이 등장해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걸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은 국정을 수습하고 안정을 찾아가야 하는 시기다.

정치란 몇몇 비평가나 '재래식 언론'을 비난하는 유력 '유튜브 언론인'들의 규정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지나고 보면 다 부질 없는 일이다. '난닝구 빽바지 논란'이 지금 정치사에 무슨 의미를 갖고 있겠는가. '레거시 저널리즘'의 유시민식 번역어인 '재래식 언론'의 반대말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본인들의 '정치적 효용성'을 과대평가하고 '예언자(이를테면 B그룹은 이재명을 배신할 것이라는)'를 자처하며 발생하지도 않은 일에 불필요한 논쟁의 불을 지피는 게 누구인지 잘 생각해보길 바란다.

▲지난 25일 유튜브 방송 <매불쇼>에 출연한 유시민 작가 ⓒ 매불쇼 방송 화면 갈무리
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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