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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을 이야기한 전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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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을 이야기한 전시 이야기

[박물관의 '주름'] 통일 테마전 <경계 155>전과 <더불어 평화>전

"만약에"

전시장에 들어서기 전 로비에서 종이 울렸다. 어릴 적 들었던 익숙한 멜로디가 나를 맞이했다. 바닥에는 한반도를 따라 움직이는 작은 방울 기차가 종을 울려 연주하며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 날이 온다면>의 리듬을 따라 전시를 보았다. 한반도의 남쪽 땅 남해바다 앞에 악보가 있었다.

"남과 북이 통일되는 그런 날이 정말 온다면 (...) 재미있는 북한 말도 만나 배워야겠네 (...) 우릴 가로 막은 녹슨 철조망을 하나 둘씩 걷어 버리고 (...) 축구 한판 하면 좋겠네"

평창 올림픽에서 남북 선수가 만났고, 예술단이 공연하기도 한 2018년 2월의 겨울. 서로 말이 통하는 '이상한' 사람들. 서로 모습이 비슷해 이웃처럼 여겨지는 이상한 느낌들. 고만고만한 키와 갈색 피부, 아리랑 연주를 들으면서 울컥하게 되는 끈끈함. 나는 그렇게 평창에서 북한을 만났다.
낯선 북한 사람들을 보면서 어떤 이는 '속지 말자' 하고 어떤 이는 '잘했다' 한다. 나는 북한이 '가깝네, 아주 가깝네' 하는 느낌을 받았다. 북한에서 내려온 유명한 요릿집이 궁금해졌고, 북한 순대와 만두, 냉면의 담백함이 그리워졌다.

경계와 평화사이

서울시립미술관 통일 테마전 <경계 155>전과 <더불어 평화>전의 목적은 두 가지였다. "<경계155>는 분단 이후 60여 년이 지난 현재 시점에서 통일을 화두로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것과 필요한 노력이 무엇인가를 되새기는 전시였다. 제2전시 <더불어 평화>는 분단과 전쟁의 비극을 환기시키고, 통일에의 염원을 이미지로 응축시켜 평화와 공존의 비전을 제시"하는데 있었다.

전시 제목이 '경계 155'와 '더불어 평화'로 명명된 이유는 무엇일까. 경계를 긋고 있는 분단 현실과 평화의 가능성을 보자는 말 같다. 경계의 길이는 155마일. 평화는 더불어 추구해야 한다는 약속이었다. 더불어 평화는 혼자서는 평화를 이룰 수 없다는 약속 혹은 경고다. 갇힌 세계를 들여다보며 그 너머를 생각하는 시간. 전시는 그렇게 '여기와 저기'를 넘나드는 구성이었다.

전시 작품은 남한 사람, 일본 사람, 네덜란드 사람, 북한 사람, 탈북했다는 사람들의 소리로 가득했다. 각자의 시각에서 전시 작품은 남북한의 분단 현실을 이야기했다. <이상한 풍경>(김정헌 작)은 1946년생 원로의 작품답게 남북한의 국가상징 태극기와 인공기를 하늘에 높이 세운다. 그 곁에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아냈다. 그 의성어들은 마치 태극기와 인공기를 조롱하는 듯했다.

"낄낄 쾅쾅 히히히 아아아 꿀꺽꿀꺽 쭉쭉..."이다.

동물의 목소리 같기도 하고, 사람의 음성 같기도 했다. 그렇게 남북한의 하늘을 뒤덮은 두 국기. 이 체제 아래에 우리가 있음을 명징하게 보여주었다.

▲ 김정헌의 <이상한 풍경> ⓒ서울시립미술관 사진제공

일본 작가는 남한과 북한의 청소년처럼 앳된 사람을 작품에 담았다. 도시도 사진에 담았다. 평양과 서울을. 그런데 남북의 차이를 모르겠다. 어디가 남한인지, 어디가 북한인지를 구별하기 어려웠다. 순간 북한은 '가난하고 꼬질꼬질'해야 하는데, 이를 발견할 수 없었던 답답함에 기어이 북한의 '이미지'를 찾아내려고 눈을 떼지 못하는 나를 발견했다. 작가는 사실을 말했지만,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과거 교육의 문제임을 나는 이제야 되새기면서 반공 교육의 효과를 새삼 실감하고 있었다.

둘은 너무나 닮았다. 누가 북한사람인지, 누가 남한사람인지 구분이 안 되었다. 원래 구분이 안 되는 게 맞는데, 우리는 여태 둘을 구분해야 할 것처럼 살아왔고, 그것이 남한의 '나'를 증명하는 방법이었다는 걸 전시를 보면서 알게 되었다. 왜 그리도 구분해야 했을까. 나는 왜 나를 그리도 증명해내야 한다는 강박에 갇혀 있었을까.

칸막이 방 안으로 들어가니 벽에 계단처럼 액자가 걸려있다. 문형민의 <10개의 키워드-색>이라는 작품인데, 작은 액자들이 각기 다른 색깔이다. 글자는 없고, 액자는 수평이 아니라 수직이다. 어떤 것은 높은 곳에, 어떤 것은 낮은 곳에 위치했다. 북한의 이미지를 담은 10개의 단어. 무엇이 될까.

"종북일까. 빨갱이일까. 간첩일까. 공산주의자일까."

작가 문형민은 그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 전시를 보는 나는 못내 궁금했다. 다른 이들은 10개의 키워드를 무엇으로 정리했을까. 머리에 떠나지 않는 10개의 키워드. 그 키워드가 풀어야 할 숙제처럼 남아 머릿속을 맴돌았다.

▲<구멍 망령 균열> 제인 진 카이젠. ⓒ서울시립미술관

한국계 덴마크 작가 제인 진 카이젠은 <구멍 망령 균열>을 전시했다. 작품은 흑백 사진 속 이야기였다. 전혀 새롭지도, 놀랍지도 않았다. 왜? 라는 질문이 자동으로 나올 만큼. 설명을 보니 그 사진은 풍경이 아니었다. 그는 뿌리 찾기를 위해 찾은 북한의 이야기를 기억 속에서 짜 맞추고 있었던 것이다. 정.체.성이 그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문득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에게 구멍은 무엇이고, 망령은 어떻게 떠돌까. 균열이 일어난 이 세계를 그는 어떻게 깁고 있을까.

낙서(樂書)

화장실 벽에 쓴 낙서는 저항이다. 속으로 새겼던 말이 화장실 벽에 드러났을 때, 낙서는 말하지 못한 말이 되어 민심을 드러내는 진실이 된다. 정덕현의 <낙서>는 애국심을 물었다. 그는 태극기를 액자 안에 넣었다. 태극기 봉이 태극모양 대신 가운데를 차지한 채 우뚝 서 있다. 그 작품의 이름은 놀랍게도 <벌레 소리>다. 벌레 소리를 한자로 풀어보면 '벌레(虫) 소리(聲)'다. 나는 태극기를 보면서 충성을 '들었다.' 그 충성은 태극기와 결합하면서 충성(忠誠)이 되었다. 내가 청년일 때 태극기는 눈물겨운 나라의 상징이었다. 태극기는 아침저녁으로 국민을 그 앞에 서도록 했다. 국가에게서 충성을 받는 국민이 아니었다. 국가에게 충성해야 하는 국민으로 우리는 만들어졌다. 나도 그 중 한 사람으로 시대를 살아야만 했다. 국가=충성으로 일치된 삶을 살아냈다.

그 태극기는 2002년 광장에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태극기는 붉은 태극전사로 둔갑하여 새로운 나라를 그려나갔다. 무섭고 놀라운 물결들은 ‘태극기=나와 우리’로 변신했다. 2018년 평창올림픽에서 태극기는 흐릿하고 한반도기는 전체를 휘감았다. 인공기는 태극기와 나란히 섰다. 그렇게 태극기는 우리 앞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기억된다. 태극기는 3.1독립운동을 거치면서 가슴 속에서 가슴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태극기가 휘날리는 아름다운 대한민국은 그렇게 젊은이들에게 조롱당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작가는 "할아버지 애국심에 동조하지 않을 것"이라는 바람을 전한다. 그뿐 아니라 "바르게 살자"는 교훈을 전한다. 국정원 앞에 버티고 서 있는 글귀를 이렇게 읊는다.

"관찰자가 될까봐 경계하고 / 프로파간다도 아닌 / 이도 저도 아닌 / 나의 태도"를 경청한다.

나도 나를 경청한다. 국정원이 앞에 있는 이곳에서. 나의 태도는 또 다른 나를 경계한다.

"~했다면"

분단의 상처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 층이 매우 깊이 가려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말하지 못하는 지점이 분명히 있다. 그 지점에 서 보지 않은 사람이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가늠할 수 있을까. 우리는 북한을 생각하면 안 된다고 배웠다. 북한을 말하면 안 된다고 배웠다. 북한 사람을 입에 올려서도 안 된다고 배웠다. 그래서 나에게 북한은 떠올려서는 안 되는 것이 되어 버린 듯하다.

나 같은 사람들이 가득한 우리 사회. 그 사회에서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는 이상한 방식으로 북한을 '말해 버렸다.' 북한을 말한 그 사람들은 법정에 끌려가서 북한을 어떻게 말했는지를 설명해야 했다. 그 안에서 그들의 말과 생각이 복잡하게 국가에게 증명되어야 했다. 그것이 예술인지, 정치인지, 선동인지, 법을 어긴 건지를 국가는 물었고 그들은 답했다. 헌법에서 말하는 국민이 주인인 세상은 적어도 아니었던 것 같다. 그 순간만큼은. 검열의 손길은 국가의 책무가 되어 그들을 훑어 내렸다. 그 후 우리 사회는 어떻게 되었을까. '말하지 말하라. 생각도 하지 말아라. 그건 예술이 아니다'가 되어 버린 것 같았다. 검열은 다시 예술의 옷을 입고 있었다. 위키피디아는 이들을 이렇게 소개한다.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는 2017년에 개봉한 대한민국의 영화이다. 국가보안법에 맞서기 위해 북한을 장난감처럼 갖고 놀고 싶어 하는 인디밴드 밤섬해적단의 발칙한 행각을 파격적인 문법으로 전하며 한국사회를 돌아보게 하는 영화."

그 방식이 너무나 새로워서 기성세대가 된 나는 헛갈렸다. 무엇이 우리를 혼돈하게 하는가. 그것이 낯설어서 귀를 기울이게 된다. <밤섬해적단>은 말하고자 했고, 그것이 무언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그 작품을 본 사람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이것 혹은 저것이라고. 그 작품을 접한 사람들이 그렇게 말한다하더라도 그것이 '적을 찬양'한 것이 된다고 보기는 좀 억지스러웠지만. 작품은 그 속에서 찾았다. 그 '적'을. 그래야만 국가가 국민을 온전히 지킬 수 있다는 자세로. 그렇게 국민은 국가와 의논해야 한다. 무엇을 생각할지를. 세균이 전파되면 안 되기 때문에. 나도 작품도 경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칸칸이 나눠진 그 세계를 다시 보게 되었다.

삼각원뿔 속에

안상수의 작품에는 사진 위에 또 다른 선들이 그어져 있다. 작품은 사실을 찍었지만 그 사실은 사실이 아니다. 우리 몸은 여기에 있고 저 하늘은 '저기도 여기도' 있는 하늘이다. 하늘을 건너 그곳으로 우리는 갈 수 없고, 생각을 타고 그 질서 속으로 편입할 수도 없다. 절단과 결함이 혼재된 상태. 그 상태를 안상수는 그리고 있다. 메를로 퐁티는 몸을 "세계에의-존재의 수레"라 하였다. 몸은 "어떤 기획들에 계속해서 참여하는 것"이라 하였다.

우리는 우리의 몸에 정신을 실었다. 지금 우리는 몸에 정신이 박혀 있는 존재다. 정신은 몸으로 표현되고 몸은 정신을 받들고 있다고 보면, 정신과 몸은 세계를 표현하고 현재를 관계한다. 그렇게 드러나는 세계는 우리의 의식 속에 꿈틀거리며 무시당하거나 층위를 이룬다.

▲ 파주의 거리를 달리는 타이포그래픽 디자이너 안상수의 작품. 남북은 이런 피라미드 안에 갇혀 있다는 말이다. <경계> ⓒ안상수 사진제공=서울시립미술관

몸은 질서에 의해 동작되고 정신은 몸을 대신해 지각하고 지속한다. 선 경험은 후 경험을 만들어 일반적인 일관성으로 복제된다. 북한에 관하여 우리는 같은 인식을 가져야만하고, 다른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이를테면 '나와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거기에도 살고 있을까'와 같은 엉뚱한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런 세계들로 나를 운반해 갈 때 그것은 통일이라 배웠다.

통일의 그림자는 통일이 아닌 그림자를 담아냈다. 통일이 깊으면 깊을수록 의심하고 저울질하고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통일은 그리 쉽게 올 수 없다. 통일이 아니라 그저 금강산을 식후경하면 그게 전부일 수 있다. 그 경계의 한 구석을 뚫어 각자 넘나들게 만이라도 한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철조망에 갇힌 두 섬, 그 안의 사람들

목숨을 걸고 건넌 사람들이 그린 고향. 그들에게 고향은 어떤 곳일까. 그들이 그리는 고향에는 무엇이 있을까. 작가는 지금 여기 살고 있는 학생들에게 고향의 잔상을 그려보자고 했다. 그들이 그리는 고향은 꿈속일 수도, 현실일 수도 있다. 가슴은 아프고 아득한 두려움은 트라우마가 될 수 있다. 북에서 바람이 불면 그들은 북의 냄새를 그릴 것이다. 남에서 김치를 보면 북의 시원한 김치를 그릴 것이다. 남의 만두를 먹다가, 순대를 먹다가 그들은 문득 북의 맛을 탐색하게 될 것이다.

그들이 그린 고향에 나도 갔다. 그들의 붓질은 섬세하고 깊다. 그들의 이야기가 잔잔하게 흐른다. 길이 있고 낮은 지붕의 집이 보인다. 그들의 마당에 서 있던 나무들도 안녕한지를 묻는 듯하다. 개 중에는 김일성의 거대한 동상이 그들의 한복판에 들어와 있음도 볼 수 있다. 구름은 둥실 남한에 떠올라 북한을 그린다. 그립다. 그들의 눈에 그들의 손에 북한의 바람이 실려온다.

▲ 양지희 & 다음학교 학생들 <나의 살던 고향은> ⓒ 서울시립미술관 사진제공

북에서 왔다는 것은 북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의미한다. 북에서 남으로 왔다는 것은 흔히 말하는 정책용어 다문화인도 아니고 코리안도 아니다. 그들은 북에서 왔기에 이주민은 더욱 아니다. 북에서 온 사람들의 트라우마는 어떻게 남아 있을까. 북에서 온 사람이 꿈꾼 남한은 어떤 모습일까. 그들이 말하는 남한의 모습을 직접 그리게끔 한 전시는 관객이 3만 탈북자들의 심정을 느껴보게 했다.

"좁고 어두운 곳, 간신히 몸이 빠져나가야 하는 그 길 위에서 라디오가 말한다. '김정은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충성 경쟁을 시킨다'는 남한의 대북방송."

북한에서 내려온 사람들은 남북이 비슷하다고 말한다. 충성을 경쟁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권력은 그렇게 남북한에 공히, 공고히 내려앉았다. 독일은 어떻게 통일을 했을까. 그들은 어떻게 가로막지 않고 길을 터놓았을까. 이진석은 작품 <비단길 1.2>에서 베를린으로 가고 평양을 건너는 비단길을 그렸다. 통일은 그 길을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차를 타고 유럽으로 가고 러시아 땅을 밟는 상상을 담았다. 우리가 통일을 꿈꾼다면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작품 <선무>에는 다섯 사람이 우리를 보고 달려오는 정경이 있다. 그들의 흰 티셔츠에는 각기 다른 나라의 국기가 프린트 되어 있다. 그들은 서로 손을 잡고 달려온다. 그리고 그들이 왜 우리에게 달려드는지를 말한다.

"우리는 평화를 원해요"

북한을 포기하고 남한에 내려온 작가라고 도슨트는 소개한다. 그는 북에서도 작품 활동을 한 작가이지만, 이름은 없다. 그는 이름을 밝히지 않는단다. 왜 그럴까? 그가 남한에서 이름을 드러내는 순간, 북에 남은 가족들이 목숨을 잃을 테니까. 그는 무명인으로 작품을 내 놓았다. 그 현실을 우리에게 전하려고 남한에서 작품을 하는 것일 게다.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그 현실을 목도하라는 메시지.

▲ 통일은 축제다, 오윤 <통일대원도> ⓒ서울시립미술관 사진제공
오윤의 그림은 곰과 호랑이도 덩실덩실 춤추는 통일이다. 함께 기뻐하고 춤추는 것이 우리의 소원이라는 작품이다. 어깨가 들썩이는 춤사위가 꽹과리 소리와 함께 떠들썩하다.

우리는 갈 수 없지만, 북한은 다른 나라사람들에게는 열려 있다. 그들이 전하는 북한 땅. 그 땅의 무엇이 우리의 기억을 끌어올리고 있을까. 백두산 백록담이 그들의 눈에 찍혀 전시에 나왔다. 우리가 갈 수 없는 그 땅을 로저 셰퍼드가 전한다. 맑고 넓은 렌즈로.

▲ 로져 세퍼드의 렌즈를 통해 드러난 백두산의 모습. 여전히 그곳에 백록담이 있다는 사실. 서울시립미술관 사진제공

우리는 갈 수 없는 백두대간을 푸른 눈의 로져 세퍼드가 기록했다. MBC는 그의 행보를 다큐멘터리 영상으로 전했다. 이렇게 그 의미를 전하면서.

"그는 2011년과 12년 두 차례 북한을 방문했다. 로저의 북한 백두대간 출발점은 당연히 백두산이다. 삼지연 김일성 광장에서 시작하여 북한 측 인사들인 통역, 행정담당, 기사가 이들의 일행. 이름 하여 '백두대산줄기 탐험대'. 이들의 탐험이 시작된다." (2013. 7. MBC 다큐 스페셜)

먼발치에서 백두대간을 눈으로 읽어야만 하는 우리. 우리는 극복할 수 없는 불가항력을 본다.

시시(視時)한 시. 시. 시.

전시를 보고 나오니 자판기가 있다. 3초를 누르면 영수증 같은 시가 나온단다. 시가. 시는 나를 선택했다. <지금은 결코 꽃이 아니라도 좋아라>(양성우)는 지금을 말한다.

"네가 흘린 핏방울이 살아남아서 오는 봄에 풀뿌리를 적셔준다면 지금은 결코 꽃이 아니라도 좋아라 (...) 다만 녹슬지 않는 비싼 넋으로 (...) 네가 죽고 다시 죽어 스며들지라도 (...) 끈끈한 눈물로 잠시 머물다 갈지라 (...) 증오가 아니라 포옹으로 네가 일어서서 돌아온다면 (...) 이 저주 받은 삼천리에 피었다 지는 모오든 꽃들과 (...)"

<봄바람과 철조망>(노원호)은 이런 질문을 던진다.

"내가 할 일이 무엇인가?"

<추석날 고향에 가서>(민영)는 경험을 들려준다.

"(...) 구멍 뚫린 철모 하나를 보았다. (...) 이 철모의 임자는 쓰러졌을까? (술 한 잔을 그 아래 부어 놓고 가을 제사를 지낸다.) (...) 그대가 어느 편 사람이었든 상관하지 않으마! (...) 옛 싸움터에 오늘은 국경 없는 바람이 분다."

시는 가슴을 읽어 내린다. 쓸쓸하게. 공기를 타고 음악이 장 안을 가득 채운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끊임없이 되풀이 된다. 되풀이 된다. 기계가 멈출 때까지.

▲ <통일테마전> 전시 연계 프로그램. '통일은 무엇인가'. 오색찬란하다. ⓒ서울시립미술관

어떤 게 통일인가?

11명의 인사를 만나 통일이 무엇인가를 물었다. 무거운 질문이 던져졌고 전문가들은 답했다. 최 관장은 그 다큐의 제작자로 남북의 축을 교직했다. 마치 오른손이 왼손에게 말하는 것처럼. 그 이야기를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교육은 대립하는 측면이 있다. 일 잘하고 말 잘 듣는 민중의 길을 닦는 과정, 체제 유지를 찍어내는 관점과 부딪힌다. (...) 교육은 깨어있는 민주 시민을 양성하는 것이다. 국가 폭력으로부터 개인의 가치를 복원하는 것. 개별적 민주 시민은 국가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국가와 시민의 관계가 정상화되어야 한다. 국가의 주인으로서 국민은 국가의 폭력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자기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 입장과 판단을 정확하게 해 낼 수 있는, 정보를 거를 수 있는 안목을 가지는 것이다. 한 개인에게 복합적인 측면에서 어떤 관점이 중요하게 작동된다. 그 통념은 강요받은 것이다. 민중이 자기 시각에서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 적대시 안하게 되는 것, 민족이 갈라진 것이다. 서로 교류하게 되면 주민들이 두 체제를 볼 것이고 선택할 것이다." (한홍구)

"전쟁은 (...) 밤에 잠자다 어느 날 떨어지는 거더라. (...) 전쟁은 한 세대를 망가뜨렸고, 어미가 자식을 못 보게 했다. 대대로 죄를 물어야 한다. 전쟁과 평화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이 태어나서 겪지 말아야 할 것을 겪지 않도록 해야 한다. (...) 평화로 가는 길은 왕래하고 서신하고 소식을 알면 된다. 절실하다. 잃을게 없다고 생각한다." (김수진)

"통일, 평화 어느 것이건 너무 쉽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뜻만 세우면 어떤 일이든 이룰거라는 생각을 하지 말아라.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걸 알아야 한다.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 끊임없는 선택의 문제다. 통일이 된다는 것은 쓸데없이 괴롭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 상대방의 입장을 존중하고 이해해야 한다. 그런 길을 찾는 것, 대립을 극복하면 이런 좋은 점이 있다. 기반과 조건을 확충하려는 노력이 우선 되어야 할 것이다. 남한 사회가 북한 사회를 배워야 할 것도 있다. 그들은 아파트를 지을 때 에너지 소비량을 줄이는 기술을 적용할 만큼 선진적이다. 불화(不和)가 사회 전반에 불필요하게 만연되어 있다. 얼마나 그것을 억제하고 축소하느냐에 따라 통일의 방향이 정해질 수 있다."

"나는 익숙한 것에 대해서만 상상한다. 새로 정보를 가지고 있고 노력하면 새로운 것이 보인다. 한국에서 전쟁은 북한에 의해서든, 미군에 의해서든 일어날 수 있다. 북미 간 첨예한 대결의 문제가 있다. 군부의 잘못된 논리와 믿음이 제1차 전쟁을 시작하게끔 했다. 그 믿음은 이런 것이다. '선제 공격은 유리하다. 전쟁은 단기전으로 끝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촘스키가 말하기를 베트남 전쟁 당시 소수의 양심적인 목소리가 깨어있는 시민들이 베트남 전쟁을 멈추게 한 것이라고 하였다. 전쟁을 국민이 관리하고 통제했던 것이다. 통일은 가능하다." (김창훈)

"남북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e)는 실상 북한이 만든 것이다.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 '고난의 행군'을 지나 북한은 거듭나고 있다. 개성공단 폐쇄는 정확한 진단이 아니었다. 5.24 조치 이후 물적 인적 교류는 남북한에 2일이면 가능해진다. 어떤 이들은 커피믹스-자본주의-붕괴론을 말하기도 한다. 그것은 틀렸다. 경제적으로 민간이 교류하면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이익이 되기 때문에 남북한이 만난다." (강주원)

"남북격차를 줄이는 통합의 과정은 길게 보아야 한다. 분단비용보다는 인도주의적 사고가 우선이어야 한다. 균형적인 사고로 평가해야 한다." (정근식)

"북은 26개의 경제특구를 지정했다. 분단은 왜곡을 불러온다. 독재정치는 정치적 혐오를 양산했다. 분단체제는 평화통일 문제에 등을 돌리게 했다. 통일의 개념을 왜곡되게 가르쳐 주었다. 평화에 동의하고 박수치는 사람들은 통일에 동의한다. 상호존중이 중요하다. 평화의 오랜 과정으로 협력하고 여행하면서 국민적 자신감이 생겼을 때 통일이 논의되면 좋겠다. 통일비용은 사실상 없다. 분단비용만 있을 뿐이다. 북한붕괴론과 같은 이데올로기의 전제가 사기일 수 있다. 이것은 반 윤리, 반 도덕적이다. 정상성을 회복해야 한다. 통일은 어쩌면 0.5+0.5=1일 것이다. 평화가 통일이다. 헤어진 가족들이 저녁 같이 먹는 게 통일이다. 완벽한 블루오션이 통일에 있다. 가능성과 품격 있는 사람이 되는 길이다. 6.15 공동선언 2항을 단계적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상호존중이 그 답이다." (김진향)
전문가들은 상호존중 교육과 문화적 교류가 우선이라고 한 입으로 말했다. 통일비용을 걱정할 게 아니라, 분단비용이 더 문제라고 지적했다. 깨어 있는 시민이 그 일을 해낼 수 있다고 했다. 결국 답은 시민이다. 나도 그 중 하나다. 날마다 깨어 있도록 성찰해야 한다.

서울시립미술관 통일 테마전 <경계 155>전과 <더불어 평화>전/ 전시기간 2017. 12. 5.(화) ~ 2018. 3.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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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명숙

교육학박사. 성공회대 연구교수. 박물관의 전문직인 정학예사. 박물관교육의 새로운 교육콘텐츠를 개발하는 기관 <새롭게보는박물관학교> 대표. 박물관은 일반대중들에게 아직은 낯선 곳이다. 박물관에서 성찰하고 존재의 의미를 찾는 방법을 안내하는데 마음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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