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나라 일본에서 지진 규모 9.0으로 세계에서 1900년대 이래 발생한 4번째로 큰 지진이 발생했다. 지난주 금요일 발생한 대지진의 여파로 여진이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사망자만 수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여기에 후쿠시마의 원자력 발전소 폭발로 방사능 유출 등 2차, 3차의 피해로 번지고 있는 상황이다.
세계 경제규모 3위의 일본에서 일어난 대재앙. 1989년 부동산 거품이 꺼진 이후 20년 가까이 경제침체로 '내리막길'을 걷던 일본 입장에선 천정벽력 같은 사건일 것이다. 2009년 50년 가까이 집권하던 자민련 정권이 막을 내리고 집권당 민주당 정권 입장에서도 집권 2년 만에 맞은 엄청난 시련이다.
쉽지는 않아 보인다. 대지진도 대지진이지만, 원전 폭발사고로 많은 국민들이 '공포'에 떨고 있다. 특히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져 패망한 역사를 갖고 있는 나라다. 지금도 수많은 피폭자들과 그 후손들이 그때의 상처를 끌어안고 살고 있다. 그래서 '방사능 유출'은 일본인들에게 더 공포와 고통스러운 일일 수 있다.
이런 대재앙 속에서 발견되는 것은 '절망'만은 아니다.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일본 국민들이 보여주고 있는 '배려심'은 전 세계인의 찬탄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평소 일본인들은 가정과 학교교육을 통해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는 가르침을 최우선적으로 받는다고 한다. 사회윤리의 핵심이기도 한 이런 '메이와쿠'는 이번 대지진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건물이 흔들리는 등 긴급 상황에서 대피하면서 서로 먼저 살겠다고 악다구니를 부리는 게 아니라 질서 정연하게 대피하는 모습, 약탈이 일어나기는커녕 대피소에서 우동 10그릇을 놓고 50명이 다른 사람을 위해 양보하는 모습, '나보다 더 연락이 시급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며 전화 통화를 극도로 자제하는 모습, '내가 울면 더 큰 피해자에게 누를 끼칠 수 있다'며 슬픔을 자제하는 모습 등은 많은 이들에게 큰 감동을 주고 있다. 이번 대지진의 끝이 어디일지 아직 가늠하기조차 힘든 상황이지만 "아, 저런 국민들이라면 반드시 극복하고 다시 일어날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세계가 이처럼 안타까움과 경탄이 섞인 시선으로 일본의 대재해를 바라보고 있는데, 이웃나라 한국은 어떤가. 물론 한국과 일본의 사이엔 감정적으로 아직은 건너기 힘든 '강'이 놓여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식민통치와 전쟁을 경험해보지 못한 전후 세대에 비해 나이든 세대들은 '일본' 하면 먼저 '원한'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는 것도 이해가 간다.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한국 언론이 일본과 관계에 있어서 집중했던 이슈는 독도 문제, 과거사 왜곡 등 일본 우익세력들의 군국주의 부활 음모와 관련된 문제들이었다. 물론 이런 문제를 접어두자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야말로 서로의 감정을 자극해선 절대로 풀릴 문제가 아니다.
트위터 등을 통해 많은 이들이 일본 대지진 사태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하고 자발적인 모금운동을 벌이는 등 일본이 겪는 고통을 함께 아파하는 모습을 보이는 반면 소위 '사회지도층'을 자처하는 이들은 어떤가. 일본인들의 불행은 '강 건너 불구경'하면서 자신들의 '이익'을 앞세워 무책임한 발언을 쏟아내고 있지 않나.
한나라당의 차기 대권주자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지난 13일 트위터에 "일본 대지진으로 사망·실종만 2500여 명, 연락불통 만여 명입니다, 원자력발전소가 폭발하고 있습니다"며 "한반도를 이렇게 안전하게 해주시는 하느님께 조상님께 감사드립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당장 누리꾼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국내 최대 신도를 자랑하는 거대 교회 중 하나인 여의도 순복음교회의 조용기 담임목사는 한술 더 떠 지난 12일 한 기독교매체와 인터뷰에서 "일본 국민이 신앙적으로 볼 때는 너무나 하나님을 멀리하고 우상숭배, 무신론, 물질주의로 나가기 때문에 하나님이 경고한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조 목사는 "전화위복이 돼 이 기회에 주님께 (일본이) 돌아오면 좋겠다"고 희망했지만, 그의 발언이 알려지자 상당수 한국의 기독교도들마저 조 목사를 비판하는 형국이다.
일부 언론의 보도 태도도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MBC가 지진이 발생한 당일인 11일 일본 지진으로 "한류 위축이 우려된다"는 기사를 내보내 많은 이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더 나아가 <중앙일보>는 13일 인터넷에 "반도체, 석유화학, 정유 등 단기적으로는 한국 기업에 반사 이익"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 일본 누리꾼들의 공분을 샀다. 아무리 기업간 경쟁이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혹한 것이라지만 지진으로 일본 생산시설이 무너진 것을 '호재'라고 보도하는 것은 도를 지나쳤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문제적 발언, 그것도 한나라당, 보수 기독교, 보수언론 등 보수층의 부적절한 반응이 이어지자 청와대에서 14일 '교통정리'에 나섰다. 임태희 대통령실장은 이날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자칫 고통을 당하는 일본인들의 입장에서 볼 때 상당히 서운하게 느껴질 수 있는 태도나 보도가 있다는 점에서 우려하는 의견이 많다"고 자제를 촉구했다.
하지만 어쩌랴. 아랍에미레이트(UAE)를 방문 중인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브라카에서 개최되는 원자력 발전소 기공식에 참석했다. 청와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성사된 UAE 원전 수주에 대해 이명박 정부는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수주"라고 자평했지만, 이후 대가성 파병 논란, 추가 수주 실패, '100억 달러 금융지원' 논란 등 한국 내에서도 잡음이 많은 사업이다. 여기에 일본에서 대지진으로 원전 사고가 발생하면서 세계적인 '주목'까지 겹치게 됐다. 이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안전성과 효율성 면에서 한국형 원전이 최고"라고 말했다. 원전 사고라는 일본의 '불행'에 "자제하라"는 대통령실장의 발언이 머쓱하게 됐다.
일본 지진 관련해서 나오는 뉴스 중 또 하나 우려되는 게 있다. 대한적십자사는 일본 지진 피해 복구 지원을 위해 100억 원을 목표로 성금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작년 1월 아이티 지진이 일어났을 때 대한적십자사는 91억 원의 성금을 모았다. 그런데 이중 12억8400만 원만 사용하고 남은 돈으로는 정기예금을 든 것으로 뒤늦게 밝혀져 논란이 일었었다. 똑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우려가 현실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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