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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대지진에 한국경제 반사이익? 한가로운 소리"

[분석] 루비니 "최악의 시기에 최악의 사건 일어난 것"

일본의 3.11 대지진이 일본과 한국경제,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따져보는 분석들이 무성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이번 지진처럼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면 단기적으로 일본 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일본 경제에 이번 지진이 어떤 효과를 줄 것이냐, 한국 경제와 세계 경제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냐에 대해서는 낙관론과 비관론이 대립하고 있다.

어느 것이 더 설득력이 있는 주장인가는, 이번 지진 발생이 일본과 세계 경제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 시기에 일어났는지 '타이밍'을 고려한 것이냐의 여부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견한 것으로 유명한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의 진단은 주목된다.

▲ 일본 자위대 군인들이 지진 사태 복구작업에 대대적으로 동원되고 있다. 하지만 대지진 이후 일본에서 군국주의 부활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AP=연합

루비니, '일본판 뉴딜' 낙관론 정면 부정

루비니 교수는 지진 발생 직후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지진은 최악의 시기에 처한 일본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건임이 틀림없다"고 말했다.

그는 "복구를 위한 재정 투입이 있겠지만, 일본은 재정적자가 이미 GDP의 10% 수준이며, 인구 노령화가 심각한 곳"이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서 말하는 "일본판 뉴딜이 펼쳐질 전화위복의 계기이며, 디플레이션 극복의 묘약이 될 것"이라는 낙관론을 정면으로 부정한 것이다.

현행 GDP 산정 방식상 단기적으로 대대적인 재정투입이 있으면, 경제회복이 촉진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GDP의 200%에 달하는 일본의 국가부채를 고려할 때, 일본판 뉴딜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재원 조달은 크게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진으로 일본 경제가 휘청이면 글로벌 경제도 또다시 휘청거리게 된다는 비관론도 대두되고 있다. 그동안 일본의 국가부채가 GDP 대비 200%나 되는데도 버틴 것은 95%가 넘는 국채를 일본 국민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미국 국채 매각, 달러 폭락의 시나리오 전개될까

하지만 국채의 추가 발행을 소화할 여력이 없어지면서, 결국 1조 달러에 육박하는 미국 국채 매각에 나서게 되고, 이에 따라 미국 달러화가 폭락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만일 이런 시나리오대로 사태가 전개된다면, 이번 지진으로 일본 자동차와 반도체 산업 등이 타격을 받아 글로벌 공급과잉이 해소되고 원유 등 국제원자재 수요 감소로 한국경제와 세계경제가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계산은 한가로운 소리가 된다.

반면, 이번 지진이 일본뿐이 아니라 세계 경제를 붕괴시킬 악재라면 오히려 국제적인 협력과 일본 정치권이 대오각성할 '충격적인 계기'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됐다.

일본은 충격을 '긍정적 계기'로 전환할 역량 있나

<블룸버그>의 아시아담당칼럼니스트로 일본 경제에 대한 비관론과 일본 정치권의 무능을 신랄하게 꼬집어온 윌리엄 페섹은 14일 "이번 지진이 3가지 측면에서 새로운 희망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첫째, 장기간의 디플레이션에 시달리다가 이제는 무기력 증세를 보이고 있는 일본 정관계의 정신을 바짝 차리는 충격요법이 될 수 있다. 일본이 장기불황을 극복하려면 바닥부터 변화가 일어나야 하는데, 오직 엄청난 위기가 닥칠 경우에만 가능할 것이라고 여러 논객들이 말해왔다. 3.11 대지진은 이런 충격적 계기를 제공한 것이다.

두번째, 중국이 이번 지진 사태에 신속한 지원에 나서고, 아낌없는 위로를 보내는 모습에서 볼 수 있는 중국과 일본의 긴장 완화에 기여할 수 있다. 지난 6개월 동안만 봐도 중국에서는 반일감정이 팽배했다. 아시아의 공동번영을 위해서는 중국과 일본의 지도자들이
건설적인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점에서 이번 지진 사태는 중일 관계 개선에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세번째, 위기를 국가 발전의 계기로 만들어온 일본 국민들의 자신감을 고양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일본을 비난하는 기사에 주력했던 중국 언론들은 지진 사태 이후 일본의 신속한 대응과 일본 국민의 질서 있는 모습을 배워야 한다고 찬사를 보내고 있다. 심지어 중국에서는 "일본인에게는 '도덕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극찬이 나올 정도다.

실제로 엄청난 자연재해 앞에서 일본 국민이 보여준 행동은 일본 사회가 높은 시민의식, 안정된 사회라는 자부심을 보여줬다.

관동대지진과 한신대지진이 경고하는 음울한 미래

하지만 일본의 지진사태가 '희망의 계기'가 되느냐의 여부는 일본의 정치적 역량에 달린 '조건부'라는 점이 우려된다. 이때문에 페섹은 나오미 클라인이 말한 '쇼크 독트린'이 부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경고했다.

'쇼크 독트린'은 우파 이념주의자들이 위기에 정신을 못차리는 국민을 선동해 자기들이 원하는 체제로 사회를 이끌고 가는 전략을 말한다.

일본에서는 이미 대지진이 '쇼크 독트린'의 희생양이 된 사례가 있다. 1923년 관동대지진 이후 일본의 재건 노력은 군국주의 팽창으로 나타났다.

또한 이번 대지진이 일본의 경제파탄을 더욱 심화시킬 가능성도 있다. 페섹은 "1995년 한신대지진은 전후 일본의 산업부흥기의 종식과 디플레이션의 대두와 연결됐다"고 지적했다.

한신대지진 직후 피해 복구를 위한 대규모 경기부양책으로 일본의 경제성장률은 1995년 1.9%에서 1996년 2.6%로 높아졌지만, 그 약발은 일시적이었다는 것이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대규모 복구가 필요한 사태 이후 경제가 회복되는 역사적 사례들이 있다"고 이번 지진이 일본 경제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얘기하는 전문가들의 발언들을 소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신문도 "막대한 재원이 조달 가능하다면"이라는 단서를 붙이면서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이번 지진 피해가 너무 커 한신대지진 때 투입된 3조엔(약 41조원)의 두 배 이상이 요구되지만, 재정 상태 때문에 한신대지진 때보다 더 많은 지출을 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 노무라 증권의 이코노미스트들은 "일본 정부가 한신대지진과 비슷한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쓰려고 하겠지만, 추가 재정지출은 상당한 국채 매각이 요구되고 가뜩이나 취약한 재정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때문에 페섹은 "복구 작업은 대규모 국채 발행 없이 해내야만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일본 정치권의 무기력과 무능력, 그리고 막대한 국가부채라는 악조건으로 볼 때 이번 지진이 '긍정적인 쇼크'로 작용하기보다는 일본의 경제파탄과 군국주의의 부활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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