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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박성진의 말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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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박성진의 말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기고] 그는 과연 장관 자격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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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8월 8일 미국 37대 대통령 리처드 닉슨이 자진 사퇴했다. 시발점은 1972년 선거 시점 닉슨 행정부가 민주당 선거본부에 도청장치를 설치한 워터게이트 사건이었다. 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그가 대통령의 자리에서 '명백한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었다.

닉슨은 시종일관 강력히 사건 개입을 부정했다. 하지만 재판을 통해 그가 이미 사전에 전모를 정확히 알고 있었음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워터게이트 사건에 FBI가 끼어들지 못하게 해!"라고 말한 육성녹음이 공개된 것이다. 애초 선거개입도 문제였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자신이 진상을 속속들이 알면서도 정면 부인했고, 나아가 이를 은폐하려고 거짓말까지 했다는 점이다. 그것이 칼날이 되어 자신의 목을 쳤다. 거대 권력을 손아귀에 쥔 공직자의 거짓말은 그만큼 치명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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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31일 문재인 정부의 초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 박성진이 기자회견을 했다. 그리고 이런 해명을 발표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는 게 가장 좋다. 저는 지방 일보 칼럼에 건국 70주년 이라고 쓴 적이 있음을 확인했다."

"부끄러운", "솔직히" 등 현란한 정서적 수식어에도 불구하고 핵심은 이렇다. 자신이 직접 쓰고 신문에 게재한 칼럼에서 "건국 70주년(1948년이 대한민국 건국일이라는 뜻이다)"이란 문장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나도 신문 칼럼을 쓴다. 그럴 때는 면도칼처럼 마음을 가다듬으려 한다. 최선의 집중을 다한다. 마지막으로 원고를 보낼 때는 두 번 세 번 확인을 한다. 활자로 찍혀 영원히 기록에 남는다는 역사적 엄중성에 대한 자각 때문이다.

박성진도 그렇게 자기 글을 신문사에 보냈을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런데 해당 내용이 (역사관 논란이 터져 나올 때까지) 기억이 안 났던 모양이다. 그러니 자기 칼럼을 (마치 남의 글 보듯이) 확인했다고 표현한 것이다. 누군가의 주특기였던 유체이탈 화법이 절로 떠오르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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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은 어떤 시점이었나?

그 달 21일 더불어민주당은 의원총회에서 박근혜 탄핵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탄핵실무추진준비단이 구성된다. 23일에는 새누리당 전 대표 김무성이 대선 불출마 선언과 함께 당 내에서 탄핵 추진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박근혜 탄핵이 정국을 송두리째 뒤 흔들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이러한 정치적 격동을 이끌어낸 동력은, 주지하다시피 부패무능정부 퇴진을 목 놓아 외치던 민주 시민의 촛불시위였다.
기억에 선명하다. 11월 26일은 토요일이었고 서울에 첫 눈이 내렸다. 그리고 광화문 일대에 무려 150만 명의 시민이 모여 촛불을 들었다. 돌이켜보건대, 사실상 이날이 박근혜 퇴진과 문재인 정부 탄생을 이끌어낸 촛불 시위의 핵심적 분수령이었다. 한마디로 온 나라가 터질 듯 한 분노와 격정으로 끓어오르던 시점이었다.

그런데 그 하루 전인 11월 25일, 포항공대 기계공학과 교수 박성진은 자기가 소속된 학과의 정기세미나를 주재했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연사 섭외에서부터 세부 진행까지 박성진이 이날 세미나 준비를 전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상이 아무리 격동해도 대학에서 세미나를 열 수 있다. 문제는 그날 그곳에 "일제에 의한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하는 뉴라이트의 거두 이영훈이 초청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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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훈이 누구인가? 이승만과 박정희 치세를 긍정적으로 재평가한 인물이다. 4.19혁명의 역사적 의의를 폄하하고 5.16 쿠데타를 호의적으로 평가한 뉴라이트 경제사학자다. 이 글 주제와 관련하여 가장 주목되는 것은, 그가 2006년 8월 <동아일보>에 "우리도 건국절을 만들자"라는 제목의 기고를 통해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자"고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공개 주장한 사람이라는 점이다.

헌법에 명시된 바, 1919년 상해임시정부 수립일을 기점으로 하는 대한민국 건국을 부정한 것이다. 그 대신 1948년 이승만의 남한단독정부 수립일을 대한민국 건국일로 바꿔야 한다고 강변한 셈이다. 세간에서 그를 뉴라이트의 대부라 부르는 결정적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눈여겨 볼 점은 박성진이 이영훈을 초청해서 열었던 이 날 강연회 제목이 <대한민국 건국의 문명사적 의의>였다는 것이다. 발제문을 입수하지 못해 강연 내용을 모두 파악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학술 세미나의 경우 제목이 곧 내용이다. 이영훈의 굽힘 없는 기존 주장에 비춰볼 때 이날의 강연 제목이 뜻하는 바는 명백하다. '대한민국 건국 시점'에 관련된 내용이 세미나의 핵심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런데도 박성진은 8월 31일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발언한다.

"건국과 정부 수립이 개념이 다르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

장관 후보자 지명이 이뤄진 며칠 동안 생애 처음으로 건국절을 둘러싼 논란을 알게 되었다는 뜻 아닌가. 자신이 직접 쓴 칼럼에서 '건국 70주년'을 명시적으로 밝혔고, 건국절 명칭을 최초 주창한 인물을 포항까지 불러 '대한민국 건국'의 역사적 의의를 들은 사람. 그러한 사람이 이 개념을 지난 며칠 동안에 처음 알게 되었다고?

나는 그의 말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창조과학 문제도 중요한 이슈다. 역사관 논란은 더 큰 문제다. 하지만 그 모든 것에 앞서 대한민국 장관 후보자라면, 우선적으로 서릿발 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할 대목이 있다.

권력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공개된 언론 인터뷰 자리에서 불을 보듯 환한 거짓말을 한 것이 사실이라면 애초에 그 직책에 임명될 자격이 없다는 점이다. 그가 누구라 할지라도.

▲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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