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assembly)'. 공동의 목적을 위해 일시적으로 모이는 행위를 일컫는다. 민주주의라는 기치 아래 뭉친 공동체 속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움직임(movement)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공동체가 살아 움직이는, 그리고 운영되는 중 튀어나오는 형태 중 하나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집회가 얼마나 자유롭게 열리느냐는 그 사회의 민주주의를 판단하는 척도가 된다. 집회 자체를 원천봉쇄하거나 신고제임에도 사실상 허가제로 집회를 막는 사회는 민주주의가 후퇴한 사회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 점에서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의 민주주의는 매우 후퇴했다고 볼 수 있다. 광범위한 압력으로 집회를 원천봉쇄했다. 그래서일까. 지난 2월, 영국 이코노미스트 그룹의 조사·분석기관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발표한 '민주주의 지수(Democracy Index)'를 보면 한국은 2016년 10점 만점에 7.92점을 받아 '결함 있는 민주주의 국가'로 분류됐다. 단순히 '집회의 자유'만 평가하는 지수는 아니지만 시사하는 바는 크다.
주목할 점은 지난 정권 동안 '집회의 자유'만 제약된 게 아니라는 점이다. 집회 참가자와 관련 집회 주최 측에 많게는 수십억에서, 적게는 수천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면서 다른 방식으로 집회를 규제하기 시작했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에 참여한 시민단체 대표들, 77일 옥쇄파업을 진행한 쌍용차지부 조합원들, 불법적인 노조파괴를 반대하며 파업을 진행한 유성기업 지회 및 조합원들,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요구한 4.16 연대 대표자, 밀양 송전탑 건설을 반대한 밀양 주민들,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한 강정마을 주민들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장비 파손 등 피해액이 상당하다며 손배소를 제기했다. 하지만 이는 또 다른 방식의 재갈물리기다. 집회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수십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에 휘말리고, 거기에 가압류까지 걸리게 되면 위축되지 않을 사람은 없다. 결국, 손배소는 민감한 사안이 걸린 집회는 참가하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으로 작용한다.
게다가 집회 주최 측에는 무조건 소를 제기하는 식이다. 일단 집회 과정에서 충돌이 발생하면 그 모든 책임은 집회 주최 측이 져야 한다는 의미다. 주최 측으로서는 자연히 앞으로의 행보에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
<프레시안>은 국가손배대응모임과 공동으로 국가 손배소가 당사자에게 어떤 굴레로 다가오는지, 국가 손배소의 법적 문제는 무엇인지 등을 살펴본다. 첫 인터뷰이로 제주 강정마을회 고권일 부회장을 만났다. 고 부회장과 마을주민들은 해군으로부터 해군기지 공사가 지연됐다며 34억여 원의 구상권(남을 대신하여 빚을 갚아 준 사람이 다른 연대 채무자나 주된 채무자에게 그만큼의 재산 보상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을 청구받았다.
지난 24일, 제주 강정마을 주민들에게 부과된 벌금 해결을 위해 열린 일일호프 행사에서 고 부회장 만났다. 왜 해군에서는 마을주민들에게 수십 억 원대의 구상권 청구를 하게 됐는지, 그리고 이러한 청구가 왜 문제인지 등을 물어보았다.
"해군과 삼성물산, 모종의 거래 있는 게 아닌가"
프레시안 : 해군은 왜 마을주민들에게 수십 억 원대의 구상권을 청구했나. 그 이야기부터 해보자.
고권일 : 우선 삼성물산 이야기부터 해야 한다. 제주 해군기지 시공사가 삼성물산이다. 삼성물산은 마을주민들의 해군기지 반대 활동 등으로 인해 2010년 1월 29일부터 2014년 7월 28일까지(54개월) 예정돼 있던 공사 기간이 2010년 1월 29일부터 2015년 9월 26일까지(68개월)로 연장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공사가 연장돼 손해를 입었다며 국가(해군)를 상대로 대한상사중재원에 중재를 요청했고, 국가는 이를 받아들여 삼성물산에 275억여 원을 지급했다.
프레시안 : 보통 그런 일이 있으면 법원에 손해배상 청구를 하지 않는가.
고권일 : 그렇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 추측은 가지만 내가 해군이 아닌 이상 말하긴 그렇다. 국가가 기업이나 개인에게 보상금 등 돈을 줄 때는 법적인 근거가 나와야 가능하다. 즉 판결을 통해서만 지급된다는 이야기다. 그냥 달라고 해서 줄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렇기에 삼성물산은 법원에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그 판결에 의해 국가가 보상금을 지급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고 대한상사중재원, 즉 기업 간 채무관계를 조정하는 기관을 통해 보상금을 지급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삼성물산이 중재원에 신청했다 하더라도 국가는 받을 수 없다고 거부했어야 했다. 국가소송법에 의하면 배상관계는 법적으로 다툴 수 있으면 다툰 뒤, 명백한 사실관계에 의해 조정해서 배상할 수 있다고 돼 있다. 하지만 이번 건 관련해서 명백한 사실관계가 드러난 게 있는가. 왜 해군이 삼성물산에 275억 원을 지급했는지 명확한 기준이 없다. 그리고 설사 기준에 의해 지급했다 하더라도 그 기준, 즉 사실관계는 누가 판단하나. 법원이 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대한상사중재원에서 판단했다. 이는 새 정부가 감사를 하든가, 수사기관에 의뢰해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수사까지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고권일 : 강정 해군기지 사업 관련, 사업자 선정은 '턴키'(일괄수주)방식으로 진행됐다. 이 사업이 발주되자마자 대림산업과 삼성물산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입찰했고, 곧바로 사업자로 선정됐다. 우리는 이런 과정에서 모종의 거래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했다. 손해배상금 관련, 법원으로 가면 그런 모종의 거래가 있었음이 드러날 수 있기에 이를 통하지 않고 사기업간 조정기구인 중재원을 이용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하고 있다. 이는 수사를 통해 밝혀져야 생각한다.
"벌금으로 고통받고 있는데, 또다시 청구라니..."
프레시안 : 해군과 삼성물산 간 보상금 문제는 그렇다 치자.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왜 해군이 삼성물산에 준 보상금 중 일부를 마을주민들에게 달라고 구상권을 청구했냐는 점이다.
고권일 : 우리로 인해 공사가 지연됐고, 그로 인해 삼성물산에 보상금을 물어주게 됐다는 게 구상권 청구 이유다. 해군은 2016년 3월 28일, 강정주민과 평화활동가 116명과 5개 단체의 해군기지공사 반대 행위로 해당 금액(275억 원)을 삼성물산에 지급하게 됐다며 이중 34억4800만 원에 대한 구상권을 청구했다.
프레시안 : 마을주민들이 34억 원어치의 피해를 줬다는 건가. 그렇게 무 자르듯 피해액이 책정될 수 있는 건가.
고권일 : 삼성물산이 해군에 피해내역으로 밝힌 것은 설계오류, 법적인 분쟁으로 인한 착공지연, 오탁수방지막 불량설치, 태풍으로 인한 케이슨(수중의 건설 작업용이나 기초로 이용되는 상자형 구조물) 파괴 등이다. 이러한 피해내역 중 공사 지연 관련, 주민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구상권을 청구한 것이다. 딱 34억 원어치 말이다.
프레시안 : 마을주민들은 몇 분이나 청구를 받았나.
고권일 : 11명 정도다. 알아둬야 할 게 이번에 해군에서 구상권을 청구하면서 청구금액을 가군~라군으로 분류해 놨다. 그래놓고 34억 원 중 33억을 가군에다 청구했다. 나군은 1억, 다군은 3000만 원, 라군은 1000만 원이다. 한마디로 가군에 속한 사람들이 이 돈을 모두 책임지라는 이야기다.
프레시안 : 가군에는 어떤 사람들이 들어갔나.
고권일 : 마을주민 11명이 다 들어갔다. 그리고 단체로는 강정마을회도 들어가 있다.
프레시안 : 가군에 속하게 되는 기준은 무엇인가.
고권일 : 해군 논리는 간단하다. 주민들이 공사를 반대해 지연됐고 그에 따라 보상금을 삼성물산에 지급하게 됐으니 공사 반대를 열심히 한 사람에게 그 책임을 강하게 묻겠다는 논리다. 해군은 공사를 반대한 사람들 중 핵심적인 인물들을 형사소송으로 처벌받은 사람들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기존 형사소송법에 걸린 사람들을 이번 구상권 청구대상으로 정했다 그들이 가군에 속한 사람들이다.
프레시안 : 이미 형사처벌 받은 사람들에게 다시 똑같은 이유로 국가가 민사를 제기한다는 것은 이중처벌 아닌가.
고권일 : 맞다. 가중처벌금지원칙에 어긋난다고 생각한다. 국가는 이미 반대행위를 한 사람들에게 충분히 벌을 가했다. 지난 10년 동안 강정마을 주민과 평화활동가 700여명이 연행되었고 60여명이 수감됐다. 그리고 4억여 원의 벌금이 내려졌다. 이 벌금은 마을주민들에게 아직도 고통이다. 그런데 여기에 다시 또 구상권 청구라니 막막하다.
프레시안 : 의문은 주민들의 공사 반대 활동이 실질적으로 얼마나 공사를 지연시켰는가다. 보통 출입구 봉쇄 투쟁 등을 진행해도 공사차량은 다 지나가지 않는가. 몇 안 되는 인원으로는 실력 행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고권일 : 맞다. 우리는 공사장 정문 시위, 그리고 해상 시위 등을 통해 공사 반대활동을 벌였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번번이 경찰에 의해 끌려나왔다. 자조적인 이야기지만 우리가 반대 활동을 한다 해도 공사에 필요한 차량과 물량은 다 들어갔다. 우리들의 실력행사로 공사가 지연됐다고 볼 수 없다.
프레시안 : 그러면 공사가 지연된 적이 없었나.
고권일 : 공사가 지연되긴 했다. 실질적으로 공사기간이 늘어난 이유는 민원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공사장 내 불법시설물이 있다든가, 방지막을 미설치했다든가 하면 이를 도청에 제보했다. 그러면 도청에서 삼성물산에 시정명령을 내리고 불법시설물 등이 제거될 때까지 공사를 중단시켰다. 결국, 공사가 지연된 것은 삼성물산에서 매뉴얼대로 공사를 진행하지 않아 발생한 일이다.
"국가가 민사로 개인 괴롭히는 일 사라지길"
프레시안 : 현재 진행 중인 형사소송은 몇 건이나 되나.
고권일 : 재주 해군기지 공사 관련, 총 600건 가깝게 기소됐다. 작년 말 기준으로 검찰청에 확인해보니 465건은 판결이 완료됐다. 반대로 말하면 나머지 120~130건은 아직 재판이 진행 중이라는 이야기다. 지금까지 총 4억여 원의 벌금을 맞았는데, 이는 판결이 완료된 465건에 한해서다. 나머지 판결나지 않은 기소건에서 또 얼마나 많은 벌금이 부과될지 모른다. 여기에다 해군은 34억여 원의 구상권을 또다시 청구한 것이다. 문제는 해군이 이러한 구상권 청구를 2차, 3차에 걸쳐 계속하겠다고 밝혔다는 점이다.
프레시안 : 그것은 또 무슨 말인가.
고권일 : 지금의 구상권 청구는 삼성물산의 2012년~2014년 동안 공사가 지연된 것에 국한됐다. 삼성물산과 컨소시엄을 이룬 대림산업에서도 110억 원을 청구했다고 한다. 또한 삼성물산에서는 2014년 이후인 2014년~2016년까지 공사가 지연된 것 관련해서 180억 원을 청구했다고 한다. 해군에서는 이 청구된 금액 중 일부를 또다시 우리에게 물리겠다고 하는 상황이다.
프레시안 :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원희룡 제주도지사와의 통화에서 강정 구상권 청구 철회, 사면복권을 최우선적으로 해결하자는 뜻을 밝혔다. 이후 달라진 상황은 없는가.
고권일 : 여러 변화가 있다. 원희룡 도지사가 도 차원에서 청와대에 건의문을 올리겠다고 했다. 다행인 일이다. 다만 여기서 한 발 더 나가야 한다. 구상권 철회와 함께 다시는 정부에서 이런 일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형사소송에 이어 민사까지 진행하는 건, 국가 권력이 이중으로 사용되는 게 아닌가. 부디 이번 일이 잘 해결돼 국가가 민사로 개인과 단체를 괴롭히는 일이 사라지길 바랄 뿐이다.
프레시안 : 오랜 시간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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