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우려 속에서 시민사회는 새로운 헌법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대화문화아카데미(옛 크리스천아카데미)는 오는 7일 서울 그랜드힐튼 호텔에서 '헌법안 발표모임'을 갖고 지난 5년에 걸친 논의의 결과물인 '새 헌법안'을 발표한다. 이는 지난 2006년부터 학자, 정치인, 시민사회계 인사, 언론인 등 500여 명이 수십 차례에 걸쳐 가진 논의의 결과물이다.
이들이 제시한 새 헌법안은 기존 대통령 중심제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국가의 대표로서의 대통령과 실질적인 국정운영의 주체로서 국무총리·내각을 상정한 '분권형 대통령제'와 국정의 책임성을 확보하기 위한 '5년 중임제'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국회 역시 상하 양원제도로 운영하는 등 사회의 각 분야가 서로에 대한 '실질적인' 견제와 균형을 이룰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다.
특히 새 헌법안은 단순히 권력구조 개편뿐만이 아니라 인권, 생태, 환경, 지방분권 등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명시하기도 했다. 지난 달 29일 서울 평창동에 위치한 대화문화아카데미 회의실에서 진행된 대담에서 이부영 동북아평화연대 공동대표는 "개헌을 정치권에만 맡겨 놓으면 권력구조 문제만 갖고 싸우다가 끝날 것 같다는 생각"이라며 "개헌의 주체인 국회에서도 대단히 주목해야 하는 안"이라고 평가했다.
'보수의 책사'로 불리는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헌법 개정은 필연적 과제"라면서 "이명박 정부 들어 절차적 민주주의마저도 위협받는다는 이야기가 많이 제기되고 있는데, 헌법에 다시 한 번 민주적 가치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는 측면에서도 헌법 개정이 반드시 이뤄져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대화문화아카데미의 새 헌법조문화위원장이기도 한 이화여대 김문현 교수(법학)의 사회로 진행된 대담 전문이다. <편집자>
▲ 이날 대담에서 이부영 동북아평화연대 대표(왼쪽)와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오른쪽)은 "지금 시기 개헌은 필연적 과제"라고 입을 모았다. ⓒ프레시안(김봉규) |
"개헌은 필연적 과제"
김문현 : 대화문화아카데미에서 헌법 개정안과 관련해 우리 사회의 원로로 계신 두 분 선생님을 모시고 고견을 듣을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진 것에 대해 감사하고 기쁘게 생각합니다. 개헌과 관련해 정계에서 주로 이야기하는 것은 정부의 형태나 대통령의 임기 등에 국한된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의 개헌안은 주로 바람직한 미래의 국가사회의 방향을 구상하면서 작업했으며, 정부의 형태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 전문에서부터 시작해서 기본권, 정부의 형태, 국회, 법원, 지방자치 문제 등을 포함하는 전면적인 안을 만들었습니다. 미래지향적인 헌법을 만들다 보니 이렇게 광범위하게 됐습니다. 우선 현 시점에서 제기되는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부영 : 그 동안 개헌이 9번 있었는데, 개헌 때마다 이 문제를 정치권에 맡겨 놓고, 국민들은 그것을 수동적으로 쫒아가거나 후에 추인하는 꼴이었습니다. 이번에는 '그래선 안 되겠다, 정치권에만 맡겨놓지 말고 시민사회나 학계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그 의사가 반영되는 새로운 헌법을 만들어야 하겠다'는 생각에서 대화문화아카데미에서 작업을 한 것 같습니다. 민간 부분에서 헌법에 대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연구하고, 또 정치권을 오히려 선도하는 역할을 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대한민국이 건국한 1948년은 물론이고 1987년 헌법을 만들 당시는 냉전시대를 막 벗어나던 시기였기 때문에, 1987년 헌법까지도 구(舊)시대적인 흔적이 굉장히 많이 남아있던 것으로 보입니다. 요즘처럼 국경의 의미가 없어지고, 노동의 대이동이나 민족 및 인종들 간의 뒤섞임이 많아지고, 세계화가 진행되는 속에서 분명히 이전 시대와 지금은 엄청나게 달라진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 생각에 있어서나 현실적 운용에 있어서나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는 헌법 개정은 꼭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민간 부분에서 주도를 하고 새로운 흐름을 반영하는 헌법 시안을 내놨습니다. 헌법 개정을 현실적으로 주도해야 할 주체인 국회 쪽에서 이 안에 대해 주목을 해야 될 것입니다.
윤여준 : 헌법 개정은 필연적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21세기가 시작된 지 10년이 지났습니다. 21세기를 맞이해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중심 가치를 무엇으로 할 것인지에 대해 국민적인 동의가 있어야 합니다. 생명존중, 생태, 양성평등 등의 가치를 반영하는 데 있어서도 당연히 고쳐야 한다고 봅니다. 국내적으로만 보더라도 권위주의 정부가 끝나고 '87년 체제'가 시작이 됐는데, 그 이후에 들어선 정부도 어떤 의미에서 권위적인 요소가 많았습니다. 그것을 민주화로 넘어가는 과도기라고 본다면,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 그나마 우리가 확보했던 절차적 민주주의마저도 위협받는다는 이야기가 많이 제기되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시점에서 헌법에 다시 한 번 민주적 가치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것을 위해서라도 지금은 헌법 개정이 반드시 이뤄져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 이부영 동북아평화연대 대표 ⓒ프레시안(김봉규) |
윤여준 : 국민이 의구심을 갖는 것은 과거 세력이 헌법을 정략적으로 이용하고, 정치공학적으로 접근해 왔던 것을 목격했던 경험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이명박 정부도 지방선거 이후 정치적 곤경을 모면하기 위해 개헌문제를 제기할 것이라는 예상은 많이 하지 않았습니까. 의구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고 보는데요, 그러나 이번 지방선거 결과를 봐도 이제는 정부나 특정 정치세력이 적당히 기만하는 방식으로 국민들을 자신의 뜻대로 끌고 가는 것은 끝났다고 봅니다. 국민들이 이러저러한 가치를 분명히 헌법에 담아야 한다고 한다면, 정치권이 자신들 편의대로 헌법을 고치지는 못 할 것이라고 봅니다.
이부영 : 그렇기는 해도 이명박 정권의 전반기에 나타난 여러 국정운영의 폭력성은 있지 않았습니까. 절차적 민주주의를 그대로 허물어뜨리는 모습을 봤단 말입니다. 그 결과가 이번 지방선거에서의 심판으로 나타났습니다. 7.28 선거에서도 그런 흐름은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보는데, 그 이후에는 이명박 정부가 헌법 개정 문제를 무리하게, 자신들의 의도대로 꿰맞추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하는 희망을 가져 봅니다.
윤여준 : 설사 이명박 정부나 한나라당이 정략적인 목적을 갖고 헌법 개정을 제기한다고 해도 이제는 국민이 그대로 내버려두는 시기는 지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걱정은 너무 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이제는 국민을 향해 헌법 개정의 필요성을 설득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은 역시 지식인의 사회적 책임이 아닐까요.
"5년 중임제 도입…국무총리와 내각이 주도하는 분권형 대통령제로"
김문현 : 개헌을 논의하게 되면 단순히 정략적 차원이 아니라 국민적 합의를 거쳐서 사회통합의 계기가 되는 개헌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갈등과 분열을 가져오는 개헌이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개헌이 필요하다면 과연 어디까지, 어느 범위까지 개헌하는 것이 바람직할까요.
이부영 : 87년 헌법에 잘못된 점이 있으니 고치려고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87년 헌법은 우리 헌정사상 24년 동안 장수한, 가장 장수한 헌법입니다. 여기에는 1987년 6월항쟁의 정신이 담겨 있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입니다. 정당성과 정통성이 담겨 있었기 때문에 그만큼 장수했던 것이죠.
그런데 여기에는 뭔가 큰 결함이 있었던 겁니다. 6월항쟁으로 정말 궁지에 몰렸던 전두환, 노태우 세력은 국민의 요구를 받아들이면서 '직선제'말고는 별로 양보할 의사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야당의 양김(양김) 진영은 군부세력이 정권을 내놓을 의사가 있는 것으로 보이니까, 자신들이 정권을 잡는 것에만 관심을 보였던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러니까 헌법의 다른 문제에 대해서는 크게 개의치 않았던 측면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게다가 직선제 대통령을 뽑는데 양김이 분열을 했잖아요. 일부 재야세력은 이른바 4자 필승론, 4자 입후보 필승론을 내세우면서 그대로 나왔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됐습니까. 우리 정치판을 시루떡 조각내듯 갈라버린 게 아닙니까. 그렇게 지역주의 정치구조가 만들어졌습니다. 87년 민주항쟁의 성과로 직선제를 얻어냈고, 그것은 군부세력의 유도대로 지역주의 정치구도로 고착되었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군부세력이 자신의 기득권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게 만들어 준 것입니다. 87년 헌법에는 정통성과 정당성, 그리고 그에 따른 한계가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 사회의 발전과 견주어 보면 기존의 헌법의 그릇에 다 담을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87년 체제가 만든 가장 큰 해악이 우리 정치를 앞으로 나아갈 수 없도록 한 지역 대결주의라고 봅니다. 이것을 벗어나도록 만드는 일이 중요합니다.
김문현 : 개정안의 기본적인 방향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생명 존중이나 생태 등을 언급하셨는데, 과거 생명 존중의 가치는 주로 인간을 중심으로 논의됐던 것이 사실입니다. 사람의 생명, 사람 중심의 환경에서 더 나아가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 모든 존재, 인간도 그 생명의 일부로서 존중의 정신을 표현하기 위한 내용을 헌법 전문에 담았습니다. 생명권과 사형제 폐지의 내용도 있습니다. 정부조직을 보면 이러한 방향을 대통령 직속 위원회에도 반영을 해서 생명존중 생태보전의 가치를 담고자 했습니다. 또 과거 전문을 보면 주로 민족이나 동포를 강조하고 있는데, 다문화시대에 맞춰 인권의 주체를 외국인에게도 확대했고, 인종차별이나 언어차별 등의 차별을 없애는 방향으로 했습니다. 다양성과 관련해 소수자에 대한 배려 등이 반영되도록 했습니다.
통치 조직에서는 기존 대통령제의 폐해를 시정하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분권형 대통령제를 채택했습니다. 국무총리와 내각이 주도하는 형태이고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 즉 국민통합을 위한 국가의 어른으로 기능하는 방향입니다. 반면 국회가 너무 강력해지면 정부가 너무 약해져 곤란하므로, 국회도 분권화해서 양원제로 하도록 했습니다. 기본적으로 하원 중심으로 움직이되 상원이 각 지방의 이해를 대변하고 하원을 견제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법원이 의외로 국민의 관심 밖에 있습니다만, 대법원장을 중심으로 위계화-관료화됐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 부분도 대법원장의 인사권을 제한하고 탈권위화하는 방향, 동시에 지방분권도 강화하는 방향으로 했습니다. 전체적인 방향에 대해 말씀을 해 주셨으면 합니다.
▲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프레시안(김봉규) |
아마 몇 개 조항 때문에 심한 갈등이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나머지는 아마 크게 갈등이라고 할 부분이 없을 것입니다. 지금 현행 헌법의 119조, 즉 경제조항이 가장 첨예하게 부딪힐 수 있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그런 몇 개의 조항을 갖고 벌어지는 갈등은 생산적 갈등이라고 하겠습니다. 그것을 계기로 국민들도 왜 이런 갈등이 벌어지는지, 어느 쪽의 주장이 옳은지 판단을 할 수 있고, 참여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갈등은 부정적으로 볼 필요도, 겁낼 필요도 없습니다.
또 개정안에는 상당히 이상적인 조항을 담았는데요, 그 동안 우리 국민의 헌법에 대한 태도나 인식을 보면 헌법은 장식품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바로 과거의 경험 때문인데요, 헌법의 조항이 아주 이상적이라고 해서 반드시 이상적인 국가가 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 제 1조는 변한 적이 없는데, 과거 얼마나 오랫동안 민주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국가가 운영돼 왔습니까. 이번에 헌법 개정을 하면서는 그 부분을 굉장히 국민들에게 많은 설득을 해야 할 겁니다. 국민 모두가 헌법의 실천적 측면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부영 : 부연하자면 개정안의 헌법 개정 절차를 보면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유권자 70만 명 이상이 제안을 하면 헌법 개정을 할 수 있도록 돼 있어요. 개헌도 국민의 참여로 이뤄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면서 '아, 헌법도 국민의 손으로 바꿀 수 있구나'라는 인식이 퍼지면 말씀하신 헌법의 실천적 측면에 대한 주목도 이뤄질 것이라고 봅니다.
이 시기의 한반도라는 시간과 공간을 놓고 봐도 지난 1948년부터 지금까지는 북쪽에 굉장히 도전적인, 국가와 민족의 정통성을 놓고 싸우는 한 집단에 대한민국이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대통령 중심으로 강력하게 대응할 수 있는 정치체제를 가져야 한다는 암묵적인 동의가 있었다고 봐요. 독재도 그래서 가능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이제 남북 간의 국력경쟁은 상당부분 끝났다고 보이고, 그런 측면에서 대한민국의 통치구조나 체제를 어떤 방식으로 변화시킬 것인가…. 강대 강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경제적 위상이나 세계정치 속에서 위상을 보고 이제는 한국이 오히려 백범의 '문화국가론'이랄지, '연성국가론'이랄지 큰 전환을 할 때가 됐다고 봅니다. 북한에 대해서 전쟁이 아닌 평화, 대결이 아닌 공동번영, 공존을 통한 평화통일 등의 목표를 실현하려고 한다면 지금까지와 같은 대통령의 권위주의에 기반한 강력한 리더십을 가져가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국민들이 여전히 대통령제를 선호하는 만큼 이를 부분적으로 유지하되, 권력을 국민과 국민이 뽑은 국회가 공유하면서 지방분권화를 이루는 동시에 통일의 시기를 긴 눈을 갖고 바라봐야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맞는 통치 구조를 가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87년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정권교체도 해 보고, 절차적 민주주의도 확보하는 등 완전하지는 않지만 후퇴와 전진을 거듭해 왔습니다. 이 시기를 냉전대결 시대로부터 연성 통치구조로 가는 과도기로 봐야 하지 않을까요. 즉 87년 체제를 과도기로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윤여준 : 87년 당시 국민의 소원은 직선제였습니다. 그래서 직선으로 대통령을 뽑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제도의 폐해든, 사람의 폐해든 대통령제의 폐해를 국민도 상당 부분 인식하고 있고, 걱정도 한다는 것입니다. 최근 이원집정부제에 대한 논의가 있었는데, 저는 시종일관 반대해 왔습니다. 현실성이 전혀 없는 제도이기 때문입니다. 개정안을 보면 그것도 고려했다고 돼 있더군요. 대통령은 국민이 뽑되 견제하도록 돼 있고요, 이 정도면 상당한 국민의 동의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정도면 운영만 잘 하면 빨리 정착시킬 수 있지 않을까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국민적 동의를 받는 문제도 어렵지 않을 겁니다. 이원집정부제는 아니고 준(準)대통령제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상당히 고민을 많이 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이만하면 상당히 합리적이고 현실적 있는 제도라고 판단됩니다.
김문현 : 그 동안 견해차가 상당히 많았던 문제이기는 합니다. 우리는 87년 이후 제왕적 대통령도 겪었고, 식물대통령도, 여소야대 구조도 거쳐 왔습니다. 일부에선 미국식 대통령제로 하자는 이야기부터, 분권형 대통령제, 극단적으로는 의원내각제로 하자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국회에 있는 분이나 정계에 있는 분들이 '대통령에게 권한이 집중됐을 때 그 폐해가 워낙 크다, 많은 병폐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 ⓒ프레시안(김봉규) |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당적 버리도록 해야"
이부영 : 개정안의 내용은 분권형 대통령제이면서도 국내외 국정운영은 총리와 내각에 집중돼 있고, 대통령은 내각과 총리의 권한을 견제하는 역할을 하는 구조입니다. 대통령을 국가의 상징적인 위치로 만들어 놨다는 말입니다. 순수내각제에서의 대통령보다는 권한이 좀 있습니다. 포르투갈형 대통령제가 이와 비슷한데, 그곳의 대통령은 상징적인 국가원수로 유일하게 가진 권한이 바로 국회 해산권입니다. 그것은 굉장히 큰 권한이라고 할 것입니다. 입헌군주제의 제왕도 그런 권한은 없었거든요. 그런 점에서 개정안에 나타난 대통령의 권한에 총리의 재청을 받아 국회를 해산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점이 특징적입니다. 새로운 헌법의 대통령도 상당한 정도의 권력을 갖고 있다고 보고, 국정운영의 중심축은 아니어도 국정의 혼란이 왔을 때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의미있는 권한이지요.
다만 두 가지는 보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선 대통령이 대부분의 고위직 인사권을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장관이나 군 고위 장교들, 주요 공무원의 임명권이지요. 총리의 재청을 받지 않고도 임명하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국장급 인사를 어떻게 할 것인지도 분명해야 할 것입니다. 국내외 국정을 총리와 내각이 모두 관장하도록 되어 있는데, 인사권은 대통령이 갖고 있다는 말이죠. 그렇다면 고위 공직자들, 특히 전문직 관료들이 어디를 바라보고 업무를 하겠습니까. 더구나 총리나 내각이 쉽게 바뀌는 상황에서 공무원 임명권을 결국 대통령에게 맡길 경우 상당히 결정적인 시기에는 대통령의 권력이 비대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어요. 장관이나 최고위 군 고위직 등을 제외하고는 총리와 내각이 인사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또 하나는 대통령의 당적 문제입니다. 대통령의 임기가 5년에 중임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럼 10년을 하는 것인데요, 그 경우 대통령이 당적을 갖고 있는 것인가요. 대통령에 입후보하려면 당적을 내놓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대통령이 당적을 유지한다면 야당에서 총리가 나오거나 야당이 다수당을 이룰 경우 대통령과 불편한 관계가 조성될 수 있습니다. 대통령은 입후보할 때 당적을 버린, 무당적 인물로 나와야 하는 게 아닐까요. 그래야 인사문제랄지, 다른 여러 국정의 복잡한 문제도 대통령이 조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개정안에는 당적 문제가 명시돼 있지 않습니다.
윤여준 : 대통령의 당적은 버리도록 해야 할 겁니다. 현재 국회의장도 당적을 버리게 돼 있지 않습니까. 일단 정당의 공천을 받게 되면, 개정안의 취지대로 제대로 된 대통령 후보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지금 정당들이 하는 짓을 보세요. 당내 역학구도로 후보를 만들어내면 국민은 그 중의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런 점에서 당적없이 출마해서 선택받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인사문제를 지적하셨는데, 일리 있는 지적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총리가 계속 바뀌는데, 총리가 주로 인사를 단행하게 되면 관료사회의 동요가 굉장히 심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는 것입니다.
김문현 : 인사권 문제는 대통령이 실질적인 임명권을 갖기 보다는, 예를 들면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법원장을 임명하는 식입니다. 장관과 군 고위급 인사도 총리 제청으로 임명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차관 이하 국장급은 직업 공무원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부분은 법률과 헌법에 따라 임명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대통령 인사권은 제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적 문제는 말씀하신 것처럼 대통령이 당파적 존재가 아니고, 사회통합 실현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 만큼 말씀하신 취지대로 역시 당적은 갖지 않는 것이 바람직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부영 : 윤여준 장관이나 저나 짧지 않은 정당생활을 하면서 느낀 점이, 총리가 될 사람과 대통령이 될 사람이 서로 역할분담 내지는 나눠먹기를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그럴 경우 정말 대통령이 되기에는 곤란한, 너무나 당파성이 강한 인물이 대통령이 될 가능성도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그 임기가 최대 10년이라면, 정말 잘 뽑아야 합니다. 대통령의 10년 임기를 생각하면, 자칫하면 관료세계 안에서 그 사람의 왕국이 형성될 가능성이 있어요.
김문현 : 그런데 개정안에 의하면 대통령은 직선인데요, 현실적으로 당적 없이 선거에 출마하고 자신을 알리는 활동이 정당의 조직기반 없이 가능하겠습니까?
이부영 : 이번 지방선거도 그랬지만, 정당의 공천을 받지 않고 입후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내천(內薦)이라는 게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당의 조직적 지원을 받으면서, 정당공천이 배제된다면 오히려 시민사회 등 다른 많은 부분이 참여할 수 있을 겁니다. 선거가 정당끼리의 싸움이 아니게 되는 것이죠. 정당도 그 일부일 것이고, 더 많은 시민이 참여해서 대통령 만드는 겁니다.
윤여준 : 선거운동 방식도 혁명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봅니다. 정당을 통해서 돈을 쓰는, 이런 것은 없어져야 합니다. 그랬을 때 예상할 수 있는 어려움보다 정당이 도저히 대통령이 되어선 안 될 사람을 후보로 내는 것을 막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김문현 : 개정안에는 대선에서 결선투표를 하도록 돼 있는데요, 이 부분은 어떻게 보십니까.
이부영 : 아까 말씀드렸던 무당적 대통령 후보를 도입하게 되면 후보가 굉장히 많아질 것으로 봐요. 웬만큼 큰 인물이 아니면 처음 투표에서 과반수를 달성하기는 힘들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결선까지 가는 한이 있어도 무당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결선 투표제는 어쩌면 대통령이라는 국민적 통합의 상징적 존재를 위해서라도 불가피한 일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윤여준 : 대통령에게는 대표성과 권위가 있어야 하니까요. 그런데 대통령의 임기를 5년으로 한 데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요?
김문현 : 처음에는 4년 임기, 5년 임기 모두 거론이 됐습니다. 프랑스의 경우 과거에는 7년으로 하다가 지금은 5년 중임으로 바뀌었습니다만, 대통령이 보다 안정적으로 국정운영을 하기 위해선 4년보다는 5년이 더 낫지 않을까 판단했습니다.
이부영 : 그런 것 같습니다. 대통령은 입헌군주제에서의 국민적 상징이랄까, 국정안정의 축이랄까, 이런 성격으로 좀 오래가도 괜찮다는 의미가 내포된 게 아닌가요. 포르투갈의 경우에는 임기가 9년이더군요.
김문현 : 다소 논란이 있었지만, 말씀하신 그런 취지에서 5년 중임으로 하도록 했습니다.
▲ ⓒ프레시안(김봉규) |
"상하 양원제도, 국회 설득하기 위한 출국전략이기도"
이부영 : 양원제는 어떤가요. 하원이 역동적 사회변화를 담아내는 그릇이고, 실제적 큰 권한은 하원에 주되 상원이 그것을 재검토 하는 구조입니다. 졸속 혹은 정략적 입법을 경계하는 것이지요. 또 역사나 전통을 접목시켜서 우리 사회에 더 많은 안정성을 확보하게 한다는 점에서 상하 양원을 가질 필요가 있지 않나, 이렇게 봅니다. 새로운 헌법을 주체적으로 다루고, 심의하고, 가결해야 할 정치권에는 또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있지 않습니까. 자신을 희생시킬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모든 국회의원에게 기대하긴 어려워 보입니다. 물론 많은 분들이 갈등을 하겠지만, 어떤 분은 자신의 이익을 희생할 수는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개헌문제나 선거구제 개편 등을 정치권이 받아들이도록 현재의 국회를 설득하는 데에도 상하 양원제도는 대단히 유용한 출구전략이라고도 생각합니다.
윤여준 : 그런 측면이 있죠. 그런데 상원의원으로 뽑히는 분들이 어떤 분들일지 모르겠는데요, 지금 우리의 국회수준으로 봐서는 양원제가 불가피하다고 봅니다. 이렇게 말이 안되는 짓들을 하고 있는데요, 그것을 그냥 두고 갈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런 측면에서도 양원제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정당들이 제대로 된 정당의 모습을 갖추고 그 기능과 역할을 해야 하는데, 제대로 될 것인지는 의문입니다. 그래도 해야죠. 그렇게 자꾸 몰아가야겠죠. 정치권이 스스로 각성하길 기대하기는 어렵고, 유권자인 국민의 요구로서 몰아가야 할 겁니다.
김문현 : 양원제 채택여부도 논란이 있었습니다. 결국 정당정치에 의해 진행되다보면 상원이나 하원의 의석분포가 비슷해지면 과연 양원제에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지적이었습니다. 시간적인 비효율에 대한 우려도 있었습니다. 상원을 어떻게 구성하고, 그 기능적 차이는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의 문제도 간단치는 않아 보입니다.
이부영 : 프랑스의 경우는 하원은 하원대로 운영되지만. 상원의 경우에는 지방자체단체장 내지는 상원으로 뽑힌 사람들이 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즉 중앙정부 국정의 중심은 하원이 담당하되 상원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사이를 연결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지방의 이익을 중앙에 대변하는 역할이지요. 우리도 참조할 필요가 있는 대목입니다. 또 앞으로 기초의회를 폐지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도의회나 시의회, 광역의회의 존재를 어떻게 다시 재조정할 것인가, 상원과 지방의회의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지금 지방의회에 정당공천제를 채택하고 있는데 지방자치 제도를 왜곡하는 측면이 있어요. 지방의회를 국회의원의 부속품처럼 만들어 버린 겁니다. 이 부분과 맞물려 정당공천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를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윤여준 : 권력분립의 측면에서 보면 흔히 수평적 분립인 3권분립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사실 지방자치는 수직적 분립이거든요. 그러나 말씀하신 그런 문제 때문에 전혀 수직적 분립이 안 되고 예속화되어 있습니다.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서도 그래서는 안 됩니다.
이부영 : 중앙정치가 지방자치, 지방정부의 주인처럼 돼 있는 겁니다. 더구나 지역주의로 나뉘면 어느 지역은 어느 정당이 독점적 지위를 갖게 됩니다. 이런 파행적인 부분을 중앙정치 정당들이 못 본 척 하거나 오히려 조장하고 있거든요. 지방분권, 지방자치를 이야기하면서 그 부분을 다시 고려하지 않으면 개헌을 한다고 한들 지방정부와 무슨 관계가 있겠습니까.
김문현 : 지방자치 기본법이라고 하는 것을 헌법과 법률의 사이 정도에 만들어서 지방자치의 중요한 것은 거기서 정하도록 설정을 했고, 자치입법권이나 재정권 등에서 중앙으로부터 독립성을 부여하도록 했습니다.
이부영 : 지금은 지방자치가 아니에요. 진짜 지방자치를 하는 곳은 무소속으로 당선된 단체장이 있는 지역이 진짜 지방자치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들은 중앙과 싸우느라 제대로 일을 못할 지경이에요.
김문현 : 상원의 경우에는 숫자는 좀 적게 하고, 반면 임기는 길게 하면서 기본적으로 양원이 서로 충돌할 때는 결국은 하원의 의사가 반영되도록 했습니다. 특히 예산재정에 관해선 하원이 최종 결정하는 형태입니다. 상원에는 지방의 대표와 일본식의 참의원 개념을 섞어서 구성했습니다. 그리고 국회는 상시화 하는 것으로 정리했습니다. 또 국회의 국정감사권은 없애면서 상시감사 체제로 하도록 했습니다.
이부영 : 언급은 돼 있지만 불확실한 부분이 있는데요, 감사원의 감사권과 회계감사가 따로 있지 않습니까. 감사기능을 가진 부서를 국회로 보내느냐, 아니면 대통령 산하에 그대로 남겨둘 것인가. 개정안에서는 그대로 두게 돼 있는데요, 국회의 권한이 막강해지지 않습니까. 그 경우 국회가 상시감사도 해야 하고요, 그 경우 국회에 그것을 위한 특별 기구, 감사원 같은 기구를 두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봅니다. 감사원이 대통령 산하에 존치하는 것보다는 국회 쪽에 두는 게 옳지 않나요? 지금도 그런 폐해가 있습니다. 대통령 산하에 감사원을 두게 되면 감사원이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활용이 되지 않습니까. 표적감사 논란도 많았고요. 국회로 가면 적어도 그런 짓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김문현 : 감사원과 국민권익위원회 등을 어떻게 할 것인지 논란이 있었습니다. 회계감사의 경우에는 국회에 가는 것이 좋은 측면이 있는데요, 직무감찰은 정부에 있는 게 여러 좋은 점이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대통령이 과거하고는 달라서 정파적인 기능보다는 국민 통합적인 기능이기 때문에 과거보다는 대통령 산하로 두는 데 따르는 부작용은 적을 것이라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여러 논란 끝에 우선은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이부영 : 그런 구조에서는 대통령이 총리를 낙마시키려고 한다면 간단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국회에서 감사를 하고 하면 대통령과 총리가 갈등하는 문제는 폐해는 덜할 것이라고 봅니다. 대통령이 위에 앉아서 직무감찰 같은 일을 하면 영이 서겠습니까.
▲ ⓒ프레시안(김봉규) |
"'시장경제 만능론'은 강자의 논리…실질적 민주주의 확대로"
윤여준 : 또 검토해볼 만한 사안은 민족의 문제인데요, 물론 다양성의 시대, 세계화의 시대이기는 하지만 한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는 아직 근대 민족국가를 해 보지 못했습니다. 통일의 문제도 걸려 있고요. 그런 상황에서 민족의 개념을 완전히 헌법에서 없애는 것이 과연 어떨까요. 근대 민족국가를 완성할 때까지는 헌법에 민족의 개념이 들어가야 하는 건 아닐까요. 물론 배타적으로 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민족을 허구로, 상상의 공동체로 보는 시각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부영 : 동감입니다. 근대적 의미의 하나의 민족국가는 일종의 하나의 결손이라고 할 것입니다. 민족이라는 것이 하나의 군대를 갖고 있고, 혹은 다른 민족에 대항하는, 또는 다른 민족을 압도하자는 의미로서 민족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앞서 한반도 평화공존 시대와 평화통일 시대를 가져오기 위한 연성 통치기구를 이야기했는데요, 그것도 민족 공동체라는 것을 기반에 둔 것입니다. 우리는 아직 일본이나 중국, 미국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으면서 분단돼 있는 민족이고요, 분단 때문에 말이나 글까지 변형을 강요당하고 있는 민족이 아니겠습니까. 고토(故土)를 회복하자는 것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망국 이전의 조국의 모습, 조국의 언어와 문화에 새겨진 상처를 치유하면서 하나로 만들자는 목표는 변함이 없다고 봅니다. 그런 차원서 민족이라는 말을 고리타분하게 보는 경향에 대해서는 아직은 조심스럽습니다.
김문현 : 통계를 보면 동남아시아나 중국 등 말하자면 이민족과 혼인하는 다문화 가정이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시대적 배경 자체가 민족이라는 개념을 헌법 규정에 넣는 것은 무리가 있지 않느냐는 논의가 있었습니다.
윤여준 : 국방의 의무 분야에 보면 누구도 양심에 반하는 집총제를 강요받지 않는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 취지는 알겠는데요, 이것을 현실적으로 어떻게 봐야 할까요. 우리 사회의 풍조가 부유층에서는 자식들 군대를 안 보내려고 한다는 것이죠. 이런 내용이 헌법에 들어가면 악용하는 사례가 많이 나오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김문현 : 유럽이나 미국 등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고 있고요, 대만에서도 생각보다 부작용이 없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합니다. 대체복부를 위해 현역병보다 그 기간을 길게 한다거나, 종사하는 일도 군복무보다 결코 가볍지 않도록 하면, 양심과 관계없이 군대를 피하기 위해 악용하는 사례는 우려하시는 것보다는 적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이들은 신앙의 문제로 고통받는 사람들이기도 하니까요, 소수자에 대한 배려 차원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사형제 폐지는 어떻게 보십니까.
이부영 : 사형제 폐지는 세계적인 흐름을 봐도 당연히 도입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양심적 병역거부와도 궤를 같이 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윤여준 : 저도 찬성입니다.
이부영 : 생명권이나 양성평등, 공권력에 의한 반인륜 범죄의 공소시효 배제 등의 내용은 상당히 의미가 있어요. 그리고 여성과 아동, 노인의 권리를 명시하는 부분이 민주국가를 지향하는 나라에서 아직 헌법에 반영이 안 돼 있었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이상한 일이죠. 지금 개헌을 정치권에만 맡겨 놓으면 권력구조 문제만 갖고 싸우다가 끝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87년 헌법에서는 5년 직선제밖에 없었지 않습니까. 이번에 이런 모범답안을 정치권에 제시해서 권력구조도 바꿀 건 바꾸고 국민의 기본권 문제랄지, 경제조항이랄지…, 특히 극도로 폐쇄적인 사법부의 관료주의 측면에도 변화를 모색해야 합니다. 모든 인사권을 대법원장이 다 갖고 있고요, 법원도 인사권 때문에 재판이 왜곡된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어요. 한편에선 민주화가 이렇게 진행되는데 사법부만 어떻게 거꾸로 가고 있었을까요. 불가사의한 일이에요.
▲ 이날 대담의 진행은 대화문화아카데미의 새 헌법 조문화위원장이기도 한 김문현 이화여대 교수가 맡았다. ⓒ프레시안(김봉규) |
김문현 : 사법부의 독립성을 강조하다 보니까 대법원장이 인사권을 장악하는 형태가 온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처럼 대법원장이 강한 나라가 없습니다. 동료 대법관까지 대법원장이 재청하지 않습니까. 청와대와 조율은 하겠지만, 모두 대통령이 받아서 임명하는 형태가 아닙니까.
이부영 : 법원이 저렇게 비민주적으로 운영되면서 다른 부분의 민주주의를 강화하려고한다면 설득력이 없을 것 같아요. 미국 등 일부 국가에서는 검찰도 선거로 임명하지 않습니까. 국민투표의 요건과 범위도 넓어졌는데요, 이런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4대강은 대통령이 저렇게 밀어붙이지 않습니까. 이런 경우에 대통령이 스스로 내키지 않으면 국민투표에 안 붙이면 그만이라는 것입니다. 4대강 문제가 특히 그런데요, 아무리 국민투표를 해 보자고 해도 대통령이 듣지 않으면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죠. 저럴 경우 국민이 국민투표를 요구할 길은 없을까요.
윤여준 : 5년 단임제라는 형태에는 민주정부의 책임성을 없애버린 중대한 문제가 있었다는 게 바로 그러한 측면이라고 하겠습니다. 대통령이 '내가 재선할 일이 있나'라는 식으로 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뭔가 업적을 남기면, 자손만대 위대한 대통령의 업적으로 남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으면 밀어붙였습니다. 그런데 재선이 걸려 있으면 그렇게 하지는 못할 것으로 봅니다. 견제는 필요하겠지만 국민투표로 하자고 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봅니다.
이부영 : 이런 것은 어떨까요. 상징적인 수의 국민, 예를 들어 유권자가 현재 3000만 명쯤 되지 않습니까. 그 유권자의 10분의 1이 서명해서 국민투표를 요구할 경우 대통령이 특정 사안에 대해 국민투표를 실시해야 한다는 식의 조항을 두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4대강 문제처럼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경우 누가 책임을 질 수 있느냔 말입니다.
김문현 : 국민소환제나 국민투표 등을 얼마나 확대할 것인지도 중요한 논점이었습니다. 대의제 민주주의라는 큰 틀이 있는데 직접 민주주의적인 요소를 얼마나 가미할 것인지의 문제라고 할 텐데요, 그 부작용도 있을 수 있지 않습니까. 일단은 헌법 개정을 위해서만 국민발의를 인정하는 정도로 정리하는 한편 추가로 직접 민주주의적인 요소는 가미하지 않도록 했는데요, 말씀하신 것처럼 경우에 따라서는 필요한 경우도 있을 것이라고 판단됩니다.
윤여준 : 직접 민주주의적 요구가 폭발적으로 분출하고 있는 만큼 제도적으로 그것을 반영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겁니다. 다만 헌법에 명시하는 것보다는 하위법에서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이부영 : 4대강 문제는 정말 답답합니다. 오죽하면 문수 스님이 소신공양을 하셨겠습니까. 지금 대통령이 절대로 들을 것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만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자신이 있다면 국민투표 해야지요.
윤여준 : 그런데 만일 4대강 국민투표를 하자고 하면 지금 헌법 상에서는 과연 그것이 국민투표 사안이지 여부를 두고 끝없는 논란이 벌어지게 되지 않을까요. 경제조항을 살려두신 건 정말 잘하신 일입니다. 상당히 논란이 많았던 문제인데요, 우리가 흔히 한국 사회의 헌법적 가치를 주장할 때마다 이야기하는 것이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자유 민주주의가 헌법적 가치라고 하면서도, 자유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는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바로 적정한 소득분배, 경제적 남용방지, 시장 독점방지, 경제민주화가 그것입니다. 그저 시장경제만 이야기하면 완전한 강자의 논리가 아니겠습니까.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길 수 있습니까. 절차적 민주주의를 그렇게 중요시하면서 실질적 민주주의 이야기는 왜 안 하는가…, 최장집 교수님의 경우에는 그것을 나눌 필요는 없다는 분이지만요, 절차적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과정에서 정당의 역할을 통해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인데 한국의 정당들에게 과연 그런 역할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시민이 실질적인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조항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보고요, 그 조항이 갖는 의미에 대해 국민에게 많은 강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문현 : 굉장히 민감한 부분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우파 쪽에서는 삭제하자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손을 대는 것은 상당히 곤란한 조항이라는 판단이었고, 일부 조항을 조정하면서 그 틀은 유지하는 것으로 했습니다.
윤여준 : 우리는 경제민주화 조항을 헌법에 갖고 있으면서도 잘 지키지 않아 왔습니다. 그래서 사회경제적 불평등 구조가 생긴 것이죠. 그것을 국민들은 결국 참지 않습니다. 실질적 민주주의를 소홀히 하면 절차적 민주주의까지 없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부영 : 상하양원, 이것을 통한 복수정당 내지는 여러 다른 성격을 가진 정당이 나타나고 지역주의가 점진적으로 해소되는 한편 정책경쟁 구도로의 이행이 이뤄지면 윤 장관이 강조한 그런 가치를 대변하는 정당들이 정치세력으로 자리를 잡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남쪽 사회에서 적절한 분배나 복지가 제대로 보장되고 사회 갈등이나 마찰을 제도적으로 개선할 때 남북 평화공존과 공동번영, 평화통일로 가는 길이 설정될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 사회의 양극화가 심화되면 통일도 멀어지는 게 아니겠습니까.
윤여준 : 핵심적으로는 정당이 사회적 균형구조 위에 만들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그것이 되지 않고 있어서 어려움이 있습니다. 저런 정당들로는 안 됩니다. 정당도 진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부영 : 이번 지방선거에서 그런 조짐이 나타났다고 봅니다. 지역구도도 완화됐고, 정책경쟁의 싹이 보였습니다. 특히 무상급식, 복지, 보육, 노후복지 등이 중요한 화두로 제기됐어요. 정당들은 급속하게 그 쪽으로 갈 것으로 봅니다. 일단 표를 얻어야 하니까요. 다음 선거는 아마 지역구도 보다는 그런 류의 정책담론들을 많이 내세울 것으로 예상합니다. 보수정당들과 진보정당들 사이에 큰 차별성이 없어지는 양상을 보일 수도 있을 겁니다. 결국 유권자들이 정당을 불러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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