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지방선거가 끝나자마자 한나라당이 '개헌특위' 구성을 제안했다. 6월 임시국회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하자는 제안이다. 17대 국회에서부터 개헌은 계속 제기됐던 문제다. 하지만 '5년 대통령 단임제'라는 권력구조 문제를 건드릴 수 밖에 없는 개헌 문제는 정치적 민감성 때문에 계속 뒤로 미뤄져왔다.
또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개헌은 권력구조 문제에만 관심이 집중돼 있다. 그러나 가장 상위법인 개헌은 단순히 '대통령 임기'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헌법은 기본권, 영토, 경제 등 국민들의 일상과 밀접히 맞닿아 있는 많은 문제를 다룬다. 대화문화아카데미(구 크리스챤 아카데미, 원장 강대인)가 지난 2006년부터 5년 가까이 '새 헌법'에 대한 논의와 연구를 거듭한 이유다.
<대화문화아카데미 헌법조문화위원회>는 그간의 논의 결과를 바탕으로 <전문총강>, <기본권>, <입법부>, <집행부>, <사법부>, <지방자치>, <경제조항> 등 주제에 대해 9회에 걸쳐 기고와 좌담을 게재할 예정이다. 대화문화아카데미는 오는 7월7일 '새 헌법' 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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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헌법은 경제에 관해 별도의 장을 마련하고 있는데, 그 첫번째 조항인 제119조는 경제에 관한 대한민국의 목표를 천명하고 있어서 '경제헌법'이라 불린다. 제119조 1항은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2항은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대화문화아카데미의 새헌법안은 심도있는 논의와 때로는 격렬한 논쟁을 거친 후, 이 조항을 그대로 수용하기로 결론지었다.
헌법 제119조는 우리 사회의 이념 논쟁이 집중된 조항이다. 소위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시장지상주의자'들은 2항의 폐지를 주장한다. 이들은 경제에 국가의 개입을 허용한 2항의 존재가 한국경제의 성장을 저해하는 독소조항이라고 비판한다. 2항의 폐지까지는 주장하지 않지만, 2항의 역할을 최소화하려는 입장도 있다. 이 입장은 1항과 2항의 관계를 원칙과 예외로 해석한다. 자유시장경제가 우리 헌법의 원칙적 경제질서이기 때문에 국가의 개입은 예외적으로 최소한만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즉, 자유시장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예외적 상황에서만 국가에 의한 규제와 조정이 허용된다는 주장이다.
대화문화아카데미의 헌법논의가 중반을 지날 무렵에 발생한 미국의 금융위기와 그 심각한 파장은 자유방임적 경제정책과 탐욕이 결합하여 만들어 낸 해악의 사례를 웅변적으로 보여 주었다. 이에 시장지상주의자들의 입지는 크게 약화되었다. 하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여전히 2항의 존재를 해악으로 간주하며, 특히 "적정한 소득의 분배"와 "경제의 민주화"와 같은 표현에 매우 부정적인 태도를 취한다.
대화문화아카데미의 새 헌법안은 '사회국가원리'에 기반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다수 헌법학자들의 견해나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에 따르면, 재산권의 행사에 사회적 책무를 지우고 있는 헌법 제23조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보장한 제34조 등을 볼 때, 우리 헌법은 사회국가원리에 바탕을 두고 있음이 분명하다. 사회국가를 "사회현상에 대하여 방관자적 국가가 아니라 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정의로운 사회질서의 형성을 위하여 사회현상에 관여하고 간섭하고 분배하고 조정하는 국가이며, 궁극적으로는 국민 각자가 실제로 자유를 행사할 수 있는 그 실질적 조건을 마련해 줄 의무가 있는 국가"로 이해한 헌법재판소의 견해가 이번 헌법개정안의 경제조항에서도 근간을 이룬다.
이러한 이유에서 '경제헌법'의 핵심조항을 그대로 수용하였지만, 대화문화아카데미의 개정안은 3항을 신설하여 "국가는 전국의 균형있는 경제발전을 위하여 필요한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한다."는 규정을 추가하였다. 지방분권 및 균형발전은 이번 개정안의 주요 목표 중 하나이기 때문에 이를 경제헌법 조항에 명시할 필요성이 있었다.
경제에 관한 장에는 여러 가지 조항들이 있는데 이번 대화문화아카데미의 새헌법안은 가능한 이들을 수용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부적절한 표현은 고치고 21세기적 가치를 강조하는 노력을 하였다. 예를 들면, 소비자보호운동과 관련된 제124조에는 "국가는 건전한 소비행위를 계도하고"와 같은 구시대적 표현이 있는데, 이를 삭제하였다. 대신에 개정안은 "국가는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소비자운동을 보장한다"로 고쳤다. 또한 농·어민과 중소기업을 보호하는 현행 규정에 "소상인"을 보호하는 정책을 시행하도록 하는 문구를 추가하여 도시빈민의 문제와 소득양극화 현상에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헌법에 명시했다. 또한 국토의 이용과 개발과 관한 현행 헌법의 조항에 "지속가능한"이라는 표현을 추가하고, "국토의 천연자원 및 생태환경을 보전"할 국가의 의무를 명시하여, 무분별한 개발의 부작용을 막으려 했다.
개헌 제안권, 국민에게 돌리자
현행 헌법과 비교해 볼 때, 대화문화아카데미 새헌법안의 가장 큰 특징은 헌법개정안의 제안권을 국민에게 주고, 대통령에게는 허용하지 않는 점이다. 현행 헌법에서는 대통령과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가 헌법개정안을 제안할 수 있다. 대화문화아카데미의 헌법안에는 '살아있는 헌법'을 구현하려는 의지가 담겨있다. 세계 주요 국가들의 헌법개정 방식과 절차를 연구하고, 우리 실정에 가장 적합한 방안을 찾으려고 노력하였으나 합의안을 도출하기가 싶지는 않았다.
논의가 시작될 무렵에는 헌법개정을 필요할 때마다 쉽게 할 수 있는 방안에 초점을 모았다. 급변하는 국내외 상황 속에서 헌법이 최고 법규범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헌법의 개정이 너무 까다롭거나 어려워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지지를 받았다. 반면에 헌법의 안정성 유지를 위해 종래와 같이 경성헌법의 원칙이 고수될 필요성도 제기되었다. 이들 주장을 모두 수용하여 헌법개정절차를 이원화하는 방안을 모색했다. 이원화란, 헌법의 핵심적 조항을 개정하는 경우에만 국민투표를 거치게 하고, 그 외의 개정은 국회의 의결만으로 가능하게 하는 방식을 의미했다.
상당한 기간 동안 논의를 했던 이원화는 결국 두 가지 이유에서 채택되지 못했다. 하나는 헌법의 '핵심적 조항'을 구체화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대단히 어려운 문제였다. 특정조항이 핵심적 조항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논란이 있는 경우, 이를 해결하는 제도적 장치의 마련도 용이하지 않았다. 또 하나의 이유는 국민의 참여를 높이고 민주적 정당성을 강화하려는 대화문화아카데미 헌법개정안의 정신을 훼손할 우려였다. 결국 모든 헌법개정은 국민투표를 통해 확정되도록 한 현행 헌법의 방식을 따르고, 절차의 이원화 방안은 백지화 되었다.
1954년 헌법과 1962년 헌법에 존재했던 '국민발안'제도가 이번 개정안에 다시 도입되었다. 우리 국민들의 높은 정치의식과 시민사회의 발전을 고려하여, 주권자인 국민들이 헌법개정안을 직접 제안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헌법개정안의 제출에는 "하원의원 선거권자 70만 명 이상의 찬성"을 요하도록 하여, 상당한 공감대가 형성된 개정안만이 헌법개정철차에 회부되도록 했다. 국정의 책임을 '총리'가 지도록 한 대화문화아카데미 헌법개정안의 권력구조를 고려하여, 종래 대통령중심제에 있었던 대통령의 헌법개정안 제안권을 삭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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