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정당의 대선 주자인 유승민 의원과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20일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구속 수사 여부, 자유한국당 또는 민주당과의 후보 단일화 및 연정 문제 등을 두고 격돌을 벌였다.
유 후보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예우와 국가 품격 차원에서 불구속 수사 및 재판을 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다. '탄핵 불복 세력과의 단일화는 없다'는 전제를 붙이긴 했지만 자유한국당과의 후보 단일화에도 여전히 열려있다는 뜻을 밝혔다. 대구에 정치적 기반을 둔 유 의원의 정통 보수층을 향한 적극적인 구애 제스처다.
반면 남경필 지사는 자유한국당과의 단일화는 '명분 없는 정치 공학'이라고 강력히 비판하며, 집권 후 다른 정치 세력들과의 연정이 적절하다고 강조했다. 박 전 대통령 수사와 관련해서는 "법 앞에 누구든 평등하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원칙론을 고수했다.
두 후보는 이날 오후 한국방송(KBS)이 주관한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이런 내용 등으로 격론을 벌였다. 특히 보수 후보 단일화가 주제였을 때는 공격적인 질문과 답변을 숨쉴 듯 없이 주고 받으며 '불꽃 토론'을 벌였다.
유승민 "朴 불구속 수사했으면" vs. 남경필 "법 앞에 누구나 평등"
유 의원은 이날 처음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와 재판 과정을 불구속으로 진행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밝혔다. 출마 선언을 한 후보 중 불구속 수사를 주장한 사람은 유 의원이 유일하다.
유 의원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에 대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고 가슴 아픈 일"이라고 평한 후 박 전 대통령이 "내일 검찰에 출두하는데 검찰 수사, 기소, 재판은 엄정하게 법에 따라 진행돼야 한다"고 우선 말했다.
유 의원은 그러나 "대통령에 대한 구속 수사와 구속 기소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국가 지도자였던 품위나 나라의 품격 등을 생각해 수사나 기소는 선고가 내려질 때까지 불구속으로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검찰과 법원 판단에 조금도 영향을 끼칠 생각은 없지만 나라의 앞날과 통합을 위해 불구속 수사와 재판을 받고 그에 따른 사법 절차는 그때 가서 결정하면 될 문제"라고도 했다.
유 의원은 토론회를 마친 후 기자들을 만나서도 "이미 증거가 많이 나왔다. 증거 인멸 우려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불구속 수사가 가능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런 유 의원의 발언은 대구·경북(TK)을 비롯한 박 전 대통령 지지층의 표심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통령과 누구보다 정치적 대립각을 많이 세웠고 그 결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하고 공천을 받지 못한 과거가 있음에도,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포용적 자세를 보임으로써 보수층을 끌어안겠다는 전략이다.
남 지사는 원칙론을 강조했다. 그는 이번 사태로 "우리가 얻어야 할 것은 법치"라며 "정치인들이 박 전 대통령을 두고 구속 불구속을 말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을 밝혔다.
남 지사는 "법 앞에 누구든 평등하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며 "대통령이든 힘 없는 국민이든 법 앞에 평등하다는 것을 수사 과정에서 보여주는 것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해 사실상 구속 수사가 적절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남경필 "한국당과 단일화? 왜 탈당했나" vs. 유승민 "한국당에도 동지 있다"
두 사람의 토론은 보수 후보 단일화가 주제였을 때 가장 격렬했다. 남 지사는 유 후보가 국정 농단 세력이 장악한 자유한국당과도 대선 후보 단일화를 할 수 있다고 밝혀온 데 대해 '그럴 거면 왜 탈당했느냐'는 질문을 공세적으로 반복했다. 또 바른정당 내에 이른바 '유승민계'가 생겼다며 김무성 계와의 갈등 책임을 유 후보에게 돌렸다.
유 후보는 기존의 보수 후보 단일화 입장을 이날에도 고수했다. 다만 자유한국당의 최종 대선 후보가 헌법재판소의 박 전 대통령 파면 결정에 불복한다면 단일화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점도 누차 강조했다. 유 후보는 단일화 대상에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 모두 열려있다"며 다만 "자유한국당에 대해선 탄핵 승복 여부를, 국민의당에 대해선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에 대한 협의가 필요할 것 같다"고 했다.
그러자 남 지사는 "자유한국당은 보수가 아니라 친박 세력"이라며 "그런데 어떻게 단일화를 하는가. 그렇다면 유 후보는 왜 탈당을 했나. 민주당과 붙어서 질 것 같으니 탈당한 자유한국당과 다시 단일화를 하자는 것은 국민 앞에 명분이 없다"라고 몰아붙였다. 남 지사는 "보수 후보 단일화는 안 하기로 당론으로 이미 결정됐으니 이 말씀이 더는 (유 후보 입에서) 안 나오길 희망한다'고도 했다.
토론은 점차 거칠어졌다. 유 의원은 남 지사에게 "자유한국당에 90여명의 의원이 있고 탄핵 찬성파도 30여명이 있다. 자유한국당 전체를 국정 농단 세력으로 규정할 수 없다"고 반박했고 남 지사는 "그렇다면 왜 탈당했나. 그 당에서 싸웠어야 한다"라고 같은 질문을 반복해서 던졌다. 급기야 유 의원은 "어떻게든 남아서 해보고 싶었지만 그 당에 대통령과 주변 세력이 장악해 꼼짝도 못 했던 것을 남 후보도 잘 알지 않느냐"고 반박했다.
유 의원은 보수 후보 단일화가 정치 공학 아니냐는 남 지사의 공격에, 남 후보가 민주당 안희정 충남도지사와 연정을 고리로 연대 흐름을 만들었던 점을 거론하며 "자유한국당과의 단일화는 절대 거부하고 안 지사와는 연정을 하겠다는 너무 헷갈린다. 제 보수 후보 단일화 이야기가 훨씬 더 원칙 있다"고 응수했다.
유 의원은 또 남 지사에게 "새누리당에서 공천 받아서 국회의원하고 도지사까지 하신 분이 잘 알지 않나. 그 당 안에도 우리와 같이할 수 있는 동지들이 있다는 것을"이라고도 했다. 그러자 남 지사는 또다시 "왜 그렇다면 탈당했느냐"고 물은 후 "유 후보가 자유한국당을 자꾸 기웃기웃하니 우리(바른정당)가 정체성이 흔들리고 지지율이 떨어지는 것"이라고 공격했고 연정과 단일화는 다르다며 유 후보가 "연정을 공부 좀 하셔야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유 의원은 "그게 아니다. 남 지사가 민주당에 기웃기웃하니 우리 정체성이 흔들리는 것"이라고 맞받았다. 유 의원은 이어 "남 지사가 주장하는 연정의 취지에 반대하지 않는다"면서 "그러나 연정은 좀 더 내각제에 어울리는 것이라고 본다. 중요한 건 대통령과 야당 사이의 협력이라고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유 의원은 "제가 탄핵 불복 세력과 손 잡지 않는다고 몇 번을 말씀드렸다"고도 강조했다.
남경필 "소통 좀 하시라" vs. 유승민 "유승민계 없다"
남 지사의 공격은 최근 바른정당 물밑에서 불거진 김무성 비대위원장론 등을 둘러싼 갈등으로 옮겨갔다. 남 지사는 "유승민 계가 정말 없느냐"라면서 일부 "의원들이 지금 후보랑 소통하기 어렵다고 하더라. 소통 좀 잘 하시라"고 유 의원을 비판했다.
이에 유 의원은 웃으며 "그런 것 전혀 없다"며 "과거 친이 친박 같이 안 하려고 얼마나 우리가 노력했나. 과거 10년 제가 (박 전) 대통령 어떤 투쟁을 했는지…. 그때 남 후보님 뭐하셨는지 모르지만. 저 참 고통 많이 받았다. 그때 남 후보님이 저를 위로 많이 해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응수했다.
유 의원은 당내 일부가 김무성 의원을 당의 비대위원장으로 추대하려 하고 유 의원과 가까운 일부가 이를 반대하며 발생한 당내 갈등과 관련해서 "김무성 의원과 저는 성향이 달라도 같이 힘을 합치는 동지"라며 김 의원과 가까운 "분들이 남경필 후보님을 도와도 저는 일언반구도 안 한다"고 말했다.
최근 김무성계로 분류되는 바른정당 내 현역 의원 8명이 남경필 지사 지지 선언을 한 것을 언급한 것이다.
90분가량 진행된 이날 토론에서 두 사람은 1차 토론 때와 마찬가지로 남 지사의 모병제, 유 의원의 칼퇴근·육아휴직3년법 등을 두고도 치열한 토론을 벌였다.
한편, 지난 19일 시행된 두 후보의 호남권 정책 토론회에서는 정책 평가단 총 446명 대상 전화면접투표를 한 결과 응답자 290명 가운데 기호 1번 유승민 후보가 183명, 기호2번 남경필 후보가 107명의 선택을 받았다.
바른정당은 오는 21일에 영남권(부산), 23일에 충청권(대전), 25일에 수도권(서울)에서 3차례 더 권역별 정책토론회를 열고 국민정책평가단의 전화면접투표를 벌인다. 이후 28일 후보자 선출대회에서 국민정책평가단의 전화면접투표 결과와 당원선거인투표결과, 일반국민 여론조사 결과를 합산해 최종 대선 후보를 선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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