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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우리가 모르는 미국이 다가오고 있다"

[기고] 트럼프 행정부와 한국의 선택

1. 미국의 대외 정책 환경

□ 초원을 뒤흔드는 코끼리

우려했던 대로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의 어느 대통령보다 거칠고 불안하게 출발하고 있다. 트럼프가 어디로 갈 것인가를 예측하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일이라는 한탄이 쏟아지고 있다. 오바마의 대외 정책을 통틀어 뒤집겠다더니 어느새 러시아의 크림반도 철수와 이스라엘의 정착촌 확대 문제 같은 주요 외교정책에서 미국의 기존 입장으로 돌아가고 있다. 먼지가 언제 가라앉을지 알 수 없다. 그래도 현상을 진단하고 미래를 예측해 보는 것은 하지 않는 것보다 나을 것이다.

"화난 코끼리가 초원을 뒤흔들면 초원이 망가지고 결국 코끼리도 살 곳이 없어진다. 그러나 그 전에 다른 동물이 먼저 사라진다."

트럼프의 미국이 등장한 후 세계의 미래를 우려하는 말이다. 트럼프는 미국은 제일 마지막까지 남을 테니 먼저 망가지지 않으려면 약한 나라들이 양보하라는 것이다. 이처럼 지난 70년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그리고 자유무역이라는 이념과 가치를 내세워 세계 질서를 이끌어 온 미국이 그 자리를 포기하겠다고 한다. 동맹국 안보의 재보험도 자유무역의 문지기도 맡지 않겠다는 것이다.

대신 이합집산의 지정학과 강대국 정치를 귀환시키고 있다. 미국은 러시아와 손을 잡아 중국을 견제하고 서유럽을 불안하게 한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중국이 독일 중심의 유럽연합(EU)과 손을 잡고 미국에 대항하면서 자유무역의 수호자로서 미국의 자리를 채우겠다고 한다. 세계정세의 지판이 송두리째 움직이고 있다.

트럼프의 취임 연설에는 민주주의, 인권, 평화구축, 기후변화, 빈곤퇴치 같은 보편적 가치는 흔적도 없었다. 오직 "미국산을 구매하고 미국인을 고용하라!"는 구호만이 들렸다. 그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개정과 환태평양동반자 협정(TPP) 탈퇴를 결정하고 멕시코 국경의 장벽 구축과 이슬람 국가로부터의 입국 금지를 명령하면서 임기를 시작했다.

"스테로이드 맞은 미국 국수주의가 등장했다."는 비판이 등장하고 있다. 미국은 2000~2014년에 걸쳐 15년 간 제조업에서 약 500만 개의 일자리를 잃었다. 같은 기간에 백인 자살자 숫자만 약 49만 명에 이른다.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주요 배경이다.

백인 유권자들은 미국의 자존심이나 이상 보다는 일자리를 만들고 테러방지로 국토 안전에 몰입하기를 바란다.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당선되었더라도 국제문제의 선별적 개입, 동맹에 대한 부담 전가, 그리고 보호무역에 기초한 미국 우선주의의 노선으로부터 크게 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미국의 현실이다.

▲ 지난 1월 20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왼쪽) 대통령이 성경에 손을 얹고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 트럼프가 만드는 스스로의 문제

2차 대전 후 미국은 전 세계에 군사력을 배치하여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경제적 이익을 확대시켜 왔다. 초강대국의 작동원리였다. 그런데 트럼프는 동맹국이 비용을 부담하지 않으면 군대를 철수하겠다고 위협하면서 고립주의(isolationism), 보호무역주의(protectionism), 반이민주의(nativism)를 내세우고 있다. 지금까지 세계를 경영해온 원리를 뒤집는 것이다.

미국이 고립주의를 택했던 1920~30년대에는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5% 선이었다. 1929년부터 전 세계를 뒤덮은 대공황의 배경에는 1922년 미국의 포드니 매컴버 (Fordney-McCumber) 법과 1930년 스무트홀리 (Smoot-Hawley) 법이라는 두 개의 관세법으로 촉발된 무역전쟁도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 역사의 평가이다.

그런데 2015년 현재 의존도는 27%에 달할 만큼 미국 경제가 전 세계의 가치사슬에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앞으로 전개될 무역전쟁이 가져올 파장은 100여 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파괴적일 수 있다. 이런 고려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도 TPP와 TTIP(범대서양 무역투자 동반자 협정)등 자유무역 협정과 NATO의 장래, 그리고 한국 및 일본과의 동맹에 대해 이견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는 전후 국제안보의 중추역할을 해온 NATO를 구시대의 유물이라고 하는가 하면, 아시아의 동맹들도 미군 주둔비용을 전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에 반해 틸러슨 국무장관과 매티스 국방장관은 "동맹 없는 강국은 없다"는 주장을 편다. 또 틸러슨은 트럼프가 탈퇴를 선언한 TPP를 지지한다고 했다.

트럼프는 선출직이나 군을 지휘해 본 경험이 없는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다. 그는 미국 기성 정치권은 물론 공화당의 주류로부터 벗어나 있을 뿐 아니라 이념이나 가치 체계에 있어 일관성을 갖추고 있지 않다. 부동산 사업가의 자세에서 장기적 국가이익보다는 단기 손익계산을 중시함으로써 시간이 지남에 따라 미국의 행동반경과 영향력이 크게 제약될 것으로 전망된다.

2. 트럼프의 대외정책 전망

□ 우선 과제와 전략

트럼프는 국내 일자리를 위한 무역정책, 이슬람 테러조직의 와해, 중‧러 밀착의 이완과 중국 봉쇄, 해외주둔 미군의 비용 감축에 치중할 것이다. 이를 위해 보호관세를 내세우며 러시아와 손잡고 NATO를 비판한다. 일본과 한국에 대해 현지 비용을 전담하지 않으면 미군을 철수할 수 있다고 위협하는가 하면, 미‧중 관계의 기본이 되어온 '하나의 중국' 원칙을 부정하기도 한다.

트럼프의 이런 전략과 전술로 인해 세계 안정의 상수역할을 해온 미국이 불안정을 야기하는 변수로 바뀌고 있다. 목표를 단기에 달성하기 위해 '위협을 통한 성공(Winning through Intimidation)' 전술을 피아 식별 없이 동원하고 있다. 2003년 이라크 침공 이래 저하되기 시작한 미국에 대한 세계의 신뢰를 급속히 추락시키고 있다.

□ 트럼프의 난관과 아시아에 미칠 영향


트럼프는 테러 근절을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협력이 긴요한 EU와의 갈등을 조장함으로써 대테러 공동 전선을 약화시키고 있다. 또 러시아와의 관계를 호전시켜 보려 하지만 러시아의 크림반도 점령과 핵 군비 대결로 인해 상호 불신의 벽을 넘기가 어렵다.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으로 고조된 미국 내 반러시아 정서도 큰 장애가 될 것이다.

트럼프는 중국 견제에 최우선을 두고 있다. 그의 주변에는 "중국과는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다"는 극도의 반중 정책을 주장하는 백악관 무역 위원장(피터 나바로, Peter Navarro) 같은 인물들이 포진하고 있다. 중국 제품에 대한 45% 보호관세를 부과하여 중국 경제를 약화시키면 일자리가 미국으로 돌아오고 중국의 국력팽창도 억제할 수 있다고 본다.

2015년 6000억 달러가 넘는 양국 무역 규모 중 미국의 적자가 약 3660억 달러에 달했다. 그러나 미국도 금융과 서비스 분야에서 상당한 무역외 수지 흑자를 보고 있다. 또 중국도 보잉, 애플, 나이키 같은 미국의 고부가 가치 상품 구매를 중단하거나 1조 1000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 국채 방출 같은 카드를 갖고 있다.

미국이 중국에 대해 환율 절상 카드도 들고 나오지만 중국은 위안화 가치 보전이라는 자체 필요에 따라 이미 통화가치를 올리고 있다. 또 값싼 중국산 제품 수입을 제한하면 미국의 물가와 임금이 상승하고 결국 미국 자체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주장이 강하다. 여러 가지 이유에서 대중 무역제재가 가져올 미국 내 장기적 일자리 창출 효과는 미미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 디트로이트 인근에 위치한 폐쇄된 자동차 공장 ⓒ위키피디아

한편 미국의 대중견제 전략은 일본, 한국, 호주로 이어지는 아시아 핵심 동맹망의 강화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결국 오바마의 '아시아 회귀' 정책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데도 트럼프는 그 핵심 장치인 TPP는 탈퇴한다고 선언했다. 또한 동맹국들에게 무역 마찰과 방위비 분담 압박을 가하면서도 동맹 자체는 강화시키려 한다. 상충되는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는 딜레마에 빠지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트럼프의 중국 봉쇄정책은 이미 중국과 일본에 불고 있는 민족주의 바람을 더 세게 할 것이다. 중국은 군사력 증대에 박차를 가할 것이고, 일본은 '강력한 보통국가'의 길을 가속화시킴으로써 중‧일간 군사 충돌의 위험도 그만큼 커질 것이다. 동중국해, 한반도 그리고 남중국해에 걸친 발화위험 지역의 긴장이 더 올라갈 것이다.

3. 한반도 정책과 한국의 선택

□ 양자 문제

한반도 정책은 무역, 방위비, 무기구매 같은 미국 내 일자리와 돈에 관련된 문제와 북한의 핵‧미사일을 둘러싼 대북 정책으로 양 갈래진다. 자유무역협정과 미군 주둔비용 증액 문제는 제로섬 게임이 불가피할 것이다. 트럼프는 대외 압박의 성과를 조기에 보여주고자 할 것이다.

한국 방위는 스스로 책임지라던 트럼프가 취임 후에는 '철갑(ironclad)'공약을 다짐했다. 전형적인 '위협을 통한 승리' 전술의 일환으로서 무역과 방위비 분담 문제를 알아서 양보하라는 신호가 담겨있다. 한국으로서는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면서 균형을 맞추는 협상을 할 수밖에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트럼프가 일본이나 독일보다 안보의 약점을 더 안고 있는 한국을 상대로 살계경후(殺鷄警猴)를 시도할 가능성도 대비해야 한다.

군대의 작전권을 미국에 맡기고 있는 한국은 워싱턴의 압력에 특히 취약하다. 작전권은 한국의 대미 교섭 전반에 걸쳐 결정적 국면에 가서는 늘 중대한 영향을 미쳐왔다. 조기에 전환시킬 필요가 있다.

□ 대북 정책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 문제의 해결에 집중할 여유가 없다. 북한이 당장 핵·미사일로 도발하지 않는 한, 제재와 군사력 시위 등으로 대한 방위공약을 되풀이하는 '비용절감형 대응'에 치중할 것이다.

미국은 중국이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를 최소한의 수준에서 이행하고 있는데 대해 불만을 갖고 있다. 그래서 중국 기업을 위시하여 북한과 비군용물품을 거래하는 제3국 기업까지 제재하는 소위 '세컨더리 보이콧'을 동원하거나, 대북 군사행동을 감행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중국은 세컨더리 보이콧이 중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결코 받아들일 수 없음을 분명히 해왔다. 만약 강행하면 중국도 미국 기업제재 같은 대응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북한 문제를 두고 그 정도로 중국과 정면 대립코자 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한편 중국도 미국에 명분을 주지 않기 위해 1월 말 북한에 대한 이중용도 품목과 기술이전을 금지시켰다.

군사행동 가능성에 있어서도 북한이 실제로 핵·미사일 능력을 갖추고 미국이나 한국 또는 일본을 공격할 명백한 징후를 보이지 않은 상태에서 북한 핵 시설을 선제 타격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중국이 개입하는 전면전을 준비한 상태에서 개시할 수 있는 행동인데 이라크과 아프간에 쏟아 넣은 1조 달러에 달하는 전비와 막대한 인명피해가 미국의 유권자들에게 깊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에 국제적 명분은 물론 미국 내 지지부터 얻기 어려울 것이다.

다만 미국은 전쟁을 수행 중이거나 개전이 임박한 상태의 대통령은 재선시켜온 역사를 갖고 있다. 2020년 대선에 가까이 가면서 한반도 정세와 미국 국내 정치 사정에 따라 위험한 선택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 예상되는 북한의 행동과 미국의 반응

북한의 입장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와 조기에 협상에 들어가기를 희망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먼저 핵‧미사일 실험 중단 선언 같은 구체적 조치를 보이지 않은 상태에서 미국이 협상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북한은 2009년 오바마 행정부 취임 초기에 미사일 시험 발사로 대미 관계의 문이 닫힌 경험을 염두에 둘 것이다. 따라서 3월 한·미 합동 군사훈련 시에도 비난성명 등 제스처를 취할 것이나 대미관계 개선의 여지를 근본적으로 해치는 행동은 자제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별한 상황변화가 없는 한 트럼프 행정부는 대외 정책 진용이 갖춰질 올해 중반기까지도 북한에 대해 실질적 관심을 보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대미교섭과는 별도로 국내정치와 기술적 목적도 있기 때문에 장거리 타격 능력을 과시할 핵‧미사일 실험을 감행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미국이 경고용으로 화력을 증강배치하고 북한이 대응태세에 들어감으로써 군사적 긴장이 고조될 것이다. 이런 국면이 되면 중국이 적극 관여하면서 미‧중/북‧중‧미 대화로 귀착될 가능성이 크다. 전면전으로 가지 않으려는 강대국 정치의 전형적인 단면이 될 것이다.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일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 한국의 대북 정책 선택

한국으로서는 이와같이 '북한의 도발-추가 제재와 군사행동 시위-한반도 위기 고조-협상'으로 이어지는 위기관리 사이클이 전개될 때 까지 상황을 지켜보는 것이 하나의 선택일 수 있다. 이러한 '긴장속의 현상 유지' 정책을 취할 경우 미국과 보조를 맞추는 데 별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현상 변경을 위한 대화'로서 한국이 먼저 미국과 협의하여 중국을 적극적으로 참여시키면서 북한과 협상하는 것이다. 트럼프는 대북 협상을 철저히 국내 정치의 대차대조표에 맞추어 결정할 것이다. 협상을 개시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 중지라는 초기 성과부터 거둘 수 있다는 것을 미국에 확신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문제는 안보 당국자들보다 2018년 중간 선거와 2020년 대통령 재선 기획을 총괄하는 백악관의 수석전략가(스티브 배넌, Steve Bannon)와 비서실장(라인스 프리버스, Reince Priebus)같은 인물들의 판단이 더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과거에도 대북 정책의 냉온 조절을 수단으로 하여 한반도 상황을 관리코자 했다. 한국이 대북 대결노선을 택할 때는 미‧북 대화를, 화해노선을 택할 때는 미‧북 긴장을 수단으로 하여 속도를 조절하는 경향이 있다. 트럼프의 '사업방식'에 비추어 과거보다 더 이런 카드를 활용할 소지가 있다. 한국은 한‧미 양자 문제와 다른 지역 문제에서는 미국의 입장을 반영하는 대신 미국의 대북 정책에서는 한국의 입장을 반영시키는 거래방식도 강구해야 할 것이다.

한편 트럼프가 당장은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이라는 긴 과정에는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만약 대통령으로서 그의 위상이 안정될 경우 세계 주요 지역의 평화구축이라는 업적에 매력을 느낄 것이다. 한국 정부는 미국과 함께 북한 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을 동시에 진행시키는 전략을 늘 정책의 기저에 갖고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 한국은 당장 한반도의 미래 진로에 중대한 영향을 줄 사드 배치문제에 직면해 있다. 미국은 여전히 동북아 정책의 중추로서 미사일 방어망(MD)을 포함한 미‧일‧한 군사 협력을 강화시키려 한다. 사드의 한국 배치는 미·중 간 전략적 대결 구도의 핵심 부분이다. 배치의 배경과 기술적 측면을 중국에 설명하여 설득한다고 해서 풀릴 문제가 아니다. 한반도의 현상을 개선하고 통일의 지평을 열어두려면 한국이 사드와 북한의 핵‧미사일을 묶어 해결하는 틀을 먼저 고안해야 한다.

일차적으로 중국이 북핵 문제의 진전에 더 큰 역할과 책임을 지게 하면서 미국과는 사드 배치일정을 조정하는 것이 긴요하다. 미‧중 양측 모두에 명분을 주고, 불가피하게 배치를 강행하더라도 한국 자체의 입지를 넓혀야 한다. 미·중 간 강대국 정치에 맡겨두거나 국민 여론조사에 좌우될 문제가 아니다.

또 북한의 행동을 전제로 한 핵‧미사일 협상의 물꼬를 트려면 한‧미 양국이 연합 군사훈련의 조정이나 제재 완화 같은 카드도 준비해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대외정책을 외교보다 군사수단에 더 의존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조율이 과거보다 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의 합참은 한‧미 연합훈련의 조정에 극히 부정적이었다. 협상의 공간을 최대한 확장하기 위해서는 청와대가 백악관을 직접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사업 재개 등 대북 정책을 먼저 대폭 전환해서 남북관계를 개선시키면서 핵과 사드 문제를 풀자는 제안도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대북 정책을 실질적으로 전환하는 것은 예상되는 국내 반발과 미국의 반대를 감안할 때 현실적이지 못하다.

핵‧미사일 문제에 대해 '작지만 가시적인' 북한의 행동과 미국의 상응 조치를 연결시키면서 대북 정책을 서서히 전환시켜야 할 것이다. 이런 작업에는 거래 이행의 보증자로서 중국의 손이 필요하다. 북한이 대미 관계 개선을 생존의 수단으로 삼고 이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의 정책에는 미국을 움직일 수 있는 요소가 담겨야 실천력이 생긴다.

마지막으로 트럼프 행정부를 대하는 방식에 있어 세 가지를 유의해야 할 것이다. 첫째, 지금까지 미국과 경험해 온 사례에 연연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가 모르는 미국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트럼프 행정부의 초기 발걸음에 밀착하여 덩달아 움직이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트럼프는 언제든지 다른 길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1~2년 후의 정책이 지금과는 다를 수 있다. 셋째, 우리의 국론을 수렴한 자체 입장 수립에 최우선을 두어야 한다. 국내 지지가 단단하면 트럼프의 미국이나 시진핑의 중국으로부터 오는 기세와 위압에도 버틸 수 있다. 분열된 국론으로는 어느 주변국도 상대할 수 없다.

* 위 글은 지난 7일 북한대학원대학교와 경남대학교가 공동으로 주최한 '2017년도 초빙교수연찬회'에서 송민순 총장이 '트럼프 행정부와 한국의 선택'을 주제로 발표한 발표문을 전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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