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더"를 외치는 군중들에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Yes, we can(우리는 할 수 있다)"이라고 응답했다. 9년 전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처럼, 그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며 임기를 마무리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10일(현지 시각) 자신의 정치적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시카고의 매코믹 플레이스에서 고별 연설을 가졌다. 그는 주권자인 국민이 스스로 정치에 참여하는 것만이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수 있고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곳에서(시카고) 보통의 사람들이 함께하고 무언가를 요구하기 위해 한목소리를 낼 때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을 배웠다"며 "8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변화의 힘을 믿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만약 당신이 인터넷에서 다른 사람들과 논쟁하는 것이 진절머리가 난다면 현실에서 그들과 대화하려고 노력해보라"라며 적극적인 의견 개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선출된 사람들에 실망했다면 직접 공직에 출마할 수도 있는 것"이라며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때로 앞으로 갈 수도 있고, 뒤로 퇴보할 수도 있다"면서 "하지만 미국은 일부가 아니라 전부를 포용하기 위해 전진하고 있고, 헌법 정신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하지만 국민들이 정치에 참여하지 않아 헌법에 힘을 실어주지 않는다면, 이건 아무런 능력이 없는 종이 쪼가리일 뿐이다"라면서 적극적인 정치 참여를 독려했다.
그는 이날 연설에서 본인의 핵심 정책인 '오바마케어(건강보험개혁법)'를 지켜내기 위해 끝까지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를 비롯해 공화당에서 오바마케어의 폐지 움직임을 보이는 것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힌 오바마 대통령은 "8년 전 금융위기를 극복하고 2000만 명에게 건강보험을 제공하겠다고 말했다면 너무 거창하다고 했을 것"이라며 "하지만 우리는 이를 해냈고 미국은 더 훌륭하고 강한 나라가 됐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미국의 빈부 격차는 여전히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남아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이후 실업률은 가장 낮아졌고 많은 사람들이 적은 비용으로 의료보험 혜택을 볼 수 있었다"면서도 "여전히 부유층에게 사회적 자원이 집중돼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러한 경제적 불평등이 민주주의의 원칙을 훼손시키고 있고, 도시 빈곤층을 비롯해 지방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은 정부가 가진 자들의 이익에만 봉사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며 "이런 생각이 정치에 대한 더 많은 냉소를 낳고 있다"고 진단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해고된 공장 노동자,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는 종업원 등 경제적으로 사회적 약자 계층들을 이야기하며, 임금을 개선하고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기업과 부유층이 더 많은 세금을 내는 조세 개혁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사회에서 '편 가르기'가 아닌, 포용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무슬림들에 대해 차별적인 언행을 하고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 담장을 쌓겠다는 트럼프 당선자의 행태를 비판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정당이나 이해관계와 상관없이 미국이 공동체 의식을 회복하도록 돕는 것이 지금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은 민주주의와 인권 및 여성의 권리, 성 소수자 권리를 높이는 싸움에서 물러서면 안 된다"면서 "무슬림계 미국인 역시 우리 못지 않게 애국자들이다. 차별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한편 오바마 대통령은 부인인 미셸 오바마에 대한 고마움을 말하며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그는 미셸에 대해 "당신은 아내이자 엄마일뿐만 아니라 나의 가장 친한 친구"라며 "원하지도 않았던 역할을 25년 동안 우아하게, 그리고 재치있게 해냈다"며 감사함을 표시했다.
그는 "대통령으로 마지막 부탁을 한다. 나의 능력이 아니라 여러분의 능력으로 변화를 이뤄낼 수 있다는 것을 믿어 달라"며 "우리는 할 수 있고, 이뤄냈다. 우리는 할 수 있다"라는 2008년 당시 유세 구호로 50여 분의 연설을 마무리했다.
'레임덕' 없었던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2008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당시 당내에서 '대세론'을 굳혔던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을 꺾는 이변을 연출하며 혜성처럼 등장했다. 이후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썼다. 재임기간 동안 그는 건강보험 개혁(오바마케어)과 동성결혼 합법화, 기후변화 합의 등의 성과를 만들어냈다.
우선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이후 의료보험 제도 개선에 힘써왔다. 하지만 '오바마케어'라고 불리는 개혁안은 공화당의 반대로 무산될 위기를 겪은 가운데 2기 정부 때인 2014년에 들어와서야 시행됐다.
오바마케어의 핵심은 저소득층과 중산층에게 의료보험을 가입하도록 정부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민영 의료보험 체계를 갖추고 있는 미국은 일반 서민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높은 진료 비용으로 '세계에서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오바마케어를 통해 미국 내 무보험자를 상당 부분 줄일 수 있었지만,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에도 이 제도가 유지될지는 미지수다. 트럼프 당선자와 공화당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이해관계가 달린 보험회사들도 오바마케어를 반대하고 있어 폐지될 위기에 처해있는 상황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세계의 이목을 끌게 된 주요한 사건 중 하나로 동성 결혼 합법화를 꼽을 수 있다. 그는 행정명령을 통해 성적 취향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규정을 마련했으며, 동성애자의 군 복무를 허용하기도 했다. 지난 2015년 6월에는 미국의 연방대법원이 동성결혼이 합법하다는 판단을 내리자 백악관 건물을 다양성의 상징인 무지개색으로 바꾸기도 했다.
2015년 12월에는 파리 기후변화협약 합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는 미국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환경 분야에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트럼프 당선자는 기후변화에 대해 소극적이어서 향후 이 부분에서도 오바마의 유산이 뒤집어질 가능성이 높다.
미국 국내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도 오바마 대통령은 적지 않은 성과를 남겼다. 우선 지난 2009년 '핵 없는 세계'를 강조한 그는 그 해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또 지난 2015년 7월에는 이란과 핵 합의를 타결하는데 성공했다.
앞서 2014년 12월 오바마 대통령은 쿠바와 관계정상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피델 카스트로가 혁명을 통해 쿠바에 공산 정부를 세운 지 2년 만인 지난 1961년에 끊겼던 양국 관계가 53년 만에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됐다.
이후 2015년 양측은 대사관을 열고 관계 정상화 수순에 돌입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6년 미국 현직 대통령으로는 88년 만에 처음으로 쿠바를 찾아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하지만 그는 시리아 내전에서는 별다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IS(이슬람국가)의 등장과 5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시리아 내전 및 난민 문제는 오바마 대통령이 해결하지 못한 난제다.
북한과 관계 역시 악화일로였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이른바 '아시아로의 귀환'을 천명한 이후 오바마 대통령은 한미일 동맹 강화에 주력하며, 북핵 문제 해결에 있어서는 '전략적 인내'라는 소극적인 방식을 택해 사실상 북핵을 방치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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