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걸음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Jtbc <뉴스룸>과 손석희 앵커는 기존의 단순보도 방식을 넘어 탐사 프로그램들이 취하는 심층보도를 매일 뉴스에 도입하고 있다. 이에 따른 긍정적인 결과들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정부가 지난 6일 발표한 '2030 국가온실가스 기본 로드맵'에 대한 언론 보도들을 접하면서, "한 걸음 더 들어가는" 심층 보도가 없다는 아쉬움이 든다. 대부분의 언론들은 정부의 보도자료를 순서만 바꿔 옮겨 적는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산업, 수송, 발전 등 7개 부문 감축률이 기존 로드맵보다 낮아졌다는 <한겨레>의 보도와 국외 감축분의 허구성에 대한 <경향신문>의 지적 정도가 다른 언론과는 다른 것 같다.
'박근혜-최순실-재벌 게이트'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언론의 관심이 온실가스 감축에까지 미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니 만큼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필자가 한 걸음 더 들어가 보고자 한다.
'2030 국가온실가스 기본 로드맵'에서 살펴봐야 할 핵심은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부문별 BAU(Business As Usual,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인위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배출이 예상되는 온실가스의 총량)와 감축량이다. 정부가 발표한 부문별 감축량 표를 보면, 몇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에너지 신산업은 '미다스의 손'?
먼저 '에너지 신산업'이라는, 이전에는 없었던 부문이 눈에 띈다. 또 에너지 신산업은 온실가스 BAU 배출량이 없고 감축량만 있다. 정부의 발표대로라면, 에너지 신산업은 온실가스를 전혀 배출하지 않고 감축만 하는 '미다스의 손'과 같다.
정부가 밝힌 에너지 신산업은 전기자동차, 수요 자원 거래시장, 에너지 자립섬, ESS(에너지 저장 장치), 친환경에너지타운, 발전소 온배수열 활용, 태양광 대여 등이다. 아무리 살펴봐도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고 감축만 하는 사업들은 아니다.
에너지 신산업이 산업, 건물, 수송, 공공·기타 등 전 부문에 걸쳐 있는 사업인 만큼 에너지 신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각 부문별로 정확하게 할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건 쉬이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부연 설명도 없이 이런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걸 이해하기는 힘들다.
<부문별 감축량>
세부 부문별 BAU와 감축량 정보 필요
정부는 "전환 부문의 BAU는 각 부문별 배출량에 간접적으로 포함되어 있어 전체 배출량 산정에서는 제외"했다고 각주로 밝히고 있는데, 전환 즉, 전력 발전량이 각 부문 전력 소비량으로 어떻게 배분된 것인지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다.
그래서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는 심정으로 필자가 추정해봤다. 관계부처 합동으로 2015년 6월 11일 발표한 'Post-2020 온실가스 감축목표 설정 추진계획'의 2030년 부문 온실가스 배출전망 결과와 6일 발표한 부문별 감축량 자료를 토대로 작성했다.
<세부 부문별 감축량>
필자가 추정한 세부 부문별 감축량을 살펴보면, 산업 부문에서의 에너지 소비, 산업공정, 전력 소비, 건물 부문에서의 가정, 상업, 공공 및 기타의 에너지와 전력 소비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감축량 정보가 추가적으로 제공되어야 함을 알 수 있다.
정부는 또 "산업 부문은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하여, 감축량을 12% 이내로 고려하였다"며 밝혔다. 이는 지난해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결정할 때부터 언급되었던 내용으로 새로울 것은 없다. 다만, 산업 부문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진정한 '감축' 목표인지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정부가 제시한 산업 부문의 주요 업종별 목표 감축량 및 감축률을 보면, 각 업종별로 다르긴 하지만 나름의 감축량과 감축률을 나타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제대로 된 비교를 위해서는 기준년도 대비 업종별 2030년 온실가스 배출 전망과 목표 감축량을 종합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산업 부문의 주요 업종별 목표 감축량 및 감축률>
산업부문 온실가스 '감축'?…'증가'! 로드맵
산업 부문 업종별 온실가스 배출량과 감축량을 비교하기 위해 관계부처 합동으로 2014년에 발표한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을 위한 로드맵'과 6일 발표한 부문별 감축량 자료를 토대로 2014년과 2030년의 업종별 배출량과 감축량을 비교했다.
산업 부문의 2030년 BAU 온실가스 배출량은 4만8100만 톤이다. 그 중 5640만 톤(11.7%)을 줄이겠다는 것이 정부가 발표한 감축 목표이다. 하지만 2014년 대비 2030년 산업 부문의 온실가스 배출 증가량은 7700만 톤이다. 그러므로 증가량에서 감축량을 차감한 순증가량은 2060만 톤이 된다. 즉, 2030년 산업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4년 대비 2060만 톤 증가하는 것이다.
<산업 업종별 온실가스 감축량>
업종별로 보면, 철강업종의 온실가스 배출 순증가량이 2만5900만 톤으로 가장 크고, 기타(1190만 톤), 기계(860만 톤), 반도체(700만 톤)의 순으로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할 계획이다. 줄어드는 업종도 있다. 농림어업이 2200만 톤으로 가장 크게 줄고, 전기전자(-1740만 톤), 시멘트(-860만 톤)의 순이다.
정부의 발표와는 사뭇 다른 이런 결과는 '부문별 BAU의 마술'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업종별 BAU에 따라 실제 감축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감축하는 것과 같은 착시 효과가 생긴다.
정부 발표에 대한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산업계의 입장은 놀라운 만큼 변함이 없다. 2020년 BAU 대비 산업 부문 감축률이 18.5%에서 2030년 11.7%로 줄었고, 실제로는 감축이 아닌 증가 로드맵임에도 불구하고 감당하기 힘들고 감축 여력이 없다는 입장이다.
새로운 논리가 하나 생기긴 했다. 바로 트럼프다.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기후변화체제와 파리협정이 불안해진 상황에서 한국이 먼저 나설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전경련은 여러모로 해체되어야 할 것 같다.
기후변화협약과 트럼프, 그리고 박근혜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열린 제22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2)에서도 단연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 소식이 최대 이슈이자 충격이었다. 미국 시민들이 선택한 트럼프 정부가 전 지구적인 기후변화협약을 위협하고, 자국 내에서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는 영국과 프랑스의 극우 정당들도 기후 변화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면서 앞으로 유엔의 협정 등 국제적인 프로젝트에 제동을 걸 것으로 보인다.
부정적인 전망에 앞선 현실 역시 녹록치만은 않았다. 유엔환경계획(UNEP)이 각 국가가 제출한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합산해 분석한 결과, 지구의 온도는 2℃를 훨씬 초과해 3℃ 내외에 이를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의 등장은 목표 달성을 더욱 어렵게 할 것이다. 또한 1.5도라는 목표는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
그리고 온실가스 감축관련 정책에는 '다행히'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보이던 박근혜 정부가 '불충분한'한 온실가스 감축목표와 산업부문의 온실가스 '증가' 로드맵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차기 정부에 선사했다.
박근혜 이후의 한국 정부가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을 때 이를 둘러싼 수많은 혼란이 예상된다. 계속되는 지진에도 불구하고 재가동이 승인된 월성 핵발전소가 갑자기 떠오르는 건 왜일까. 우주의 기운 탓일지도 모른다.
때마침 영화 <판도라>가 개봉되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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