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배치를 둘러싼 갈등이 심각합니다. 국내 정치적으로는 중앙 정부의 일방 독주로 성주 군민이 큰 괴로움을 겪는 형국인데, 국제 정치적으로도 큰 충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중국과 한국의 갈등, 중국과 미국의 갈등이 두드러지기 시작했습니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중국은 우리의 가장 가까운 이웃이었습니다. 일본과 껄끄러운 외교 관계가 계속될 때 두 나라는 공동의 정서로 연대했습니다. 또 중국은 우리의 최대 교역 파트너로 부상했고, 우리 기업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이런 관계가 사드 정국 이후 급속도로 얼어붙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 중국을 잘 알고 있었을까요? 지금이라도 다시 중국을 좀 더 잘 알아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두 나라의 바람직한 미래상을 그리고, 사드로 나빠진 두 나라 사이를 다시 정상화하려면 우선 중국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이만큼 가까운 중국>(이욱연 지음, 창비 펴냄)은 중국에 관한 입문서입니다. 창비가 내놓은 '이만큼 가까운' 시리즈의 하나인 이 책은 중국 전문가 이욱연 서강대학교 중국문화학과 교수가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쓴 책입니다.
<프레시안>과 <시사통>이 공동 진행하는 '독서통'은 22일 이욱연 교수와 함께 사드 정국으로 위기에 빠진 한중 관계의 바람직한 미래상을 이야기하고, 중국에 관한 오해를 푸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 <시사통> 스튜디오에서 열린 이야기를 정리했습니다.
우리는 '과거의 중국'만 안다
김종배 : 독서통 시간입니다. 이번 주는 어떤 책이죠?
강양구 : <이만큼 가까운 중국>입니다. 요즘 상황을 염두하면 책 제목이 의미심장해요. 1992년 한중 수교 이후에 중국이 정말로 '이만큼' 가까워졌는데, 요새 사드 갈등으로 중국과 멀어지는 것 같습니다. 한중 관계가 위태로운 상황에서 이 책이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할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관심이 갔어요.
일단 책의 저자가 신뢰가 갔어요. 우리나라에서 중국을 가장 잘 아는 분 가운데 한 분입니다. 서강대학교 중국문화학과 이욱연 교수입니다.
김종배 : 이욱연 교수님, 어서 오십시오.
이욱연 : 안녕하세요.
김종배 : 책이 쉽고 재미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한 권으로 읽는 중국이라고 할 수 있는 책인데…. 이 책을 읽고서 중국에 대해서 몰랐던 사실도 많이 알았습니다.
강양구 : 중국에 관한 책이 많이 있죠. 그런데 대개는 한쪽 분야에 편향되어 있어요. 중국 사상, 중국 역사, 중국 경제, 한중 관계, 중국 관광 등…. 그런데 이 책은 그 모든 걸 총망라해서 무척이나 유익해요.
그런데 이렇게 눈높이를 낮춰서 책을 펴낸 이유가 있으세요? 성인 독자뿐만 아니라 대학생이나 고등학생이 읽기에도 전혀 문제가 안 되도록 쉽게 쓰셨어요.
이욱연 : 기성세대가 가지고 있는 중국관(中國觀)이 여전히 부정적입니다. 이 때문인지 중국과 중국인에 관한 여러 오해와 편견이 팽배해요. 그런데 그것이 그대로 젊은 세대에게도 전달돼요. 미래의 한중 관계를 이끌어야 할 젊은 세대가 부정적인 중국관을 극복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습니다.
김종배 : 사실 우리가 어느 나라보다 잘 아는 나라가 중국 아닙니까?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가깝잖아요?
이욱연 : 네, 맞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중국 사람보다 공자의 <논어>를 더 잘 알아요. 요즘에야 중국에서도 고전 열풍이 불지만, 한동안은 공자를 비롯한 전통 사상을 멀리했거든요. <삼국지>도 마찬가지죠. 중국 사람보다 우리나라 사람이 <삼국지>의 등장인물이나 이야기를 잘 알 거예요.
그런데 딱 여기까지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중국은 과거의 중국입니다. 현대로 넘어와도 냉전 시기 우리와 대립했던 '중공' 정도만 여전히 머릿속에 그리고 있어요. 우리는 중국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현대 중국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투성이죠. 여기에 일제 강점기에 형성된 중국에 관한 부정적인 인식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일제가 유포한 '더러운 중국' 이미지
김종배 : 일제 감정기라고요? 중국인은 더럽다, 잇속만 밝힌다, 이런 거 말씀하시는 거죠?
강양구 : 책에도 나오는 표현입니다만, '짱X라', '되X' 등으로 중국인을 부르는 것도요?
이욱연 : 그렇습니다. 좀 더 연원을 따져보면 한국에서 중국인의 이미지가 나빠지기 시작한 것은 청나라 때부터입니다. 당시 조선은 오랫동안 명나라를 인정하고, 청나라를 인정하지 않았죠. 조선인에게 청나라는 '오랑캐의 나라'였어요. 이때부터 우리가 더 문명인이라는 인식 하에 중국인을 비하하기 시작했죠.
이런 중국 비하가 일제 강점기에 더 심해집니다. 일본 제국주의가 중국을 비하하는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유포했죠. 당시 일본 군인의 정훈 교육 교재를 보면 잘 알 수 있어요. 중국인은 뒤떨어졌다, 문명의 낙오자다, 더럽고 게으르다, 이런 식의 표현이 나옵니다. 한국인은 분열하기 바쁘다고 묘사되고요.
강양구 : 이런 교육을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당시 한국인(조선인)이 일본인은 일등 민족, 한국인은 이등 민족, 그리고 중국인은 가장 열등한 민족으로 인식했군요.
이욱연 : 박완서 선생님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보면, 중일 전쟁 즈음 선생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때 동네 어린이 사이에서 가장 심한 욕이 '짱꼴라'라고 놀리는 것이었어요. 요새도 중국산 제품 하면 '짝퉁'을 떠올리는 분이 많죠? 일본에 의해서 형성된 부정적 중국관이 한국 전쟁, 또 냉전을 거치면서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는 겁니다.
강양구 : 대부분 한국인이 중국인을 조금 낮춰 보는 경향이 있어요.
김종배 : 우리의 일인당 국민소득이 높다, 우리가 더 잘 산다 이거죠.
이욱연 : 역사적으로 보면 우리가 중국을 싫어하거나, 두려워할 이유가 분명히 있습니다. 조공을 바쳤고, 여러 차례 중국 왕조의 침략을 받았으니까요. 중국의 책임도 분명히 있습니다. 중국인 역시 '화이관(華夷觀, 중화사상)'을 바탕으로 한국을 낮춰 봅니다. 사실 중국은 단 한 번도 한국을 대등한 국가로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그래서 지금 우리가 중국을 깔봅니다만, 중국 역시 우리를 소국이라고 경멸하는 시각이 있습니다. 이처럼 서로 인정하지 않으니, 두 나라 간의 골이 쉽게 메워지지 않겠죠.
중국 젊은이의 팽창하는 민족주의
김종배 : 이 책에서 제가 주의 깊게 본 부분이 1980년대 이후 태어난 중국 젊은 세대의 한국관이었어요. 상당히 부정적이라고 언급하셨습니다.
이욱연 : 네. 이 세대를 중국어로 '바링허우(80後, 포스트 80세대)'라고 합니다. 서구에서는 이 세대를 '영 차이니즈', '뉴 차이니즈'라고 부르지요. 한자녀 정책에 따라서 태어난 세대입니다. 집안의 관심을 독점하면서 자랐기 때문에 '소황제'라고 불리기도 하고요. 특히 이 세대는 개혁 개방 이후에 자라난 현대 중국의 첫 시장 경제 세대입니다.
이들은 상당히 민족주의적 시각을 가졌습니다. 자국이 경제적으로 비약할 때 자랐잖아요? 그래서 중국 역사, 중국 문화에 관한 자부심이 아주 강합니다. 사실 이전 세대는 미국에 가면 심리적으로 위축되었어요. 그런데 이 세대는 그런 게 없습니다. 이들이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반서구, 또 반한 시위를 주도했죠.
이 세대를 이해하기 위해 중요하게 생각해 볼 지점이 있어요. 예전 세대는 나라에서 일자리를 정해주기는 했지만, 어쨌든 사회에 진출하면 취업도 하고, 집도 주고, 의료도 지원했어요. 은퇴 후에도 걱정이 없었죠. 그런데 이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회주의의 사회 보장 제도가 무너진 상황에서 사회에 진출했죠.
강양구 : 풍요롭게 자랐지만, 사회에 나가서는 경쟁에 노출된 첫 세대군요.
이욱연 : 사회에 불만이 많습니다. 요새 중국도 취업이 어렵습니다. 집을 사려고 해도 쉽지 않죠. 베이징이나 상하이 일부 지역은 서울보다 집값이 비싸요. 의료 혜택도 예전만 못하죠.
제가 중국에서 유학하던 시절(1992~94년) 제 지도 교수는 집값, 수도료, 전기료를 포함해 우리 돈으로 환산해서 1300원 정도를 냈습니다. 노후 걱정도 없었습니다. 지금은 어림도 없죠. 결국 바링허우 세대의 사회적, 경제적 불만이 민족주의 감정과 연결되면서 인터넷에서 폭발한 겁니다.
반한 감정 부추기는 반중 감정?
김종배 : 이 와중에 사드가 두 나라 최대 현안으로 불거졌습니다. 최근 중국 인터넷상에서 반한 여론은 심각한 수준이죠?
이욱연 : 심각합니다. 제가 중국의 카카오톡 비슷한 위챗 회원입니다. 젊은 세대가 모인 단톡방, 지식인이 모인 단톡방 등에서 매일 여론을 확인합니다. 그런데 연령과 세대를 가리지 않고, 반한 정서가 예전보다 강합니다. 제가 대화에 끼기가 어려울 정도로 반한 감정이 격앙돼 있어요.
김종배 : 그런데 궁금한 대목이 있습니다. 중국 젊은 세대는 바로 한류 세대이기도 하잖아요. 한국에 친밀함을 더 느낄 것도 같은데요?
이욱연 : 그렇습니다. 특히 중국 여성이 한류를 적극적으로 소비했죠. 알다시피, 한동안은 두 나라 교류가 매우 활발했습니다. 한국의 많은 대학이 중국 학생을 적극적으로 뽑았죠. 한국의 문화를 동경하는 중국의 젊은이가 많았고, 그들이 한국에 오려고 줄을 섰죠.
강양구 : 하지만 그들이 한국에 온 후, 지한파가 아니라 반한파가 되어서 고국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았다면서요?
이욱연 : 맞습니다. 안타깝게도 서울이 '반한 양성소'가 되어 버렸어요. 호감을 가지고 한국에 온 중국 학생이 한국에서 차별을 경험하고 환상이 깨진 거죠. 얼마 전, 청주의 한 식당에서 중국 학생 출입을 금지해서 논란이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화제가 되지 않았지만, 중국 인터넷상에서 큰 논란이 됐습니다.
우리의 비하 언어에 중국인이 모욕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얼마 전 한 정치인이 TV 토론회에 나와 아주 험한 말을 했습니다. (송영선 전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달 16일 한 종합 편성 채널의 정치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해 "저는 정말 열 받는 게, 20년 전에 11억 거X떼들이 어디 이렇게 겁도 없이, 우리 한국에..."라고 말해 큰 논란을 빚었다.) 이 사건이 중국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이 와중에 사드까지 터졌죠.
김종배 : 어찌 보면 한류를 통해 한국을 친밀하게 생각한 세대가 사드 국면에서 반한 감정의 중심이 되었군요.
이욱연 : 그렇습니다.
중국인은 사드 문제를 한중 문제로 보지 않습니다. 중국과 미국 간의 문제로 보죠. 중국인은 기본적으로 미국을 싫어합니다. 미국이 중국의 부상을 저지하기 위해 봉쇄선을 친다고 보죠. 결국, 한국이 사드 배치를 결정해 미국의 봉쇄선에 들어갔다고 이해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대북 조치"라고 말한들, 중국인을 설득하지 못합니다.
제가 몇 달 전 중국에 가서 깜짝 놀랐습니다. 베이징 대학교와 칭화 대학교 사이에 특히 중국의 지식인이 애용하는 서점이 있습니다. 그곳의 베스트셀러 리스트를 보니, 4위가 박근혜 대통령의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위즈덤하우스 펴냄)이고, 8위가 <박근혜 일기>(박근혜연구회 엮음, 동동 펴냄)입니다.
강양구 : 중국의 지식인이 박근혜 대통령의 철학을 이해하려고 한 거군요.
이욱연 : 그렇죠.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에 관한 호감과 관심이 사드로 인해 사라진 겁니다.
중국에 한국은 '미국 식민지'
김종배 : 기왕에 얘기가 나왔으니 물어보죠. 현재 박근혜 대통령에 관한 중국의 정서는 어떻습니까?
이욱연 : 배신감이죠. 험한 말이 많이 나옵니다. '결국 한국은 미국의 식민지'라는 정도의 인식이라고나 할까요. 우리는 서울 한복판(용산)에 미군이 주둔한다는 사실을 민감하게 생각하지 않죠. 그런데 중국인을 비롯한 외국인은 그런 사실을 심각하게 의식합니다. 수도의 한복판에 미군의 기지가 있는 거잖아요.
중국인은 한국 전쟁의 상대가 대한민국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미국이라고 생각하죠.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사드 사태를 겪으면서, 중국인은 한국을 정상적인 주권 국가가 아니라, 미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국가로 다시 한 번 인식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중국 고위 정책자가 만난 회의에서 "한국 정책 입안자의 99%는 친미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니, 더 할 말이 없죠.
강양구 : 걱정되네요. 우리나라가 중국에 의존하는 현실을 염두에 두면….
이욱연 : 물론 저는 중국인의 저런 인식이 꼭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 현대사에 문제가 있다손 치더라도, 중국이 이를 전면 부정하고 한국과 거리를 두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한국이 친미 국가라고 하더라도, 일단 이 전제 위에서 한국과 만나고 두 나라 문제를 개선해야죠. 한국의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한국과 중국의 만남은 불가능합니다.
문제는 우리도 중국과 관계를 좋은 쪽으로 풀어가려는 자세가 아니라는 거예요. 사드가 단적인 예죠. 아까도 언급했지만, 우리는 대북 관계만 보고서 사드를 결정할 수 없어요. 중국의 프레임과 우리의 프레임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한국이 중국을 완전히 무시하고 사드 문제에 접근하면 한중 관계는 더 꼬일 겁니다.
김종배 : 사드 문제를 놓고서 한국에서는 '내정 문제에 왜 중국을 의식하느냐'는 시각도 있잖아요?
이욱연 :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의 주류적 인식이죠. 한 신문 칼럼을 보니 '내 집(한국) 앞 도둑을 잡기 위해 CCTV를 설치했는데, 왜 옆집(중국) 사람이 뭐라 하느냐'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 CCTV가 옆집(중국)에 드나드는 사람도 보거든요. 더구나 그 정보를 옆집(중국)을 호시탐탐 노리는 앞집(미국)에게 제공한다면? 그 때도 그런 인식이 가능할까요?
김종배 : 사드 배치 찬성 여론이 강합니다. 옳다, 그르다를 떠나서 이것이 현실인데요. 그렇다면, 한국의 대중 감정과 중국의 대한 감정이 만나서 스파크를 일으킬 수도 있겠군요?
이욱연 : 걱정입니다. 사드 문제를 놓고서 저 같은 사람이 입을 열기 쉽지 않은 상황이 되었어요. 이제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하자는 말을 하면, '친중 사대주의자' 프레임을 씌웁니다. '종북' 프레임에 이제 '사대주의자' 프레임이 덧붙여졌죠. 여기서 국내 적잖은 언론이 '중국이냐 미국이냐' 선택하라고 강요합니다.
강양구 : 그런 선택을 강요하는 것 자체를 문제라고 보시죠?
연암 박지원의 실사구시 본받을 때
이욱연 : <열하일기>를 쓴 박지원의 지혜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실리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명분에 얽혀 살 수 없습니다.
박지원이 중국에 갈 때가 정조 시대입니다. 청나라가 들어선 지 130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조선의 지식인은 여전히 명나라 연호를 썼어요. <열하일기> 서문에 박지원이 차마 명나라 연호를 못 씁니다. 청나라에 들키면 큰일 나니까요. 당시 조선 지식인 기준으로 보면, 박지원은 이단아였던 셈이죠.
왜 당시까지도 조선의 지식인이 숭명배청(崇明排淸) 했을까요?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였죠. 조선의 지배 계층이 패러다임 전환을 용납하지 않았던 거예요. 저는 미국과 중국과의 관계도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는 미국에 의존하는 지배 블록이 있습니다. 더구나 미국은 명나라처럼 망한 것도 아니고, 여전히 힘이 세죠.
우리가 이 둘 가운데 하나를 맹목적으로 선택해서는 안 됩니다. 한미 동맹만큼 한중 관계도 중요합니다. 당분간 우리는 박지원이 연행(燕行)할 때 내세운 "나는 이용후생(利用厚生)의 시각으로 볼 것"이라는 말을 되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이용후생,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신이 G2 시대 우리의 길입니다.
김종배 :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한미 동맹은 생존의 문제인 반면, 한중 관계는 경제 문제"라고 얘기하면서, 한미 관계가 우선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답답했습니다. 왜냐하면, 이전에는 진보든 보수든 최소한 우리나라가 생존하려면 균형 외교가 필요하다는 인식에는 합의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정치권부터 이렇게 미국이냐, 중국이냐 선택을 강요합니다.
이욱연 : 지금 친미냐, 친중이냐, 이런 식의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분위기는 잘못되었어요. 이 지점에서 저는 왜 우리나라의 역할을 스스로 작게 보는지 모르겠어요. 중국에 우리나라는 굉장히 중요한 상대입니다. 중국 근처에 미군이 가장 가까이 들어온 것이 한국이에요.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무기 체계를 이렇게 중국에 가깝게 가져갈 수 있는 곳은 한국뿐이에요.
이 사이에서 우리가 열쇠를 쥘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저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는 생각하지 않아요. 답답한 일입니다.
김종배 : 사드 논란 직후 중국이 실질적인 제제(制裁)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논란이 있습니다.
강양구 : 한류 콘텐츠 중에는 눈에 드러나는 피해가 나오기 시작했죠.
이욱연 : 한류 제재는 이미 시작됐습니다. 한류 유행에 가장 기여한 곳이 바로 중국 정부입니다. 중국 공영 TV가 한국 드라마를 틀면서 중국 내 한류가 시작했어요. 이건 뒤집어 말하면, 중국 정부의 통제가 쉽다는 겁니다. 한순간에 한류가 가라앉을 수 있습니다. 물론 중국 사람들이 물밑에서 한류를 계속 접하기는 하겠지만, 그 영향력이 지금 같지는 않겠죠.
제가 더 우려하는 건 중국인의 한국에 관한 적대감입니다. 이를 풀지 못하면, 장기적으로 큰 손해가 될 겁니다.
거인의 어깨에 올라탈 방법 찾아야 할 때
김종배 : 이 책을 보면서 이른바 중국의 패권주의가 정치, 군사적으로 나타날 것이냐가 궁금했습니다. 이건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 아닙니까?
강양구 : 우리나라에 중국 비하, 중국 이용뿐만 아니라 중국 위협 주장도 많습니다.
이욱연 : 중국은 끊임없이 '우리는 특정 국가가 세계를 자신의 논리에 따라 재편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 그건 중국의 외교 논리가 아니다'라고 주장합니다. 또 일각에서는 "예전 중국의 천하 질서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질서와 달랐다"는 말도 하고요. 그런데 덩치 큰 거인 옆의 작은 사람은 겁날 수밖에 없습니다.
중국이 아무리 "우리는 미국과 다르다"고 한들, 그 힘이 세계를 평화로 인도하리라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게 자본의 힘입니다. 지금의 국제 정치는 자본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자본이 확장하려는 속성이 중국의 패권 추구로 이어지지 않으리라고 누가 보장하겠습니까?
미국의 패권 뒤에 미국 자본이 있습니다. 사드 뒤에는 록히드 마틴이 있죠. 이처럼 중국 정부의 힘에 자본 논리가 얽히면 위협이 될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김종배 : 중국과 미국의 틈바구니에서 우리의 생존을 어떻게 보장할 것이냐는 문제는 아주 고차 방정식일 수밖에 없습니다.
강양구 : 책에 '거인과 함께 사는 법'을 결론처럼 정리해주셨어요.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욱연 : 비즈니스하는 분들이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가 거인이 될 순 없지만, 거인의 어깨에 올라가면 된다"고요.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거인이 된 중국과 살아야 합니다. 사실 거인이 옆에 있다고 해도 거인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 잘 안다면 두려울 것은 없습니다. 거인을 친구로 만들면 우리가 덕도 볼 수 있죠.
우리는 세계에서 중국과 가장 친하게 지낼 수 있는 나라입니다. 역사적으로 가깝습니다. 지리적으로 가깝습니다. 궁금하면 직접 가서 보면 되죠. (웃음) 중국을 무턱대로 멀리하지 말고, 겁내지도 말고, 미래 지향적인 눈으로 새롭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G2 시대에 우리는 한국과 중국 사이에 미국을 넣고, 한국과 미국 사이에 중국을 넣어 생각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바람직한 이미지 홍보에 나선 중국
김종배 : 서평단 여러분도 궁금한 게 많을 것 같습니다.
서평단 : 공자학원(중국 교육부가 세계 각국의 고등 교육 기관과 연계해 세운 비영리 교육 기관)에 관해 여쭙고 싶습니다. 중국 문화 전파의 선봉장이 공자인데, 사실 공자는 문화 혁명기 타도의 대상이었잖습니까? 지금 중국에서 공자의 위상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아울러 공자학원을 세우는 중국 정부의 의도는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이욱연 : 공자학원이 한국에도 매우 많습니다. 공자학원이 세계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곳이 한국입니다.
중국이 공자학원을 세운 이유부터 알아보죠. '중국' 하면 바로 떠오르는 이미지가 뭘까요? 짝퉁 상품이나 더러운 거리, 시끄러운 사람들 등 온갖 부정적 기억뿐입니다. 중국이 세계로 나가는 데 가장 큰 장애가 이와 같은 부정적 이미지입니다. 그러니까 중국은 소프트 파워가 취약하죠.
그래서 중국 정부가 가장 신경 쓰는 게 소프트 파워의 강화입니다. 공자학원은 중국 문화를 세계에 선전하고, 중국의 이미지를 바꿔 외교 수단으로 삼자는 취지로 만들어졌습니다.
강양구 : 중국을 닮고 싶은 나라로 만들고자 하는 거군요?
이욱연 : 그렇죠. 그렇다면, 왜 하필 공자일까요? 근대 이후 중국에선 타도의 대상이었는데 말이죠.
공자 사상에는 긍정적인 점도 많습니다만, 그 안의 본질적인 요소는 바로 또렷한 서열 구조입니다. 그래서 권위주의적인 정권에서 통치를 합리화하는 데도 공자 사상이 많이 동원되었죠. 물론 지금 중국 정부는 공자 사상 자체가 아니라, 공자로 상징되는 중국 전통 문화 자체를 자랑하고자 하는 것이지만요.
김종배 :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저우룬파(周潤發) 주연의 영화 <공자>가 탄생한 배경도 거기에 있군요?
이욱연 : 그렇습니다. 공자 살리기가 단순히 외국을 향한 게 아닙니다. 근래 중국 민간 차원에서도 전통 문화에 관한 관심이 커졌습니다. 이제는 단순히 정부의 이데올로기 정책에 민간이 동원된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중국인이 오랜 기간 서구를 지향했는데, 이제는 자기 문화에 관한 자신감이 커졌습니다. '차이니즈 패러다임', 중국 기준으로 세상을 보자는 것이죠.
서평단 : 중국 여행을 가면 공산 국가라는 느낌이 거의 없습니다. 그곳이 공산 국가라는 사실을 어디서 알 수 있을까요?
이욱연 : 흔히 중국을 붉은 자본주의 국가, 좌회전 깜빡이를 켰지만 우회전하는 국가라는 식으로 이야기하죠. 실제로 중국은 자본주의 국가입니다. 공산 혁명의 흔적은 어디 있느냐? 공산당 일당 지배 체제로 비롯된 강력한 정부만 남았습니다.
아래로 내려가면 여전히 사회주의적 요소가 남았습니다. 아직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 사이의 임금 격차가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또 남녀평등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습니다. 저는 '인민을 위해서 복무하라'는 마오쩌둥(毛澤東)의 정신이 남아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요. 특정한 이해관계를 가진 계급이나 집단이 아니라, 인민 전체를 위해서 정부가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죠.
저는 이것이야말로 미국과 다른 중국 정치 체제의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과 같은 서구 민주주의는 나에게 투표한(할) 사람을 위해서 정치를 하잖아요?
강양구 : 그래서 일부 중국 지식인은 서양 민주주의 대안으로 중국식 지배 체제를 내세우기도 하죠.
이욱연 : 그렇습니다. 중국 정부 체제를 두고 비판할 부분이 많지만, 꼭 워싱턴 방식만이 선이냐는 의문을 제기해 볼 필요는 있습니다.
분쟁의 불씨 안은 대륙
김종배 : 자본주의가 성숙하면 민주화 투쟁이 따라간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중국이 민주화의 격랑에 휩쓸릴 가능성은 없습니까? 특히 중국은 다민족 국가잖아요? 분리 독립 문제가 대두할 가능성은 없나요?
이욱연 : 소수 민족 갈등은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변방 지역이 소수 민족 지구인데 경제적으로 매우 낙후했습니다. 경제적 모순과 민족 모순이 결합해 갈등을 키울 소지가 크죠.
다만 서구식 민주화를 요구하는 투쟁은 당분간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저는 봅니다. 계층 갈등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후진타오-시진핑 체제를 지나며 중국이 사회 갈등 해소에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무엇보다, 민주주의에 관한 중국인의 생각이 우리와 조금 다릅니다. 언론과 사상의 자유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당연히 있습니만.
강양구 : 서양 민주주의에 관한 열망은 크지 않다는 거군요?
이욱연 : 그렇습니다. 그리고 중국 공산당 시스템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치 않아요. 일당 독재 국가니까 시진핑 주석 같은 지도자를 마음대로 뽑으리라고 생각하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아요. 나름의 민주적 절차를 따라서 권력이 이양됩니다. 또 65세 이상이 되면 상무위원을 못하기 때문에 영구 집권도 불가능합니다. 경쟁하는 분파의 상호 견제도 있고요.
김종배 : 경제적 제도 개선 요구는 어떻습니까? 요즘 중국에서 노동자 시위가 늘어난다는 뉴스가 계속 나옵니다. 또 농촌의 경우 공동 농장이 사유화하면서 반발이 커진다는 이야기도 있고요.
이욱연 : 경제적 갈등이 커질 가능성은 큽니다. 무엇보다 외국 자본이 소유한 공장의 노동자 권익 문제가 여러 갈등을 낳을 수 있습니다. 중국 정부가 부쩍 노동권을 강조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고요. 도시화 과정에서 일어나는 강제 철거 문제도 중요한 사회 갈등 요인이죠.
김종배 : 이욱연 교수를 모시고 <이만큼 가까운 중국>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사실 책 내용보다 현안에 관한 이야기를 더 많이 쏟아내셨네요. (웃음)
강양구 : 현대 중국의 A부터 Z까지 가장 쉽고 요령 있게 설명하는 책이 무엇이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저는 이 책을 권하고 싶습니다. 중국의 역사, 정치, 사회, 문화, 한중 관계는 물론이고 중국에 가서 실패하지 않고 입에 맞는 음식을 주문하는 법까지 알려주는 유용한 책입니다. 그런데 이 책의 심화 버전도 준비하신다고요?
이욱연 : 네. 중국을 조금 더 알고 싶은 분을 대상으로 중국과 우리의 관계를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 좀더 깊이 고민하는 책을 준비 중입니다.
강양구 : 그 책도 기대하겠습니다.
김종배 : 이욱연 교수와 인사 나누겠습니다.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욱연 : 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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