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THAAD)의 한반도 배치 결정 이후 동 이슈는 국내적 정쟁화(政爭化)와 중국과 북한의 거센 반발, 그리고 해당 지역 주민의 반대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우리 사회가 '정치화, 양극화'되어 있기 때문에 특정 주요 이슈가 사회적 분열을 야기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특히, 남북한 관계, 미국/주한미군, 그리고 중국을 아우르는 이슈는 휘발성이 더욱 강하다.
사드 이슈의 다양한 측면 중에,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부분은 한중 간의 군사 및 안보 협력이다. 사드는 기본적으로 군사 문제이고, 동 이슈는 이 달 24일이면 수교 관계 24주년을 맞이하는 한중 관계의 본질을 다시 조망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미국과의 동맹과 중국과의 협력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가 한국의 최대 안보 도전임을 강조해왔는데, 사드 이슈는 분명 여기에 속한다.
한중 군사·안보 협력의 목표와 현실
1992년 수교 이후 한국의 대중국 목표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하나는 '중국과의 전면적인 쌍무 관계 증진'이고, 다른 하나는 '한반도 평화 정착 및 평화 통일 기반의 조성'이다. 이를 위한 군사·안보적 목표는 1) 한반도 평화 정착 및 평화 통일에 기여할 수 있는 중국 및 중국군(PLA)의 역할 유도, 2) 군사적 신뢰 구축(MCBM)을 통한 한중 관계의 증진 및 균형 발전, 그리고 3) 한반도 및 역내 군사·안보 이슈에 대한 공감대 확보로 대별할 수 있다.
다만, 이와 같은 목표는 여타 국가 목표와의 균형과 상황의 변화에 따라 검토 및 조정되어야 하는데 여기에는 1) 한중 간 다른 영역·분야, 2) 북한 요인, 3) 중국군 및 중국 체제의 특성이 포함된다. 군사·안보 관계는 한중 간 경제·교역, 사회·문화 및 정치·외교의 발전에 비해 진전 속도가 더디다. 특히 제도화 수준이 낮아 최근 실질적인 군사 신뢰 구축 방안(예를 들면, 핫라인, 수색·구조 훈련 등)이 합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내실화된 단계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금번 사드 사태도 이와 같이 상징적이고 모호한 '이해'의 지속 하에서 한중 양국의 상이한 이익이 첨예하게 충돌한 것이다. 최근까지 들려오던 "(한중 관계가) 더 이상 좋을 수는 없다"던가 "시진핑 주석과 박근혜 대통령의 우의와 협력을 바탕으로…"와 같은 비(非)현실적 상황 평가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군사·안보 분야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합의 구축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북한 요인도 한중 군사·안보 관계를 제한하고 있는데 이에는 한반도의 '안정'에 대한 중국의 전략적 목표, 북한에 대한 중국의 지정학적 고려, 중국과 북한 군부 간의 유대 및 '전통'이 작용하고 있다. 적어도 한국으로서는 한반도 평화 통일에 대한 한국의 입장 전달, 한반도 유사(즉, 북한 유사)시에 대한 최소한의 '안보협의체' 구성, 통일 한국과 중국 간의 상호 이익 등에 대해 지속적으로 강조할 필요가 있다.
이외에도 중국군과 중국 체제의 특성이 양국 군사·안보 관계에 영향을 주고 있는데, 중국군의 '내향적·폐쇄적' 성향, 순환식 군사 외교 방식, 소수에 집중된 군 계통 운영, 예산 제약 등이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어, 중국군은 최고위급 장성의 경우도 1년에 외국 방문 횟수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예산 절감 차원에서 외국 방문시 한 국가보다는 다수의 국가를 순회 방문하고 있다. 또한, 소수의 군 외사 계통은 타국으로 하여금 군사 외교의 대상을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 환언하면, 중국군의 '고량주 외교'는 오랜 전통의 산물이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문제 해결(problem-solving)'을 지향하는 자세이다.
미국과 중국에 대한 '전략적 차등화'
우리의 거시적·전략적 과제는 미국과의 동맹과 중국과의 협력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이다. 특히, 동아시아에서의 중국의 부상과 미-중-일 간의 관계 변화는 매우 다양하고 복잡한 과제로 남아 있다. 군사·안보 차원에서 1) 미국의 '지역 안정자' 역할, 2) 북한의 위협·도발에 대한 미국의 억지력과 억지 실패시 전쟁 수행력, 3) 한미 동맹의 이완시 전력 소요와 예산 부담, 4) 중국의 부상과 이로 인한 역내 불안정성 증가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간 학계에서는 한미 동맹 강화가 중국의 입장에서 '한국의 가치'를 높여 줄 것인가, 아니면 미국의 '대중 봉쇄'의 일환으로 여겨질 것인가를 두고 논쟁이 진행되어 왔다. 과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직전 중국이 우선적으로 제안한 점, 2007년 4월 원자바오(溫家寶) 총리 방한시 군사 핫라인 제안, 그리고 2008년 초 한미 동맹의 강화 시점에서 중국이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제안한 점 등은 중국이 한미 동맹 관계를 고려하여 한국을 중시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단,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 미국과 중국의 상대적 국력 격차가 감소하고 있고, 특히 양국 간의 경쟁·갈등이 구조화되면서 한반도에 대한 상이한 이익이 나타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즉, 미-중 양국이 모두 한반도 이슈 해결에 '우호적 중재자' 혹은 협력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가정은 논리적으로나 선험적으로나 문제가 있다. 그러므로 단기 및 중기적으로 한국의 대미·대중 정책을 포함한 대중 정책은 '전략적 차등화'가 불가피하다.
미-중 양국 간의 경쟁·갈등 구조로 인해 미국은 한국의 대중국 접근과 한중 관계의 변화 추이를 주목하고 있다. 현재 사드 논쟁뿐만 아니라 대량 살상 무기 확산 방지 구상(PSI), 동아시아 해양 안보, '전략적 유연성' 등과 같은 사안은 한국이 미-중 양국의 입장을 고려하여 추진해야 하는 민감한 이슈이다. 중국도 한반도 통일시 통일 한국과의 새로운 관계 정립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동 과정에서 미국과 중국의 이익이 교차하는 이슈는 적지 않다.
역으로,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협력적으로 변화하는 경우, 일반적으로 한반도의 안정과 현안 해결에 상당히 유리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한국의 대중국, 대미국 전략적 교섭 능력이 열악한 상태에서 강대국 간의 협력·공모는 한국의 입지를 축소시킬 수 있다는 점에도 유의해야 한다. 우리로서는 중국과의 안보 논의 시에 단기적으로 한반도 사안에 중점을 두고, 한반도 유사시 및 통일 과정 전개시 중국의 협조 혹은 묵과를 확보하기 위해 장기적·조직적·지속적으로 평시 신뢰 구축 노력을 전개해야 한다. 중국의 한반도에서의 역할과 다층적·전략적 대외 정책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한국의 중장기 대외 전략의 수립시 반드시 고려되어야 하는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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