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 등록 마감과 함께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오는 얘기가 야권 연대입니다. 투표용지 인쇄에 들어가는 4월 4일 이전에 후보 단일화를 해야만 효과가 있다며, '다야(多野)' 상황을 스포츠 경기 생중계하듯 전하고 있습니다. 새누리당 후보가 '다야' 구도의 반사이익을 챙기고 있다는 소식도 함께 곁들여서요.
야권 연대론엔 심각한 우려가 깔린 듯합니다. 이렇게 가다간 야권이 공멸한다는 심각한 우려요. 헌데 정말 그럴까요? 울면서 즐기는 경우도 있는 것 아닐까요? 오히려 심각히 우려해야 하는 건 바로 이것, 울면서 즐기는 '숨은 그림' 아닐까요?
이 지적은 아주 단순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야권 연대는 선거 승리 전망이 높을수록 탄력을 받는 법이고, 여권 심판 의지가 높을수록 필요가 증가하는 법입니다. 야권 연대는 낙관과 분노를 자양분 삼아 자기 증식하는 정치 생물 같은 것입니다.
헌데 지금 유포되는 야권 연대론, 더 정확히 말하면 야권 연대 무망론(無望論)은 낙관과 분노의 자양분을 말려버립니다. 유권자로 하여금 선거 승리 전망을 내려놓게 만들고, 분노의 대상을 야권으로 분산시켜버립니다. 야권 연대 무망론이 야권 연대 가능성을 갉아먹는 것입니다.
왜 야권 진영이 아닌 곳에서, 야권에 각을 세워온 세력이 야권 연대에 더 큰 관심을 보이고 더 많은 얘기를 쏟아내는지 그 이유를 헤아릴 만합니다. 야권 연대가 성사될까 봐 경계하는 이유 못잖게 염증과 낙담의 정서를 야권 지지층에 유포하기 위함일 겁니다. 설령 야권 연대가 성사된다 해도 결과의 감동보다 과정의 짜증을 더욱 키움으로써 그 효과를 반감시키기 위함일 겁니다.
물론 순수한 의도에서 야권 연대론을 펴는 경우가 있습니다. 야권 진영 안에서 나오는 기대인데요. 야권 연대론이 압박 효과를 낳지 않겠느냐는 기대입니다. 지지층의 분노를 반복해서 보여주면 야당들이, 야당 후보들이 무서워서라도 결국엔 손 맞잡지 않겠느냐는 기대입니다.
하지만 이런 기대는 비현실적입니다. 연대의 대의는 정치적 등가교환의 토대 위에서 형성되고, 정치적 등가교환은 협상 테이블 위에서 시도됩니다. 아울러 교환되는 정치적 가치는 유권자의 지지를 뼈대로 하는 것이며, 이런 지지는 거리에서 형성됩니다.
이 사실이 함축합니다. 야권 연대의 발원점은 거리이고, 야권 연대의 마감장은 테이블입니다. 유권자는 있는 그대로 심판 의지와 지지 의사를 표하면 되고, 나머지 연대 협상은 야당들과 야당 후보들이 조용히 테이블 위에서 행하도록 하면 되는 일입니다.
관권은 유권자입니다. 유권자가 저 멀리 있는 정권보다 내 옆에 있는 이웃을 더 미워한다면 동력은 나오지 않습니다. 정권 심판을 야권 연대의 대전제 삼아 목 터져라 외쳐봤자 목만 쉴 뿐입니다. 밉상 이웃보다 폭주 정권에 대한 분노의 연대가 거리에서, 유권자 맘속에서 우선 형성되지 않는 한 야권 연대는 추동되지 않습니다.
유권자의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표출하게 하는 것, 정말 유권자의 바닥 민심에 정권 심판의지가 도도히 흐르고 있다고 확신한다면 이것부터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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