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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을 '굶주린 야수'로 만들 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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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을 '굶주린 야수'로 만들 셈인가

[정욱식 칼럼] 한반도, '헬조선'으로 변할 위기에 처했다

한국시간으로 3월 3일 0시 17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대북 제재 결의안 2270호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언론과 국제사회는 일제히 비군사적 제재로는 유엔 안보리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재라고 평가하고 있다.

실제로 그 내용을 보면 전면적 대북 경제 봉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과거 대북 결의는 주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 개발 억제에 초점이 맞춰졌었다. 하지만 이번 결의에는 WMD뿐만 아니라 소형무기 거래, 해운과 항공, 대외교역, 금융거래 등 경제 전반에 걸쳐 북한의 돈줄을 끊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제재 내용도 광범위할 뿐만 아니라 구체적으로 짜여 있고, 또한 대부분은 유엔 회원국의 의무로 명시하고 있다.

일부 항목에서 인도주의 및 민생 목적을 예외로 하고 있지만, 이번 결의가 전면적 이행에 들어가면 북한 경제는 상당한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외자 유치뿐만 아니라 전체 수출에서 약 40%를 차지하는 광물 수출에도 큰 차질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중국과 러시아와의 교역에서 조금은 숨통을 틀 수 있다고 하더라도, 김정은 정권이 공언해온 "경제발전과 인민생활 향상"이 중대 기로에 서게 된 것이다.

▲ 2일 (현지 시각)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 안보리 이사회에서 이사국들이 만장일치로 대북제재 결의안을 채택했다. ⓒAP=연합뉴스

결의와 능력이 만날 때

하지만 이번 대북 제재 결의를 보면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제재의 목적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바로 그것이다. 공식적인 목적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에 들어가는 '자금줄'을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목적은 실현될 수 있을까? 대북 제재는 이를 위한 적절한 방식일까?

나는 회의적이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먼저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제재는 북한 정권으로 하여금 잘못을 깨닫고 그걸 인정해 교정토록 것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북한 정권은 잘못한 게 없다는 태도이다. 이에 따라 대북 제재 결의에 맞서 체제 수호의 결의를 다지면서 핵과 미사일에 더더욱 집착하게 만들 공산이 크다.

또 하나는 북한의 자체적인 능력이다. 기본적으로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은 외화를 벌어들여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북한은 우라늄 광산에서부터 우라늄 농축, 흑연감속로, 재처리 시설, 핵무기 제조, 핵실험장으로 이어지는 자체적인 '핵 주기'를 보유하고 있다. 미사일 역시 1980년대 이집트로부터 소련제 스커드를 도입해 역설계하는 방식으로 꾸준히 독자적인 기술력과 생산 체계를 완성해놓고 있다.

이러한 점들을 종합해볼 때, 이번 대북 제재 결의는 북한의 핵 억제력에 대한 결의를 강화시키는 대신에, 북한의 능력에는 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할 공산이 크다.

굶주린 야수가 되면

한편 이번 대북 제재 결의에는 "북한 주민이 처한 심각한 고난에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런데 이번 결의로 인해 북한 주민의 고난이 가중될 위험이 커졌다. 북한 체제의 특성상 국가적 차원의 경제난에 따른 고통은 가장 낮은 곳, 즉 북한 주민으로 흘러들어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대북 제재 결의는 이율배반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북한이 '굶주린 야수'가 되는 것이다. 경제난 가중과 핵 능력 강화가 만날 경우, 북한은 더욱 거친 존재가 될 공산이 크다. 이렇게 되면 곧 한국의 정치, 경제, 안보에도 상당한 부담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북한 문제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집권 세력에 의한 민주주의의 위기, 한국의 지정학적 리스크 부각으로 인한 경제 위기, 안보 딜레마 격화로 인한 평화의 위기가 바로 그것들이다. 한마디로 한반도 전체가 '헬조선'이 될 위기에 처했다.

이걸 막으려면 이제 제재에서 대화 모드로의 전환이 대단히 중요하다. 북한이 협상 테이블에 나온다면 제재를 완화하고 협상에서 성과가 나오면 해제할 준비도 갖춰야 한다. 많은 이들은 이란 핵협상의 교훈을 운운한다. 하지만 핵심적인 교훈은 제재를 협상의 '수단'으로 삼을 때 제재의 '목적'으로 달성할 수 있다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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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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