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안보리는 2일(현지 시각) 대북 제재 결의안 2270호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12개 항으로 구성된 이번 결의안에는 △북한에 드나드는 모든 수출입 화물 검색 의무화 △전면적인 무기 금수 등 기존보다 강화된 제재를 비롯해 △북한의 광물 수출 금지 △항공유와 로켓 연료 등의 공급 금지 등의 제재가 새롭게 등장했다.
우선 유엔은 북한 군수품에 대한 강력한 제재를 위해 유엔 회원국과 북한 간 거래에서 '캐치올'(catch-all)제도 도입을 의무화했다. '캐치올'이란, 북한에 물품을 수출하는 당국이 통제 대상이 아닌 물자라도 대량살상무기나 재래식 무기 등의 개발에 쓰일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 해당 물품의 수출을 통제하는 제도다.
그런데 여기서의 '판단'이 해당 국가에 따라 자의적으로 이뤄질 수 있기 때문에 실질적인 효력을 발휘할지는 미지수라는 전망이 나왔다. 인제대학교 김연철 교수는 "과거 이라크에서 탁구공이 군수용으로 판정된 바 있다. 당시 상황에서 탁구를 즐길 수 있는 민간인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어떤 물품이 군수용으로 판단될지는 코에 걸면 코걸이고 귀에 걸면 귀걸이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특정 물건이 어떤 용도로 쓰일지에 대한 판정의 책임은 각국이 진다. 일단 북한이 중국 외에 다른 국가와 무역이 거의 없기 때문에 중국의 판단이 가장 중요하다"며 "중국은 이미 정상 경제활동에 적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캐치올' 제도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항공유와 로켓 연료 등의 공급 중단 역시 북한의 군수분야에 제재를 가하기 위한 조치다. 이는 당장 북한 공군 활동이나 로켓 개발에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북한에 항공유를 수출하는 유일한 국가가 중국이기 때문에 중국의 제재 이행 여부에 따라 그 효과는 달라진다는 변수가 있다.
또 러시아가 지난 2월 25일(현지 시각) 회람됐던 결의안 초안에 수정을 요구하하면서 자신들의 요구 사항을 새롭게 관철시켰는데, 항공유와 관련 '북한 민간 항공기의 해외 급유(연료 판매 및 공급)는 허용한다'는 예외규정을 포함시키며 제재의 또다른 구멍을 만들었다.
이번 결의안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석탄, 철광석 등 광물 거래 제한' 조치도 중국의 결정에 따라 제재 실효성이 판가름 날 전망이다. 석탄과 철광석은 2015년 기준으로 북한의 대(對) 중국 수출액의 45%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큰 품목이다. 중국에 대한 북한의 무역 의존도가 90%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석탄과 철광석 거래 제한이 북한에는 상당히 아픈 제재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결의안에는 '생계'(livelihood) 목적이나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위한 수익 창출을 하지 않는 경우에는 거래를 할 수 있도록 예외 조항을 두고 있다. 이를 근거로 북한과 중국 민간기업 간 이뤄지는 광물 교역은 제재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크다.
인제대학교 김연철 교수는 "특수광물을 제외하고 민생용 거래는 허용한다는 것인데, 매우 애매하다"며 "광물 거래 대부분은 중국이다. 중국이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려있다"고 전망했다.
실제 러시아의 경우 이 항목에서 '북한 나진항을 통해 수출되는 외국산 석탄에는 적용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추가했다. 러시아가 자국산 석탄의 출하항으로 나진항을 사용하는 상황에서, 이곳을 통해 수출되는 러시아산 광물은 제재의 영향을 받지 않게 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한편으로는 남북한과 러시아가 참가하는 '나진-하산 프로젝트' 가능성을 열어두기 위한 조치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나진-하산 프로젝트는 유연탄을 포함한 러시아 광물을 러시아의 하산과 북한의 나진항을 잇는 54km의 철도로 운송한 뒤에 나진항에서 화물선에 옮겨 한국으로 들여오는 복합 물류 사업이다.
북한에 드나드는 모든 화물을 검색한다는 조항 역시 중국의 의지에 따라 실제 실행 여부가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북한 대외 무역의 90%가 중국과 교역인 데다가 이 교역의 70% 정도는 북한의 신의주와 중국의 단둥 사이에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결의안은 기존에 없던 새로운 제재가 추가되고 이전 제재보다 강화된 내용이 많이 담겨있지만, 중국이 움직이지 않으면 제재의 실효성이 발휘되기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외형은 미국이 하자는 대로 강력한 제재 형식을 갖췄지만 내용 면에서는 중국이 실익을 챙긴 셈"이라고 진단했다.
비핵화-평화협정 연계하는 대화 시작?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안이 마무리되면서, 다음 수순으로 북한의 비핵화와 평화협정을 위한 대화가 시작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실제 안보리 결의안이 나오기 직전 미국과 중국 외교장관은 23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제재는 대화를 위한 수단이며, 비핵화를 위한 대화를 진행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를 두고 대화 테이블은 열릴 수 있지만, 북한의 비핵화나 정전협정 폐기 및 평화협정 대체와 같은 성과로 연결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김연철 교수는 "미국 입장에서 보면 올해는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다. 일반적으로 대선이 있는 해에 미국의 외교 정책 특징은 현상유지"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미국은 급격한 악화도 원하지 않고 그렇다고 적극적 협상 동기도 없는 상태"라며 "이런 차원에서 국면 관리가 필요한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결국 현 상황에서 대화 테이블을 마련하고 실질적인 협상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활발하게 움직이는 국가는 중국이 유일하다는 것이 김 교수의 판단이다. 그는 "중국이 6자회담을 열기 위해서는 여러 고비를 넘어야 하는데, 비핵화가 아닌 핵 군축을 이야기하고 있는 북한을 설득해야 하고, 북한만큼 어려운 한국과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면서 "결국 북중 관계가 가장 큰 변수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편으로는 평화협정 이야기가 물 위로 올라오기 전에 한국 정부가 사전에 이를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일정 기간 제재 국면으로 가되, 대화로 넘어갈 수 있는 물밑 접촉을 하자는 것이 중국 입장일 것"이라며 "중국은 미국에게도 적극적으로 움직여 달라고 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 전 장관은 "현 국면에서 평화협정 이야기가 물 위로 올라온다면 이전보다 훨씬 높은 비중으로 이 문제가 다뤄질 것"이라며 "그랬을 때 평화협정을 미북 양자로 끝낼 것이냐, 중국과 한국이 포함된 4자, 즉 남-북-미-중이 평화협정을 맺을 것이냐는 한국 정부가 하기 나름"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평화협정 체결 문제에 대해 미국에 뒤통수 맞고, 북한 제재 제대로 안 하면서 중국에 당했다고 화만 내지 말고, 지금부터 평화협정 체결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한다"면서 "2009년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의 제안, 2006년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발언, 2007년 10.3 공동선언문, 10.4 정상회담 등에 담긴 평화협정 체결 수순을 미리 숙지해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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