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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다섯 개, 입은 코끼리 코처럼 긴 동물은?

[월요일의 '과학 고전 50'] <생명 최초의 30억 년>

<프레시안>이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APCTP), 사이언스북스와 함께 특별한 연중 기획을 시작합니다. 매주 월요일 아침 한 권의 '과학' 고전을 뽑아서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서평 대상으로 선정된 고전 50권은 "우리에게 맞춤한 우리 시대"의 과학 고전을 과학자, 과학 담당 기자, 과학 저술가, 도서평론가 등 여럿이 머리를 맞대고 2015년에 새롭게 선정한 것입니다. 이번 연재는 선정된 과학 고전 각각을 독자에게 소개하고 또 새롭게 읽어보는 특별한 기회가 될 것입니다.

김상욱 부산대학교 교수(물리학자), 손승우 한양대학교 교수(물리학자), 이강영 경상대학교 교수(물리학자), 이권우 도서평론가, 이명현 박사(천문학자), 이정모 서대문자연사박물관 관장, 강양구 기자 등이 돌아가면서 서평을 쓸 예정입니다.

이정모 서대문자연사박물관 관장이 오늘의 과학 고전으로 앤드류 놀의 <생명 최초의 30억 년>과 뿌리와이파리 출판사의 '오파비니아' 시리즈를 소개합니다.

▲ <생명 최초의 30억 년>(앤드류 놀 지음, 김명주 옮김, 뿌리와이파리 펴냄). ⓒ뿌리와이파리
생명에게 온갖 가능성이 활짝 열린 시대가 있었다. 지금부터 5억4100만 년 전이다.

당시의 바다 속 풍경을 상상하면 황홀하기 그지없다. 머리에 눈이 다섯 개가 있고 코끼리 코처럼 기다랗게 펼쳐진 주둥이 끝에는 집게손이 달린 오파비니아, 둥근 입이 턱 아래 붙어 있는 길이 1~2미터의 아노말로카리스, 스타트렉에 등장하는 외계 생명처럼 생긴 마렐라, 우리 내장에 사는 기생충처럼 생긴 피카이아 등이 살았다.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생물은 이때 열린 문을 통해 진화의 길을 걸어왔다. 우리는 이때를 캄브리아기 대폭발이라고 부른다.

이름도 자연스러운 뿌리와이파리 출판사는 2003년부터 '우주와 지구와 인간의 진화사'에서 굵직굵직한 계기를 짚어보면서 그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고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살피는 시리즈를 출판하였다. 이름 하여 '오파비니아' 시리즈. 시리즈 명칭에 굳이 이미 멸종해버린 낯선 이름의 생명체를 등장시킨 데는 아마도 '인간의 두 눈과 단정한 입술이 아니라 오파비니아의 다섯 개의 눈과 기상천외한 입을 통해 애써 균형을 잡으려는 우리의 이성에 더해 열린 사고와 상상력까지 담아내겠다'는 의지를 담으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생명 최초의 30억 년>(앤드류 놀 지음, 김명주 옮김, 뿌리와이파리 펴냄)은 '오파비니아' 시리즈를 여는 첫 책이다.

고생물학에서 연대는 넓은 마음으로

역사에서 연도는 중요하다. 훈민정음은 1446년에 반포되었고 동학 혁명은 1894년에 일어났으며, 6.15 남북 공동 선언은 2000년의 일이다. 자연사에서도 마찬가지로 연대는 중요하다. 하지만 고생물학자는 연대에 관대하다. 나는 학교에서 캄브리아기가 5억4700만 년 전에 시작되었다고 배웠지만 어떤 책에는 기억하기 좋게 5억4300만 년 전이라고 나오고, <생명 최초의 30억 년>에는 5억4200만 년 전이라고 나온다. 하지만 요즘 지질학계에서는 5억4100만 년 전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책을 보다가 몇 백만 년 정도의 차이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면서 넘어가면 된다는 뜻이다.

이 책에서 생명은 35억 년 전에 시작한다. "앗 내가 본 다른 책에서는 38억 년이라던데…"라면서 당황할 필요가 없다. 그게 그거다. 그것 가지고 시비 거는 사람 있으면 그냥 무시하면 된다.

어쨌든 캄브리아기 대폭발 시기에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동물 문(門)이 등장했다. 우리가 중학교 때 배운 '종-속-과-목-강-문-계'에 나오는 바로 그 문이다. 생명의 분류 체계에서 문(門)은 설계도라고 할 수 있다. 5억4100만 년 전에는 38개의 동물 문이 있었다. 이 가운데 오파비니아가 속한 문만 사라지고 37개의 문이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만약 오파비니아가 후손을 남기고 사라졌다면 지금도 들과 바다에 눈이 다섯 개이고 주둥이가 코끼리 코처럼 길게 뻗어 나온 멋진 동물들이 널렸을 것이다. 오파비니아 문이 사라진 것은 정말 가슴 아픈 일이다. 하지만 오파비니아 대신 피카이아가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다면 우리는 가슴 아파하지도 못한다. 피카이아는 모든 척색(척추) 동물의 조상이므로 물고기에서 사람에 이르기까지 뼈대 있는 모든 동물은 지구상에 나타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고생물학과 생물학의 지식은 5억4100만 년 이후의 일이다. 우리가 사라진 생명을 이야기할 때 등장시키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크로칸토사우루스, 긴털매머드, 삼엽충과 암모나이트 같은 것들은 기껏 해야 최근 5억4100만 년 동안에 살다가 사라진 것들이다.

<생명 최초의 30억 년>은 지구에 바다가 생기고 생명이 등장한 후 캄브리아기 대폭발이 일어나기 바로 직전까지의 사건을 다룬다. 실제로는 38억 년 전부터 5억 년 전까지의 33억 년을 다루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30억 년이나 33억 년이나 그게 그거다.)

생명 최초의 30억 년도 캄브리아기 대폭발부터

이 넓디넓은 우주에 지구가 생기고 나서 처음에 어떤 생명이 탄생했을까? 지구와 우주에 대한 기원만큼이나 생명의 기원은 우리의 호기심과 관심 그리고 종교적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테마다. 과학과 종교 사이의 충돌을 논외로 하더라도 과학계 내부에서조차 명쾌한 합일점을 찾지 못한 분야이기도 하다.

왜? 아무도 보지 못했으니까! 우주의 기원에 대해서는 과학자들이 거의 합의를 했는데 왜 생명의 기원에 대해서는 합의를 못 할까? 우주의 기원은 수학적으로 기술할 수 있지만 생명의 기원은 아직 수학적으로 기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인수분해와 함수 계산에 도가 트고 미분과 적분을 심심풀이로 푸는 사람도 생명의 기원에 대해서는 자연어를 동원해서 기술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생명 최초의 30억 년>의 저자 앤드류 놀은 생명의 진화와 지구 환경 변천사 분야에서 손꼽히는 전문가로 CNN과 <타임>이 선정한 '미국 최고의 고생물학자'이기도 하다. 앤드류 놀은 세계 곳곳의 선(先)캄브리아 지층에서 화석 기록을 발굴하는 데 20년 이상을 바쳤으며, 여기서 얻은 성과를 고스란히 <생명 최초의 30억 년>에 담았다. (우리말로는 30억 년이나 33억 년이나 글자 수가 똑같지만 영어로는 33억 년이 되면 제목으로 쓰기가 영 좋지 않다.)

흥미롭게도 <생명 최초의 30억 년>은 35억 년 전의 지구가 아니라 캄브리아기 대폭발의 현장에서 시작하여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다시 한 바퀴 빙 돌아서 시작점으로 돌아온다. 앤드류 놀은 우리에게 '캄브리아기 대폭발'을 뜬금없는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생명의 끈질긴 개연성의 결과물이라는 시각으로 바라보라고 주문하고 있다.

최초의 30억 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38억 년 전 지구 바다 어느 구석에서인가 최초의 세포가 생겼다. 기름주머니 안에 RNA 조각이 들어 있었던 것. 38억 년 전 원핵 생물(핵막이 없어서 염색체가 세포질 안에 흩어져 있는 단세포 생물)이 등장했고 25억 년 전 진핵 생물이 등장했으며 15억 년 전에는 다세포 생명이 등장했다. 생명이 지구에 등장한 후 최초의 30억 년 동안 생명의 진화는 순탄하게 일정한 속도로 진행하지 않았다. 생명은 마치 뭔가에 가로막힌 듯 주춤거리다가는 뭔가에 힘을 받은 듯 달음질친 것처럼 보인다.

<생명 최초의 30억 년>은 30억 년 전, 20억 년 전, 10억 년 전에 어떤 생명체가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정리한 책이 아니다. 그걸 누가 봤는가? 모든 이야기는 추측과 가정에 불과하다. (그래서 추측과 가정이 하찮다는 뜻은 절대로 아니다.) 앤드류 놀은 태곳적 지구에 살았던 박테리아와 진핵 생물을 찾는 자신의 탐험에 독자들을 동참시킨다. 그는 훌륭하고도 친절한 가이드다. 장화를 신고 지질 망치를 들고 야외로 나가는 사이에 지은이가 들려주는 생물학 강의는 흥미로울 뿐더러 초기 생명의 증거를 찾는 데 꼭 필요한 이야기다.

북시베리아의 코투이칸 강을 따라 발견되는 화석들은 캄브리아기 '대폭발'을 기록하고 있다. 캄브리아기 대폭발은 약 5억4300만 년 전 무렵, 다양한 동물이 폭발하듯 나타난 사건을 말한다. 찰스 다윈은 무려 100여 년 전에, 캄브리아기의 화석들을 보면서 생물 진화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품었다. 캄브리아기 암석보다 더 오래된 암석을 찾을 수 있을까? 찾는다면 거기에는 지구에 맨 처음 등장한 생물의 기록이 남아 있을까? (19쪽)

우리는 앤드류 놀과 함께 탐험을 하면서 찰스 다윈이 품었던 의심을 함께 품을 수 있다. 그리고 21세기 분자생물학자들의 의문도 함께 품을 수 있다. 앤드류 놀이 생각하기에 생물 진화란 산소 농도의 변화와 여기에 대한 생명의 적응이라는 이중주다.

앤드류 놀은 논쟁에 있어서 속시원하게 한쪽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 모든 가설에는 강점과 약점이 다 있다. 놀은 독자들에게 모두 다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가 더 고민하게 한다.

어느 분자가 먼저 생겼든 원시진화의 가장 심오한 수수께끼를 꼽으라면, 단백질과 핵산이 상호작용하면서 상대의 존속을 책임지는 계가 등장한 일일 것이다. 생명의 기원에 대해 깊이 고민했던 저명한 물리학자 프리먼 다이슨은 생명이 사실은 두 번 발생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 번은 RNA의 길을 통해서고, 또 한 번은 단백질의 길을 통해서. 그 다음에 원시 생명의 합병에 의해 단백질과 핵산이 한자리에서 상호 작용할 수 있는 세포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 동맹에 의한 혁신이야말로 진화의 영원한 주제다. (…) 다시 말해, 이 분자 법칙을 지배하는 화학 법칙이 있는 걸까? 있다면 그게 뭘까? 유전 암호의 기원이 무엇이며, 그것으로부터 복잡한 생화학적 작용을 하는 생명이 어떻게 탄생했는지는 지금까지 가장 심오한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122쪽)

자연사에 관해서라면 '오파비니아' 시리즈 12권은 필독서다. 이걸 읽지 않고 자연사에 제대로 접근할 방법은 아직 없다. 특히 제1권 <생명 최초의 30억 년>과 제2권 <눈의 탄생>(앤드루 파커), 제3권 <대멸종>(마이클 벤턴), 제7권 <미토콘드리아>(닉 레인), 제9권 <진화의 키, 산소 농도>(피터 워드)그리고 제12권 <최초의 생명꼴, 세포>(데이비드 디머)는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되는 책이다. 대신할 게 없다.

만약에 단 한 권을 읽는다면 의심할 여지없이 <생명 최초의 30억 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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