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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과학을 알아야 하죠?" "재밌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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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과학을 알아야 하죠?" "재밌잖아요!"

[월요일의 '과학 고전 50'] <원더풀 사이언스>

<프레시안>이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APCTP), 사이언스북스와 함께 특별한 연중 기획을 시작합니다. 매주 월요일 아침 한 권의 '과학' 고전을 뽑아서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서평 대상으로 선정된 고전 50권은 "우리에게 맞춤한 우리 시대"의 과학 고전을 과학자, 과학 담당 기자, 과학 저술가, 도서평론가 등 여럿이 머리를 맞대고 2015년에 새롭게 선정한 것입니다. 이번 연재는 선정된 과학 고전 각각을 독자에게 소개하고 또 새롭게 읽어보는 특별한 기회가 될 것입니다. (☞관련 기사 : APCTP 과학 고전 50선)

김상욱 부산대학교 교수(물리학자), 손승우 한양대학교 교수(물리학자), 이강영 경상대학교 교수(물리학자), 이권우 도서평론가, 이명현 박사(천문학자), 이정모 서대문자연사박물관 관장, 강양구 기자 등이 돌아가면서 서평을 쓸 예정입니다. 첫 번째 서평은 과학 고전 선정을 주도했던 김상욱 교수가 시작합니다.

오늘의 과학 고전은 나탈리 앤지어의 <원더풀 사이언스>입니다!

▲ <원더풀 사이언스>(나탈리 앤지어 지음, 김소정 옮김, 지호 펴냄). ⓒ지호
'고전'이라고 하면 플라톤, 칸트, 공자 같은 이름이 스쳐지나간다. 그래서인지 꽤나 묵직한 느낌마저 든다. 그런데 경박하게 <원더풀 사이언스>(나탈리 앤지어 지음, 김소정 옮김, 지호 펴냄)라니. 더구나 저자 나탈리 앤지어는 고작(?) 과학 저술가다. 의아하게 느낄 독자를 위해 서평에 앞서 이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듯하다.

근대 이후 과학의 내용은 대개 전문적인 논문의 형태로 출판된다. 같은 분야가 아니면 전문과학자도 이해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과학 논문은 과학적 엄밀성의 충족을 최우선 과제로 삼기 때문인데, 사실 이것이야말로 과학이 갖는 힘의 원천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이유로 일반인이 과학을 날 것 그대로 접하기는 불가능하다.

'고전'이란 것이 일반인도 읽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면, 과학에서는 반드시 누군가 그 내용을 풀어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이나 에르빈 슈뢰딩거의 앙자역학 논문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20세기 이전의 과학 저술들도 과학사를 공부할 목적이 아니라면 이후에 더 잘 쓰인 책을 읽는 것이 좋을 때가 많다.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뉴턴의 저작들보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먼저 읽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과학 고전 50선이라고 하고서 교양 과학 서적 50권을 선정한 이유다.

고심 끝에 과학 고전 50권 가운데 첫 번째 책으로 <원더풀 사이언스>를 골랐다. 그 이유는 이 책의 서문을 보면 알 수 있다. 우리는 왜 과학을 알아야 하는가? 오늘날의 중대한 이슈들에 과학이 깊숙이 관여하고 있어서일까? 과학을 잘 알고 있으면 미신이나 헛된 희망, 사기 등을 피할 수 있어서일까? 과학이 국가 경제, 문화, 의학, 안보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일까?

저자의 답은 간단하다. 그냥 재미있으니까. 사실 연구비 제안서 쓰면서 이렇게 쓰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본 연구의 동기는 '그냥 재미있으니까'이다. 물론 국민의 세금을 쓰는 마당에 이런 무책임한 이유를 댈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이게 진실인 걸 어쩌랴.

이런 점에서 과학과 예술은 통하는 점이 많다. 저자가 과학자가 아니기에 오히려 과학자보다 더 과학자다운 답을 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이 책의 서문을 읽다보면 과학 열정의 피가 끓어오른다.

서문이 끝나고 이어지는 1장은 과학적 사고방식에 대한 이야기다. 과학은 단순히 사실을 모아놓은 지식의 목록이 아니다. 과학은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이며 실체를 마주하는 태도다.

초짜 과학자가 처음 논문을 쓸 때, 잘 모르는 것이 하나 있다. 자신이 알아낸 새로운 내용 자체보다 그것을 뒷받침할 증거를 엄밀히 보이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 철학자 데모크리토스는 모든 것이 원자로 되어 있다고 말했지만, 이것은 과학이 아니었다. 물질의 질량이 보존되고 화합물을 구성하는 원소들이 항상 일정한 성분비로 결합한다는 실험적 증거가 있을 때 원자론은 과학이 된 거다.

이처럼 과학은 증거를 요구한다. 일정 수준의 양적이고 물질적인 증거가 분명히 있어야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객관적 증거에 바탕을 둔 주장보다 주관적 의견을 사랑한다. 상대가 어떤 정치인이 좋다고 말할 때, 나는 싫다고 대꾸하면 그만이다. 상대가 동의하지 않으면 자신의 의견을 말하면 된다. 하지만 과학은 그렇지 않다. "당신은 진화론자라 진화를 믿지만, 나는 창조론자라 믿지 않아." 이런 것이 통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진화론은 일정 수준 이상의 양적이고 물질적인 증거를 가지고 있지만, 창조론은 그렇지 않다. 과학에서 당신 개인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다.

과학적 사고방식에 대한 충분한 세례를 마치고도 이 책은 익숙한 과학 지식 이야기로 향하지 않는다. 이어지는 2장은 확률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아내와 생일이 같다. 이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우리 모두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신분증을 꺼내어 확인했을 정도다. 만약 당신이 속한 모임에서 생일이 같은 이성을 만나면 특별한 인연이 있다고 느낄지 모르겠다. 하지만 65명 정도 되는 집단에서 생일 같은 사람이 있을 확률은 99%가 넘는다.

이 책을 읽고, 실제 내가 맡았던 대학 교양 수업 시간에 학생들하고 내기를 한 적이 있다. 생일이 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으면 여기서 수업을 마치겠다고. 물론 내가 이겼다. 이 책에는 확률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이것 말고도 수두룩하다. 확률에 대한 개념이 없다면 물질적 증거를 제대로 해석할 수 없다. 확률 감각이 떨어지면 당연한 결과를 두고도 놀라운 일인 양 호들갑을 떨 수도 있다. 확률이 중요한 이유다.

나탈리 앤지어는 3장이 되어서도 예상 가능한 이야기로 향하지 않는다. 과학자라면 절대 이런 식으로 쓸 수 없을 거다. 3장의 주제는 척도다. 사실 크기에 대한 감각이야말로 대상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대단히 중요하다. 물리학자들은 입자 가속기를 이용하여 쿼크라는 입자를 잠깐 만들어낼 수 있다. 잠깐이라고 했지만 1조분의 1초 정도 존재하는 거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게 존재하는 거냐고 물을 것 같다. 그것은 인간의 척도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쿼크의 운동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이 짧은 시간 동안 극미한 궤도를 1조 번 회전할 수 있다. 지구의 나이는 대략 50억 년이고 지금까지 태양 주위 공전 궤도를 불과(!) 10억 번 회전했다. 각자의 공전을 기준으로 하면 쿼크가 지구보다 1000배 이상 오래 존재했다는 얘기다. 척도를 가지고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재미있게 할 수 있다는 걸 나는 이 책에서 배웠다.

척도를 마치면 드디어 우리에게 익숙한 과학 주제들이 펼쳐진다. 하지만 여기서도 그 내용은 평범하지 않다. 물리학에 대한 소개를 보자.

"물리학은 가장 겸손한 학문 가운데 하나로 그저 세상이 무엇으로 만들어졌고, 어떤 식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세상에 있는 존재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에 대해서 연구하는 학문일 뿐이다."

물리에는 불과 50쪽이 할당되어 있을 뿐이지만 원자, 네 가지 힘, 전기, 에너지, 빛, 엔트로피까지 빠짐없이 훑어낸다. 저자가 물리학을 소개하는 방식은 물리학자인 내가 봐도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과학 교양 서적의 미덕은 무엇을 넣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빼느냐라는 것을 극명히 보여주었다고 할까.

책의 나머지 부분을 여기서 다 설명할 생각은 없다. 이 정도 소개했으면 이제는 독자가 읽을 차례라고 생각한다. 내 교양 과목을 수강하는 학생들에게 이 책은 필독서다. 과학 교양 과목이 달성해야할 모든 목표가 바로 이 한 권의 책을 읽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느꼈던 과학에의 뜨거운 열정을 독자들도 공유했으면 좋겠다. 이 책에 대해 칭찬할 말을 더 쓰고 싶지만 한 구절로 다 표현할 수 있을 거 같다.

원더풀 <원더풀 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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