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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핑', 안철수 '퐁'? 이럴 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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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문재인 '핑', 안철수 '퐁'? 이럴 때 아니다

[주간 프레시안 뷰] 세대교체와 정권교체 위한 '손학규 등판론'

풍경 #1 40대 기수론, 구상유취(口尙乳臭)

1969년 11월 8일, 당시 42살이던 김영삼이 40대 기수론을 들고 나왔습니다.

정치사의 가장 역동적인 순간 가운데 하나였죠. <프레시안>에 연재되고 있는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는 이 때의 상황을 비교적 소상히 밝히고 있습니다. 40대 기수론은 마치 지금의 야당처럼 무능한 모습으로 우왕좌왕하던 당시 너무 낡아 실밥이 터진 신민당에 새바람을 일으켰습니다. 여기에 김대중, 이철승이 가세하며 거대한 세대교체 흐름을 만들어 냈죠.

1969년 5월에 열린 신민당 전당대회에서 유진오가 총재가 됐으나 와병으로 인해 실권 수석 부총재인 유진산이 권력을 장악합니다. 사쿠라로 불린 유진산은 박정희 정권이 '요리하기' 좋은 인물이었고 야당은 계속 국민에게 실망만 안겨주게 됩니다. 이때 김영삼이 1971년 7대 대통령선거를 겨냥해 40대 기수론을 들고 나온 것입니다. 당시 국민들 사이에 팽배해 있던 패배주의에 산소를 공급한 결정적 사건이었죠.

최근 안철수 의원이 혁신전당대회를 요구했었는데요, 지난 3일 문재인 대표가 이를 전면 거부하면서 새정치민주연합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1970년 1월 26일, 신민당은 임시전당대회를 열어 유진산을 당수로 선출합니다. 서중석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에 따르면 당시에 '중앙정보부 간부가 심야에 출입한다'는 소문이 퍼져 있을 정도로 유진산과 정권과의 밀월 소문이 파다했다고 합니다. 유진산이 뽑히자 윤보선은 탈당하고 당내 상황이 말이 아니었죠. 그때 유진산이 40대 기수론을 '디스'하기 위해 한 말이 '구상유취(口尙乳臭)'였습니다. 입에서 젖비린내가 난다는 뜻이죠. 정치적 미성년자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사쿠라의 희미한 독백은 40대 기수론에 날개를 달아줄 뿐이었죠. 40대 기수론의 두 주역이었던 김영삼, 김대중은 차례로 한국의 대통령이 됩니다.

풍경 #2 박근혜 비대위, 새빨간 새누리당

2011년 12월 9일,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가 전격 사퇴를 선언합니다.

당시 홍 대표는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따른 돌발적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있었고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비준안 처리 이후 '디도스 사건' 등 당을 혼돈으로 몰고 가는 악재가 연달아 터졌는데 이는 모두 내 부덕의 소치"라며 사퇴 이유를 밝혔습니다. 당시 유승민, 남경필, 원희룡 최고위원이 사퇴한 뒤 홍 대표의 사퇴를 압박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나경원 최고위원은 그 이후에 거취를 정리했죠. 홍 대표는 "집권 여당 대표로서 혼란을 막고자 당을 재창당 수준으로 쇄신하고 내부 정리를 한 후에 사퇴하고자 했던 내 뜻도 기득권 지키기로 매도되는 걸을 보고 더 이상 이 자리에 있는 게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다. 더 이상 당내 계파투쟁, 권력투쟁은 없어야 한다. 모두 힘을 합쳐야만 총·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호소합니다. '민본21' 같은 소장파 초선모임 등이 당내 혁신적 정풍운동의 주력으로 떠오릅니다.

당시 정몽준은 조기전당대회를 열어 새 지도부를 선출하자고 했고, 김문수는 비상국민회의를 소집해 위기를 돌파하자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결론은 '박근혜 비대위 체제'였습니다. 박근혜 비대위는 김종인, 이상돈, 이준석 등 파격적 비대위를 구성하고 과감한 중도확장 전략을 선언합니다 또 경쟁력과 교체지수를 조사해 하위 25%의 현역 지역구 의원 34명을 공천에서 배제하고, 전체 지역구의 80%를 개방형 국민경선으로, 나머지 20%는 전략 공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공천심사 기준을 정합니다. 국민이 고개를 끄덕일 만한 시스템 공천을 강조하고 나선 것이죠. 새정치민주연합이 최근 마련한 혁신안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조동원 홍보위원장을 영입해 당 색깔을 빨강으로 바꾸고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정하는 등 이명박 정부와의 거리두기를 위한 이미지 전략도 파격적으로 단행합니다. 결과론적으로 볼 때 이 같은 움직임은 총선과 대선 승리로 이어졌습니다.

풍경 #3 2015년 12월, 조기전대 요구 거부

지금 새정치민주연합은 축구장도 아닌 탁구장입니다. 당의 지도급 인사들이 핑퐁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지루합니다. 결정타도 없는 랠리가 계속 반복됩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남북대화 하고 있는 줄 알 것 같습니다. 상대를 곁에 두고 이른바 국민을 향한 성명 정치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국민들의 시선은 12월의 추위처럼 점점 싸늘해지기만 합니다. 자신이 잘났다고 주장하면 점점 못난이가 되어가는 역설의 시간이 흐르고 있습니다.

이번 핑퐁 랠리는 이른바 '문안박 연대'에서 시작됐습니다. 문재인 대표는 권한을 나누겠다고 했습니다. 정의를 위한 연대가 아니라 봉합을 위한 정치공학적 접근이 앞섰던 것입니다. 그것마저도 선언적이었습니다. 연대의 상대인 안철수, 박원순과 충분한 사전협의를 거치지 않은 것입니다. 최고위원회는 순식간에 들러리가 됐습니다. '문안박 연대'는 문 대표의 진정성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문 대표의 총선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한 정치적 술수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안철수 의원은 문안박 연대를 거부했습니다. 그러면서 조기전대를 실시하자고 했습니다. 혁신전대라는 말을 썼습니다. 혁신이 여기저기서 고생하고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전당대회를 통해 뽑힌 대표를 밀어내면서 또 같은 유형의 전당대회를 하자고 하고 거기에 혁신이라는 수식어를 갖다붙인 꼴입니다. 문안박 연대로 '핑'하니까 혁신전대로 '퐁'하고 다시 전대거부로 '핑'했으니 탈당으로 '퐁'할까요? 문과 안의 핑퐁게임은 사실상 공멸의 길입니다. 지금 새정치민주연합은 1969년의 신민당이나 2011년의 한나라당과 다르지 않습니다. 야당이 비상 상황이라는 사실엔 누구나 동의합니다. 사상과 이념, 가치가 아닌 오직 이권을 위한 계파전쟁에 리더십의 실종, '초딩 수준'의 정치력이 난무합니다. 기이한 것은 이 절체절명의 상황에 정풍운동조차 벌어지고 있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 야당엔 전혀 새로운 시간이 필요합니다.

풍경 #4 2016년 총선, 세대교체를 위한 손학규의 시간

물론 이것은 관전자의 제안일 뿐입니다. 세대교체와 비대위의 진취적 결합을 제안합니다.

새로운 시간이 필요합니다. 안철수의 시간도 문재인의 시간도 그토록 강조했던 혁신과 통합에 실패했습니다. 혁신의 시작인 과거와의 단절도 이루지 못했고 당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비전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새로운 시간은 이유가 뭐든 실패를 인정하는데서 시작됩니다. 그렇지 않은 모든 말들은 도토리 키재기에 불과합니다. 항간에 문철수, 안재인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문 대표는 "이 지긋지긋한 상황을 끝내자"며 "말보다 행동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시간이 없다"고도 했습니다. 다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새로운 시간과 새로운 혁신은 무엇을 하는데서 시작하지 않습니다. 낡은 것, 가진 것을 버리고 내려놓는데서 시작됩니다. 비워야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있습니다. 지금의 실패를 과감히 인정하고 대표 직을 내려놓는 것이 모든 것의 출발점입니다.

문 대표의 생각이 틀려서가 아닙니다. 억울할 수도 있습니다. 이른바 친노 기득권에 대한 과도한 비판이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옳고그름의 시간이 아니라 문 대표의 말대로 '총선 승리를 위한 정치적 시간'입니다. 단합은 말로 강조해서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려놓으면 새로운 힘이 생깁니다. 지난 대선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국민을 위한 헌신은 그 끝이 없어야 감동으로 이어집니다.

비상상황에선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이 상식입니다. 문 대표의 말대로 총선을 코앞에 둔 전당대회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문 대표의 조직적 퇴각, 가장 현실적인 비대위 구성이 단합과 승리의 유일한 길입니다. 지금 대표직을 유지한 채 당을 단합시킬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입니다. 모두들 그렇게 말합니다. 2011년 말의 한나라당에서 배워야 할 시사점입니다.

비대위를 누가 하면 좋을까요? 전혀 새로운 인물이 불현듯 나타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손학규의 시간이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총선 비대위를 운영할 적임자로 손학규만한 인물을 찾기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가 중도론자라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지금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상대적으로 계파색이 옅고 당을 이끈 경험과 선거경험이 풍부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토굴에 들어가 오랜 기간 노출이 안됐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정치적으로 그만큼 과거와 절연해 본 경험이 있는 야권 인사도 드물기 때문입니다. 정치인 손학규에 대한 호불호가 충분히 갈리겠지만, 2011년의 한나라당이 그랬듯이 그런 차이를 조금씩 양보하면서 승리를 위한 방정식을 풀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 ⓒ손학규의 대모험


'손학규의 대모험'이라는 트위터 시리즈가 생각납니다. 물론 손학규가 이 아수라장에 나올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고 그럴 가능성도 높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지도자라면 난파상태의 당을 외면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너무 쉬운 일이면 감동도 없죠.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손학규를 나오게 하는 과정 자체가 단합과 승리의 과정이 되게 해야 합니다. 뭔가 해보자는 분위기를 만드는 과정이 되어야 합니다. 국회의원과 당원과 국민이 참여해 손학규를 호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편에서는 40대 기수론 같은 정풍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더 좋은 미래'가 주축이 되든 다른 곳이 그 일을 하든 세대교체는 굉장히 중요한 정치적 화두입니다. 새로운 흐름과 손학규가 만나야 총선에서 시너지를 낼 수 있습니다. 모두가 알듯이 박근혜 정부의 역대급 반동이 심상치 않습니다. 국민들의 삶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불황은 홍대앞 상수동까지 밀려왔습니다. 이 엄중한 시기에 당의 승리를 위해 86그룹의 이인영 같은 분이 불출마를 선언하고 마중물을 놓는다면 새로운 길이 열릴 수도 있습니다. 누가 또 그 역사적인 헌신의 대열에 동참할 수 있을까요?

손학규와 함께 자신을 과감하게 내려놓은 분들이 비대위를 구성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여기에 20대 여성을 비롯한 혁신적 외부인사가 참여해 자연스럽게 세대교체 흐름을 형성해야 합니다. 손학규 비대위는 세대교체를 통한 새로운 혁신의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문안박이 이런 새로운 모델에 합의할 수 있다면, 총선에서 전혀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맞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소설입니다.

하지만 이런 상상이라도 필요한 시기 같습니다.

문재인 대표의 결단이 가장 소중합니다. 당을 위해서 모든 것을 걸겠다는 문 대표의 진심이 실현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손학규의 시간은 문재인의 시간이기도 하고 안철수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손학규의 대모험'을 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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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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