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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오늘도 우리는 테라스에서 커피를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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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오늘도 우리는 테라스에서 커피를 마신다

[기고] 급박했던 순간을 지난 '파리지앵'의 오늘

주말로 접어드는 지난 13일 금요일 밤, 파리 시내는 갑자기 아비규환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사상 초유의 동시다발적인 테러를 접한 파리 시민들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한 채 공포에 시달렸습니다.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 자체가 힘겨울 것 같았습니다.

그럼에도 파리 시민들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그것이 테러를 저지른 사람들에게 '우리는 너희들이 두렵지 않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수도 파리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교민 주형원 씨가 테러 당시의 상황과, 이에 대처하는 파리 시민들의 이야기를 전해왔습니다. '삶이 두려움보다 강한', 그래서 오늘도 어제처럼 삶을 이어가고 있는 파리 시민들의 모습을 독자 여러분들께 소개해 드립니다.

▲ 지난 13일(현지시각) 동시다발적인 테러가 일어난 파리 시내에서 사고 현장을 수습하고 있는 구조요원들 ⓒAP=연합뉴스


사상 초유의 테러가 일어난 후 사흘째 되는 일요일(15일, 현지시각) 아침에 집을 나섰다. 이게 과연 잘하는 짓인가 싶었지만, 창문 밖에서 새여 들어오는 유난히 눈 부신 햇살과 건물 앞 어느 집의 열린 창문 사이에서 나오는 음악 소리에 '이젠 괜찮을 거야'라고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여느 일요일처럼 빨래방에 가져갈 빨래거리들을 챙긴 후 떨어진 세제를 사러 집 앞 마트로 향했다. 어제와는 다르게 거리에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고, 내 마음이 그래서일까? 이들의 표정에서는 여느 일요일 아침에 볼 수 있는 여유 혹은 웃음 대신 일종의 죄책감이 느껴졌다.

마트에 들어선 나는 계산대 앞에 길게 늘어진 줄들을 보고 다시 한 번 놀랐다. 어제 하루 종일 자체 감금(?)을 하느라 못 나왔던 사람들이 모두 장을 보러 와서 그런걸까? 평소보다 훨씬 긴 줄이 있었고 선반 위의 상품들은 이미 많이 없어진 상태였다.


필요한 세제를 골라 줄을 섰는데, 바로 옆에는 마트에서 따로 마련해 놓은 적지 않은 규모의 와인 섹션이 따로 있었다. 와인이 있어야 하는 진열대에는 듬성듬성 빈 구멍이 있었다. 고개를 돌려 사람들이 올려놓은 계산대 위의 상품들을 보는데, 아니나 다를까 와인과 맥주들이 잔뜩 올려져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평소 일요일 아침의 장은 가족의 한 주를 보내기 위한 여러 필수품들이 주를 이루는데 오늘 계산대에는 과자나 주류, 디저트 같은 '선택 상품'들 혹은 '기호 상품'들이 많았다. 많은 이들이 이제까지는 늘 '다음, 다음'하며 미뤄오던 것들을 어쩌면 다음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집어 든 것 같았다.

나 역시 사건 당일 금요일 저녁, 닫혀있는 레퓌블리크 역을 지나 초긴장 상태로 다음 지하철역을 향해 혼자 걸으며 '어쩌면 오늘 저녁이 마지막 저녁이 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날 저녁 난 공교롭게도 테러가 일어난 지역 중 한 곳인 꺄날 근처의 한 건물에서 다른 프랑스 학생들과 암실 인화 수업을 받고 있었다.

테러가 일어난 그 시각, 나와 학생들은 휴대전화와 소지품을 옆 강의실에 놔두고 어두운 암실에 들어가 있었다. 걸어서 불과 10분 남짓한 곳에서 잔혹한 살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 리가 없었던 우리는 잠시 세상과 단절된 채 어두운 필름에서 한 장의 사진이 탄생되는 과정을 경탄하며 바라보고 있었다. 사진을 인화한 후 다시 교실로 들어와 있는데 밖에서 전화를 하고 있던 학생이 경직된 표정으로 말했다.

"여기 근처에서 총격전이 일어났대요"

파리에서 총격전이 일어나는 것은 미국처럼 흔하지는 않아도 가끔 있는 일이라 놀라긴 했어도 충격은 아니었는데, 지인으로부터 온 문자를 이제 확인한 듯 다른 학생의 말이 이어졌다.

"지금 동시 테러가 일어나서 '까리용'이랑 꺄날 근처 식당에서 사람들이 죽었고, 바타클랑 극장에서 관객들이 인질로 잡혀있대요"

누군가 외쳤다.

"지금 여기서 나가면 안돼요"

모두의 얼굴은 순식간에 공포로 하얗게 질렸다. 그렇게 지금 나갈지 말지를 두고 한참 의논하다 결국은 집이 같은 방향인 사람들끼리 그룹을 지어 나가기로 결론을 지었다. 그렇게 건물을 나가려는 순간, 앞장섰던 사람들이 나가다 말고 바로 다시 들어오며 공포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들이 지금 거리에서 뛰어가고 있어요. 범인이 이쪽으로 오고 있나 봐요"

누군가 건물 위로 올라가라는 말을 했고 우리는 그 즉시 건물의 가장 높은 4층을 향해 올라갔다. 그렇게 기다리다 누군가 "이제 상황이 어느 정도 진압됐대요"라고 알려줬고, 나를 포함한 우리 중 일부는 여전히 긴장한 상태로 길을 나섰다. 길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나는 바로 옆 레퓌블리크 역이 닫혀 있어 하는 수 없이 열려있는 다음 역을 향해 혼자 걸어갔다.

평소에는 병적인 길치지만 왠지 저쪽을 향해 걸어가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생존 본능 하나만 믿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리고 차들이 모두 나를 겨냥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어느 순간 보니 난 동역 지하철 입구 앞에 도착해있었다.

지하철을 탔다고 안도하는 순간도 잠시, 나를 포함한 지하철 안 승객들은 모두 불안에 떨고 있었다. 모두들 지금 타고 있는 지하철도 안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는 눈으로 바라보며 주변 사람들에게 문자 혹은 전화로 안부를 묻고 있었다.

내 앞에는 스페인에서 온 듯 보이는 한 관광객 커플의 여성이 자신의 어머니와 통화를 하며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아니 엄마. 그러니까 만약, 만약에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면 말이야..." 수화기 다른 한 편에서는 엄마가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하는 것 같았다. 집으로 가는 길이 이토록 멀고 힘들게 느껴지는 건 처음이었다.

지하철에서 내려 일단 동네에 들어서자 일차적으로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동네는 남쪽 외곽에 있어 테러리스트들이 여기까지 오지는 않을 거라는 이기적인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하철역에서 걸어 집에 도착하기까지 나를 포함한 거리의 행인들은 계속 고개를 돌려 서로를 보며 경계와 의심을 풀지 못하고 걸었다. 그런 모습을 보며 난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너희가 이겼다'

이 생각은 테러 다음 날, 토요일이 돼서 더욱 굳어졌다. 집 밖으로 웬만하면 나가지 말라는 파리 시 당국의 권고에도 아침에 일이 있어 기어이 오페라로 갔던 나는 어제에 연이은 충격을 받았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고 행인보다 경찰과 군인이 더 많았다. 가게들도 거의 닫혀 있었고 이 모든 걸 알고 있었다는 듯 날씨 또한 음산했다. 올랑드 대통령의 말대로 전쟁이었다. 얼마 없는 행인들과 지하철 안의 승객들도 서로가 서로를 두려워했다. 적의 얼굴을 모르는 전쟁에서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적이었다. 그렇게 두려움은 우리를 지배했다.

하지만 일요일 아침 마트에 들러 집 옆의 광장에 간 나는 내가 틀렸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평소에 자주 애용하던 광장 중앙의 카페 테라스는 만석이었고 아이들은 여느 때처럼 그 앞에서 뛰어놀고 있었다. 서빙하는 아저씨의 "저쪽 테이블 와인 한 잔"을 외치는 소리가 테라스를 넘어 구름 한 점 없는 하늘로 올라가는 듯했다. 많은 이들이 금요일 저녁 테라스에 앉아 있다 죽음을 당했지만, 지금 이 곳 카페 테라스에는 자리를 못 찾아 아쉬운 발걸음을 돌리는 이들로 넘쳐났다.

▲ 파리 테러가 일어난 지 사흘째 되던 15일, 파리 남부 말라코프 광장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파리 시민들 ⓒ주형원

늘 보는 일요일 아침 흔한 파리의 테라스 풍경이지만 오늘은 무언가 달랐다. 간신히 빈자리를 찾아 커피를 주문한 나는 조금 지나서야 무엇이 다른지 알 수 있었다. 이들은 단순히 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는 게 아니었다. 어제 하루 동안 파리 시 당국의 지침에 따라 스스로를 감금(?)해야만 했던 '파리지앵'들은 오늘은 보란 듯 테라스에 앉아 테러, 아니 두려움에 대한 말 없는 시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웃음 사이로 살아있음에 대한 죄책감과 긴장된 표정들이 비쳤지만, 이들은 그래서 더더욱 웃고 있었다. 정부의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죽은 이들을 애도하러 어제 레퓌블리크 광장에 그리고 참사 현장에 모였던 것처럼, 이들은 삶을 다시 소유하면서 보란 듯이 웃고 있었다. 오늘도 여느 때처럼 테라스에 앉아서 말이다. 결국 삶은 두려움보다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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