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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똥쑥의 기적, 홍위병 무서워 10년이나 쉬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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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똥쑥의 기적, 홍위병 무서워 10년이나 쉬쉬!"

[2015 노벨상 읽기] 윌리엄 캠벨, 오무라 사토시, 투유유 ③

기생충학계에는 오랜 농담, 혹은 격언이 있다.

"말라리아 백신을 만들면, 노벨상은 따 놓은 당상이다."

말라리아는 인간이 가장 오랫동안 탐구해온 질병 가운데 하나이며, 가장 일찍부터 효과적인 약품을 정제할 수 있었던 질병인 동시에, 가장 많은 사람을 희생시켜온 질병이기도 하다.

2015년 7월, 개발명 RTS,S. 상품명 모스퀴릭스(Mosquirix)가 유럽에서 사용 허가를 받았을 때 기생충학계는 기대에 부풀었다. RTS,S는 최초의 말라리아 백신일 뿐만 아니라, 인간 기생충에 대해서는 처음으로 개발된 백신이었기 때문이다. RTS,S는 많은 가능성을 열어주었지만, 동시에 30년이라는 개발 시간에 비해서는 비교적 만족스럽지 못한 성적을 거두었다. 보호 효과는 60% 안팎에 그쳤고, 한 번 접종이 아니라 여러 번 접종을 해야 하는 백신이었다. 말라리아가 유행하는 빈곤 지역에서는 적용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리고 2015년 10월 5일, 노벨 생리의학상이 말라리아 연구에 돌아갔다. 예상 외로 노벨상의 영예는 백신이 아닌 오랫동안 쓰인 치료제에 돌아갔다. 바로 현재 가장 널리 쓰이고 있으며, 가장 효과적인 말라리아 치료제 아르테미시닌(Artemisinin)을 개발한 공로를 인정받은 중국의 투유유였다.

지금까지 말라리아 치료제는 수없이 많았다. 17세기 유럽에 등장한 키니네는 인류가 정제하여 사용하기 시작한 가장 초기의 화약 요법제 가운데 하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개발된 클로로퀸 등 벌써 개발된 약품은 많이 있었다. 그렇다면 왜 아르테미시닌이 그토록 주목을 받았고, 노벨상까지 받을 수 있을까?

잠시 옛날이야기를 해보자. 말라리아 유행 지역에서 항말라리아제는 전쟁의 승패를 가를 만한 중요한 전쟁 물자였다. 특히 남아메리카 원산의 기나나무 껍질에서 추출한 키니네는 당시 가장 효과적인 항말라리아제였다. 제국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던 당시, 열대 지역으로의 진출을 꿈꾸던 열강들은 키니네 확보에 열을 올렸다.

다수의 식민지를 보유하고 있던 유럽 지역의 식물원들이 이 때 급속히 발전하던 것도 기나나무 등 전략적인 식물 자원을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동남아시아 지역에는 키니네 함량이 높은 기나나무를 대량으로 기르던 플랜테이션 농장들이 들어섰다.

이런 치열한 경쟁 속에 2차 대전이 발발했다. 2차 대전 초기 일본이 가장 많은 기나나무를 보유하고 있던 자바 섬을 먼저 공략하면서 연합군은 항말라리아제 수급에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이를 타개하고자 다수의 과학자들과 자금을 투자해 개발한 것이 바로 합성 항말라리아제 클로로퀸이었다.

키니네와 클로로퀸으로 대표되는 항말라리아제는 각각 19세기와 20세기 중반에 개발되어 지금까지 쓰이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약품 저항성이었다. 지나치게 널리, 오랫동안 쓰인 탓에 대부분의 말라리아 열원충들이 약품에 저항성을 보이고 있다. 그러던 중 발발한 베트남 전쟁은 항말라리아 개발 경쟁을 더욱 가속시켰다. 베트남은 심각한 말라리아 유행 지역이었고, 양쪽 진영 모두 전투보다도 말라리아로 더 많은 병사들이 희생되고 있었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7년, 중국은 문화 대혁명의 폭풍 속에 있었다. 그 과정에서 다수의 지식인과 과학자가 숙청되거나 유배되었지만, 누군가는 핵심적인 과학 기술 연구를 계속해서 수행해야했다. 그렇게 태동되었던 것이 아르테미시닌을 탄생시킨 523 프로젝트였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과학자들은 홍위병의 광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면죄부가 주어졌다.

ⓒcdc.gov

마침내 1971년, 강력한 항말라리아 효과를 지닌 아르테미시닌이 개똥쑥에서 발견되었다. 하지만 개똥쑥에서 바로 정제한 아르테미시닌 자체는 안정성이 낮았기 때문에 1975년까지 연구를 거듭하며 보다 효과와 안정성이 높은 약품을 개발해 냈다.

이렇게 혁혁한 공을 세운 523 프로젝트와 아르테미시닌이 서방 세계에 잘 알져지지 않았던 것은, 당시 중국의 연구자들이 서방 세계의 과학자들과 교류가 많지 않았던 때문이기도 했지만, 결정적으로 통제가 불가능해진 홍위병에게 연구 결과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기도 했다. 당시 연구자들은 눈에 띄지 않는 유리병에 샘플을 담아 계속해서 옮겨 다녔으며, 낡은 책에 연구 기록을 남겨 의심을 피하기도 했다.

이렇게 베일에 싸여 있던 아르테미시닌이 세계에 알려진 것은 1980년대 중국이 서방 세계와 접촉을 재개하면서부터였다. 중국 연구진은 영국의 웰컴 재단 연구진에게 아르테미시닌에 대한 정보 일체를 전달해 주었고, 이 때부터 아르테미시닌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다.

아르테미시닌 발견 초기에는 중국의 연구 환경이 워낙 열악했기 때문에 적절한 임상 시험이나 안전성 시험, 연구 프로토콜 등이 확립되어 있지 않았다. 이 약물을 상용화하기 위해서는 또 다시 넘어야할 산들이 많았다. 마침내 아르테미시닌을 기반으로 한 복합 항말라리아제가 상용화된 것은 1992년의 일이었다. 그리고 2006년부터 세계보건기구(WHO)는 아르테미시닌을 일차 약제로 사용할 것을 권고했다.

아르테미시닌의 노벨상 수상은 어떤 면에서 역설적이다. 아르테미시닌이 개발된 배경은 널리 퍼진 약물 저항성 때문에 효과가 없어진 기존의 항말라리아제를 대체할 필요가 있어서였다. 동시에 지난 교훈은 약품을 하나만 사용하는 것은 기생충에게 쉽게 저항성을 키워줄 수 있는 배경을 마련해주고, 이 때문에 한 가지 방법만 고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아르테미시닌이 아무리 강력한 항말라리아제라 하더라도, 빠르게 변화하는 말라리아 같은 기생충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저항성을 획득한다. 이미 미얀마(버마)와 태국(타이) 국경의 분쟁 지역에서는 아르테미시닌 저항성 말라리아가 관찰되고 있다. 그리고 모든 항말라리아제들이 그렇게 실패했었다. 강력한 하나의 도구에만 지나치게 의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르테미시닌처럼 강력한 약품의 등장은, 그런 교훈을 잊고 또 다시 하나의 약제에만 의존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게 만든다.

오늘날의 말라리아 퇴치 사업은 단순히 약물, 모기장, 환경 개선 중 하나의 분야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복합적으로 적용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예를 들어 보건소에 약과 진단 키트를 공급해 사람들이 감염 시 손쉽게 검사를 받고 약을 복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동시에, 모기장을 보급해 매개 모기에 노출되는 빈도를 낮추고, 주변에 모기가 번식할 수 있는 웅덩이 등을 줄여 모기의 개체수가 늘지 않도록 조절하는 방식을 한꺼번에 도입하는 식이다. 인간의 과학과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기생충의 진화를 압도적으로 앞지를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은 개발되지 않았다.

즉, 마법의 총알은 없다. 앞서 소개한 이버멕틴은 기적의 약으로 불리며, 사용된 지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생충에서 별 다른 저항성이 나타나지 않았지만, 만약 나타나게 된다면 그 특성은 빠르게 기생충 집단 안으로 퍼져나갈 것이다. 그만큼 진화적 압력이 강하며, 저항성을 가진 개체들이 선택되기 좋은 까닭이다. WHO가 아르테미시닌의 강력한 항말라리아 효과를 인정하면서도, 다른 말라리아 약들과 꼭 섞어 써야 한다고 권고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지금 기적의 약, 마법의 총알로 보이는 약품을 개발했다고 해서 그것이 끝이 아니다. 인간이 얼마만큼 오랫동안 그 우위를 유지할 수 있을지, 또 어떻게 필요한 이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과정은 노벨상을 받기 위해 연구자들이 걸어왔던 험난한 길만큼이나 고되고 어려운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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