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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만에 노벨상을 낳은 기생충, 도대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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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만에 노벨상을 낳은 기생충, 도대체 왜?

[2015 노벨상 읽기] 윌리엄 캠벨, 오무라 사토시, 투유유 ①

2015년 10월 5일, 일하던 중 갑자기 메시지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축하해, 기생충 노벨상 받았다는데." "기생충 노벨상 수상 축하!", "대세는 기생충!" 같은 메시지였다. 노벨상 수상 전화를 받은 기억은 없는데. 어리둥절한 마음에 곧바로 노벨상 기생충을 검색해 보았다.

놀랍게도 2015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들은 기생충 치료제 개발 분야에서 눈부신 성과를 이룬 분들이었다. 노벨상은 선배 기생충 연구자들이 받았는데 왜 내가 축하를 받고 있는 건지 갸우뚱 하기는 했지만, 그만큼 지금까지 소외 받고 있던 기생충 연구에도 볕들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 보내온 축하로 생각하기로 했다.

이번 노벨 생리의학상은 윌리엄 캠벨 미국 매디슨 드루 대학교 교수, 오무라 사토시 일본 기타사토 대학 교수, 투유유 중국전통의학연구원 교수가 수상했다. 캠벨과 오무라는 강변사상충 등 다양한 선충류 및 기생충 관련 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아버멕틴(Avermectin)'을 개발한 공로로, 투유유는 현재 가장 효과적인 말라리아 치료제인 '아르테미시닌(Artemisinin)'을 개발한 공로로 수상하게 되었다.

노벨 생리의학상이 기생충 관련 연구에 돌아간 사건은 많은 사람에게 의외로 받아들여졌을지도 모르겠다. 특히 기생충은 너무도 지난 세기 이야기라 노벨상 같은 대단한 상과는 별로 연관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20세기 초반만 하더라도 기생충은 노벨상으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기생충에 대한 직간접적인 연구를 통해 노벨상을 수상한 것도 다섯 번이나 된다.

ⓒnobelprize.org

1902년에는 영국의 로널드 로스가 말라리아가 모기를 통해 전파된다는 것을 밝혀낸 공로로 수상했다. 1897년 로스는 인도에서 조류 말라리아를 연구하며 얼룩날개모기가 말라리아 병원체를 옮긴다는 사실을 밝혔다. 모기를 해부해 위 벽에 있는 말라리아를 찾아낸 1897년 8월 20일 로스는 "운명의 천사가 마침내 내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는 일기를 남겼다. 그는 말라리아가 모기를 통해 전파된다는 것을 밝혀내고자 "이마와 손에서 흐르는 땀으로 현미경 나사가 녹이 슬고 마지막 남은 접안경마저 조각날 때"까지 현미경을 들여다보았다.

물론 로스의 공도 컸지만 당시 이탈리아의 말라리아 학 연구자 지오바니 바티스타 그라시도 말라리아 연구에 많은 기여를 했다. 무엇보다 인간 말라리아 역시 모기를 통해 옮겨진다는 사실을 밝혀낸 사람도 그였다. 하지만 이탈리아와 영국 그리고 다른 나라의 여러 가지 정치적 상황과 알력 때문에 로스가 단독 수상을 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과학 연구가 제국의 힘을 과시하는 정치적 도구로 사용된 어두운 역사의 일부였다.

1907년에는 프랑스의 찰스 루이스 알퐁스 라브랑이 말라리아의 병원체 열대열원충(말라리아를 일으키는 기생충)을 발견했다. 발견은 1880년 11월 6일 아침 알제리에서 로스보다 빨랐으나, 연구 업적이 초기에 학계 내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해 수상이 늦었다. 오늘날 연구자들은 당시 라브랑의 연구를 재현해 보려 노력했지만, 당시 그가 쓰던 현미경의 배율은 너무 낮아서 보고 내용에 필요한 배율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라브랑의 관찰력이 얼마나 날카로웠는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관찰력과 그림 실력은 비례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1880년 11월 23일, 라브랑은 발견 내용을 프랑스의학학회에 보고서로 제출했으나, 라브랑의 그림 실력이 너무도 끔찍했던 탓에 거센 반발을 마주해야 했다. 더불어 당시 말라리아 학계를 주도하고 있던 이탈리아 측 연구자도 딴죽을 걸기 시작했다. 라브랑의 연구가 말라리아의 원인체임을 인정받는 데는 6년이라는 시간이 더 걸렸다.

1926년에는 요하네스 피비게르가 스피롭테라 카시노마(Spiroptera carcinoma, 현재 학명은 Gongylonema neoplasticum인 악구충과 기생충)이 위암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공로로 수상했다. 당시 감염성 요인으로 인한 암 발병 가능성이 주목 받고 있었지만, 피비게르의 연구는 그 추측에 결정적인 한 방을 날려준 연구였다.

피비게르의 노벨상 수상은 노벨 생리의학상의 오점, 혹은 거대한 실수로 불리기도 한다. 후속 연구에서 기생충이 위암을 유발한 것이 아니라 비타민 A 결핍에 의한 것이라 밝혀졌기 때문이다. 1919년 피비게르는 쥐에게 기생충을 감염시켜 위암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20년이 넘는 후학들의 재현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해당 기생충이 암을 유발한다는 점은 밝혀지지 않았고, 피비게르가 실험 결과를 잘못 분석한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 때문에 피비게르의 수상은 노벨상의 오점이자 실수로 언급되지만, 흥미로운 점은, 이후 그의 연구를 기반으로 시작된 연구들을 통해 실제로 다양한 기생충들이 암을 유발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는 점이다. 스피롭테라의 가까운 친척인 스피롭테라 루피(Spiroptera lupi)는 개에 기생하며 식도암을 유발한다. 한국에서도 많은 감염자들이 있는 간흡충 역시 담도암을 유발하는 심각한 발암 물질이다. 그리고 마침내 2005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헬리코박터균 감염이 위암의 주요 원인임을 밝혀낸 베리 마셜과 로빈 워렌에게 돌아갔다.

1927년 노벨상을 수상한 율리우스 바그너 야우레크의 연구는 한층 더 기묘하다. 노벨상 수상 이유를 보면 말라리아 감염을 통해 신경성 매독을 치료하는 방법을 개발했다고 적혀 있다. 즉 일부러 매독 환자에게 말라리아를 감염시켜 본 연구로 노벨상을 받았다는 의미다. 사람들을 일부러 병에 걸리게 하는 것으로 대체 어떻게 상을 받는단 말인가?

1940년대 이전, 항생제가 없었던 시절 매독은 천형이었다. 특히 신경계를 침범한 매독은 뇌를 손상시켜 운동 장애와 발작 등을 일으켰다. 신경계를 침범당해 운동 장애가 일어난 환자들은 정신병원 등에 강제로 감금 당한 채 죽음만을 기다리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매독균이 고열에 매우 취약하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 되었다.

하지만 전자레인지도 없던 시절에 환자의 체온을 어떻게 40도까지 올릴 수 있단 말인가. 바로 그때 혜성 같이 등장한 것이 바로 말라리아였다. 1917년 야우레크는 환자들에게 비교적 가벼운 증상을 일으키는 삼일열 말라리아 종을 주입해 고열을 유도했다. 환자들은 상태가 크게 호전되거나, 적어도 더 나빠지지는 않았다. 당시 전 세계에 퍼져 있던 매독 감염자들이 필연적이고 고통스러운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 공로는 야우레크와 말라리아에 있었다.

1948년, 폴 뮐러는 다양한 질병 매개 곤충에 효과적인 살충제 DDT를 개발한 공로로 노벨상을 수상했다. 지금은 악의 축으로 몰리고 있지만, 본래 적절한 방법으로 사용되었던 DDT는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했다. 아마도 가장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한 화합물일지도 모르겠다.

1940년 뮐러는 특허번호 #226180으로 스위스 특허청에 염소화탄화수소 살충제를 등록했다. 지금 DDT로 알려진 물질이었다. 이 물질은 실내에서 잔류 기간이 6개월이나 되어 집 안에 들어온 모기나 기타 질병 매개 곤충을 효과적으로 죽일 수 있었으며, 인체 독성이 매우 낮았으며, 생산 가격은 그보다 더 낮았다. 말라리아와 곤충 매개 질병이 유행하는 빈곤 지역에는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었다.

DDT의 등장으로 세계보건기구(WHO)와 각 국가들은 드디어 말라리아를 박멸시킬 수 있겠다는 희망에 부풀어 세계 최초로 전 세계를 아우르는 세계 말라리아 퇴치 프로그램을 발족했다. 물론 생물의 적응과 진화, 즉 살충제 저항성의 힘을 간과한 프로그램은 처참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지만, DDT는 세계 보건의 방향을 바꿔 놓을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물질이었다.

그리고 수상자는 아니지만 남아메리카의 주요 기생충 질환인 샤가스 병의 병원체와 한살이를 혼자 힘으로 밝혀낸 카를로스 샤가스 역시 1913년과 1921년 유력한 노벨상 수상 후보로 올랐었다.

1950년대 이전은 기생충학의 황금기, 그 중에서도 말라리아의 황금기였다. 말라리아 관련 연구로만 노벨상이 세 번이나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생충 관련 노벨상이 주어진 1948년 이후 60여 년 만에 다시 기생충 관련 연구에 상이 주어졌다. 다시 기생충의 황금기가 돌아오는 것일까? 사양학문으로 불리는 기생충학에도 다시 볕들 날이 돌아올까?

오히려 이번 노벨 생리의학상은 그 반대 의미로 느껴졌다. 기생충의 생태와 한살이, 효과적인 퇴치 방법과 약물, 경험들이 쌓여 왔지만 여전히 기생충 연구 그리고 기생충에 감염되어 있는 사람들은 소외받고 있었다는 의미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생충 약품 개발에 노벨상이 주어진 것은 지금의 상황을 개선하고, 소외 받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관심이 주어져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이미 60여 년 전부터 노벨상을 여러 번 받을 만큼 뛰어난 연구와 개발들이 있었지만, 그 현실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씁쓸한 방증이기도 하다.

그 많은 업적들에도 불구하고 2013년 기준으로 매년 말라리아로 인해 58만4000명이 목숨을 잃었고, 1억9800만 명이 감염되었다. 아버멕틴으로 치료할 수 있는 기생충 감염증들, 즉 소외열대 질환들은 여전히 세계 149개국에서 14억 명을 감염시키고 있다. 이번 노벨 생리의학상이 주어진 아르테미시닌과 아버멕틴 역시 1980년대 초반 상용화되어 20여 년 넘게 널리 사용되어온 약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수십억 명이 질병에 감염되어 수십만 명이 사망하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리고 그런 질병과 약물에 노벨상이 주어졌다는 점에서 우리는 어떤 것을 생각해야 할까. 일본이 과학 분야 노벨상을 휩쓸고, 중국의 여성 과학자가 최초로 노벨상을 수상했다는 것도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그것이 노벨상을 수여한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아닐 것이다. 그 놀라운 과학적 성과와 업적들에도 불구하고 세상, 그리고 우리 주변에는 그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이 수 없이 많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기억해 주었으면 하는 이유일 것이다.

읽을거리

서민(단국대학교 교수) 정준호(영국 런던 대학교 위생열대의학대학원 기생충학 석사), 이 두 기생충 연구자 덕분에 우리는 대중의 눈높이에서 읽을 만한 기생충 책을 여럿 가지게 되었다. 기생충을 둘러싼 쉽고 짧은 소개는 <과학 수다 2>(사이언스북스 펴냄)의 2장 ‘기생충’이 좋다. 서민과 정준호 두 기생충 연구자 겸 애호가가 기생충에 대한 애정을 아낌없이 보여준다.

기생충의 매력에 좀 더 흠뻑 빠지고 싶다면 <서민의 기생충 열전>(을유문화사 펴냄)과 <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후마니타스 펴냄)을 권한다. 정준호가 옮긴 로버트 데소비츠의 <말라리아의 씨앗>(후마니타스 펴냄)은 투유유에게 노벨상을 안겨준 말라리아를 중심으로 기생충/전염병과 인간/사회의 관계를 폭넓게 통찰할 수 있는 명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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