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건이 준 충격 때문이었는지 1964년 6월 회충 박멸 등을 목표로 한국기생충박멸협회가 창립되었습니다. 그리고 80%가 넘던 회충 감염률은 계속해서 떨어져 1990년대에는 0.1% 이하로 떨어졌죠. 지금 회충 감염률은 0.03% 이하로 거의 박멸 수준입니다. 세종, 영조와 같은 왕은 물론이고 한 시대를 풍미한 미녀 황진이도 피할 수 없었던 회충은 이렇게 사라졌죠.
그러나 여전히 회충을 비롯한 기생충은 공포의 대상입니다. 2005년 10월, 중국산 김치 또 국산 김치에서 회충 알이 발견되면서 한바탕 난리가 났었죠. 전국 식당에 붙은 "우리 식당은 국산 김치" 벽보는 그 난리 법석의 흔적이죠. 요즘도 때만 되면 전 가족이 구충제를 챙겨 먹는 이들도 드물지 않아요.
▲ 영화 <연가시> 포스터. ⓒyeongasi2012.interest.me |
그런데 여기 '기생충을 사랑한다'고 당당히 고백하는 두 남자가 있습니다. 말로만 그러는 것도 모자라서 시간차를 두고서 <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후마니타스 펴냄) 또 <기생충 열전>(을유문화사 펴냄)이라는 달달한 제목의 책까지 펴냈습니다. 그러고도 모자라 언론을 통해서 기생충 사랑을 열심히 설파하죠.
바로 기생충학자 서민 단국대학교 교수와 정준호 씨(영국 런던대학 위생열대의학대학원 기생충학 석사)가 그 주인공입니다. 도대체 그들은 기생충의 무엇에 매혹되었을까요? "과학과 미래 그리고 인류를 위한 비전"을 찾는 <크로스로드>와 함께하는 '과학 수다'는 이번에는 이 특별한 남자들의 기생충 사랑 얘기를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서민 교수는 독자의 눈길을 잡아채는 필력도 모자라서 이제는 방송으로 진출해 특유의 입담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정준호 씨는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기생충 관리 사업을 담당하면서, 현장 연구를 병행 중이죠. 하지만 한반도와 아프리카의 먼 거리도, 바쁜 일정도, 기생충 사랑으로 이어진 이들의 인연을 막지 못했습니다.
책으로만 동지애를 공유해온 이 둘이 지난 10월 9일 서울 강남의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APCTP) 서울 분소 회의실에서 처음으로 만났습니다. 잠깐의 어색한 시간을 뒤로 하고 이들의 기생충 연가는 끝없이 이어졌죠. '철마다 구충제를 먹어야 할까? 김치 회충 알 파동의 진실은 무엇일까? 알레르기를 기생충으로 잡을 수 있다고? 더 센 기생충이 올 수도 있다고?'
이 질문에 두 기생충학자가 답했습니다. 기생충을 한 번도 좋아해 본 적이 없었던, 또 구충제깨나 먹었던 천문학자 이명현 '프레시안 books' 기획위원, 물리학자 김상욱 부산대학교 교수, 강양구 기자는 그저 두 사람의 기생충 사랑에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대화가 끝날 때 즈음에는 살짝 기생충에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여러분, 그 느낌 한 번 알아볼래요?
▲ <기생충 열전>의 저자 서민(왼쪽), <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의 저자 정준호(오른쪽). ⓒ프레시안(손문상) |
기생충과 사랑에 빠지다
강양구 : 오늘은 기생충의 세계를 서민, 정준호 선생님과 함께 둘러볼 예정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 자리를 준비하면서 많이 망설였어요. 애초 과학 수다의 취지가 과학자와 독자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자는 것인데, 두 분 선생님의 경우에는 그런 다리 자체가 필요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 <기생충 열전>(서민 지음, 을유문화사 펴냄). ⓒ을유문화사 |
강양구 : 그래서 이 자리에서는 두 선생님께서 책에서 미처 하지 못한 얘기 또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얘기를 자유롭게 얘기하면 충분할 듯합니다. 그나저나 서민 선생님은 대한민국에서 제일 유명한 기생충학자죠? 최근에는 방송 출연도 자주 하시는 바람에 대중과 만나는 접점이 더 넓어졌습니다.
서민 : 부끄럽습니다. 여기서 오해 하나 풀고 갈게요. 언론에 자주 노출이 되는 바람에, 가끔 저를 놓고서 국내의 유일한 기생충학 박사 이렇게 소개하는 곳이 있어요. 기생충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이들이 200명이 넘는데, 정말로 잘못된 정보죠. 여기 있는 정준호 선생님만 하더라도 저보다 훨씬 더 훌륭한 연구자고요.
정준호 : 무슨 말씀이세요. 저야 말로 이제 겨우 석사 학위를 받은 처지에 기생충 연구자라고 자처하기 민망한 처지죠.
강양구 : 자, 여기가 겸손을 떠는 자리는 아니고요. (웃음) 좀 상투적이긴 하지만 두 분이 기생충학자로 입문하게 된 계기를 얘기하면서 대화를 시작하면 어떨까요?
이명현 : 다시 질문을 바꾸면, 어떤 계기로 기생충과 사랑에 빠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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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양구 : 이런 사진에 매혹되는 일이 흔한 일은 아닌데….
정준호 : 정말입니다. 그리고 진짜 별 생각 없이 기생충학을 선택했어요. 그 때 마침 대학을 영국에서 다니고 있었던 것도 운이 좋았죠. 한국도 그렇지만 기생충학은 대부분 의과 대학에 포함되어 있어서, 저처럼 생물학과 출신이 진입하기가 쉽지가 않거든요. 그런데 제가 다니던 학교(런던 대학교)의 경우에는 기생충학을 연구하는 별도의 과정이 있었습니다.
서민 : 아마 정준호 선생님과 제가 한 세대 정도 차이가 나죠? 저는 1985년에 대학에 입학했어요. 이미 그 때는 한국의 기생충 감염률이 10% 이하로 떨어질 때입니다. 그러니까 이미 한국의 기생충은 멸종 단계에 들어선 상황이었죠.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도 기생충을 연구하는 선생님, 선배들을 보면서 궁금했어요. 도대체 저분들은 기생충을 가지고 무슨 연구를 할까, 이런 의문이죠.
솔직히 말하면, 의과 대학을 다니면서 임상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특히 외과 치료가 필요한 환자를 치료하는 게 무섭더군요. 사람의 생사를 좌우하는 일에 평생을 바칠 생각을 하니 부담스럽기도 했고요. 그런 참에 기생충학을 공부하면 그런 부담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웃음)
마침 기생충학을 공부하는 선생님께서 이렇게 권했어요. '의대 출신 중에 기생충학을 공부하겠다는 사람이 없으니 너라도 해라.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변 검사 하는 그런 곳이 아니다' 이렇게요. 사실 그 때는 그 말을 믿지 않았었는데, 실제로 기생충학을 공부해보니 정말로 변 검사만 하는 곳은 아니더군요.
아무튼 지금 생각해도 스스로 으쓱하죠. 그 어린 나이에 어떻게 이런 멋진 선택을 할 수 있었는지…. (웃음)
엄마 뱃속 아기는 왜 기생충이 아닐까?
김상욱 : 이제 본격적으로 기생충 얘기를 해볼까요. 도대체 기생충이 뭔가요?
▲ 서민 교수. ⓒ프레시안(손문상) |
기생충이 숙주에게 빌붙어 있는 기간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주 잠깐 빌붙어 살더라도 기생충은 기생충인 거죠. 그러니까 백수는 부모든, 형제든, 애인이든 같은 종인 다른 사람한테 의존해서 살아가잖아요. 그러니 기생충의 정의에 부합하지 않죠. 앞으로 백수를 놓고서 "기생충 같은 놈아" 같은 욕은 안 했으면 좋겠어요. (웃음)
강양구 : 책에서는 그런 맥락에서 "태아도 기생충은 아니다"라고 얘기했죠?
서민 : 맞습니다. 사실 태아는 기생충의 특징을 고스란히 지녔죠. 일정 시기, 열 달에 가까운 기간 동안 엄마가 영양을 충분히 공급받든 말든 태아는 자기 먹을 것은 우선적으로 챙겨 가니, 숙주인 엄마에게 피해를 입히죠. 하지만 태아도 엄연히 인간, 즉 호모 사피엔스니 서로 다른 종의 생물체와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기생충의 정의에는 맞지 않죠.
이명현 : 서민 선생님은 기생충을 최소한 핵막이 있는, 진핵생물(eukaryote)로 한정시켜 놓았어요. 기생충과 행동 양식이 같더라도, 세균(박테리아)이나 바이러스 같은 미생물은 기생충이 될 수 없다는 거죠. 그런데 정준호 선생님은 기생충을 좀 더 넓게 정의한 것 같더군요.
정준호 : 기생충은 정의하는 학자마다 조금씩 다른 것 같아요. 일반적으로 기생충을 다세포 생물 이상으로 정의합니다. 그런데 때로는 바이러스나 세균까지 기생충으로 간주하기 합니다. 심지어 일부 학자는 뻐꾸기조차도 기생 생물로 봅니다. 알을 까놓고 다른 새들이 길러줘야 성장을 할 수 있으니까요. 뻐꾸기를 영어로 'brood parasite'로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죠.
그러니 기생충의 정의는 굉장히 넓어질 수도 좁아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김상욱 : 만약 지구가 생명체라면 지구 입장에서는 인간을 기생충으로 볼 수도 있나요?
서민 : 칼 짐머가 <기생충 제국>(이석인 옮김, 궁리 펴냄)에서 그런 얘기를 했었죠. 하지만 저는 지구가 생명체라는 전제에 동의하지 않아서요.
정준호 : 인간이 지구에 해만 주는 건 아니죠. 죽어서 거름이 되니까요. 요즘은 방부 처리를 하니 그것도 아닌가요? (웃음) 한 가지 덧붙이자면, 윌리엄 맥닐이 <전염병의 세계사>(김우영 옮김, 이산 펴냄)에서 '거시 기생'과 '미시 기생'의 구분을 제안하기는 했어요. 기생 관계를 집단 수준 또 개체 수준에서 따로 접근해 보자는 시각인데요. 기생충의 정의와 관련해서 음미할 만합니다.
알레르기, 기생충으로 치료한다
강양구 : 이제 하나씩 흥미로운 대목을 짚어보죠. 이 자리에도 알레르기로 고생하는 사람이 둘이나 있는데요. 요즘 아토피 피부염, 알레르기 비염, 천식 등 알레르기로 고생하는 이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그런데 두 분의 책에서 모두 기생충과 알레르기의 관계를 놓고서 눈이 번쩍 뜨일 만한 지적을 해주셨어요. 기생충이 알레르기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 '위생 가설'은 의학자 사이에서는 널리 알려져 있는 것 같은데, 정작 일반인은 잘 모르죠.
서민 : 위생 가설은 1989년 영국의 데이비드 스트라칸이 형제 수가 많을수록 알레르기 질환 발병률이 낮다고 주장하면서 처음 등장했죠. 알레르기는 병원균에 덜 노출되어 생기는데, 형제자매가 많다 보면 그 중 한두 명은 밖에서 병원균을 묻힌 채 집에 오게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가족 전체가 병원균에 반복적으로 노출됨으로써 알레르기가 생기지 않는다는 거예요.
반면에 형제가 없으면 병원균에 노출될 기회가 적어져 알레르기 질환에 걸리기 쉽다는 겁니다. 처음에는 이런 주장에 반신반의하던 사람들이 추가적인 연구를 통해서 그의 가설에 일리가 있음을 확인했어요. 독일이 통일이 되었을 때, 더러운 동독과 깨끗한 서독의 알레르기 질환 빈도를 조사했더니 예상과 달리 서독이 훨씬 높았어요.
알레르기 질환이 환경오염 때문에 생기는 게 아니라는 위생 가설을 뒷받침하는 예였죠. 더러울수록 알레르기 질환에 덜 걸린다, 이런 위생 가설에 자극받은 기생충학자들이 기생충과 알레르기의 관계를 연구하기 시작한 거죠. 실제로 기생충이 박멸된 나라에서는 알레르기 질환이 많은 반면 베네수엘라나 에콰도르처럼 기생충이 많은 나라에서는 알레르기가 드뭅니다.
강양구 : 저는 A형 간염과 알레르기 질환의 관계에 대한 연구 결과는 접한 적이 있었어요. A형 간염은 분변에 묻은 바이러스가 다시 입으로 들어오면서 전파가 되거든요. 그러니 위생 불량하고, 흙에서 뒹굴 일이 많았던 시절에 많이 걸렸었죠. 그런데 A형 간염 항체가 있는 경우에 즉 A형 간염에 면역력이 있는 경우 알레르기 질환이 낮다는 거예요.
그런데 알레르기와 기생충의 관계는 두 선생님의 책을 보면서 처음 접했습니다. 실제로 연구 성과도 있는 것 같던데요.
서민 : 기생충학자 입장에서는 위생 가설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인류는 오랜 세월 동안 몸 안에 기생충을 품고 살았어요. 우리 몸을 지키는 파수꾼인 면역계는 이 기생충을 공격하기도 하고, 감시하기도 하면서 진화해 왔죠.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기생충이 없어진 거예요. 면역계로서는 할 일이 없어진 거죠.
이렇게 할 일이 없어진 면역계가 과민해져서 비슷한 것만 봐도, 나중에는 비슷하지도 않은 것들에 대해서도 반응을 하게 된 거죠. 그런 반응이 기관지에서 일어나면 천식, 피부에서 일어나면 아토피 피부염, 코 점막에서 일어나면 알레르기 비염으로 나타나는 거죠. 그럼, 이런 알레르기 질환을 치료하거나 완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김상욱 : 알레르기를 없애려고 기생충을 몸속에 넣는 건 좀….
서민 : 실제로 그런 사람이 있어요. 도쿄 대학의 후지타 고이치로는 자신의 장 속에서 촌충을 3년이나 길렀다고 합니다. 알레르기 질환도 완화하고 살도 뺄 수 있는 방법이긴 하지만 이걸 일반인에게 강요할 순 없죠. (웃음) 그래서 기생충을 먹는 대신 기생충의 추출물을 주사해 알레르기를 억제하는 방법을 궁리 중입니다.
강양구 : 책을 보니, 자가 면역 질환 중에서 크론씨병 치료에 기생충을 이미 이용한다면서요?
서민 : 자가 면역 질환은 면역계가 완전히 미쳐서 이젠 우리 몸의 특정 부분을 공격하는 질환입니다. 이 중에 장에 해를 끼치는 크론씨병이 있는데요, 이 경우에는 몸속에서 두세 달 정도 살다가 금방 빠져나가는 돼지편충을 감염시켜 증상의 호전을 본 사례가 여럿 있어요. 실제로 환자에게 돼지편충 알을 먹이는 요법은 널리 시행되고 있습니다.
김상욱 : 돼지편충 알을 어떻게 먹나요?
서민 : 그냥 마시는 거죠. (웃음) 일단 들어온 알은 몸속에서 잘 부화합니다. 또 돼지편충의 부작용은 사실상 없고요. 유일한 걱정은 돼지편충을 통해서 미지의 돼지 바이러스 등이 인간에게 전파되는 것인데, 그럴 가능성은 아주 낮죠. 우리나라에서도 한 열댓 명 정도가 돼지편충 알로 치료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돼지편충 알을 만드는 게 쉽지 않아서 상당히 고가예요. 이렇게 연구를 계속하다보면, 앞으로 알레르기 질환 치료에 기생충이 역할을 할 수 있는 날이 오리라고 기대합니다.
정준호 : <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에서 위생 가설을 소개하긴 했지만, 저는 아직 지켜보는 입장입니다. 위생 가설이 이론적으로 굉장히 그럴듯하긴 합니다만, 일단 역학 조사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이잖아요. 그런데 이런 역학 조사를 반박하는 사례도 눈에 띄거든요. 당장 아프리카에서 의외로 알레르기 질환 환자가 많아요.
서민 : 아프리카에 알레르기 질환 환자가 많다고요?
강양구 : 아까 A형 간염 항체를 가진 이들이 알레르기 질환에 덜 걸린다는 연구를 언급했잖아요? 그게 이탈리아 연구인데요. 그 연구 이후에 정작 A형 간염 항체를 가진 이들이 많은 아프리카에서는 천식과 같은 알레르기 질환이 줄기는커녕 오히려 늘고 있다는 반박 연구 결과가 나오기도 했었죠.
정준호 : 네, 천식이 많아요. 아프리카에서 천식이 걸리는 이유가 집에서 나무를 때서 그래요. 환기가 전혀 안 되는 집에서 매일 나무를 때니까 폐나 기관지가 안 좋아질 수밖에 없어요. 더구나 아프리카 같은 곳은 알레르기 검사 비용이 비싸서, 환자 자체가 축소되어서 보고가 되었을 수도 있고요. 그런 점에서 위생 가설은 좀 더 검증을 해야 하지 않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단, 저도 기생충과 알레르기 질환의 관계를 규명하는 연구가 인류에게 이바지할 수 있는 매력적인 연구라는 걸 부정하진 않습니다. 생각해 보면, 기생충을 이용해서 알레르기 질환을 치료한다는 발상은 인간의 몸을 둘러싼 생태계의 균형을 회복하는 것과 다르지 않거든요. 오랫동안 기생충과 인간은 동반자였는데, 최근에 일시적으로 그 균형이 깨진 거니까요.
▲ 정준호 씨. ⓒ프레시안(손문상) |
기생충 구충제, 먹어야 할까?
서민 : 이어서 얘기하자면, 우리나라는 항생제 남용도 심각하지만 기생충 구충제 남용도 정말로 심각합니다. 지금 우리나라 도시 사람은 구충제를 먹을 이유가 전혀 없거든요. 왜냐하면 사실상 기생충에 감염될 가능성이 거의 없으니까요. 그러니 기생충 구충제는 정말로 심리적 위안 역할만 하는 거죠.
김상욱 : 우리나라 사람은 회를 좋아하니 먹어야 한다고 하잖아요.
서민 : 민물고기, 게 등을 먹어서 걸리는 기생충은 간디스토마나 폐디스토마예요. 그런데 디스토마는 회충을 잡는 종합 구충제(알벤다졸)로는 못 잡아요. 디스토마 약(디스토시드)을 따로 먹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회 좋아한다며 흔히 먹는 '회충 약'을 먹고서 안심하는 건 정말로 난센스죠. 결론은 기생충 감염 증상이 없으면 구충제는 먹을 필요가 없어요.
정준호 : 고래 고기를 먹고 걸리는 고래회충은 알벤다졸, 디스토시드 다 안 들어요. 그건 내시경으로 보면서 직접 뽑아낼 수밖에 없습니다.
김상욱 : 굉장히 중요한 정보네요. (웃음)
강양구 : 돼지고기는 어떤가요? 돼지고기는 바짝 익혀 먹어야 한다고 유난을 떠는 이들이 있습니다만.
서민 : 그게 다 갈고리촌충 때문인데요. 정확히 말하면 갈고리촌충의 유충인 유구낭미충 때문이죠. 갈고리촌충은 위험하지 않은데 유구낭미충은 피부, 근육은 물론이고 눈이나 뇌로도 침범할 수 있거든요. 얼마나 악명이 높으면 유충인데도 '갈로리촌충 유충'이라고 하지 않고 '유구낭미충'이라고 따로 이름을 붙였겠어요.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나라 돼지에서 유구낭미충을 보는 건 불가능해요. 우리나라 돼지는 더 이상 사람의 변을 먹지 않아서 갈고리촌충 알이나 그 유충에 감염될 가능성이 없을뿐더러, 우리나라가 워낙 검역을 철저히 하는 터라 그런 돼지는 검역 과정에서 걸러지거든요. 유구낭미충에 감염된 돼지가 국내에서 발견된 건 1990년이 마지막이었어요.
그러니 삼겹살을 먹을 때 탈 때까지 바짝 익혀먹을 이유가 없는 거죠. 당장 저부터 여럿이 삼겹살을 먹을 때, 대충 익혀서 먹습니다. (웃음) 그럼, 쇠고기 육회는 어떨까요? 소에 사는 민촌충의 유충은 갈고리촌충 유충과는 달리 사람에게 증상을 일으킨 예가 없어요. 그러니 쇠고기 육회를 먹을 때는 몸을 사릴 이유가 없습니다.
▲ 갈고리촌충 머리 부분의 전자현미경 사진. ⓒ출처 : navercast.naver.com |
강양구 : 선생님과 가족도 구충제는 전혀 안 드시겠군요.
서민 : 당연하죠. 저는 오히려 기생충이 몸속으로 들어와 줬으면 하는데, 전국 회충 감염률이 80% 가까이 가던 때에도 기생충에 감염된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웃음)
정준호 : 저 역시 마찬가지인데요. 기왕에 기생충 약 얘기가 나왔으니 한 마디 덧붙일게요. 정말 앞에서 언급한 알벤다졸, 디스토시드 두 알이면 그 많은 기생충을 거의 다 없앨 수 있거든요. 정말로 굉장한 효과죠. 더 놀라운 것은 여전히 매년 엄청난 양이 쓰이는 것 같은데, 부작용도 없고 심지어 기생충의 내성도 없다는 겁니다.
서민 : 그런 점에서 기생충은 정말로 착한 애들이에요. 내성이 생길 법도 한데…. 기생충은 몸도 크고 수명이 길어서 세균이나 바이러스처럼 변이가 일어나기 쉽지 않아서 그럴 거예요.
정준호 : 정말로 다행스러운 일이죠. 그런데 한 편으로는 걱정도 됩니다. 사실 지금 존재하는 기생충 약의 효과가 너무 좋기 때문에 다른 기생충 약을 개발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만에 하나 지금 존재하는 기생충 약이 먹히지 않을 경우에는 대안이 없는 거예요. 만약에 기존의 기생충 약이 들지 않는 센 놈이 등장하면 어떻게 할 거예요?
강양구 : 영화 <연가시> 같은 일이 일어나겠죠. (웃음) 그런데 정준호 선생님은 지금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기생충을 관리하는 사업을 진행 중이잖아요.
정준호 : 가슴이 아파요. 아까 서민 선생님도 기생충에 안 걸린다고 푸념을 하셨는데, 저 역시 마찬가지예요. '나라도 걸려야지' 하면서 빅토리아 호수에서 잡은 회도 막 먹고 그러는데 걸리지 않아요. 모기에 물려도 말라리아도 안 걸리고요. 기생충에 한해서는 저주받은 몸인 것 같아요. (웃음)
한국 같은 경우에는 기생충이 위험이 많이 과장되어 있지만, 탄자니아를 비롯한 아프리카에서는 기생충 때문에 죽는 사람이 많아요. 기본적으로 영양 상태가 안 좋기 때문에 발육 상태가 안 좋아진다든지 다른 합병증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많죠. 그런 곳에서 기생충의 위험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서민 : 그런데 한국은 기생충으로 죽기는커녕 걸리는 사람도 없거든요. 그런데 도대체 기생충에 대한 증오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정말로 궁금합니다. 우리 몸속에는 세균이 많아요. 그런 세균을 가지고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세균과 기생충의 차이는 좀 더 진화한 정도밖에 아니거든요. 대부분의 기생충은 생각만큼 해롭지도 않은데요.
ⓒ프레시안(손문상) |
기생충 김치 파동의 진실
강양구 : 기생충에 대한 대중의 거부감이 크다 보니 해프닝도 있었죠. 2005년 10월에 중국산 김치 또 국산 김치에서 회충 알이 나와서 난리가 난 적이 있었죠.
사실 그 일을 놓고는 뒷얘기가 있어요. 아무개 의원실에서 그 보도 자료를 준비 중에 제가 먼저 그 사실을 보도할 기회가 있었거든요. 처음 얘기를 들었을 때 기자 감각에 꽤 큰 건이라고 욕심이 났었죠. 실제로 난리가 났었고요. 그런데 정작 저는 손이 모자라서 특종을 양보(?)했는데요. 나중에 서민 선생님의 글을 읽고서, 특종을 놓치길 잘했다 생각했었습니다.
서민 : 저를 포함한 기생충학자들이 제대로 대응을 못한 일이었죠. 한국기생충학회 차원에서 "별 일 아니다" 하고 쐐기를 박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거든요. 그 때 김치에서 발견한 회충 알은 DNA 검사 결과 돼지회충 알이었어요. 배추를 키울 때 돼지 똥을 비료로 주기도 하는데 그 과정에서 묻은 거죠. 돼지회충 알이 회충알과 똑같이 생겼거든요.
돼지회충 알은 사람 몸에서 부화할 가능성이 아주 적죠. 그리고 설사 사람 회충 알이라고 하더라도 그 회충 알이 사람 몸에서 부화할 가능성도 낮아요. 1970년대까지 김치가 회충의 중요한 감염 경로이긴 했지만, 막 김장을 한 상태에서 그러는 것이지 회충 알이 김치 양념 속에서 오랫동안 살아 있을 수가 없거든요.
더구나 일의 순서도 거꾸로 됐죠. 회충 감염률이 갑자기 높아져서 원인을 조사하다 김치를 주목한 게 아니라 별다른 이유도 없이 김치를 뒤지다 보니 회충 알 몇 개가 발견된 것이니까요. 2004년 우리나라의 회충 감염률은 0.03%로 거의 박멸 수준이었는데, 회충 알 몇 개로 그렇게 호들갑을 떨 일이 아니었죠.
강양구 : 한 편에서는 유기농, 친환경에 열광하면서 기생충에 저토록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것도 앞뒤가 안 맞는 일이죠.
서민 : 그렇죠. 저는 유기농 먹을거리 열풍에 약간 부정적이에요. 유기농 먹을거리가 건강에 좋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그렇게 유기 농업이 활성화되어서 기생충이 나오는 상황은 좋겠다 싶어요. (웃음) 소똥, 돼지똥, 닭똥 등으로 퇴비 등을 만들어 이용하고 화학 농약을 쓰지 않은 유기농 먹을거리에 기생충이나 세균이 묻어 있을 가능성이 클 테니까요.
그러니 한편으로는 유기농 먹을거리에 열광하면서도, 그것에 기생충이나 세균이 더 많이 묻어 있을 가능성을 부정하는 건 앞뒤가 안 맞죠. 친환경, 유기농은 일반의 통념과는 달리 깨끗한 게 아니라 더러운 겁니다. 그리고 그게 사실은 자연스러운 거고요. 김치의 회충 알 해프닝은 이런 현실이 반영된 거였죠.
정준호 : 방금 기생충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이라고 언급했는데, 실제로 '기생충 망상증'이라는 정신 질환이 있어요. 가끔 피부 사진을 첨부한 메일을 받아요. 기생충인지 확인해 달라고요.
서민 : 심각한 분들이 많아요. 어떤 사람은 연구실로 와서 다리에 기생충이 다닌다고 보여줍니다. 아무 것도 없어요. (웃음) 귀 사진을 동영상으로 찍어서 12분쯤 기생충이 지나간다며 봐줄 걸 호소하는 이도 있어요. 역시 아무것도 없죠. 심지어 순대에 붙은 힘줄, 대변의 이물질 등을 기생충이라고 우기기도 하고요.
우스갯소리입니다만, 우리나라에서 기생충이 치명적인 위험이 되는 경우는 기생충이 있다는 망상 때문에 병원을 가다가 교통사고를 나는 경우가 거의 유일해요. (웃음)
그런데 옛날 사람들, 조선 시대에는 회충을 비롯한 기생충 몇 마리 몸속에 가지고 있으면서도 다 자기 할 일 제대로 하면서 살았거든요. 책에도 썼지만 황진이 몸속에도 회충 몇 마리 정도는 필수였죠. 정말 인류 전체의 역사를 보면, 인류의 일부가 기생충과 동거하지 않은 시기는 고작 지난 40년 정도에 불과합니다.
▲2006년 발견된 조선시대 여성의 미라에서 참굴큰입흡충의 알도 나왔다. ⓒ을유문화사 제공 |
강양구 : 얼마 전에 <프레시안>에 실린 한의사 이상곤 선생님의 칼럼을 보니 영조도 몸속 회충을 다스리는데 평생 신경을 썼다더군요. 그런데 혹시 인류 진화의 역사 최초로 기생충 없이 사는 지난 40년이 혹시 큰 재앙의 부메랑이 되지는 않을까요? 너무나 급격한 변화가 부작용을 낳을 법도 합니다만.
서민 : 알레르기 질환이나 자가 면역 질환이 그 예 아닐까요?
정준호 : 최근에 양서류가 급감하는 이유가 항아리곰팡이 때문인데요. 이 항아리곰팡이 때문에 많은 양서류가 멸종 위기에 놓여 있는데, 그렇게 항아리곰팡이가 퍼지는 이유가 환경오염 때문에 기생충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기생충이 사라지면서 양서류의 항아리곰팡이에 대한 저항성이 떨어진 거예요.
그런 점에서 지금 전 세계에서 기생충을 박멸한 또 박멸하려는 시도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정말 불확실합니다. 생태계의 다양성 또 저항성을 유지하는데 기생충이 해왔던 긍정적인 역할을 부정하고 기생충을 너무나 억지로 없애려 하다가는 생각지도 못한 재앙을 낳을 수도 있어요.
서민 : 국민 1인당 회충을 수십 마리씩 갖고 있던 시절에야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요즘처럼 잘해야 한두 마리 있을까 말까 한 상태에서는 회충의 암, 수가 같은 사람의 몸속에 존재하는 일이 극히 드뭅니다. 아무리 하루 20만 개의 알을 낳을 수 있으면 뭐해요?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얼마나 슬픈 일이에요? 지금 진짜 문제는 '독거 회충'입니다. (웃음)
김상욱 : 이런 상황에서는 기생충학자가 기생충을 접하기도 쉽지 않죠? 기생충은 배양하기도 어렵죠?
정준호 : 기본적으로 몸속에서만 생존하기 때문에 배양이 어려워요. 체내랑 똑같은 환경을 만들고 유지하는 게 어려우니까요.
서민 : 그래서 기생충학자 사이에서는 기생충이 최고의 선물이죠. 얼마 전에도 다른 기생충학자에게 광절열두조충 3.5미터를 온전하게 뽑아서 표본을 선물로 드렸죠. 환자에게 기생충 약을 먹이고 설사약을 드리고 나서, 바가지에 대변을 받아오길 권했거든요. 광절열두조충이 안 끊어지고 예쁘게 나왔어요. (웃음) 선물로 받은 과학자도 정말로 좋아하시더군요.
(길이 3~10미터의 광절열두조충은 덜 익힌 연어, 송어를 먹을 경우에 감염되는 기생충이다. 알이 가득 찬 몸을 끊어 밖으로 내보내 번식한다. 하루 밥 한 숟가락의 영양분도 섭취하지 못하는 이 기생충은 그 길이에도 불구하고 몸속에 거의 해를 끼치지 않는다. 분자생물학적 연구 결과 우리나라, 일본의 광절열두조충은 일반적인 것과 다른 종으로 밝혀졌다.)
사람을 조종하는 기생충?
강양구 : 어렸을 때 에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를 인상 깊게 읽은 탓인지 고양이를 안 좋아합니다. (웃음) 그래서인지 고양이를 마지막 최종 숙주로 하는 톡소포자충 얘기가 흥미롭더군요. 특히 톡소포자충이 사람을 조종할 가능성을 언급한 대목이 흥미롭던데요. 톡소포자충 얘기를 해보죠.
ⓒ프레시안(손문상) |
고양이가 톡소포자충에 걸렸더라도, 1~2주 정도 후에는 면역력이 생겨서 더 이상 감염력이 있는 알이나 유충이 들어 있는 주머니를 내보내지 않아요. 그러니 키우는 고양이 때문에 톡소포자충에 감염될 가능성은 정말로 낮아요. 오히려 톡소포자충의 감염원은 유충이 들어 있는 주머니가 포함된 날고기나 채소입니다. 그러니 톡소포자충을 '고양이 기생충'이라고 부르는 건 오해죠.
서민 : 더구나 대부분의 사람은 톡소포자충에 감염이 되어도 감기몸살 정도를 앓다가 넘어가요. 우리나라 전 국민의 5% 정도가 톡소포자충에 감염이 되었지만 대부분 별 일 없이 넘어갑니다. 다만,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 환자나 스테로이드제 복용 환자처럼 면역력이 떨어진 경우에는 특소포자충이 뇌염이나 폐렴을 일으킬 수 있으니 조심해야죠.
그런데 이 톡소포자충에 기생충학자들이 관심을 쏟는 이유는 이것에 걸린 쥐의 이상 행동 때문이에요. 톡소포자충에 걸린 쥐는 고양이를 무서워하지 않게 됩니다. 정확히 말하면, 고양이 소변 등에 대해서 공포감을 갖지 않게 되죠. 기생충학자는 이것이 쥐의 뇌에 사는 톡소포자충이 최종 숙주인 고양이한테 가기 위해서 쥐를 조종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강양구 : 쥐만 조종이 가능한가요?
정준호 : 그게 기생충학자의 관심거리입니다. 톡소포자충에 걸린 인간이 정신분열증 발병 확률을 높인다는 주장, 또 성적으로 더 문란하다는 가설, RhD- 혈액형을 가진 사람의 교통사고 발생률을 증가시킨다는 연구 등이 있거든요. 이 대목은 앞으로 더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죠. 그런데 저는 약간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왜냐하면 톡소포자충은 단세포 기생충이라서 굳이 고양이 같은 최종 숙주로 가지 않더라도 (단성) 생식이 가능하거든요. 그러니까 톡소포자충이 쥐를 조종해서 굳이 고양이에게 먹히게 할 유전적인 이득이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톡소포자충이 쥐의 행동을 조종한다는 연구는 좀 더 검증을 해볼 필요성이 있을 것 같아요.
서민 : 아무튼 톡소포자충이 고양이를 탄압할 근거가 되지 못한다는 건 강조하고 싶군요. 정말로 우리나라 매스컴 제목 선정적으로 뽑는 건 알아줘야 해요. '살인 진드기'도 사실은 없죠. 단지 진드기를 매개로 하는 바이러스가 있을 뿐이죠. 참고로, 저는 (강 기자와 달리 고양이를 좋아합니다만) 애묘가가 아닌 개 세 마리를 키우는 애견가입니다.
이 기사도 "기생충을 탄압하면, 슈퍼 기생충이 나온다" 이런 식의 제목을 붙이면 많이 볼까요? (웃음)
강양구 : 자꾸 그러시면 제목을 정말로 그렇게 붙입니다. (웃음)
기생충, 유성 생식을 낳다?
이명현 : 생식의 진화에도 기생충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대목도 있었죠?
정준호 : 달팽이 중에서 원래는 암수가 한 몸에 있는 자웅동체라 짝 짓기를 안 하고 자가 수정을 하다가, 환경에 변화가 생기면 그 때야 유성 생식을 하는 애들이 있어요. 그런 달팽이가 서식하는 호수에다 기생충을 풀어놓고 그것이 있을 때와 없을 때를 비교해봤어요. 그랬더니 원래 무성 생식을 하던 달팽이들이 기생충이 들어오자마자 유성 생식을 하는 거예요.
유성 생식을 하면 유전자의 다양성이 커지기 때문에 개체군이 더 튼튼해집니다. 실제로 기생충을 풀어 놓은 달팽이 개체군이 그렇지 않은 개체군보다 생존율도 높았어요. 이런 연구 결과는 기생충의 존재가 진화에 있어서 유성 생식의 발현에 결정적인 영향을 줬을 가능성을 지지하죠.
ⓒ프레시안(손문상) |
영화 <연가시>가 떴을 때, 방송 인터뷰 요청이 많았어요. 왜냐하면, 국내에는 연가시 전문가가 없으니까요. 처음에는 횡설수설하다가 나중에는 정말로 '연가시 박사'가 되었습니다. 이건 사실 한국 기생충학계로서는 부끄러운 일이죠. 그리고 아까 정준호 선생님도 지적했습니다만, 걱정스러운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기생충이 거의 멸종 직전이라고 얘기했지만, 인간 기생충만 그렇거든요. 생물체 전체를 염두에 두면 기생충이 없는 생물이 없어요. 야생 쥐만 잡아도 기생충이 엄청나게 많아요. 그런 기생충이 어느 날 사람에게 전파될 수 있거든요. 예를 들어, 선모충만 해도 그래요. 원래는 야생동물 사이에서만 살던 선모충이 결국 사람으로 확산된 거예요.
예를 들어, 연가시는 번식을 위해서 최종 숙주인 곤충을 물가로 유인해 자살로 이끌어요. 영화에서도 그런 점이 부각이 되었죠. 하지만 일단 인간에게 감염되지 않고, 인간에게 감염되는 변종 연가시가 생길 가능성도 희박합니다. 기생충은 아까 얘기했듯이 변이가 쉽지 않을뿐더러, 우리는 사마귀나 귀뚜라미 같은 곤충을 날로 먹는 식습관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연가시 박사' 한두 명쯤은 있으면 좋겠어요. 사실 기생충 연구를 하다 보면, 저나 정준호 선생님 책에서 다루지 못한 재미있는 것들이 무궁무진하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의과 대학 중심으로 기생충 연구가 이뤄지다보니, 인간 기생충의 진단이나 치료 쪽만 부각되고 진짜 기생충 연구는 뒷전인 것 같아서 아쉽습니다.
강양구 : 그나마 국내의 인간 기생충 연구도 갈수록 축소되는 게 현실이라면서요? 기생충학자들 모임에 가면 쉰을 바라보는 서민 선생님께서 주문을 받는 등 아랫사람 노릇을 한다는 얘기를 읽고서 가슴이 아팠습니다. 여기 정준호 선생님 같은 젊은 연구자가 있어서 다행이긴 합니다만.
정준호 : 한국에서는 기생충학뿐만 아니라 기초 과학 전반에 그런 분야가 한두 개가 아니죠. 생물학으로만 좁혀서 봐도, 생태학도 분류학도 연구를 꾸준히 진행하는 분이 드물어요. 한국에서 기생충을 잡으면 분류부터 해야 하는데 분류할 학자가 없고 또 기생충이 생태계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알려면 생태학자가 필요한데 거기도 공백이니 한숨만 나오지요.
서민 : 2011년에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랠프 슈타인먼(1943~2011년)은 30년 넘게 피부, 장 등에 있는 수지상세포(Dendritic cell)를 연구했어요. 이 세포는 인체의 면역 반응을 일으키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슈타인먼이 처음에 이 세포를 연구할 때만 해도 주위 반응은 '왜?' 이런 회의적인 반응이었데요.
노벨상은 유행을 좇는다고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이렇게 한우물만 뚝심 있게 팔 때 비로소 받을 수 있는 겁니다. 지금 현장에서 기생충을 연구하는 일이 당장은 과학이나 의학의 발전 혹은 인류의 복지에 도움이 안 되는 한가한 일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런 연구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 예상치 못한 가치를 낳을 수도 있어요.
강양구 : 다른 나라는 어떤가요? 일본 같은 곳만 해도 현장 연구를 하는 기생충학자의 폭이 넓죠?
정준호 : 일본은 굉장히 두껍습니다. 열대 의학의 전통이 강해서 검색해 보면 아주 많은 연구 성과가 축적돼 있어요. 일본 도쿄에 가면 메구로 기생충 박물관이 있는데 훌륭하죠. 다만 일본 과학자는 일본어로 논문을 쓰기 때문에 우리를 비롯한 외국 과학자가 그 연구 성과를 확인하고 공유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중국도 엄청난 양의 논문이 나오고요.
이명현 : 일본, 중국은 자국 영토 내에도 열대 지방이 있으니 열대 의학의 전통이 강할 수밖에 없겠죠.
강양구 : 우리나라는 일단 (아)열대 기후대가 없을 뿐만 아니라 제국을 경영한 적도 없잖아요. 정준호 선생님께서 공부했던 런던 대학교도 애초 식민지 관료를 양성하는 곳이었고, 그곳의 열대 의학 전통이 강한 것도 그런 맥락일 것도 같고요. 일본, 중국도 마찬가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일본만 하더라도 애초 자기네 영토가 아니었던 오키나와를 포섭했고, 또 나중에는 우리나라 또 중국과 동남아시아의 일부를 병합하면서 자연스럽게 현지의 기생충, 전염병(감염병) 등을 연구할 필요성이 있었겠죠. 그런 맥락에서 (식민지) 현장 연구를 하는 전통도 확립이 되었고요. 그런 역사적 맥락도 한 번쯤 짚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정준호 : 확실히 그런 면이 있네요. 전 세계적으로 열대 의학이나 기생충학으로 유명한 대학이 위치한 곳을 보면 과거에 식민지를 경영했던 곳이거나 혹은 식민 지배의 거점에 위치해 있거든요. 영국도 그렇고 네덜란드, 프랑스, 인도, 브라질 또 홍콩 같은 곳도 기생충학이나 열대 의학으로 유명하거든요.
김상욱 : 북한은 어떤가요?
서민 : 얼마 전 탈북자 한 명이 배가 아프다고 해서 대장 내시경 검사를 해봤더니 편충이 31마리가 나왔어요. 기생충학을 전공하고 나서 그 동안 한 몸에서 가장 많이 본 편충이 2마리였거든요. 그 사람은 너무 배가 아파서 온 것이니까, 다른 탈북자의 몸에도 기생충이 있을 가능성이 크죠. 개인적으로 탈북자 입국할 때 기생충 검사 정도는 해주면 좋겠어요.
정준호 : 제가 알기로도 북한의 사정이 심각해요. 기생충학자들은 최근에 국내에서 (삼일열) 말리리아가 다시 유행하는 것도 북한에서 재유입된 것으로 판단합니다. 국제보건기구(WHO)는 북한에 매년 30만 명 정도의 말라리아 환자가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 있어요. 그 말라리아를 가진 모기가 휴전선을 넘어오지 말란 법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기생충학이 다시 살아나기 위해서라도 얼른 남북 관계가 개선되고, 통일이 되어야 합니다. (웃음)
서민 :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암울하죠.
말라리아, 달래는 게 최선이다
강양구 : 말라리아 얘기가 나온 김에 그 얘기를 좀 더 해보죠. 사실 WHO가 가장 걱정하는 전염병 중 하나가 말라리아잖아요. 우리나라야 뇌 조직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전신 종양을 일으키는 열대열 말라리아가 발생하지 않고 있어서 북한 또 남한에서 말라리아가 확산되어도 사망자가 있거나 그러진 않습니다만, 열대 지방은 심각하잖아요. 매년 200~300만 명이 죽죠?
서민 : 말라리아는 혈액 속 적혈구에서 헤모글로빈을 먹고 살아요. (헌혈할 때 말라리아 검사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최근 50년간은 말라리아의 가장 좋은 치료제가 클로로퀸이었어요. 그런데 이 약에 대해서 말라리아가 내성을 갖기 시작해서, 웬만한 지역에서는 쓰지도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어요. 또 다른 약(아르테미시닌)도 이미 내성이 나타나기 시작했고요.
강양구 : 말라리아가 정말로 심각한 문제인데, 우리나라도 이제 지구 온난화로 아열대 기후가 되면 열대열 말라리아가 유입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요?
ⓒ프레시안(손문상) |
김상욱 : 이주 노동자 같은 변수가 있을 수 있지 않을까요?
정준호 : 말씀을 듣고 보니, 그런 예가 있긴 하군요. 크루스 파동편모충이 일으키는 샤가스 병이 남아메리카를 중심으로 분포합니다. 만성 감염에서 뇌졸중, 심장 기형 등을 일으키는데, 치료약이 없어서 예방이 중요하죠. 원래 미국은 이 샤가스 병이 없었어요. 크루스 파동편모충이 박멸되었으니까요.
그런데 최근 20년간 멕시코를 비롯한 남아메리카에서 미국으로 인구가 유입되면서, 지금은 미국에서만 30만 명 이상의 감염자가 있는 걸로 추산되고 있어요. 미국은 의료 보험 제도가 워낙에 엉망이라서 이민자나 제3국의 불법 체류자의 건강 관리가 엉망이죠. 그러니 실제로 샤가스 병 환자가 얼마나 있는지 정확한 집계조차 안 되는 실정입니다.
서민 : 말라리아 내성 얘기도 했습니다만, 기생충이나 세균, 바이러스가 유발하는 전염병은 너무 세게 몰아붙이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박멸' '절멸'을 목표로 몰아붙이면 이것들이 반드시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반격을 해오거든요. 항생제나 항바이러스제를 개발하는 속도가 이들의 변이 속도를 절대로 따라갈 수가 없어요.
정준호 : 최근에 그런 점을 의식하고 공중 보건에서도 변화가 있어요. 옛날에는 '박멸'이라는 말을 썼는데, 요즘에는 그렇지 않아요. 기생충 '박멸' 사업이라 하지 않고 기생충 '관리' 사업이라고 합니다. 완전히 없애는 게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일부에서는 그것이 바람직한지도 의문을 제기하죠.
학계에서도 요즘엔 '길들인다'는 표현을 많이 쓰죠. 그러니까 병독성이 약한 기생충, 세균, 바이러스를 퍼뜨려서 독한 것이 나오지 않도록 경쟁을 시키는 방식으로요. 사실 지금은 '공공의 적'이 되었습니다만, 말라리아만 하더라도 원래는 그렇게 나쁜 애들이 아니었죠. 자꾸 몰아붙이다 보니까….
서민 : 말라리아는 원래 나쁜 애들 아닌가요? (웃음) 걔는 기생충 중에서는 이단아죠. 기생충의 정신(精神)이 숙주한테 빌붙어서 '은인자중(隱忍自重)'하는 것이죠. 그래서 이런 은인자중하는 많은 착한 기생충이 매도될 때마다 속상하고요. 그런데 말라리아는 '묻지 마 범죄'를 일으키는 사이코패스처럼 행동하니까요.
정준호 : 열대열 말라리아가 그런데요. 굳이 변명을 해보자면 열대열 말라리아는 4형제(삼일열, 사일열, 난용열, 열대열) 중에서 제일 막내에요. 제일 나중에 사람한테 옮겨온 것으로 보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아직 치기어린 행동을 하는 거죠. (웃음) 이렇게 치기어린 행동을 하는 애는 잘 달래는 게 최고죠.
강양구 : 애정이 듬뿍 묻어나네요.
정준호 : 그런데 걸리지도 않는다니까요. (웃음)
왜 기생충을 사랑하는가?
강양구 : 두 분 수다에 빠져서 시간 가는 줄도 몰랐네요.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기생충에게 고백 한마디씩 하면서 수다를 정리하죠.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기생충 관리 사업의 실무자로 활동하면서 틈틈이 현장 연구도 진행하는 정준호 선생님부터 앞으로의 계획과 같이 얘기해 주세요.
▲ <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정준호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후마니타스 |
그래서 앞으로 반은 실험실, 반은 현장에서 연구를 하는 게 꿈입니다. 탄자니아에서 3년 일정으로 일을 하기로 했는데 이제 겨우 4개월 했거든요. 앞으로 한참 남았으니까, 이곳에서 더 많이 경험하고 또 배우면서 앞으로 본격적으로 기생충과 밀고 당기는 연애를 해볼 생각입니다.
서민 : 저야 기생충만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앞서죠. 제가 언론 앞에서는 기생충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기생충을 연구 대상으로만 삼았기 때문이죠. 이렇게 기생충 책을 낸 것도 그런 미안함을 보상하려는 것이었는데, 또 기생충을 이용하기만 한 게 아닌가 싶어서….
아무튼 아까 일본의 메구로 박물관 얘기가 잠깐 나왔죠?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된 기생충 박물관을 하나 만드는 게 제 평생의 꿈이에요. 제가 사는 곳이 천안인데, 이런 곳에다 그럴 듯한 기생충 박물관을 하나 만들면 지역 발전 또 과학 발전에도 이바지하고, 기생충에 대한 평생의 미안함도 갚을 수 있지 않을까요? (웃음)
강양구 : 이제 막 방송인으로 데뷔하셨잖아요. 유명해지셔서 CF를 하셔야겠네요.
서민 : CF를 할 만한 인지도가 안 되어서 그런 생각까진 못해봤는데…. 그런데 저한테 들어올 CF가 구충제 CF밖에 없는데, 제 신념이 구충제를 먹지 말자는 것이어서.
강양구 : 아니요. 다른 CF도 가능하세요. 어떤 CF를 원하세요. 이참에 공개적으로….
서민 : 건강 음료 같은 것. (웃음)
정준호 : 빨리 기생충 알이 상용화 되어서…. (웃음)
강양구 : 네, 기대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독자에게 당부 하나 더! 더 센 게 필요하면 당장 <서민의 기생충 열전>, <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를 펼치십시오! 고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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