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약'이라 자신있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약품들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흔히 알려진 기적의 약이라면 진통제부터 심혈관계 질환 예방에까지 쓰이는 아스피린이나, 의료의 판도를 바꿔 놓은 첫 번째 항생제, 페니실린 정도가 있겠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기적의 약이 하나 있다. 바로 이버멕틴(Ivermectin)이다. 범용성이나 안전성, 기여도 면에서 다른 약품과 비교해 전혀 손색이 없다. 성분명으로 이야기 하면 다소 낯설게 들리겠지만,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심장사상충 예방약의 대부분이 이 약품으로 만들어져있다.
그리고 이 약품은 201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윌리엄 캠벨과 오무라 사토시가 발견하고 개발한 약품이다. 노벨상을 수상할 정도라니, 이버멕틴은 얼마나 대단한 약일까?
이버멕틴은 1970년대 국제적인 협력 프로그램의 일환인 미국 제약 회사 머크와 일본의 기타사토 연구소가 새로운 항생 물질을 찾는 연구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기타사토 연구소는 토양에서 미생물들을 분리해 약으로 사용 가능한 물질이 있는지 일차 조사를 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토양 샘플을 추출했는데, 한 골프장에서 추출한 딱 하나의 토양 샘플에서 이버멕틴의 기반 물질인 아버멕틴(Avermectin)을 생산하는 균류(Streptomyces avermitilis)가 발견되었다. 이후 다년간의 탐색에도 불구하고 일본 골프장에서 발견된 샘플이 유일한 사례로 남아 있다. 즉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발견된 물질이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고통에서 구하고 있는 것이다. 초기 아버멕틴 발견과 효과성 확인을 주도한 것이 바로 오무라였다.
일본의 이 샘플은 미국 머크에 넘겨져 더 안전하고 효과적인 이버멕틴으로 정제되었다. 이 정제 과정을 주도한 것이 캠벨이었다. 1981년에는 동물용으로 상용화되었는데,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강력한 효과를 보인다는 것이 알려졌다. 초기 기대했던 회충, 편충, 구충 등의 장내 기생충 뿐 아니라 사상충 등 다양한 체내 기생충, 그리고 무엇보다 진드기나 이, 구더기 같은 체외 기생충에까지 강력한 효과를 보였다. 기존의 약품 중 이렇게 광범위한 효과를 보이는 것은, 동시에 이렇게 안전한 약품은 없었다.
이버멕틴의 효과는 너무도 강력해서 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수십억 마리의 가축과 반려동물에 투여되기 시작했고, 업계에서 '블록버스터' 약품으로 통하기 시작했다. 이버멕틴은 축산업계에서만 연간 10억 달러가 넘는 판매고를 올리고 있으며, 20년간 그 지위를 지켜오고 있다.
하지만 이버멕틴의 진짜 효과, 즉 기적의 약으로서의 효과는 사람에게 적용되면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버멕틴을 사람에게 적용하려는 노력은 강변사상충과 초기부터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었다. 강변사상충(혹은 회선사상충, 강변실명증)은 먹파리가 전파하는 기생충 질환으로, 만성적인 감염이 되면 심각한 시력 손상과 지독한 간지럼 증상을 일으킨다.
몸속에서 성충이 된 강변사상충은 매일 1000여 마리가 넘는 미세사상충(즉 새끼)들을 혈관 속으로 내뿜는데, 성충은 보통 10~14년까지 체내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미세사상충들은 체내를 돌며 피부염부터 심각한 가려움증, 부종을 일으키고, 눈을 돌아다니며 각막을 손상시켜 장기적으로 시력을 잃게 만든다. 강변사상충으로 인한 시력 손상을 입은 사람들의 숫자는 200만 명에 이르며, 그 중 절반이 완전히 시력을 잃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970년대에 총 34개국에서 1770만 명이 감염되어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그 중 27만 명이 완전히 시력을 잃었고, 50만 명은 심각한 시력 손상을 입은 것으로 추정되었다. 특히 주요 유행 지역인 서아프리카의 피해가 극심해, 일부 지역에서는 40% 이상의 성인이 심각한 시력 손상을 입은 것으로 보고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서아프리카에서 강변사상충의 유행이 극심한 지역은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되었다. 이로 인한 경제적 손실도 컸다. 질병 자체도 그렇지만, 강변사상충이 주로 매개체인 먹파리가 선호하는 유속이 빠른 강 주변에서 유행했기 때문에 비옥한 농경지와 목초지를 제대로 활용하기가 어려웠다.
이에 1974년, 세계은행은 야심차게 서아프리카 강변사상충 퇴치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120만 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지역, 11개국에서 3000만 명의 인구를 대상으로 강변사상충을 퇴치하겠다는 장대한 계획이었다.
초기에는 효과적인 관리 기법이 부족했던 탓에, 매개체인 먹파리를 죽이기 위해 헬리콥터를 동원해 강에 살충제를 쏟아 붓는 방법이 자주 사용되었다. 하지만 환경적 영향도 심했고, 효과도 낮았다. 무엇보다 헬리콥터를 구입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강변사상충을 치료할 수 있는 약품도 있었다. DEC라는 이름의 약품은 기존에 사상충 치료제로 쓰던 강력한 약이었지만, 그 효과가 강력해서 문제가 있었다. 한 번에 체내의 모든 기생충을 죽였기 때문에 격렬한 염증 반응을 불러왔던 것이다. 염증 반응은 너무 심해 때때로 목숨을 앗아갈 정도의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1987년 이버멕틴이 사람에 사용할 수 있다는 허가를 받자 상황이 달라졌다. 사상충을 관리할 수 있는 매우 효과적인 도구가 생겨난 것이다. 이버멕틴은 이런 부작용도 낮았고, 염증 반응도 거의 없었다. 투약도 한번만 하면 되었기 때문에 기존의 약품보다 사용하기도 쉬웠다.
물론 도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질병이 사라지지 않는다. 이를 어떻게 생산하여 전달하고, 그에 따른 행정 절차와 자금을 어떻게 해결하는지에 대한 대단히 현실적인 장벽들이 남아 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이버멕틴의 특허권을 가지고 있던 머크에서 이버멕틴을 강변사상충 퇴치 프로그램에 무상으로 무한정 기부하기로 약속한 것이다. 이런 협력은 전례가 없었을 뿐 아니라, 최대, 최장의 사례로 남게 되었다.
1988년부터 필요한 곳에 이버멕틴이 전달되기 시작했다. 물론 이렇게 배포가 가능했던 것은 국제적인 협조가 있었기 때문이지만, 동시에 이버멕틴의 특성이 도움을 준 면도 있었다. 워낙 안전성이 높기 때문에 지역 사회에 있는 일차 보건 인력들도 손쉽게 배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주사제나 부작용이 많은 약들은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의료 인력이 필요하다. 그에 반해 이버멕틴은 글도 읽을 수 없는 지역 사회 인력들도 가벼운 훈련을 통해 얼마든지 배포가 가능했다. 이렇게 성공 사례로 남은 서아프리카 강변사상충 퇴치 프로그램은 2002년 종료 되었다. 내전으로 사업 진행이 더뎌진 시에라리온을 제외한 서아프리카 전 지역에서 강변사상충의 전파가 차단되었기 때문이다.
이버멕틴을 이용한 강변사상충 퇴치 사업은 20세기 가장 성공적인 국제 보건 사업으로 손꼽히고 있다. 유네스코의 세계 과학 보고서에서는 이버멕틴과 강변사상충 퇴치 사업을 '개발도상국에서 진행된 보건 사업 사업으로서 눈부신 승리를 거두었으며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남아 있다'고 적었다.
이버멕틴의 무용담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장애를 일으키고 있는 사상충 질환이 또 하나 있다. 바로 림프사상충이다. 강변사상충과 비슷하지만 이 사상충들은 림프절을 막아 우리가 흔히 코끼리다리병(상피병)이라 알고 있는 질병을 일으킨다. 감염이 계속되면 다리나 고환 등에서 림프액의 순환이 제대로 일어나지 않으면서 커다랗게 부풀어 오르고, 장애를 일으킨다.
림프사상충은 80개국에서 1억20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감염되어 있으며, 40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 때문에 심각한 장애를 안고 살아간다. 한국도 1970년대까지는 림프사상충이 발견되었으나, 적극적인 박멸 노력으로 2007년 세계보건기구에서 완전히 박멸되었음을 인정받았다.
이버멕틴은 인도, 중국, 브라질 등 10여 개국에서 진행된 현장 연구에서 림프사상충 퇴치에도 강력한 효과를 보였다. 덕분에 2000년, 세계보건기구는 국제 림프사상충 박멸 프로그램을 발족하였으며, 지금까지 활동 중이다. 더불어 사상충은 '완전히 박멸 가능한 질병'으로 분류되고 있다.
이런 다양한 민관 협력, 그리고 국제적 프로그램 덕분에 향후 10년간 2억 명 이상이 이버멕틴 투약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투약을 받다 보니 처음에는 기대하지 않았던 효과들도 드러났다. 이버멕틴이 회충, 편충, 구충 같은 장내 기생충과 이, 벼룩, 옴 같은 체외 기생충에도 강력한 효과를 보였기 때문에, 애초에는 사상충 치료 때문에 투약을 받았던 사람들이 다른 기생충에서도 자유로워져 더 건강한 생활을 보장 받게 되었다.
장내 기생충의 감소는 아동들의 성장 발달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더 나은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해주었다. 또한 머릿니나 옴의 감염에서도 사람들을 보호해 삶의 질을 향상시켰다. 무엇보다 이버멕틴이 전달된 곳은 세계에서 가장 소외되고 가장 빈곤한 지역들이었다. 이 지역에서는 사상충뿐 아니라 다양한 기생충 감염증들이 너무도 흔했다. 하지만 단 하나의 치료제로 다양한 기생충들을 한꺼번에 관리할 수 있게 되며 얻은 경제적, 사회적 이득은 측정하기 어려울 정도다.
제약 업계에 미친 영향도 컸다. 머크가 인도적이며 윤리적인 결정을 통해 이버멕틴을 전량 기부하기로 결정한 이후, 다양한 제약 회사들이 이런 활동에 동참해왔다. 지금까지의 통계를 보면 제약 회사를 통해 약 92억 달러 분량의 약품 및 기기가 국제적 보건 관리 사업에 기부되었고, 2000년에서 2007년까지 17억 명의 사람들이 직접적인 혜택을 본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머크를 통해 강변사상충 퇴치 사업에 배포된 이버멕틴은 25억 정에 달했고, 7억 명 이상이 치료를 받았다. 지금도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에서 9000만 명 가량이 약을 제공받고 있다. 또 림프사상충 퇴치에 약 3억 명이 치료 받을 예정이며, 연간 9000만 명의 사람들이 혜택을 입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버멕틴이 기적의 약으로 손꼽히는 이유가 또 하나 있다. 바로 약품 저항성이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버멕틴이 더 광범위하게, 혹은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축산업계에서는 종종 이버멕틴 저항성 기생충이 등장하곤 했지만, 인간에게는 사상충 치료제로 25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단독으로 쓰여 왔음에도 아무런 저항성이 발견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항생제나 감염성 질환 치료제가 출시 후 몇 년 안에 저항성이 등장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만큼 아직 우리가 이버멕틴에 우리 체내, 그리고 기생충에게 어떻게 작용하며, 어떤 방식으로 저항성을 획득할 수 있는지 충분히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는 의미도 된다.
일본 골프장에서 발견된 약품 후보 물질 하나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삶을 바꾸어 놓았는지를 생각해보면, '기적의 약'이라는 타이틀이 아깝지 않다. 또 이버멕틴을 발견하고 정제하여 세상에 내놓은 학자들이 왜 노벨상을 받았는지도.
앞서 이야기 했다시피 이버멕틴이 기적의 약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약품 자체의 효능이 매우 뛰어났기 때문이 아니다. 약품의 효능도 좋았고, 특성도 훌륭했지만, 이를 필요한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고, 그것이 가능할 수 있도록 많은 이해관계자들이 당장의 이익이 아닌 더 올바른 방향을 향해 합의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버멕틴에게 노벨상이 주어진 것은 이런 '기적'들이 더 많이 등장하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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