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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삼성 바이오 사업, TPP가 발목 잡는다"

[인터뷰] 송기호 변호사 "TPP 참가하면, 일본 방사능 수산물 못 막아"

"왜 한국은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협상에 참여하지 않았나. 지난 2011년부터 미국이 권유했는데, 한국 정부는 왜 망설였나. 지금이라도 TPP 가입을 서둘러야 한다."

지난 5일 TPP 협상 타결 이후, 보수 언론이 자주 하는 지적이다. 따져보면, 황당한 이야기다.

2011년이라는 시기부터 그렇다. 당시는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협정문도 완성되지 않았던 때였다. 그 상황에서 TPP에 참여한다면, 그간 진행한 한미 FTA 협상은 의미가 없어진다. 당시로선 TPP 협상 참여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한미 FTA가 일본의 TPP 참여 빌미 됐다"


만약 TPP 협상 불참을 문제 삼는다면, 한미 FTA 추진부터 비판하는 게 옳다. 한국이 일본을 제치고 미국과 높은 수준의 FTA를 추진했다. 이 점은 일본 정부가 농민 등의 반발을 누르고 TPP 참여를 밀어 붙일 수 있는 빌미가 됐다. 한미 FTA가 없었다면, 일본의 TPP 참여는 쉽지 않았을 게다.

통상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의 설명이다. 7일 서울 서초동 수륜법률사무소에서 만난 그는 "한미 FTA에 대한 과대평가가 지금의 TPP 사태를 낳았다"라고 말했다.

예컨대 노무현, 이명박 정부에서 한미 FTA를 추진했던 김종훈 새누리당 의원(전 통상교섭본부장)은 한국이 TPP 협상에 불참한 이유로, '중국에 대한 고려'를 꼽았다. 미국과 중국을 동시에 신경 써야 하는 한국 입장에선 중국을 포위하는 모양새인 TPP 참여가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것. 과연 그렇기만 한가. 송 변호사의 설명은 다르다.

"한미 FTA가 일본을 상당 기간 고립시킬 수 있다고, 이명박 정부가 오판했다. 오히려 한미 FTA가 (일본이 참여한) TPP의 하위 체계로 편입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의 판단 착오는 미국을 추종하면서 우리의 주관적 열망을 투사하는 외교 통상 노선의 한계다."

TPP 협상 불참의 배경에는 '한미 FTA를 통해 일본을 제치고 미국과 더 가까워졌다는 믿음'이 있다는 설명이다.

"일본산 방사능 수산물 검역, 못하게 된다"

그렇다면, 뒤늦게라도 TPP 협상에 참여해야 하는 건가. 그건 아니다.

한미 FTA에는 없던, 위험한 내용이 TPP에 새로 포함됐다. 예컨대 '규제정합성 25 장'이 그렇다. TPP 참여국의 정부 규제 사이에 정합성을 요구한다. 이걸 어길 경우 분쟁 절차에 회부하는 강력한 장치가 있다. 정부 정책 자율성이 위축된다.

위생 검역 조치의 지역화 조항 역시 문제가 될 수 있다. 식품 및 가축 위생 검역 문제의 발생 범위를 '국가'에서 '지역'으로 완화하는 내용이다. 이 조항이 적용되면, 일본산 방사능 수산물 검역 조치를 한국이 유지할 수 없다는 게 송 변호사의 판단이다.

송 변호사는 "TPP, FTA 등을 통해 경제가 나아질 수 있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소수 기업 집단이 전체 산업을 장악하는 상황을 바꾸는 게 먼저다. 이런 상황을 방치하고서 밀어붙이는 통상 전략은 아무런 실익이 없다.

오히려 TPP, FTA 등 통상 협정은 혁신적인 시도의 싹을 자른다. 정부가 새로운 산업 정책을 시도하는 걸 가로막기 때문. 한미 FTA 때문에, 저탄소차에 대한 협력금 지원이 미뤄진 게 대표적이다. 지금 진행되는 통상 협정들은 이미 성숙한 산업의 기득권을 고착화시킨다.

한미 FTA를 추진했던 이들의 결정적 오류도 이 대목이었다.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한미 FTA는 '자동차 FTA'라는 지적을 받았었다. 당시 정부는 특정 기업 및 산업이 잘 되게 해주는 것과 국민 경제의 성장을 헷갈렸다. 이에 대해 송 변호사는 "소수 (대기업) 주주들의 이익 납치"라고 설명했다. 다른 산업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이익을, 기득권을 지닌 기업 주주가 낚아채버렸다는 말이다.

재벌의 신사업도 발목 잡힌다

중소기업, 농어민 등 경제적 약자들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만 줄어드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대기업의 신사업 추진 역시 TPP 등 통상 협정에 발목 잡힐 수 있다.

예컨대 삼성은 '바이오시밀러' 사업을 준비 중이다. 반도체, 휴대전화 등 삼성의 주요 사업은 이미 성숙기다. 따라서 그 다음 먹을거리를 준비해야 한다. 삼성 입장에서도 절박한 고민인데, 송 변호사는 "TPP가 장애물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TPP 참여국들은 바이오 의약품에 대한 자료 독점권을 8년으로 늘이기로 합의했다. 삼성이 추진하는 '바이오시밀러' 사업은, 생체 의약품(바이오 의약품)의 복제약을 만드는 것이다. 자료 독점권 기간이 연장될수록, 사업이 어려워진다.

요컨대 TPP, FTA 등이 강화될수록, 기존 산업 질서는 고착화된다. 반도체 등 지금의 주력 산업이 성숙기를 지난 뒤에는 어쩔 건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찾기 힘들어진다.

▲ 송기호 변호사. ⓒ프레시안(최형락)

"WTO 체제 안에서 답 찾아야"

송 변호사가 강조하는 대안은 '인권 경제'다.

'공동결정법'을 통해 노동조합이 사업장의 의사 결정에 참여하게끔 하는 독일 사례를 참고할 수 있다. 의사 결정에서 배재된 채, 단순 작업만 하는 노동자가 숙련 기술을 익히기란 불가능하다. '고숙련-고부가가치-고임금' 경제로 전환하려면, 먼저 노동자를 존중해야 한다. 그게 저임금 국가의 추격에서 한국이 살 길이다. '가격 경쟁력이 월등한 중국의 추격'을 이유로, 한미 FTA를 밀어 붙였던 한국 정부 주장의 대척점에 있는 셈이다.

대외적으로는 WTO 체제 안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WTO 체제 안에서는 미국 역시 'N분의 1'의 권리를 지닌다. 그게 답답했던 미국이 찾은 대안이 FTA, TPP 등이다. 당연히 미국의 이해관계가 더 강력하게 관철된다.

특히 TPP처럼 아시아 경제 분업 구조를 교란하는 방식은 한국에 결코 유리하지 않다. 한국이 중국에 중간재를 팔고, 거기서 다시 미국으로 수출하는 구조가 흔들린 뒤의 대안이 불투명하다.

"'아시아의 독일' 노리는 일본, 한국은 무슨 이익이 있나?"

TPP 참여국은 미국, 일본, 호주, 브루나이, 캐나다, 칠레, 말레이시아, 멕시코, 뉴질랜드, 페루, 싱가포르, 베트남 등 12개국이다.


중국 견제라는 목적이 있는 미국 입장에선 의미 있는 협정이다. 송 변호사의 설명에 따르면, 베트남 등 신흥 생산 기지 국가 역시 기대를 걸 만한 이유가 있다. 중국이 했던 역할 가운데 일부를 담당할 수 있다.

일본도 나름의 기대를 품을 수 있다. 송 변호사는 "일본이 '아시아의 독일'을 꿈꿀 수 있다"고 말했다. 유럽연합(EU) 체제에서 독일이 차지했던 위치를, 일본이 노릴 수 있다는 것. 독일과 마찬가지로, 일본 역시 핵심 기술을 많이 보유한 제조업 국가다. 일본 자동차 업계 역시 혜택을 볼 가능성이 크다.

반면 한국은 TPP 체제에서 기대할 수 있는 역할이 모호하기만 하다. 송 변호사는 "세계 경제의 '키 플레이어'가 아닌 한국 입장에선 배타적인 경제 블록을 만드는 게 좋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무역 질서가 보다 공정한 다자주의(多者主義) 체제가 되게끔 하는 게 옳다"고 말했다.

아울러 한국이 더 급하게 추진해야 하는 통상 정책 목표로, 그는 "북한과 세계 경제 질서의 괴리를 줄이는 것"을 꼽았다. "무관세 남북 거래를 국제 규범으로 승인받아서 북한이 세계 무역 질서에 편입되게끔 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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