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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방사능 수산물 수입이 'TPP 입장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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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일본 방사능 수산물 수입이 'TPP 입장료'?"

[토론회] 한미FTA 발효 3년 평가, TPP 전망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이 올해 상반기 중에 타결되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TPP는 미국, 일본, 뉴질랜드, 싱가포르, 칠레, 브루나이, 호주, 페루, 베트남, 말레이시아, 멕시코, 캐나다 등 한국을 제외한 태평양 주변 12개국이 참여하는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이다. 내년에는 미국 대선, 일본 참의원 선거 등이 잡혀 있다. TPP 참여 주요국의 정치 일정이 없는 올해가 협상 타결의 적기라는 것. TPP 협상 참여 가능성이 높은 한국 역시 선거가 드문 해다. 3.11 전국 동시 조합장 선거, 4.29 보궐선거 등이 있을 뿐, 큰 선거는 없다.

각국 정부가 굳이 선거를 피해서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으려 한다는 점은, 이 협정이 지닌 성격을 날카롭게 보여준다. 다수 국민의 삶에 영향을 준다는 것. 그 결과를 쉽게 예측하기는 어려우나, 다수에게 꼭 좋으리라는 법은 없다는 것. 따라서 '다수결' 원리가 작동하는 선거에는 이롭지 않다는 것이다.

다시 '먹을거리 주권'이다

특히 민감한 영향을 받는 게 밥상이다. 우리가 어떤 채소와 과일, 고기를 먹게 될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정해진다. 태평양 주변 국가들이 대거 참여하는 거대한 협상, TPP가 타결될 경우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 9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8간담회실에서 '한미FTA 발효 3년 평가, TPP 전망' 토론회가 열렸다. TPP-FTA 대응 범국민대책위원회(옛 한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국제통상위원회, 한살림생협, 아이쿱생협 등이 함께 마련한 자리다. 참석자 면면이 화려하다. 9년 전 한미FTA 협상에 시동이 걸린 이래 지금까지, 먹을거리 수입을 비롯한 무역 통상 논쟁에 참가해 왔던 전문가들이 대거 참석했다. 정태인 칼폴라니경제연구소 소장, 송기호 변호사, 남희섭 오픈넷 이사,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 장경호 농민연구소 '녀름' 부소장, 박하순 민주노총 정책위원, 주제준 TPP-FTA 범대위 정책팀장, 김종우 변호사 등이 발제자로 참가했다.

뜨거운 논쟁 속에서 타결된 한미FTA 발효 이후 3년을 돌아보고, 한국이 TPP에 참여할 경우 겪을 영향을 내다보기 위해 마련된 이 토론회에선 지적재산권, 의료, 농업 등 다양한 분야가 논의됐다. 눈에 띄는 건 생활협동조합(생협) 관계자들의 활발한 참여다. FTA 논쟁이 처음 달아올랐던 9년 전과 달라진 대목이다. 협동조합의 성장, 무역통상 문제가 밥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인식 제고 등이 반영된 결과일 터. 실제로 토론 참가자들은 향후 전개될 TPP 논쟁에서도 먹을거리 수입 문제가 첨예한 대중적 쟁점이 되리라고 예상했다.

'TPP 입장료', 농민 출혈로 낸다

참가자들은 현재 진행 중인 TPP 협상에 한국이 참여한다면 '입장료'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농어민, 축산농가의 출혈로 마련한 '입장료'다.

쌀 시장 개방이 다시 도마에 오를 수 있다. 주제준 팀장은 "TPP 참여국 가운데 미국, 호주, 베트남은 한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통보한 쌀 관세율(513%)이 너무 높다고 이의를 제기한 국가들"이라며 "이들 3개국이 한국의 참여 조건으로 쌀 관세율 추가 인하나 그 밖의 농축산물 추가 개방 등을 요구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미국은 일본에 대해 비슷한 요구를 한 바 있다. 한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전망이다.

유전자 조작 식품(GMO) 역시 우리 밥상에 오를 가능성이 높아진다. 실제로 미국은 GMO 표시제를 사실상 무력화하려 한다. 이런 시도가 협상 과정에서 급류를 탈 수 있다.

'입장료'와 관련해선, 쇠고기 문제를 빠뜨릴 수 없다. 통상 논란에서 빠지지 않은 쟁점이다. 미국 농무부는 2013년 11월 국제수역사무국(OIE) 기준에 맞춰 외국산 쇠고기 수입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우리가 빗장을 풀었으니, 너희도 풀라는 메시지라는 해석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해 더 낮은 기준이 적용된다면, '30개월 제한'이 도마에 오를 수 있다. 현재 한국은 민간업자의 자율 규제 방식으로 30개월 미만 쇠고기만 수입하고 있다. 이런 규제를 깨라는 압력이 생길 수 있다. '30개월 제한'을 두는 이유는 광우병 위험 때문이다. '광우병 쇠고기' 논란이 재점화될 수 있다.

더 예민한 쟁점이 있다. 방사능 오염 논란이 있는 일본산 수산물 수입 문제다. 이 대목에서 한발 양보하는 게, 한국이 내는 입장료가 되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후쿠시마 사고가 터진 게 2011년이다. 한국은 후쿠시마 근처 8개 현 인근에서 잡은 수산물 수입을 금지하고 있다. 아울러 이들 지역을 제외한 곳에서 잡은 수산물에 대해선 0.1Bq(베크렐, 방사능 측정 단위)의 세슘만 검출돼도 스트론튬, 플루토늄 등 기타 핵종에 오염됐는지 여부에 대한 '비오염 증명서'를 요구한다. 그런데 이 증명서를 발급받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탓에, 일본 수산업계는 불만이 많았다. 수산물은 신선도가 생명이므로, 사실상 수출길이 막힌 셈이라는 게다. 일본 정부가 이런 불만을 풀어달라고 강하게 요구하리라는 게 주 팀장의 전망이다.

실제로 외교부, 산업통상자원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은 일본산 수산물 수입 규제 완화에 대해 협의 중이다. 한국이 TPP협상에 참가하기 위한 '입장료'를 마련하기 위한 준비 절차로 읽힐 수 있다.

TPP, 국가의 정책 주권 제약한다

우리의 건강과 아이들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칠 TPP협상. 그런데 왜 다들 조용한 걸까.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는 '피로감'을 이유로 꼽았다. 2008년 촛불시위로 타올랐던 쇠고기 협상, 협정문 오역 논란 등 FTA를 둘러싸고 진행된 그간의 논란 속에서 많은 이들이 지쳤다는 게다. 시민의 거센 반발에도, 일방통행을 고집하는 정부를 보며 느낀 무력감도 있다. 그러나 이대로 주저앉아서는 안 된다는 게 이날 참가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TPP는 규모가 큰 만큼,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도 그간 맺은 FTA보다 크다는 것.

한EU 협정문 번역 오류를 밝히는 등 지난 9년 간 FTA를 둘러싼 논란의 고비마다 중요한 역할을 했던 송기호 변호사는 이와 관련해 근본적인 질문을 했다. 자유무역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을 놓고, 입장이 엇갈린다. 그런데 어떤 기준으로 그 영향을 평가할 것이냐는 질문이다. 다수의 삶은 피폐해졌지만, 일부 대기업의 수출이 늘어난 결과로 총량 지표가 개선됐다. 그렇다면 그걸 어떻게 봐야 하나라는 질문이다.

더 깊이 들어가면, '규제 정합성' 문제가 있다. 한미 FTA 등에서는 기업의 국제중재 회부권이 투자 영역에 대해서만 미친다. 이와 달리 TPP는 "정부가 이해관계자와 정보교환, 대화를 포함한 성공적 협력에 이바지할 여러 정책 수단을 강구해야 하며, 새로운 규제를 심사하고 중앙 정부 차원에서 조정을 촉진하는 중앙 정부 차원의 조정 기구를 둘 것"을 규정했다. 정부 규제의 정합성에 대해 더 까다롭게 따진다는 건데, 송 변호사는 "규제를 둘러싼 국가의 정책 주권을 제약하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국가가 기업을 견제하는 게 아니라 기업이 국가를 견제하는 시대로 들어선다는 뜻이다. 기업의 이익이 곧 국민 다수의 이익은 아니다. 국가를 견제하는 기업의 힘이 너무 세지면, 국민 다수의 지지로 선출된 정부는 제 역할을 못 한다. 이는 민주주의의 위기다. 굳이 선거를 피해서 진행되는 TPP 협상이 께름칙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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