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그리고 여당인 새누리당에서 연일 '포털 때리기'에 나서고 있다. 정치적으로 편향됐다는 것뿐만 아니라 선정적인 기사와 어뷰징의 온상이 됐다는 게 이유다. 여러 조치를 쏟아내고 있다. 인터넷신문 등록 요건 강화, 제3자 명예훼손 심의 신청 허용, 정부·기업에 대한 오피셜 댓글 도입 등이 최근 몇 달 새 동시다발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특히 정부가 인터넷신문 등록 요건을 강화하는 신문법 시행령 개정안을 발표하며 군소 언론들 사이에 비상이 걸렸다. 정부는 군소 언론의 난립으로 어뷰징, 선정적 기사 경쟁이 과열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강정수 디지털 사회연구소장 겸 오픈넷 이사는 어뷰징의 주범은 수천 개의 군소 언론이 아닌 10여 개의 대형 언론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대형 언론의 클릭 수 경쟁이 괜찮은 군소 언론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지난 21일 서울 마포구 모처에서 이뤄진 인터뷰 내용이다.(☞관련기사 : "네이버 독점? 점유율 규제 시대는 끝났다")
"새누리, 목표의식 과하다 보니 심각한 오류 저질러"
프레시안 : 여당에서 들고 나온 '포털 편향' 보고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여당 측에서는 이 보고서를 근거로 포털의 정치적 편향성에 대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보고서 자체가 부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끼워 맞추기식' 보고서라는 비판도 한다.(☞관련기사 : 새누리, "네이버·다음 편향" 보고서 보니…)
강정수 : 아마도 여의도연구소에서 이번 국정감사에서 포털 얘기를 해보고 싶었던 거다. 그래서 항상 포털 얘기 나올 때마다 등장하는 게 공정성 시비니, 한 번 입증해보려고 한 것이다. 보고서에 대해선 일일이 비판할 건더기조차 없다. 학술적으로 평가할 수준이 못 되는 보고서다. 목표의식을 과도하게 갖고 있다 보니 그 목표의식이 모든 과정을 지배해버려 결과적으로 심각한 오류를 낳은 셈이다.
문제는 이 보고서가 여당의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이 기획한 거란 거다. 그런데 뭣도 모르고 김무성 대표나 다른 여당 의원들은 '오 마이 갓'이라느니 하면서 그걸 국감에서 활용했다. 원래 여의도연구소 수준이 이렇지는 않다. 그런데 미디어 영역의 연구는 굉장히 후진 거다.
여의도연구소를 넘어서 정부 여당의 미디어 분야에 대한 역량이 의심스럽다. 항상 포털을 공격했는데 2000년 초부터 논리도 하나도 변한 게 없다. 물론 포털을 비판할 수는 있다. 여러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그런데 도돌이표처럼 같은 얘기만 한다. 시장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다. 거의 없다시피 하다. '네이버-다음의 영향력이 크다'느니, '점유율이 높다'느니 이게 규제 논거의 전부다. 정부와 새누리당도 공부를 해서 수준을 올려야 한다. 점유율 얘기는 그만 우려먹었으면 좋겠다.
"정부 여당, 근거도 없이 포털에 일단 혼쭐부터"
프레시안 : 털을 규제하자는 정부 여당의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강정수 : 무엇보다 정확한 데이터가 있어야 한다. 이번 편향성 보고서와 같은 부실 보고서가 아니라. 실태 조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때려대니 정치적 의도라든지, 진정성이 의심스러워 보이는 것이다. 정말로 한국의 저널리즘이 걱정된다면 한 발짝 더 나아가야 한다.
정부가 늘 '어뷰징(동일 기사 반복 전송)', 선정성 문제를 언급하면서도 한 번도 구체적인 피해에 대해 조사한 적이 있나. 어뷰징이 언론사 내부에 시민들에게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무엇인지를 조사한 적도 없다. 포털 규제와 사회적 책임에 대한 연구가 면밀하게 진행돼야 한다. 포털이 시장을 왜곡한다면 그 지점이 무엇인지를 밝혀야 한다. 가격이 제대로 측정되지 못하고 가격을 후려치는 일은 없는지, 또 해외 사례는 어떤지. 이런 연구가 선행돼야지 종합적인 계획이 나올 텐데, 지금 정부 여당 태도는 구체적인 근거도 없이 '일단 혼내고 보자'는 수준이다.
포털이 개혁하고 싶어도 구체적으로 뭘 잘못하는지도 모르는데 대체 어떻게 바뀌나. 포털을 강제로 없애면 그게 답인가? 기존 언론사들이 먹고살 만해지나? 포털이 없어지면 조선닷컴, 프레시안 닷컴 방문자 수가 다시 언론사 중심 사회가 올 것 같나. 절대 그렇지 않다. <뉴욕타임스>도 점유율이 20%가 안 된다. 그런 국가도 한 군데도 없다.
"포털, 정부에 안 휘둘리려면 정무적 감각 키워야"
프레시안 : 그럼에도 정부의 포털 길들이기는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 요구를 순순히 받아들이는 모양새다. 뉴스 편집 방침도 밝히고, 최근 네이버의 경우 정부·기업에 대한 '오피셜 댓글'도 도입하기로 했다.
강정수 : 현재 포털에 부족한 능력은 '프로액티브(proactive)', 즉 문제가 제기되기 전에 선제적으로 대비하는 정무적인 판단과 행동이 부족하다. 한국 사회, 정치권에서는 네이버가 갖고 있는 능력, 카카오의 위상을 단순 미디어 기업으로 굉장히 협소하게 바라본다. 그러나 해외 사이트를 보면, 구글이나 페이스북 등은 일개 미디어 기업이 아니라 경제계 전체의 혁신을 이끌 기업으로서 사회적 위치를 인정받고 있다. 네이버나 다음카카오 최고경영자들의 디앤에이 자체가 정무적 감각 부족한 게 아닌가 싶은데,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같은 인물을 보면 아이티 기획도 잘하지만 정무적 감각도 탁월하다.
포털이 정책적으로 선제적 대응을 하지 않으니 계속 정부에 수세적으로 끌려다닌다. 기업이 국세청에 가면 자칫하면 망할 수도 있는데 벌써 몇 번이나 들락날락하고,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도 받았다. 한 번씩 조사받을 때마다 회사가 휘청휘청하니 정부 말에 끌려다니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방어적 대응이 낳은 결과라고 본다. 재벌이 비판을 많이 받지만 재벌의 정무 능력은 포털이 배워야 한다. 정치권에 뒷돈을 주라는 얘기가 아니다. 재벌이 '낙수효과'라는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제 위상을 지키듯이, 포털도 사회적 입지를 스스로 세우고 지켜야 한다.
이번 국감도 보라. 네이버나 다음이나 이번이 19대 마지막 국회라 다들 '물감'이라고 하니 설마 큰일 있겠어 하고 손 놓고 있었던 거다. 그러다가 된통 당한 거다. 것도 어느 때보다 더 정치적으로 당했다. 정치인들이 내년에는 다들 선거에 나가야 하니까 언론에 이름이 나가야 하고 그래서 괜히 한 번씩 더 호통치고 그렇게 이용당하는 거다. 정치권을 저평가하면 안 된다.
"<슬로우뉴스>,<ㅍㅍㅅㅅ>가 유사 언론이라고?"
프레시안 : 포털도 포털이지만, 군소 언론들도 비상이다. 광고주들 성명을 낸 이후로 유사 언론을 뉴스 시장에서 퇴출시켜야 한다면서 인터넷신문 등록 요건을 강화하는 신문법 시행령 개정안을 만들었다. 유사 언론 퇴출과 포털 규제 움직임이 마치 하나의 일련의 흐름으로 보인다는 지적도 있다.
강정수 : 누군가 기획했다고 보이진 않는다. 한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이 누적된 게 한꺼번에 표출되면서 마치 연관성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 같다. 사실 광고주들이 유사 언론들의 문제를 제기한 건 어제오늘 일만은 아니다. 어뷰징도 그렇다. 전혀 없던 사실이 튀어나온 게 아니다. 그러니 누군가의 기획이고 판짜기라고 보는 건 과잉 해석이다.
다만, 종사자 수로 유사 언론인가 진성 언론인가를 구분하는 건 '난센스'다. 그렇게 따지면 당장 <슬로우뉴스>는 문을 닫아야 한다. 그런데 <슬로우뉴스>는 기업에 소위 말하는 '삥'을 뜯지도 않고, 선정적 광고를 내걸지도 않는다. <ㅍㅍㅅㅅ>도 마찬가지다. <ㅍㅍㅅㅅ>가 기사를 재밌게 쓰지만 그것이 사이비 언론 기사라고 전혀 생각지 않는다.
정작 광고 협박을 많이 뜯어내는 곳은 대형 언론사다. 지역 언론사 중에서도 그런 행태를 하는 곳이 있는 걸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기존 법에서 해결해야지, 그걸 왜 네이버, 다음과 연결시키나. 언론과 기업의 부정의 연결고리는 과거부터 있었다. 언론의 어두운 단면이고, 자정 노력은 있어야 한다. 이것을 포털 논쟁과 결부시키는 건 아니라고 본다.
"대형 언론사 10곳이 전체 어뷰징의 50%"
프레시안 : 정부는 포털 기사에서 선정적, 어뷰징이 많은 것이 군소언론이 난립한 탓이라고 설명한다.
강정수 : 그렇게 주장하려면 명확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데이터를 내놔야 한다. 그런데 업계 안팎으로 다 안다. 어뷰징을 많이 하는 곳 1위부터 10위까지가 어디라고 생각하나. 대형 언론사 10곳이 전체 어뷰징의 50%를 하고 있다. 나머지 50%를 정부 말대로라면 5990개가 하고 있다는데, 그렇다면 어느 쪽 문제가 더 심각하나. 당연히 10곳의 문제가 더 심각하다.
저도 어뷰징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그런데 해결하는 방식이 언론 통폐합하던 시절처럼 정부가 나서서 '하지 마, 하면 죽인다'라고 겁박하는 식이 돼선 안 된다. 법치국가 아닌가. 법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 포털 규제의 근거도 없지만, 어뷰징을 제재할 근거도 없다. 제가 보기에 어뷰징 문제는 사회적 압력을 키워나가는 걸로 해결하는 방향이 맞는 것 같다.
어뷰징 퇴출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더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각 포털에서 실제 데이터를 보고해야 한다. 그런데 왜 경영 투명성 보고서에서 어뷰징 언론사 순위를 공개하지 않을까. 그들도 무서운 거다. 대형언론사들 비판할까 봐. 그럼 정부가 그 아픔도 고려해야 한다. '네이버도 대형 언론사 눈치 보는구나'하고, 알아서 조사를 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어뷰징 실태조사를 하나도 못 봤다. 최소한 정부나 국회가 군소 정당이 난립해서 어뷰징이 늘었다면서 제재하려고 한다면 실태 보고서를 하나라도 내놔야 한다.
프레시안 : 정부 방침 대로 인터넷 신문 등록 기준을 '상시 인원 5명'으로 강화할 경우, 전체 인터넷 신문 가운데 85%가 퇴출 대상이 된다고 한다. 이 85%의 언론이 사라지면 과연 어뷰징이 사라질까?
강정수 : 군소 언론이 없어지면 어뷰징이 없어질 거란 건 상상이다. 그 상상에 무슨 근거가 있나. 모르는 걸 가지고 추론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연역적으로 귀납적으로나 증명되지 않는다. 막연하게 '인터넷 신문이 많으니까 줄어들면 어뷰징 없어지겠지'라고 생각하는 건 좋은 상상이 아니다. 저도 개인적으로는 너무 많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개인의 취향 문제다. 생산자가 많은 것이 나쁘다는 주장의 근거를 아직 찾지 못 하겠다.
"광고 시장 작은데 클릭 수 경쟁만…개미지옥"
프레시안 : 그렇다면 언론의 어뷰징, 선정성 경쟁은 왜 과열되는 것인가.
강정수 : 굴뚝 산업의 논리가 들어와서 그렇다. 굴뚝 산업의 논리는 '도달 범위=매출'이다. ABC(신문발행부수공사) 제도도 결국 도달 범위를 보여주는 거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클릭 인플레이션'이 걸려있다. 전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방문자 규모를 찍는다. 글로벌 미디어인 <뉴욕타임스>는 6000만인데 우리나라 대형 언론사는 3억 뷰가 넘는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클릭 수의 지분을 차지하는 것은 대부분이 정치사회 기사가 아닌 선정적인 기사다. 그런데 그렇게 클릭 수가 많은 만큼 돈을 많이 벌었는지 묻고 싶다.
결론은 아시다시피 클릭수에 비례해서 매출이 증가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디지털 광고 시장은 정해져 있다. 시장 자체가 작은데, 클릭 수를 무한대로 늘려서 나눠 먹자고 하는 꼴이다. 방문자 수 덫에 걸렸다. 서로 경쟁하지만 개미지옥처럼 빠져나올 수가 없다.
'클릭 인플레이션'의 해악이 또 한 가지 있다. <슬로우뉴스>가 300만 뷰다. 결코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광고를 한 것도 아니고 선정적 기사를 쓴 것도 아니다. 오로지 양질의 콘텐츠만으로 300만 뷰를 낸 건 뿌듯한 일이다. 그런데 광고 시장에 나가면 어디에도 명함도 못 내민다. 어뷰징이 괜찮은 군소 매체의 생존 가능성마저 짓밟고 있다. 큰 문제다. 트래픽 함정에 빠진 언론 생태계를 선순환 구조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독일은 저널리즘 청문회만 6개월. 우리는?"
프레시안 : 언론사, 정치권 등 각 주체별로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강정수 : 이 방법에 대해선 진지한 토론이 필요하다. 경영진에게 어뷰징 하지 말고 '임팩트 비즈니스'를 하자고 제안해야 한다. 뉴스 소비자들의 체류 시간을 늘려야 한다. 그러려면 소비자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음식점을 차렸는데 방문자가 어떤 요리를 좋아하는지 어떤 반찬을 먹는지, 혹은 도대체 먹기는 하는 건지를 지켜봐야 한다. 그런데 지금 언론사들 대부분이 음식점을 차려놓고는 손님이 어떤 음식을 먹는지 관찰을 안 하고 있다. 데이터를 측정해야 한다.
여기에 정부의 역할이 있다. 개미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좌표를 찍어줘야 한다. 방문자들의 체류 시간을 늘리는 방향으로 언론사들이 가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언론재단에서 기술을 제공하는 거다. 이렇게 출구를 찾기 위한 사회적 노력은 없고 분기별로 포털 비난만 일삼는 것은 하나도 생산적이지 못한 일이다.
국회에서는 청문회를 열어야 한다. 독일에선 미래의 저널리즘이라는 주제를 두고 청문회를 6개월에 걸쳐 했다. 국회, 언론, 기업이 한자리에 모여 다 같이 고민하는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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