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정용진 신세계 회장은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멸공, #승공통일, #반공방첩, #대한민국이여영원하라, #이것도지워라 등의 해시테그를 달고, <조선일보>의 "'소국이 감히 대국에…' 안하무인 中에 항의 한번 못해"라는 제목의 기사를 올렸다. 그 유명한 정용진의 '멸공 챌린지'의 시작이었다. 선대로부터 회사를 물려받은 그는 본인이 자수성가한 일론 머스크 쯤 되는 줄 알았던 것 같다.
정용진 회장이 정말로 공산당을 멸하자는 구호를 자신의 신념으로 삼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군대도 가 본 적 없는 그가 '승공통일' 같은 군대의 일상어(군사독재 시대 학창시절을 보낸 이들에겐 군대 울타리를 넘어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용어긴 했다)에 익숙할 것 같지도 않다. 그가 '일베'를 할 것으로도 보이지 않는다. 한국에서 사업을 하는 '자유주의자'로서 '놀이'가 필요했을 뿐이라는 설명이 더 합리적이다. 그런데 그는 '멸공' 따위의 말을 사용하는 일베의 스펙트럼이 얼마나 넓은지 간과했다. 예를들면 '난 멸공만 주장할 뿐 5.18은 존중해'라거나, '계엄은 잘못됐지만 윤어게인은 지지해'라고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극우 세력은 이미 정용진의 챌린지에 올라탔고, 그를 다양한 극우 사상의 전광판으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용진이 전두환을 싫어한다고 해도, 스타벅스 잔을 든 전두환 '밈'이 '스타벅스 힘내요' 캠페인으로 사용되는 게 현실이다.
사업가 정용진 회장의 과거 전력이 이번 '스타벅스 5.18 탱크데이' 논란을 더 키웠다는 데에는 다들 큰 이견이 없는 것 같다. 일베의 '이스터 에그' 놀이가 하필 정용진이 운영하는 회사에서 벌어졌고, 이 해프닝은 미국 시애틀의 스타벅스 본사와 BBC나 CNN같은 유력 외신에까지 널리 알려져버렸다. 평소와 달리 위기감을 느낀 정용진은 '멸공 챌린지' 때와 다르게 판단을 재빠르게 내려야 했다. 사장과 임원이 줄줄이 경질됐다.
'이스터 에그'는 영화, 책, 게임, 소프트웨어, 웹서비스 등에 제작자가 의도적으로 숨겨둔 메시지, 기능, 장난 같은 비밀 요소를 뜻한다. 부활절에 달걀을 숨기고 찾는 풍습에서 유래했다. 일베 손모양이나 노무현 등 '고인 능욕' 같은 것들을 사회적으로 널리 노출된 프로그램이나 행사같은 선전물에 몰래 숨겨놓는 행위는 마치 이스터 에그 찾기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스터 에그는 숨겨야 하는 것을 본질로 삼지만, 드러나는 걸 추구한다는 점에서 철학적으로 보면 완전한 '모순의 장치'다. 이스터 에그를 통해 누군가를 설득할 수는 없다. 그것은 상징 속에 숨어 있어야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하필 5월 18일을 '탱크데이' 프로모션 날짜로 정하고 '책상에 탁'이라는 카피 문구를 써붙여 퍼트리는 것에는 정치적 효과도, 선전 선동의 효과도 없다. 잘 되도 얻을 게 없고, 잘 못 되면 역풍이 부는 이런 무의미한 행위는 왜 사회적으로 끊임없이 시도되고 있는 걸까.
일베와 같은 '사회의 하수구' 안에서 통용되는 말들이 울타리를 넘어서는 순간을 심리학적으로 설명해보자. 드러내놓고 말하지 못하는 메시지를 기호나 상징으로 숨겨 놓는 것은 소극적 정치 의사의 표현으로 일종의 '정치적 욕망'과 연관돼 있다. 이런 행위는 특정 상징을 알아보는 사람들끼리 비밀을 공유하는 '내부적 유대감'을 주면서 "나는 대중이 모르는 진실을 알고 있다"는 지적, 정치적 우월감도 충족해 준다. 직접적인 발언이 사회적, 법적 제약을 받을 때 이런 상징물은 처벌을 피할 수 있는 안전한 도피처로 여겨질 수도 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우연일 뿐'이라고 우기면 그만이라는 심리다.
좀 더 나아가면 영역 표시와 권력 과시 공간을 비밀리에 전유해, 공적 공간에 자신의 표식을 남김으로서 그 영역을 정신적으로 지배할 수 있다는 일종의 '샤먼'으로도 설명될 수 있다. 대중의 무의식 속에 상징을 노출시켜 은밀하게 동조자를 모을 수 있다는 믿음이다. 이런 믿음은 극단적 진영에서 주로 통용된다. 무엇보다 그럴듯한 건 '유희적 본능'이 이런 '놀이'에 작동한다는 설명이다. 행위자는 '이스터 에그'를 일종의 게임처럼 즐기고, 감시망을 피해 자신의 흔적을 남겼다는 데서 오는 성취감, 심리적 쾌감을 느낀다.
'도그 휘슬' 효과도 있다. '개호루라기'로도 번역될 수 있는데, 사람 귀에는 들리지 않고 개에게만 들리는 고주파 호루라기에서 착안한 개념으로 정치에서는 특정 지지 그룹의 호응을 얻기 위해 암시적 언어를 사용하는 걸 말한다. 이를테면 '5.18 탱크데이'라는 '개소리'의 의미를 알아챈 국민의힘 충북도당 스레드 계정 운영자는 "내일 스벅 들렀다 출근해야지"라고 즉각 반응한다. 맥락을 제거하고 보면 큰 의미 없는 일상 공유로 보이지만, '개의 주파수'를 알아듣고 '개의 주파수'로 반응한 전형적인 사례다. 이 모든 무의미해 보이는 일들이 그들에겐 '놀이'이자 '쾌락'이고 정치적 영향력을 키우기 위한 소극적 '염원'이다.
어둠 속에 숨어 양지를 지향하는 극우의 '이스터 에그' 찾기 놀이가 무의미한 '헛일'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면, 현실 세계에서 이를 교정하려 시도하는 건 불가피한 일이다. 스타벅스 불매운동 같은 건 지극히 자본주의적 방식의 저항이다.
정용진 회장은 본의와 상관없이 이런 놀이들이 행해질 수 있는 판을 조성해 준 꼴이다. '멸공 챌린지' 같은 극우 세력의 입맛에 맞는 상징과 구호를 사용하는 순간, 그의 사회적 영향력은 일베와 같은 '사회의 하수구'에 울타리를 개방해 주는 효과를 낳는다. 정용진은 그들이 공유하는 수많은 구호 가운데 '멸공'만을 택했을 뿐이지만, 도그 휘슬에 반응하는 이들이 공유하는 스펙트럼은 '반페미니즘'부터 '인종주의', '윤어게인', '장애인 차별'까지 넓고도 깊다. 정용진은 작은 '둑'을 건드렸지만, 결과적으로 극우적 사상의 다양한 스펙트럼들에 사회적 진출의 물꼬를 열어준 셈이다. 그것도 아주 비열한 '이스터 에그' 찾기 방식으로.
재벌 걱정은 하는 게 아니라지만, 이쯤 되면 정용진 회장이 차라리 불쌍하다. 그의 죄가 있다면 '무지'다. 역사에 무지하고 세상에 무지하다. 여기에 치기어린 '나르시시즘'이 결합됐다. 공자의 말을 조금 빌리자면 지혜는 적은데 재산이 많고 덕은 없는데 과시욕이 넘치면 세상은 그에게 반드시 화를 입힌다.
스타벅스의 사명(Corporate mission)은 "세계 최고의 커피를 제공하는 선도 기업이 되어 인간의 정신에 영감을 불어넣고 더욱 풍요롭게"하는 것이라고 스타벅스코리아 홈페이지에 게시되어 있다. 그래도 인간의 정신에 불어넣으려는 그 '영감'이 1980년 5월 18일에 탱크를 동원한 살인자의 그것은 아니리라 믿는다. 우리는 한 사업가의 무모한 '놀이'가 어떻게 브랜드를 갉아먹고 있는지, 어떻게 공동체를 조롱하는 방식으로 나타나는지 생생하고 목격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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