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을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는 전세가가 많은 무주택 서민들의 시름을 깊게 하고 있다. 이 같은 전세가 앙등의 배경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전세가 앙등에 대한 정부의 잘못된 진단과 처방이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이 글에서는 전세가 상승의 원인에 대한 정부의 진단이 왜 잘못됐는지를 서울 지역의 전세 및 보증부 월세 보증금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해 보고자 한다. 또 이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전세가 상승 흐름에 나타난 특징이 향후 주택 정책에 어떤 점을 시사하는지도 살펴보고자 한다. (필자)
필자는 올해 4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새정치연합 이미경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서울 지역 전세 및 보증부 월세의 보증금 실태를 분석해 보았다. 이 분석 작업에 사용된 자료는 2013년 3월부터 2015년 2월까지 2년 동안 임차인이 전세 및 보증부 월세 계약을 한 뒤 확정일자를 받기 위해 행정 기관에 신고한 내역을 국토교통부가 집계한 자료다. 세입자가 직접 신고한 전세 및 보증부 월세의 실거래가 자료인 셈인데, 그동안 주택 매매가와 마찬가지로 부동산 정보 업체들이 제공하는 호가 위주 전세 및 보증부 월세 자료에 비해 훨씬 더 정확한 현실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라고 판단된다. 실제로 이 자료를 분석해본 결과 기존에 언론 보도나 정부 발표 등을 통해 되풀이된 '잘못된 상식'과는 크게 다른 현실을 엿볼 수 있었다. 이제 필자가 분석한 결과를 차례로 살펴보자.
전세 주택 공급 부족 때문에 전세가 상승?
우선 [그림1]에서는 보는 것처럼 서울 지역에서 매월 신고되는 전세 보증금의 총액은 3.7조~5.7조 원 수준이었다. 보통 전세 거래의 경우 신학기를 앞둔 2월에 몰리는 편이지만, 2014년 이후로는 시기를 크게 가리지 않고, 전세 거래와 전세 보증금 총액이 늘어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매월 신고된 전세 보증금 건수는 1만7000건에서 2만8000건 정도로 나타났다. 매월 신고된 전세 보증금 총액을 신고 건수로 나누면 전세 거래당 전세 보증금, 즉 해당 월의 평균 전세 보증금액을 구할 수 있다. 평균 전세 보증금 추이를 [그림 1]의 맨 아래 그래프에서 살펴보면 2013년 4월 1억6385만 원 수준에서 2015년 2월 2억3140만 원 수준으로 2년도 안 돼 약 41.2%인 6755만 원이나 상승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목해서 봐야 할 점이 몇 가지 있다. 첫째, 평균 전세 보증금이 부동산 정보 업체에서 호가 위주로 내놓는 자료와는 달리 늘 지속적인 상승세 일변도는 아니라는 점이다. 그래프에서 보는 것처럼 2년 동안의 기간에도 2013년 중반과 2014년 상반기처럼 오히려 평균 전세 보증 금액이 떨어지는 시기도 있었다. 이는 대다수 부동산업계나 언론들이 현재의 전세난이 전세 수요 대비 전세 공급이 부족해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와는 일정하게 배치되는 현상이다. 전세 주택 수급 상황이 불과 몇 달 사이에 급격히 바뀌면서 이와 연동해 평균 전세 보증금이 바로바로 오르내리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수요에 비해 전세의 상대적 공급 부족이 상당한 배경이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평균 전세 보증금이 단기간에 크게 오르내린다면 단순히 전세의 상대적 공급 부족만으로 전세가 상승을 설명하기 힘든 다른 이유가 있음을 시사한다.
둘째, 보증부 월세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전세 신고 건수(즉, 전세 거래량) 또한 결코 줄지 않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임대인인 주택 소유자들이 세입자의 전세 보증금을 주택 매입을 위한 레버리지로 활용하던 부동산 대세 상승기의 공식(?)이 깨지면서 전세가 빠른 속도로 소멸할 것이라는 '전세 소멸론'과는 사뭇 다른 흐름이다. 물론 향후 전세의 비중은 10~20년 이상의 장기간에 걸쳐서 점진적으로 축소될 것이라고 필자도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부채 비율이 높은 주택 소유자들이 많아 전세를 보증부 월세 또는 월세로 몇 년 안에 일시에 전환하기란 매우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셋째, 가장 주목할 만한 현상인데, 바로 전세가(지금부터는 별도의 설명이 없는 한 전세가는 이번 자료에서 분석된 월별 평균 전세 보증 금액을 지칭하기로 한다)가 급상승하는 시기가 정부 부양책이 나온 시기와 겹치면서 집값이 오를 때 전세가가 따라 오르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반면 부동산 부양책의 효과가 소진될 때는 오히려 전세가가 떨어지는 흐름이 나타난다. 박근혜 정부 초기 전방위적인 부동산 부양책을 망라했던 '4.1 부동산 종합 대책'이 나온 뒤에 그전까지 약세를 보이던 전세가는 오히려 상승하기 시작했다. 반면 그해 6월까지 일시적인 취득세 감면 종료와 함께 4.1 대책의 효과가 다하면서 서울 집값이 다시 가라앉자 전세가 역시 일시적으로 떨어졌다. 이에 정부는 공공 주택 개발 사업 물량을 조정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7.24 후속 대책'에 이어 1%대 수익 공유형 또는 손익 공유형 모기지 대출 시행 등을 포함한 '8.28 전‧월세 대책'을 내놓았다.
이 대책이 나오고 나서 다시 주택 가격이 반등하기 시작했는데, 전세가도 이때부터 다시 이듬해 2월까지 가파르게 상승했다. 역설적이게도 전‧월세 대책이 나오고 난 뒤 오히려 전세가 상승세가 훨씬 더 심각해진 것이다. '8.28 대책'은 겉으로는 전‧월세 대책으로 포장됐으나 정부 스스로 '전세 수요의 매매 전환 유도 정책'이라고 설명할 정도로 세입자가 빚을 내서 집을 사도록 유인하는 정책이 주를 이루었다. 사실상 '빚 많은 집주인 대책'이었다는 점에서 전세가 상승은 당연한 귀결일 수도 있다. '8.28 대책'의 효과 또한 오래가지 못할 듯하자 정부는 그해 12월 정책 모기지를 통합하는 등 '12.3 보완 대책'을 내놓아 주택 가격 상승세를 더욱 부추겼다. 이에 이듬해 2월 무렵까지 호가 위주로 주택 가격이 오르고 언론에서는 '집값 바닥론'을 전망하는 보도를 쏟아냈다. 하지만 2014년 전‧월세 과세 방안을 담은 '2.26 전‧월세 정상화 대책'이 발표되는 한편 주택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식으면서 2014년 3월부터 서울 주택 가격이 주춤하자 전세가는 그해 7월까지 1억6961만 원 수준까지 가파르게 떨어졌다.
부동산 부양책 나올 때마다 전세가 오르는 건, 이상 현상 또는 당연한 귀결?
하지만 2014년 8월부터 최경환 기획재정부장관 겸 경제부총리가 취임하면서 한국은행을 압박해 기준 금리를 인하하고 주택 담보 대출 규제를 대폭 완화하면서 이른바 '빚내서 집 사라'는 정책 기조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또한 재건축 허용 연한 완화 방안 등을 담은 '9.1 대책'과 임대 주택 공급 확대 등을 담은 '10.30 대책', 기업형 임대 주택 사업 육성 방안 등을 담은 2015년 초의 '1.13 대책' 등을 추가했다. 겉으로는 서민 주거난과 전세난 등을 완화하기 위한 방안들이라고 정부는 주장했지만, 구체적 내용을 뜯어보면 대부분 변형된 주택 시장 부양책으로 평가할 수 있는 정책들이었다. 그 결과 이후 사상 최대의 주택 담보 대출 증가를 배경으로 한 주택 거래 증가와 주택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 이에 따라 2014년 8월부터 평균 전세가도 매우 가파르게 상승하기 시작했는데, 2015년 2월까지 6179만 원(31.4%)이나 상승했다.
이런 흐름을 보면 정부의 부동산 부양책이 시행돼 주택 가격이 상승하면 전세난이 완화되기는커녕 오히려 심해지고 있음을 뚜렷이 확인할 수 있다. 지금까지 정부가 진정한 의미의 전‧월세 대책을 내놓은 적도 없지만, 정부의 부동산 부양책 기조 자체가 오히려 전세난을 부추기고 있을 가능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최소한 그동안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없어져 매매 수요가 전세 수요로 몰리면서 전세가 상승으로 이어졌다'는 정부나 부동산업계의 주장은 명백히 틀린 셈이다. 그들 주장대로라면 주택 거래가 활성화돼 주택 가격이 오를 때 전세가가 떨어지고, 반대로 주택 거래가 침체돼 주택 가격이 떨어질 때 전세가가 오르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분석 대상 시기에 나타난 현상은 그 같은 주장과는 정반대에 가깝다. 사실 그 같은 정부 주장은 애초부터 건설업계와 부동산업계가 전세난을 부동산 부양책을 정당화하는 핑계로 활용하기 위해 만들어낸 거짓 논리였다고 필자는 평가한다. 그렇기에 이번 분석에서 나타난 현상은 오히려 당연한 논리적 귀결로 보인다.
분석 대상 기간 평균 전세 보증금과 실거래가지수 추이의 상관도를 분석해보면 상당히 뚜렷한 상관관계가 나타남을 [그림 2]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기간 서울 지역 평균 전세 보증금의 증감을 실거래가지수 흐름으로 약 54.6%나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상당히 강한 상관성이 나타난다. 참고로, '빚내서 집 사라'는 부동산 부양책 기조 아래 시간이 갈수록 주택 담보 대출 증가가 주택 가격 상승의 동력이 되고 있는데, 그런 점에서 주택 담보 대출 증가액과 평균 전세 보증금 상승 추세에서도 상당한 상관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무리하게 빚을 내 집을 사게 하는 정부의 무분별한 부동산 부양책이 전세가 앙등을 초래했을 개연성이 상당히 높다고 필자는 보지만, 정확한 인과관계까지 여기에서 확정할 수는 없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집값 상승이 전세난을 완화한다'는 정부와 건설-부동산업계의 주장이나 상당수 기성 언론의 보도 내용은 명백히 틀렸다는 것이다. 사실 일반적으로는 주택 가격이 오르면 전세가가 따라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대다수 언론은 기초적인 사실관계도 검증하지 않고, 정부와 부동산업계 등의 잘못된 주장을 그대로 확대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보증부 월세 보증금도 정부 부양책 나올 때마다 오른다
평균 전세 보증금 추이에 나타난 현상은 [그림 3]에서 보듯이 보증부 월세의 보증금 추이에서도 비슷하게 재현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전세난이 심각해지면서 정부의 부동산 부양책과 저금리 기조에 기대 전세 물량을 보증부 월세로 전환해 자신의 부채 부담을 세입자에게 전가하거나 저금리에 따른 이자 소득 감소를 만회하려는 집주인들이 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전세 보증금과 비슷한 흐름이 나타나는 것으로 추정된다.
주택 가격 하향 안정화가 전세난 완화를 위한 기본
이어 분석 대상 2년간 전체의 평균 전세 보증금 규모를 [그림 4]를 참고로 서울시 구별로 살펴보면,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등 강남3구가 가장 높고, 양천구, 용산구, 성동구, 중구 등에서 모두 2억 원이 넘었다. 반면 금천구, 강북구, 중랑구, 관악구, 도봉구 등의 평균 전세 보증금 규모가 가장 작았다. 이를 보면 전세 보증금 규모가 주택가격 수준에 거의 정확히 연동하고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전세 보증금보다 금액은 크게 낮지만 보증부 월세의 보증금도 구별로 거의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여기에 나타난 전세와 보증부 월세 보증금은 2년 기간의 평균 금액이기 때문에 최근으로 올수록 평균 보증금액은 전반적으로 더 높을 것이다.
이번 분석을 통해 현재 정부가 진행하고 있는 부동산 부양책은 장기적으로 부동산 거품을 키울 뿐만 아니라 전‧월세 세입자의 전세난을 가중시킬 가능성이 높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전세난을 가중시키고, 전‧월세의 주거 부담을 높이며 최악에는 '깡통전세'까지 양산할 수 있는 잘못된 정책 기조를 수정해야 한다. 그 기조는 기본적으로 주택 가격을 점진적으로 하향 안정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박근혜 정부의 정책 기조를 볼 때 그 같은 정책 전환을 기대하기 어려운 만큼 세입자들부터 가능한 한 전세 보증 보험에 가입하고, 어렵더라도 부채 비중이 높은 주택의 임차는 피해야 한다. 다만, 전세난이 가중된다고 해서 무리하게 빚을 내 집을 사는 것 또한 위험하다. 사상 최대의 주택 담보 대출을 바탕으로 한 주택 가격 상승세는 지속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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