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편 드라이브에 노동계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노·사·정 대타협이란 포장과는 달리, 공공 기관들을 상대로 한 임금피크제 도입 몰이가 본격화하고 있는 게 현재 가장 크게 떠오른 쟁점이다.
특히 노·사·정 대표자 간에 이미 합의를 이뤘던 '원포인트 임금 논의 협의체' 구성이 기획재정부의 반대로 가로막힌 것에 대해, 한국노총의 불만이 계속 쌓여가고 있다.
공공기관 경영 평가를 무기로 한 임금피크제 도입 몰이는, 머지않아 '성과연봉제'와 '퇴출제' 도입 종용으로 이루어질 거란 것 또한 공공부문 노동계의 큰 우려다.
이 외에도 구조 개편의 핵심 쟁점인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가이드라인, 일반해고 요건 완화 지침, 비정규직 확대 법안 등에서도 여전히 노·정 간 입장이 좁혀지지 않고 있다.
새누리당 만난 한국노총 "신뢰 깨는 행위, 용인할 수 없다"
3일 오후 새누리당 노동 선진화 특별위원회 이인제 위원장을 만난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은 이 같은 노동계 및 노총 내 분위기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그는 "굉장히 유감스러운 일이 요즘 많이 진행되고 있다. 김주영 공공노련 위원장이 굉장히 분개하고 있다"고 했다.
"노사정위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인데, 한국노총의 노사정위 복귀 이후 외려 316개 공기업 및 공공기관에 대한 임금피크제 드라이브가 본격화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한국노총의 반발처럼, 기획재정부는 최근 공기업 및 공공기관 경영 평가에 임금피크제 도입 항목을 만들고, 도입 시점에 따라 가산점을 차등화(7월 1.0점, 8월 0.8점, 9월 0.6점, 10월 0.4점)하겠다고 공공기관들에게 공문을 보냈다. (☞ 관련 기사 : 임금피크제 드라이브, 제동 걸릴까?)
그러면서 한국노총의 노사정위 복귀 이후 노사정 대표자 모임에서 의견을 모았던 '원포인트 임금 논의 기구' 구성에는 부정적인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원포인트 임금 논의 기구를 분명히 만들기로 했다. 노사정 대표가 하기로 (합의)했었다"면서 "그럼에도 아직도 그걸 그냥 무시하고 이렇게 밀고 나가는 이런 행태는 신뢰가 깨진 것이다. 저희는 이 부분을 전혀 용인할 수 없다"고도 말했다.
그는 "한국노총은 자율적인 임금피크제 도입을 항상 얘기했지, 원칙적으로 반대한 적은 한 번도 없다"면서 "그럼에도 언론을 통해 한국노총이 세대 간 갈등을 조장하고 임금 피크제를 자체를 반대하는 것처럼 침소봉대하는 것은 매우 유감"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임금 피크제 이후 정부가 진행할 것으로 보이는 임금 체계 개편에 대해서도 김 위원장은 우려와 반대 입장을 표시했다.
그는 "과거에 총액 임금제 등의 임금 억제 정책을 쓰며 기본급을 못 올리게 했다. 그건 이인제 노동부 장관 때도 마찬가지"라면서 "그러다 보니 기본급을 못 올려 임금 체계가 어떻게 됐나. 수당이 10개, 20개씩 생겼다"고 말했다.
정부에선 국내 노동 시장의 임금 체계의 개혁 필요성이 '노조의 기득권 챙기기' 때문에 생겨난 것처럼 설명하지만, 임금 체계가 복잡하고 어려워진 것은 정부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의견 듣겠다'더니…정부 시간표 그대로 제시한 새누리
'노동계의 의견을 듣겠다'면서 만들어진 이날 간담회는 1시간 20분가량 진행됐다. 양측은 서로의 입장 차를 확인했으며, 특히 임금 피크제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과 관련한 개편안이 쟁점이 됐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특히 자리에 함께한 김주익 공공노련 위원장이 '임금피크제는 노사가 자율로 도입해야 한다. 그리고 합의한 대로 원포인트 협의체를 우선 구성하라'고 요구했으나, 새누리당에선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와 관련, 이 위원장은 '원포인트 협의체 구성 요구가 있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건 논의 중이니 잘 해결될 것"이라고 짧게 답했다.
임금피크제 도입을 시작으로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이 광범위하게 진행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한국노총이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새누리당 노동시장 선진화 특위 간사인 이완영 의원은 "저는 고용노동부에서 임금피크제와 관련해서만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지침을 만들겠다고 이해하는데, 한국노총에선 모든 근로조건에 불이익 변경이 이루어질 수 있는 거 아니냐고 우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가이드라인은,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의 경우 과반수 노동자와의 협의를 통해 취업규칙을 변경해야 하는 현행 근로기준법과 달리 '사회 통념상 합리성'이 있는 변경은 노동자 집단 동의 없이도 가능하다는 내용으로 작성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강훈중 대변인은 "애초부터 어떤 합의를 하려고 만든 자리가 아니었다. 서로의 의견 차만 확인했다"고 밝혔다.
새누리당은 '의견을 듣겠다'는 이날에도 정부-여당이 세워놓은 시간표를 그대로 제시하며 이에 맞춰 '노·사·정 대타협을 해달라고 한국노총을 압박한 것으로도 전해졌다.
이 위원장은 간담회 후 기자들을 만나서도 "5개 개혁 법안을 당정 간 조율하고 의원총회에서 당론으로 결정해 9월 15일까지는 제출해야 한다"면서 "9월 10일까지는 대타협이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저희가 뒤에서 적극 뒷받침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영 평가' 엄포로 이탈 발생…5개 노조 "더는 개별 합의 없다"
그러나 한국노총 지도부의 이 같은 대여 반발과 별개로, 산하 공공부문 사업장들에선 기재부의 '경평' 압박에 항복하고 임금피크제 협의를 하는 사업장들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경영평가 유형 중 '1군'에 속하는 대형 공기업 10개 중 한국노총 소속 노조가 있는 4곳(LH, 수자원공사, 도로공사, 인천공항공사)이 최근 임금 피크제에 노사가 합의했다. 또 한전은 앞서 임금피크제가 이미 도입됐던 곳이다.
이에 따라 석유공사노조(한국노총)와 가스공사·공항공사·지역난방공사·철도공사 노조(민주노총) 등 1군의 절반만이 남아 '노사정위 논의 등을 통해 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기관별 노사 합의는 하지 않는다'는 이전 합의를 지키고 있는 형편이다.
양대노총 공공부문 공동투쟁본부 이날 대표자 회의를 열고 "기관별 노사합의는 하지 않는다고 했던 27일 대표자회의 결정을 위반하여 일부 기관에서 개별 합의가 발생한 사태의 엄중함을 공유"하고 "이날 회의에 참석한 대표자들은 노사정위 논의 결과까지는 개별 합의는 하지 않음을 재차 확인했다"고 밝혔다.
또 교섭 과정에서 정부와 사측이 성과 연봉제와 퇴출제 등을 추가로 제출할 경우 교섭을 중단하고 쟁의 절차에 착수하기로도 의견을 모았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박준형 정책실장은 "정부에선 '이렇게 무너지고 있으니 나머지에도 곧 (임금피크제가) 도입될 거다. 다 끝났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면서 "이탈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 주요 기관들이 버티고 있다. 이날 회의 때도 끝까지 싸우겠다는 의지를 모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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