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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피크제 드라이브, 제동 걸릴까?

법원, "노동자 집단 동의 없는 임금피크제 도입은 무효" 판결

회사가 노동자들의 '집단' 의사를 묻지 않은 취업규칙 변경으로 임금 피크제를 도입하면 무효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정부가 겉으로는 '노·사·정 대타협'을 내세우면서도 실제로는 노사정위 논의가 채 시작되기도 전에 산하 공공 기관들에 임금피크제를 밀어붙이던 중 나온 판결이라 주목된다.

이 판결대로면 '8월 말' 또는 '연내'라는 정부 시간표에 맞추려고 '불도저'식으로 임금피크제 도입 합의를 개별 또는 소그룹 노동자들에게 종용했거나, 심한 경우 일방 추진한 공공기관들은 향후 법원에서 '임금 삭감액 반환' 판결을 받을 수도 있어 보인다.

당장 민주노총은 임금 피크제가 일방 추진된 기관들에서의 '법률 대응' 방침을 밝혔고, 한국노총 또한 이미 노사정위 대표자 간 공감대가 이루어진 '원포인트 협의체'를 통한 임금피크제 논의가 우선돼야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정의당은 이날 판결에 대해 "정부의 밀어붙치기에 경종을 울린 것"이라고 의미 부여하며, 임금 피크제 추진을 위한 당사자와의 대화는 '필수'라는 점을 재차 지적했다.

사법부 "소수 직원 대면…집단의 의사 결정 배제"

법원이 노동자 집단의 의사 확인 없이 임금 피크제를 도입해 사실상 '무효'라고 판단한 사업장은 교육기업 '대교'다. 학습지 '눈높이'로 잘 알려진 이 기업은 지난 2009년 6월과 2011년 1월 두 차례에 걸쳐 강도 높은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이 가운데 1차 취업규칙 변경 때에는 직원 중 84.4%가 찬성을 했고, 2차 때엔 91.4%가 찬성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런 높은 찬성률의 이면에는 소수, 또는 직원 한명 내지 2명에 대한 관리자들의 개별 면담이 있었던 것이 확인됐다. 적은 경우 1~2명, 대체로 5명으로 이루어진 '교육국'을 단위로 임금피크제 도입에 대한 동의 여부를 물었던 것이다.

이에 임금 피크제 대상이 됐던 3명이 취업규칙 변경 과정에 하자가 있다며 임금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 42부(마용주 부장판사)는 2일 원고들에게 임금 삭감액 "3320만~4019만 원을 지급하라"는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회사 관리자가 극히 소수 단위의 직원을 직접 대면해 찬반 동의서를 받고, 기명 날인된 찬반 의사를 취합해 회사 인사팀에 보고하는 것은 노동자의 의사 표현 자율성을 상당히 축소시킨다"면서 "회의 방식을 통한 노동자들의 자율적이고 집단적인 의사 결정이 보장돼야 함에도 회사 측이 그런 기회를 부여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정부 "316곳 중 96곳 임금 피크제 도입"…협의 과정에 문제 없었나

이 판결이 특히 주목되는 이유는 정부가 바로 전날 보도자료를 내어 "지난달 31일까지 316개의 공공기관 가운데 96곳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7월 말까지 11개 기관이 도입한 이후 한 달여 만에 85곳이 새로 참여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정부의 이 발표 이후 일부 언론은 해당 기관들의 임금 피크제 도입 '과정'에 문제가 없었는지를 들여다보기 보다, '공공기관 임금 피크제 급물살'이란 제목의 결과론적 기사들을 중심으로 보도하고 있다.

96곳 공공기관 중 절반 가까이(53개)가 한국노총 또는 민주노총 등 상급단체에 가입해 있음에도, 임금 피크제가 빠른 속도로 관철되는 배경에는 '공공기관 경영평가제도', 이른바 '경평'을 활용한 기획재정부의 밀어붙이기가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얼마 전 "연내 모든 공공 기관에 임금 피크제 도입, 9월까지 도입률 50% 목표"를 주문했고, 이에 발맞춰 기재부는 공공기관 경평에 임금피크제 항목을 배정(2점), 도입 시기에 따라 가점을 차등화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7월 도입은 가점 1.0점, 8월 도입은 0.8점, 9월은 0.6점, 10월은 0.4점이다.

▲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연합뉴스
얼마 전 노사정위원회 복귀 선언을 하고 고용노동부, 노사정위, 경총과 막 대화를 재개한 한국노총으로선 매우 '황당'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한국노총의 노사정위 복귀 이후 노사정위 4자 대표는 임금피크제 도입 방식 논의를 위한 '원포인트 협의체' 구성에 합의한 터다.

이정환 한국노총 공공노력 정책실장은 "노사정위 4자의 '원포인트 협의체' 구성 합의에도, 기재부는 아랑곳없이 공공기관들에 임금피크제 도입을 압박해 왔다"면서 "기재부로부터 경영평가 관련 공문을 받은 기관장들이 노조를 압박하면서 8월 말까지 큰 공공기관들에 임금피크제가 많이 도입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더욱이 도입 시기에 따라 경영평가에 가점을 차등화한다고 밝힌 까닭에, 일부 개별 노조들은 상급단체인 한국노총의 노사정위 및 원포인트 협의 결과를 기다리지 않고 임금 피크제 도입에 합의를 해주는 형편이다.

이 정책실장은 "한국노총은 임금피크제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하며 "정년 연장과 신규 채용의 모든 부담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것이 아닌, 보다 합리적인 방안을 찾자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대환 노사정위 위원장 등의 원포인트 협의체 구성 약속을 믿고, 많은 공공기관이 논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도 말했다.

노사정 '대화'하자더니…기재부 '마이 웨이', 더 큰 혼란 부를지도

이처럼 사법부의 판단, 노사정위에서의 한국노총의 대화 노력과 무관하게 기획재정부가 '마이 웨이'를 계속할 경우 각 사업장 별 법정 싸움이 벌어져 더욱 혼란스러운 상황이 연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미 기재부가 발표한 임금피크제 도입 공공 기관 일부에서도 불법적인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사례가 포착되고 있다는 게 노동계의 설명이다.

복수노조 사업장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지난달 27일부터 28일 양일간 노조의 동의 없이 전 직원의 개별 동의서를 기명식으로 받을 계획인 것이 일찌감치 알려져 양대 노총이 "응분의 대가를 치르도록 하겠다"는 성명을 낸 일도 있었다.

민주노총은 2일 낸 논평에서 일부 임금 피크제 도입 기관에서는 "'여론조사'를 빙자해 과반 동의라고 주장하는 불법 행위도 진행되고 있다"고 알리기도 했다.

민주노총은 "대교 판결에 따르면 상당수 (공공기관의 임금 피크제 도입 결과)가 무효가 될 수밖에 없다"면서 "불법·협박을 통한 임금 피크제 도입에 해당 산별 노조와 함께 법률 대응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내주 중 노사정위 앞 농성을 예고했으며, 양대노총 공투본은 오는 12일 대규모 집회를 벌인다.

정의당 또한 이날 나온 대교 판결엔 '환영' 논평을 내고, 정부의 경영 평가를 활용한 임금 피크제 도입 종용에 대해 "과정과 절차는 생략한 채, 군사 작전하듯 무조건 정부만 믿고 따라오라는 식"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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