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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선이 왜 둥글게 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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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선이 왜 둥글게 보일까?"

[온 가족 세계여행기] 소박한 사람들의 나라, 포르투갈

스페인 마드리드를 떠나 포르투갈로 향한다. 기점은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이다.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를 달린다. 유로존에 가입한 나라들은 국경이 없이 표지판 하나로 나라를 구분하기 때문에 넋 놓고 달리다 보면 어디가 스페인이고 어디가 포르투갈인지 구분하기 힘들다.

하지만 각 나라가 가진 서로 다른 독특한 색깔 때문에 어디가 스페인이고 어디가 포르투갈인지 금방 구분할 수 있다. 스페인이 광활하고 거친 남성이라면 포르투갈은 조신하고 수줍은 여성 같다. 포르투갈로 접어들자마자 저 멀리까지 펼쳐진 농지와 목초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농지를 경작하느라 긴 쇠막대기에 물구멍을 연결해놓은 스프링클러가 짤깍짤깍 돌아가는 것이 꼭 논밭 매는 아낙네의 손길처럼 차분하고 목초지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말과 양들은 한없이 목가적이다.

이런 포르투갈의 청정자연 때문일까. 포르투갈로 접어 들어가자마자 그야말로 차 유리창에 돌격해 들어오는 곤충들의 습격이 시작되었다. 유럽 자동차 여행을 하며 고속으로 달리는 자동차는 자신의 의도와 관계없이 부딪치는 곤충들의 수많은 잔해를 발견하곤 한다.

그러나 최고는 포르투갈 지역이었다. 유리창에 매초마다 퍽퍽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자다가 퍽하며 부딪히는 소리에 깜짝 놀라 깨어났다. 가끔은 새똥인지 곤충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의 큰 흔적이 유리창에 새겨지곤 했다. 우리는 고속도로에서 주유소를 발견할 때마다 차를 세워야 했고 유리창에 돌진한 그들의 흔적을 닦아내야만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했다. 그러나 이런 번거로움 역시 그 만큼 청정한 자연생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반증일 테고 포르투갈은 그렇게 깨끗한 자연만큼이나 순수하고 순박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청정자연 이어서였을까. 고속도로를 지나가는데 앞부분에 물이 가득하다. '어, 조심해야겠는데, 고속인데 잘못하면 미끄러질라.' 그런데 가까이 가보면 그 물이 감쪽같이 사라진다. 물론 이전에도 몇 번씩 이런 경험을 안했던 건 아니지만 마치 거울처럼 도로의 나무와 육교까지 반사하며 그득했던 물웅덩이가 가까이 다가가면 순식간에 도로 밑으로 물이 빠져나간 것처럼 사라져버린다. 땅에 젖어있는 흔적까지도 말끔히 없애고 말이다. 이런 일이 몇 분 간격으로 계속된다. 구부러진 길뿐만 아니라 직선도로에서까지. 무슨 SF영화도 아니고 나 원 참!

우리 네 식구 모두 이런저런 추론만 하며 해답을 얻지 못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것은 지표면의 온도 차이에 따라 빛이 반사되는 각도가 달라지며 생겨나는 신기루 현상이었다.

청정 자연을 경험하며 도착한 리스본

국경이 없는 유럽이지만, 새로운 나라에 들어올 때는 언제나 설렌다.
이곳에는 또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지, 또 어떤 모습들을 하고 있을지, 우리와는 어떤 동질감으로 서로 공감하게 될지. 설렘과 궁금함으로 눈동자를 여기저기 굴리게 된다. 간단한 검색으로 시내 여기저기를 둘러본다.


▲ 에펠의 제자가 지은 엘리베이터. ⓒ가온가람이 가족

맨 먼저 간곳은 에펠의 제자가 지었다는 신도시와 구도시를 연결하는 엘리베이터다. 에펠탑도 아무 것도 덧붙이지 않은 단순한 철 구조물이 아니던가? 에펠의 제자가 지었다는 이 엘리베이터 역시 군더더기 없이 단순한 형태로 지어져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쪽으로 오르면 신도시와 구도시를 연결하는 통로가 있고, 도시 전체가 한눈에 조망된다. 도시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는 엘리베이터에서 다시 두 층 정도의 나선형 계단을 올라야 하는데 이 계단을 오를 때 에펠의 제자임을 재차 확인할 수 있다. 계단이 단순한 철 구조물 자체다. 아무런 보조 장치가 없다. 나처럼 선천적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이런 계단을 오르는 것이 아주 곤혹스럽다. 위아래가 뻥 뚫려서 안볼 수도 없고, 오르자니 온몸이 돌처럼 경직되고 발바닥은 계속 찌릿찌릿 쥐가 난다. 아이들은 장난을 친다고 난간을 흔들어 댄다. '으악! 하지 마' 비명소리와 함께 버럭 소리가 먼저 나간다. 머릿속에서 이런 경우에 작동되는 자동적 프로그램이 있다. 계단이 부서지고, 잡고 있는 난간에서 손이 분리되어 떨어지기도 하고, 뻥 뚫린 구멍으로 몸이 떨어져 땅을 향해 유유히 자유낙하 하는, 이런 종류의 상상이 순서 없이 마구 돌아간다.

여행 초기 라오스의 '꽝시폭포'에서 과감하게 다이빙을 하며 나의 한계를 한번 극복했지만, 선천적으로 돌아가는 머릿속 프로그램을 영원히 지울 수는 없다. 다만, 죽지 않는다는 것을 이성적으로는 확실히 알기 때문에 마음을 다잡고 오를 수 있는 조절능력을 가진다는 것에 만족한다.
▲ 전망대에서 바라본 리스본 신구 시가지. ⓒ가온가람이 가족

이렇게 어렵게 오른 전망대는 실망스럽지 않은 광경을 제공한다. 전망대는 아주 높은 곳에 있지는 않고 도시 중심부에 있지만 항구로 연결되는 도로를 사이에 두고 언덕배기에 신도시와 구도시가 나란히 서 있다. 신구도시 모두 작정이라도 한 듯 모두 주황색 지붕이 출렁인다. 주황색이 아닌 지붕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천편일률의 주황색 지붕이다.

신도시는 세련되고 구도시는 고풍스럽고, 이런 걸 느낄 정도의 격차가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리스본은 포르투갈의 수도라서 오랫동안 도시의 형태를 유지하던 동네와 새롭게 계획된 도시의 차이 정도랄까?
▲ 제르니모스 수도원. ⓒ가온가람이 가족

그 이후 마누엘 양식을 가장 잘 나타낸다는 평가를 받는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연상시키는 제르니모스 수도원에 들러본다.

이후 마치 바다에 떠있는 성과 같은 등대 벨렘 탑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게 웬 행운인가? 때마침 그곳에선 재즈 페스티발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고 우리는 그곳에서 포르투갈의 젊음과 자유로움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여기저기 삼삼오오 모여 흐르는 음악에 마음껏 몸을 맡기고 연인들은 잔디밭에 앉거나 누운 채 부드러운 바다바람과 감미로운 음악을 안주삼아 맥주잔을 기울이고 있다. '음, 조금만 젊었더라면….' 그래도 마음만은 그들과 함께 젊어지는 기분이다. 행복한 순간이다.

▲ 바다 위의 등대, 벨렘 탑. ⓒ가온가람이 가족
▲ 재즈 페스티발. ⓒ가온가람이 가족

유럽의 최서단 땅끝마을, 카보다로카

유럽의 최서단 땅끝으로 향한다. 바위곶으로 알려진 카보다로카.
유럽의 땅끝인 이곳. 수평선이 둥글게 보여서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는 그런 곳이다. 우리는 과학의 기반 위에서 지구가 둥글고 태양의 주위를 돌며 지구는 스스로 매일 한 바퀴씩 자전하며 달의 인력으로 밀물과 썰물이 생겨난다는 것까지 이미 알고 있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될 때 까지 과거 선조들은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을까? 수천 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한없이 이 바다를 바라보며 세상의 진리를 고민했을까?

때로는 대형코끼리와 거북이가 이 땅을 받들고 있어서 저 바다 끝이 천 길 낭떠러지라서 먼 바다까지 나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고, 때로는 고기잡이 후 돌아오는 배가 조금씩 형태를 드러낼 때 가졌을 환희, 돛이 보이고 이어서 배의 선체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낼 때 가졌을 궁금증! 수평선을 보면서 왜 수평선이 직선이 아니고 동그랗게 보일까라는 고민을 했을 우리의 조상들.

마침내 갈릴레이가 "그래도 지구는 도는데~"라는 말을 남기며 교수형을 당하고 신에 대한 도전으로 느껴지는 과학적 진실들을 거부하기도 했지만, 신들의 세상에서 인간의 세상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막을 수는 없었고, 그 이후로도 수많은 사람들의 고민은 계속되었을 것이다. 수천 년에 걸친 그들의 고뇌와 상상이 오버랩 되며 진리에 대한 인간의 끝없는 갈망을 함께 느껴본다.

하루 종일 수평선을 바라보며 이곳에서 고민과 상념에 빠졌을 그들의 고뇌를 호흡하려는 순간, 마치 꿈에서 깨어나듯 비현실적인 나의 상념은 현실로 돌아온다. 아이들은 에너지를 최대한 많이 소모하며 놀기를 좋아해서 유명지에서 사진 찍기를 끝내자마자 서로 쫓아가고 도망가기를 여러 번 반복한다. 마침내 가람이가 미끄러지면서 제압당하고 무릎과 팔이 바닥에 미끄러지며 흘러나온 빨간 피로서 종결되었다.
▲ 유럽의 서쪽 끝, 카보다로카. ⓒ가온가람이 가족


아기자기한 마을 오비도스

포르투갈 인들이 가장 아름답다고 평가하는 아기자기한 마을 오비도스. 마치 만화에나 나올듯한 집들과 골목길, 예쁜 화분들, 그리고 너무 예쁘고 소박하면서도 강렬했던 고서점. 하루 종일 둘러봐도 시간이 모자랄 것 같은 곳.

특히 그곳은 오래된 전통마을과 함께 유지하고 있는 자연 그대로의 깨끗함이 있었다. 성벽외곽을 따라 걷는 길은 중세시절의 외곽 길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간간히 설치해놓은 작은 놀이터와 벤치는 우리를 더욱 편안하게 했다. 마지막에 사슴들이 살 수 있도록 쳐놓은 울타리에서 우리 아이들은 한참동안 풀을 주며 겁 많은 사슴의 습성도 보고 커다란 입으로 나뭇잎을 우걱우걱 먹는 모습에 한동안 넋을 잃기도 했다.

1퍼센트의 스트레스도 거부하는 환경! 자연과 완벽히 동화되어 살았을 사람들을 회상하며 그곳의 아름다움을 기억한다.

▲ 오비도스. ⓒ가온가람이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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