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에서 스페인의 중심부 마드리드까지 600킬로미터(km)가 넘는 거리를 하루에 달린다. 도로가 좋은 유럽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바르셀로나의 해안지역을 벗어나는데 통행료가 제법 비싸다. 스페인의 고속도로 시스템을 몰라서 '이 정도 거리에 이 가격이라면, 마드리드까지 도대체 통행료를 얼마나 내야 하는 거야'하며 기함했었다. 그러나 바르셀로나가 속한 카탈루냐 지방을 지나서 안쪽 영토로 들어오자 고속도로 통행료가 없어졌다. 우리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면서도 통행료를 내지 않는다는 사실에 마냥 신이 났었다. 이와 비슷한 경험은 스페인 서북쪽 변방인 빌바오에 갔을 때도 겪었는데, 바스크 지방도 들어가는 입구에서만 통행료를 받는다.
추측해보면 스페인의 중앙 안쪽은 이른바 국고에 의해서 지원을 받아 모든 고속도로의 통행료를 받지 않는 반면, 변방에 속하는 카탈루냐와 바스크 지방 등은 역사적으로 내전도 치른 데다 지속적인 독립요구가 있어왔던 자치주라서 자체적으로 재정을 충당하는 듯하다. 그래서 이런 자치주는 재정수입을 위해 고속도로 입구와 출구에서 꽤 많은 통행료를 받는다. 관광지의 입장료도 스페인의 다른 곳보다 비쌌다. 즉, 몇몇 지방은 중앙과 서로 다른 독립된 시스템과 재정구조를 가진 자치주 형태를 띠는 듯했는데, 적어도 카탈루냐와 바스크 지방이 중앙과 무관한 독립된 재정운영 시스템을 가진 것은 분명해 보였다. 이렇게 고속도로 통행료로 지방자치 체계를 추측해보며 스페인 중앙을 향한다.
이제 본격적으로 광활한 스페인 영토 안으로 들어간다. 간간히 투우의 상징인 대형 소 동상이 세워져 있다. 대륙의 광활함을 실감하듯 지구탄생 이후 한 번도 사람이 살지 않았던 듯한 황폐한 곳을 지나는가 하면 '반지의 제왕' 영화의 세트장처럼 크고 작은 구릉과 산이 수없이 펼쳐져 영화 속 한 장면이 재현되기도 한다. 지나다니는 차도 거의 없고, 자연의 생김새도 특이하기 그지없다. 마을 하나 없는 그런 도로를 족히 2~3시간을 달린 듯하다. 마치 이쪽 세계와 저쪽 세상을 갈라놓기 위해 공간을 비워둔 것처럼. 한참을 지나자 조금씩 마을이 보이기 시작하고 스페인의 중심부에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하게 한다.
이렇게 태초 지구로 시간여행을 다녀오며 스페인의 중심부 마드리드에 도착했다.
우리는 마드리드 옆 동네쯤 되는 거리에 있는 중세 성채마을 톨레도의 캠핑장에서 머물렀다. 이 캠핑장도 모바일 홈까지 지닌 시설 좋은 캠핑장이었으나 모바일 홈이 턱없이 비싸서(125 유로) 그냥 텐트를 쳤다. 스페인 물가로 봐도 좀 맞지 않은 가격인 듯했다. 텐트 치는 비용은 하루에 약 35유로로 다른 곳보다 더 싸다. 어쨋건 이곳 모바일 홈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이상한 가격책정이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소박한 텐트 생활을 즐긴다.
고야와 조우한 마드리드의 프라다
다음날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로 향한다.
마드리드는 스페인의 수도일 뿐만 아니라 세계 4대 미술관 중 하나인 프라도 미술관이 있는 곳이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여행이라서 교육적 측면에서도 유명 박물관과 미술관은 반드시 둘러보기로 한다. 프라도 미술관에 도착하자마자 미술관 입구를 둘러싸고 긴 줄이 서 있다. 특별한 행사를 하는 것도 아닌데 족히 200m는 되어 보이는 긴 줄이 있다. 땡볕에 줄을 서 있는 게 피곤하긴 하지만 뭐 딱히 선택할 방법은 없고, 지루한 줄서기를 하고 있다. 생각보다 줄어드는 속도가 빠르지만, 기다림은 언제나 지루하다. 그렇게 우리 차례가 다가왔고, 프라도 미술관으로 들어간다. 미술관 입장 전부터 긴 줄서기에 한번 지치고 미술관에 들어가자마자부터 미로처럼 많은 방에 수없는 그림들에 두 번 지친다. 우리는 벌써부터 지쳐서 프라도 미술관의 많은 작품들을 다 보진 못했다.
그러나 프라도에서 가장 유명한 명화 중 하나인 고야의 '옷 벗은 마야'와 '옷 입은 마야'는 피곤을 단숨에 날려버릴만큼 재미있는 일화를 가지고 있어서 눈을 번쩍 뜨이게 했다.
고야의 '옷 벗은 마야'는 당시 신이 아닌 인간의 빛나는 우윳빛 피부를 표현해 낸 최초의 누드화였다고 한다. 루벤스의 '파리스의 심판'도 아름다운 여신의 자태뿐만 아니라 보고 있으면 살결을 만져보고 싶을 정도로 부드러운 피부를 선명하고 빛나게 묘사하였지만, 이는 신에 대한 경외의 표현이므로 그 시대에도 충분히 칭송되고 인정되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누드화는 오로지 신(神)들을 표현할 때만 허용되었나 보다.
이로 인해 신이 아닌 인간의 누드화를 그린 고야에게 법정은 신성 모독이라는 죄목을 적용한다. 고야는 그 누드 그림의 여인이 누구인지, 왜 그 그림을 그렸는지 등 어떤 사실도 밝히지 않고 묵묵부답으로 일관한다. 그러자 법정은 이 누드화에 옷을 입히라고 명령하였고, 고야는 법정의 명령에 따라 '옷 입은 마야'를 그리게 된다.
그러나 이 누드화에 덧칠을 하여 옷을 입힌 것이 아니라 원래 누드화는 그대로 두고 똑같은 자세로 옷 입은 마야를 하나 더 그린 것이다. 고야의 절묘한 한수가 보인다. 법정의 명령을 거부하면 더 큰 죄목을 쓰게 될 테고, 자신의 창작품에 대한 세상의 잣대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고…. "어떻게 해야 하나" 고야의 고민이 감정이입 된다. 고민의 결과는 누드화를 그대로 두고 비누드화를 똑같이 그리는 것이었고, 비누드화를 세상에 보여주고 아마 누드화는 숨겨두었을 것이다.
그 시대에는 이런 행동이 '불법' 또는 '교묘한 사기'였을 수도 있다. 그래서 만약 고야가 자신의 자유의지대로 행동하지 않고 세상의 잣대를 그대로 수용하여 '옷 벗은 마야'에 덧칠하여 '옷 입은 마야'를 그려 넣었다면, 그 빛나는 우윳빛 피부를 그려낸 고야의 가치도 사라졌을 것이고 더불어 신을 넘어 인간으로 향하려는 자유의지도 함께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이 그림에서는 고야가 신에게서 빛나는 피부를 빼앗아 인간에게 가져다 준 것 같은 환희가 잠시 흐른다. 몇 세기가 지난 지금 우리는 이 두 작품을 함께 보며 고야의 예술성에 놀라고 고야의 자유의지에 미소 짓는다. 시대의 잣대가 아니라 자유의지를 지키려는 고야의 결단은 바뀐 시대를 사는 지금 우리에겐 행복이 된다.
그 외 고야는 다른 그림에서도 인간을 향한 자유의지를 나타냈는데, 신화의 문구를 신성시하여 표현했던 고전파의 전통에서 벗어나 기존의 신화를 표현하는 방식이 기괴하기까지 하다(실제로 보면 섬뜩하다). '아들을 집어삼키는 사투르누스'에서는 완벽한 신이 아니라 아들까지 집어 삼키는 인간의 욕망과 고뇌의 고통스러움을 신에게 투영한다. 이러한 파격적 경향은 이후 인상파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는데, 인간의 자유의지를 향한 한발 한발이 고야에서 인상파 화가에게로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에게로 이어진다.
중세 성채도시 톨레도
톨레도는 성 전체가 해자(성의 주위를 파 경계로 삼은 구덩이)로 둘러싸여 천혜의 요새로 불리던 스페인의 옛 수도이다. 20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 톨레도는 그리스도교, 아랍교, 유대교까지 다양한 문화의 영향을 받은 곳으로서 스페인의 가장 전통적인 도시로 알려져 있고, 이곳은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중세 성채도시를 잘 보존하고 있는 곳이다.
역시 그 명성에 걸맞게 도시 뒤편은 높은 산이 가로막고 있고 앞쪽으로는 도시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깊은 해자가 버티고 있어 천혜의 요새라 불릴 지형이었다. 이 지형에 도시 전체를 성곽으로 둘러싸서 성채도시의 규모와 높이가 가히 놀랄 만했다. 배산임수라고 하던가? 해자를 건너는 긴 다리가 중간 중간에 세워져 있고, 도시는 아래부터 산 중턱까지 언덕에 빼곡히 집들이 들어차 있었다. 중세에 특별한 도시계획 없이 세워진 집들 사이에 미로처럼 여기저기 뻗어있는 작은 가도들. 따각따각거리는 말마차가 금방이라도 저쪽 편에서 튀어나올 것만 같다.
그러나 톨레도 성채도시는 암벽으로 된 지형으로 언덕 사이에 미로 같은 길들이 여기저기 뻗어있어서 이리저리 걷다 보면 길을 잃기에 십상이다. 더군다나 날씨가 너무 화창해서 햇볕이 머리 위로 그대로 내리치는데, 이런 언덕 골목길을 이리저리 배회하다 보니 여행의 피로감이 확 밀려왔다.
날씨는 덥고 언덕길을 오르자니 다리는 아프고, 안 오르자니 어디 딱히 쉴 곳도 마땅치 않고, 중세의 성채도시를 구경하러 왔으니 힘들어도 둘러보는 수밖에…. 어른들도 힘에 부치는데, 아이들이라고 편안할 리 없다. 애들은 "다리가 아프다, 덥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 배가 고프다" 등 오늘따라 투정이 심하다. 아이스크림도 사 먹고 밥도 먹었다. 그러나 더운 것과 다리 아픈 건 딱히 도리가 없다. 그러다가 차를 이동해서 다른 쪽 주차장에 세워두고 성곽과 해자가 있는 성곽 길도 걸어보고 다리도 한번 건너보려는데, 가람이가 차에서 내리지 않겠다고 성깔을 부린다. 다른 식구들은 한번 둘러보자고 하고, 역사지구에는 특별히 더 관심을 가지는 아빠와 언니는 돌아보고 싶어 하는데, 자신은 졸리기도 하고 덥고 다리아파서 가기 싫다고. 뭐 한두 번 있는 일은 아니니까 살살 달래가며 내리라고 해본다. 몇 번 달래도 계속 떼를 써서 차에 혼자 두고 모두 그냥 내려버렸다. 사실 말이 좋아 "그럼 너 그냥 차에 혼자 있어"라고 하는 것이지, 이 더운 날 어린애를 차에 혼자 두고 갈 수는 없는 일이다. 아마 법으로도 아동유기쯤에 해당되는 죄목이 씌워질 것이다.
그래도 화가 나서 가람이를 차에 혼자 두고 잠시 그냥 가는 척한다. 미동도 없다. 차에서 자는지 우는지 고집을 부리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할 수 없이 간 길을 되돌아가서 차 문을 연다. 혼자서 독을 잔뜩 품고 툭 튀어나온 입으로 한곳을 응시하고 있다.
이렇게 컨디션이 뚝 떨어진 날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힘이 든다. 조금씩 양보하고 서로 이해하면 되겠지만. 서로 피곤하니까 조금 달래보다가 안 되면 뚝 부러지는 행동을 취하게 되고 이럴 땐 항상 '나이를 먹어도 안 되는 게 있구나'라는 생각에 자신을 자책하게 된다.
다시 돌아가 차 문을 열고 가람이를 달래서 해자 주위를 조금만 걸어보자고 한다. "아빠, 엄마, 언니는 다 여기 둘러볼 건데 너 혼자 여기 있을 수 없잖아?" "미안해! 차에 혼자 둬서…." 가람이는 그때까지 떼를 부리며 버티고 있던 자존심이 풀리는지 "엄마 미워"하며 펑펑 운다.
말도 안 통하고 아는 사람도 없고, 심지어 연락할 곳도 집도 없는 상태에서 차에 혼자 있으라고 소리를 버럭 지르고 저 멀리 보이지 않는 곳까지 가버렸으니, 아이가 가졌을 공포감이 오죽했을까? 그런데 고집을 부렸던 자존심에 울지도 않고 계속 버티고 있으려니 그 조그만 마음속이 얼마나 서러웠을까? 어른이 아이보다 못하다. 미안한 마음에 나도 속이 다 상하고 눈물이 난다.
이렇게 티격태격 하루 종일 싸우고 화해하고를 반복하며 성채도시를 둘러본다. 톨레도의 성벽을 따라 걷는 길은 너무나 아름다웠지만 힘든 기억이 조금 남는 곳이다.
- 가온가람이 가족 세계여행기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