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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로 받은 대량 살상 무기, 수신인은 '주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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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로 받은 대량 살상 무기, 수신인은 '주피터'

[시민정치시평] 미군의 생물 무기 실험 및 훈련 진상조사부터 해야

전 세계가 별의별 걸 다 택배로 주고받는 시대이긴 하다. 하지만 그 택배에 대량 살상 무기가 들어있다면? 게다가 그 택배가 오는지 아무도 몰랐다면? 얼마 전 언론을 떠들썩하게 했던 주한 미군의 살아있는 탄저균 반입 이야기다. 사건 발생 후 한 달 반이 지나도록 한국 정부는 미 국방부의 입만 바라보고 있고, 생화학전 대응 실험에 대한 숱한 의혹이 제기되는 가운데 주한 미군은 오늘도 평화롭다.

위험한 배송

변치 않는 사실은 탄저균이 한국과 미국이 모두 가입하고 비준한 생물무기금지협약(BWC)에서 개발·보유·운송·사용 등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는 대표적인 대량 살상 무기라는 점이다. 생물 무기의 경우 공격용, 방어용을 구분하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방어용 실험에 사용되는 탄저균은 언제든 공격용으로도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탄저균의 위험성, 특히 살상력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지만 2012년 방위사업청이 인용한 국방과학연구소의 발표에 따르면 10킬로그램의 탄저균은 최대 60만 명을 살상할 수 있다.

한국 정부의 어떤 부처도 치명적인 생물 무기이자 고위험 병원체인 탄저균 반입을 주한 미군으로부터 사전에 통보받지 못했다고 '불평등한 한‧미 SOFA 개정 국민 연대'가 보낸 공개 질의와 국회의원들의 질의에 대한 답변에서 밝혔다. 주한 미군의 사전 신고하지 않은 탄저균 반입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이다. 이에 대해 정부가 그 흔한 대국민 브리핑 한 번 하지 않은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자체 조사도 아직까지 전혀 진행되고 있지 않다.

질병관리본부는 지난 5월 28일 현장 조사에서 차단된 실험실의 외관을 살펴보고 주한 미군의 설명만 듣고 돌아왔다. 그리고 6월 넷째 주나 되어서야 한‧미 합동조사단이 꾸려졌다. 그러나 지난 1일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지금까지 양측이 한 차례 회의를 했고 '여전히' 미 국방부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받아보길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그 사이 미군이 지난 10년간 탄저균을 배송한 지역은 점점 늘어나, 미국 내 각 주를 비롯해 한국, 일본, 캐나다, 호주, 영국 등 총 5개국 80곳 이상인 것으로 드러났다.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6월에 이루어진 미국 각 기관의 조사에서 미국 생화학 무기 실험의 안전 문제가 동일하게 지적되었다는 점이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이번 사건에 대해 지난 6월 5일 조사 보고서를 발표해, 더그웨이 연구소에서 탄저균 샘플 비활성화를 위해 감마선을 사용해왔는데 포자의 양이나 밀도에 따른 조사량의 변화 없이 감마선을 일괄 적용한 방법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즉, 미군의 탄저균 비활성화 조치가 완벽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난 6월 25일 발표된 미 회계감사원(GAO)의 조사보고서 역시 미국 생화학 무기 연구 시설의 안전 기준과 관리·감독 부실 등 지난 수년간 지적되어 온 고질적인 문제들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고 언급하고 있다. 미 국방부의 관리 실패가 이번 탄저균 사건으로 이어졌다는 결론이다.

ⓒ연합뉴스

그리고 밝혀져야 할 것들

바로 주한 미군의 생화학전 대응 실험의 정확한 현황이다. 탄저균을 사용한 실험 및 훈련은 이번이 처음이고, 그 첫 실험에서 사고가 발생했다는 미군의 발표를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정부를 뒤로 한 채, 시민·사회단체의 여러 활동가들은 그간 '구글링'과 씨름해왔다. 그 핵심에는 연합 주한 미군 포털 및 통합 위협 인식, 일명 '주피터(Joint United States Forces Korea Portal and Integrated Threat Recognition, JUPITR)' 프로그램이 있다. 미군의 화생 방어 전략의 일부인 주피터는 미군의 방어 능력을 향상시키고, 특히 북한의 생화학 무기 위협에 대비하려는 목적으로 2013년부터 한국에서 시행되었고, 2015년 완료 예정이다.

주피터를 총괄하는 미 육군 에지우드 생화학센터(ECBC)의 여러 자료와 피터 이매뉴얼(Peter Emanuel) 박사의 인터뷰를 통해 주피터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 짐작해볼 수 있다. 주피터 프로그램은 미국이 동맹국들과 생물 무기 감시 정보를 공유하고 소통하는 생물 감시 포털, 생물 무기를 단시간에 탐지·식별하는 생물 식별 능력 세트, 공기 중의 위험 물질을 탐지하는 환경 탐지 평가, 화생 방어 센서를 통합하여 작동하는 조기 경보 등 크게 네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2015년 5월 7일, 미국 방산협회에서 진행한 <화생 방어 능력 증강에 대한 포럼>에서 미 육군 화생방어합동참모국((JPEO-CBD)의 대니얼 매코믹은 주피터에 대해 발표하는데, 해당 자료에는 주피터가 시행되고 있는 실험실이 위치한 기지로 용산, 오산, 평택, 군산 미군 기지가 특정되어 있다.

2014년, ECBC는 '주피터가 한국에 안착했다(JUPITR Program Takes Shape on the Korean Peninsula)'고 발표했다. 종합해보면 주한미군은 주피터의 일환으로 생물 식별 능력 세트를 실험하고 있고, 이번 탄저균 샘플 또한 독소나 병균을 탐지·식별하는 훈련을 위해 오산기지에 반입되었다.

이매뉴얼 박사의 인터뷰에 따르면 미군은 지난 18개월 동안 각 실험실에서 유전자 분석 장비(PCR)을 비롯한 모든 장비를 테스트해왔는데, 주피터의 네 가지 구성요소 중 환경 탐지 평가의 경우 본격적인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환경 탐지 평가에 속하는 4가지 장비 중 2가지는 작년 하반기 오산 기지에서 야외 가동 시험을 했고, 나머지 2가지는 더그웨이 연구소에서 가동하여 공기 중에 섞인 미세한 세균을 탐지하는 에어로졸 실험을 했다고 한다.

올해 초에는 더그웨이 야외 실험장에 한국에 배치된 것과 동일하게 센서들을 설치하고 다양한 시나리오에 따라 세균 살포 실험을 했다. 그리고 계획대로라면, 모든 장비를 통합하여 한국에서 진행하는 마지막 단계의 작동 시연(Operational Demonstration)이 남아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주피터에서 취급한 세균의 모든 종류에 대해서는 파악되지 않았지만 탄저균보다 훨씬 강력한 독소로 알려진 보툴리눔 역시 탄저균과 함께 독소 분석 1단계 실험 대상으로 분류되어 있다.

왜 한국인가? 라는 질문에 이매뉴얼 박사는 이렇게 답한다.

"주한 미군 고위급에서 생물 무기 감시 능력을 요구했다. 한국은 미국의 (군사) 자산이 고도로 집중되어 있는 호의적인(friendly) 국가이기 때문에 지정학적으로 매우 적합하다. 당신이 생물 무기 감시에 관한 아이디어를 시험해보길 원한다면, 주한 미군 내 어디서든 할 수 있다."

그는 한국에서 디자인된 이러한 프로그램이 AFRICOM(아프리카 사령부), EUCOM(유럽사령부), PACOM(태평양사령부)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이쯤 되면 미군의 탄저균을 활용한 실험 및 훈련이 이번이 처음이 아닌 건 아닌지, 탄저균뿐만 아니라 다른 생물작용제도 반입한 것은 아닌지, 오산기지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의 기지에서도 진행된 것은 아닌지, 시기적으로 봤을 때 단순히 유전자 분석 장비(PCR) 시연회가 아니라 세균을 살포하여 탐지하는 야외 실험도 예정되어 있었던 것은 아닌지, 그리고 미군이 전 세계 각지에서 생물 무기를 활용한 실험이나 훈련을 진행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등 시민단체가 제기하는 숱한 의혹들은 합리적인 의심이다. 이번 주한 미군 탄저균 반입이 단순한 '배달 사고'가 아니라는 주장도 정당하다.

지난 6월 16일 국회 국방위 전체회의에서 주피터에 대한 진성준 의원의 질의에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의원님의 말씀이 마치 주피터가 우리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뉘앙스로 들립니다. 주피터는 적의 공격으로부터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것이고…"라고 답변했다. 불평등한 한‧미 SOFA 개정 국민 연대가 보낸 공개질의에는 국방부가 파악하고 있는 주한 미군의 생물학 실험 현황은 없으며 앞으로 군사훈련 현황에 대해 주한 미군이 공개할 수 있는지 협의할 것이라고 밝히면서도, "주피터의 일환으로 실시한 이러한 실험은 대한민국 국민 방어와 한미 동맹군 보호에 필요한 주한 미군의 역량을 향상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일관적으로 답하고 있다.

"잘 모르지만, 더 나쁜 놈이 있으니까 봐줍시다" 하는 꼴이다. SOFA 개정의 필요성이 제기되자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한술 더 떠서 "조항의 수정보다는 권고 사항을 통해서 보완하겠다"라고 먼저 방어하고 나섰다. '북한의 위협'이라는 성역 앞에서는 어떤 합리적인 문제 제기도 무력화되고, '한‧미 동맹은 언제나 옳다'라는 명제가 신앙처럼 강요되면 법도, 절차도, 알 권리도, 시민의 안전도, 모두 설 자리를 잃는다. 한 국가의 가장 강력한 물리력인 군대의 운영은 그것이 미치는 영향을 고려했을 때 그 어떤 영역보다 엄격하고 민주적으로 통제되어야 하는데도 말이다.

여기서 국방부가 탄저균 반입을 몰랐다고만 답변하는 것도 의아한 점이다. 한국과 미국은 북한의 생물 무기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2011년부터 한‧미 연합 생물 방어 연습을 매년 진행하고 있다. 한·미 정부의 '맞춤형 억제 전략'에 따르면, 북한의 생화학 무기 사용 징후에 대한 선제타격에 합의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2015년 완료를 목표로 한‧미 공동 생물 무기 감시 포털(BSP)을 구축하고 있다. 탄저·두창·페스트 등 10여 가지의 위협적인 생물학 작용제가 사용되는 것을 사전에 감시·탐지·대비·대응하기 위한 한·미 공조 체계다. 생물 무기 방어와 관련하여 이렇게 밀접한 협력을 맺고 있는데, 미군이 어떤 물질을 반입하고 어떤 실험을 하고 있는지는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정부는 지금이라도 사안의 심각성을 인식해야 한다. 철저한 진상 조사가 우선 시급하다. 이를 바탕으로 7월 중순에 열릴 한·미 SOFA 합동위원회에서 SOFA 개정을 비롯한 관련 대책을 논의해야 하고, 책임자 처벌과 국제 조약 위반인 미군의 생물 무기 실험 및 훈련 중단 요구도 이어져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현재로서는 정부가 이런 일들을 이행할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의지가 없다면, 앞으로도 우리는 주한미군이 탄저균이 아니라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사고가 나지 않는 이상 알 수가 없을 것이다. 나아가 허울뿐인 국제조약은 누가 지키려고 하겠는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서로의 핑계를 대며 생물 무기를 만지작거리는 동안 시민의 안전도, 한반도 평화도 요원해지고 있다.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기획·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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