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인간이 공동체적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결코 배제할 수 없는 영역이다. 아마 경제와 더불어 인간의 사회적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영역이 정치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정치를 낮추어보거나 정치에 종사하는 전문 정치인들을 경멸하기조차 한다.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은 정치를 경멸하면서 정치에 관심을 쏟는 태도를 비난하기까지 하는 것일까.
물론 자신의 본업을 팽개치고 정치적 이익을 위해 동분서주 하거나, 선거 때면 직업의 의무조차 저버린 채 선거판에 뛰어드는 사람들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폴리페서”(polifessor)란 경멸적 용어가 나온 까닭도 거기에 있지 않은가. 과연 정치는 경멸하고 우리들의 일상적 삶에서 떼어놓아야 하는 더러운 일에 지나지 않는가. 정치에 관심을 끄고 자기 일에 충실하게 사는, 우아하고 점잖은 삶이 과연 옳은 길인가.
직업으로서 정치에 종사하는 이들은 그들이 지닌 정치적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기 위해 음습한 공간을 좋아한다. 그들은 시민들의 눈을 피해 그들끼리의 잔치를 벌린다. 앞으로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뒤로는 서로의 이해관계에 일치된 행동을 한다. 그래서 그들이 이 사회에서 끊임없이 부채질 하는 것이 정치 혐오와 정치 무관심이다. 더러운 정치라고 욕하면서 돌아서게 만들고, 뒤로는 그들만의 사익을 채우고 있다.
전직 대통령이 최근 자신의 업무를 회고하는 책을 발간했단다. 정상적인 정신으로는 들어줄 수가 없을 지경이다. 정치권에서는 “구름 같은 회고인 허언”, “어처구니없다”, “4대강 사업을 경제위기 극복의 대안인양 포장하는 것은 헛된 주장” 등의 하나마나한 평을 하는 모양이다. 그나마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정도가 “4대강 사업과 글로벌 금융위기를 결부시키는 것은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자기정당화”이며 “길 가던 분견이 이 말 듣고 가가대소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비판하는 정도다. 분견이 가가대소한다는 말은 결국 똥강아지도 웃을 개소리란 말을 우아하게 표현한 것이 아닌가.
왜 이런 개소리가 버젓이 출판되는 것일까. 이런 현상은 해방 이후 수없이 보아왔던 지극히 일상적인 행태에 지나지 않는다. 나라와 백성을 팔아먹고 자기만의 이익을 누린 반인륜적인 친일파를 숙청하지 못한 것을 시작으로,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고 말하는 법, 술을 마시고 운전은 했지만 음주운전이 아니라는 정치인, 국방의 의무는 힘없는 백성이나 지키는 것이고 이른바 지도자라는 인간들은 모조리 병역을 면제받는 사기꾼 집단의 국가에서 무엇을 바라는가.
세월호에서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어갔어도 책임 있는 자는 누구도 처벌받지 않고, 최소한 필요한 이유조차 묻지 못하게 한다. IMF 구제금융 사태로 수많은 가정이 파산하고 죽어갔어도 그들은 호의호식하고 있다. 대선에 불법적으로 개입하고 간첩을 조작하고 정상적인 수사를 방해해도 무죄 방면되는 나라, 도대체 이런 사태를 꼽자면 끝이 없을 정도이다. 정치혐오와 정치 무관심이 벌어지는 것이 지극히 정상일 수밖에 없다. 제정신으로 정치를 바라보면 정신병에 걸릴지도 모른다. 분열된 사회와 불의한 정치를 보면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정치를 비웃고, 대충 자기 이익을 위해 머리 조아리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현실이 아닌가.
그러나 그렇게 살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가 조선시대 노비로 살지 않으려 한다면 그럴 수는 없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숨은 의도와 원인을 알아야 한다. 책임을 묻고, 따지고 처벌해야한다. 여의도 정치가 아닌 생활정치, 우리들의 삶에 관계되는 올바른 정치에 참여함으로써 바꾸어야 하지 않는가. 정치란 전문 직업꾼이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일이 모두 정치이기에 우리 모두는 정치를 해야 한다. 정치란 말의 어원이 바로 공동체의 일, 도시국가인 “polis”에 관계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정략적 정치에 종사하는 일을 혐오하고 그것이 그들만의 영역인 듯이 말하는 것은 직업꾼 정치인들이 만든 음습한 전략이다. 그들끼리 나눠먹기 위해 시민들의 관심을 꺼버리기 위한 공작일 뿐이다. 철저히 정치에 관심을 갖고, 계몽된 시민으로써 정치를 감시하고 학습하면서 고발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바보가 되고 현대판 노비가 되어 욕이나 하면서 자위하지만, 결국 자신의 삶에서 소외되고 왜곡되는 존재가 될 뿐이다.
헤겔의 말처럼 자신의 존재에서 소외되는 삶을 살고 싶다면 술자리에서 정치인들 욕이나 하면서 정치에 관심을 끄고 우아하게 살아가면 된다. 그게 아니라면 지금 관심을 가지고 배우고 익히면서, 필요한 실천과 정치참여를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이 어리석은 백성에서 벗어나 계몽된 시민이 되는 길이다.
사대강 사업, 자원외교 비리, 국정원 정치개입, 간첩조작 사건은 물론, 세월호 참사의 원인도 철저히 밝히고 책임을 지워야 한다. 대선공약 파기도 끝까지 따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일은 필연적으로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럴 때 삶은 철저히 소외되고 우리는 현대판 노비로 살아갈 것이다. 모욕 받지 않으려면 알고 따지고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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