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비, 터무니없는, 쓸데없는, 도가 지나친, 부패한…'
동계올림픽 행사에 대해 외신이 언급한 단어들이다.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는 지난해 11월 "동계올림픽을 개최하고 싶어 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고 단언했다. 하계올림픽은 경기장 사후 활용이 어느 정도 가능해 여전히 인기가 좋은 반면, 동계올림픽은 상대적으로 환경 파괴, 재정 낭비 논란에 휩싸인 탓이다. 이 매체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위기를 맞았다고 진단했다.
소치 56조 원의 공포…유럽, 올림픽 유치 줄줄이 철회
'갑'의 상징이었던 IOC가 동계올림픽 유치를 구걸해야 할 처지에 놓일 뻔한 결정적인 계기는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이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20억 달러(약 13조 원)를 투입하겠다며 올림픽을 유치했는데, 올림픽이 끝나고 러시아에는 510억 달러(약 56조 원)의 빚만 남았다. 애초 예산의 4배가 넘는, 역대 최고 올림픽 개최 비용이었다.
러시아의 '빚잔치' 이후 유럽 국가들은 동계올림픽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2022년 동계올림픽 개최에 도전했던 6개 도시 가운데 4개 도시가 막대한 비용과 주민 반대 등을 이유로 유치 신청을 철회했다. 내전으로 유치 신청을 철회한 우크라이나는 예외적인 경우다.
스웨덴의 스톡홀름은 평창 동계올림픽 예산(13조 원)의 12%에 불과한 1조6000억 원의 동계올림픽 개최 비용을 산정하고도, 논쟁 끝에 유치 신청을 철회했다. "봅슬레이나 루지 경기장 건설 등에 막대한 비용이 들지만, 올림픽이 끝나면 쓸모 없어진다"는 이유에서다.
폴란드의 크라코프는 주민투표 결과 반대가 70% 이상 나와 포기했으며, 노르웨이 오슬로도 60% 이상이 반대한다는 여론조사가 나오며 입후보를 철회했다. 독일과 스위스는 주민투표 결과 아예 유치 신청 자체를 포기했다.
노르웨이 국왕과 술 파티? IOC '갑질' 논란
특히 지난해 10월 마지막으로 동계올림픽 유치를 철회했던 노르웨이 오슬로에서는 IOC의 '오만한 요구'가 알려지며 큰 논란이 빚어졌다.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는 "세계에서 가장 부자 국가 중에 하나인 노르웨이조차 2022년 동계올림픽 개최 비용과 IOC의 사치에 망설였다"며 "오슬로가 올림픽 개최지가 된다면 IOC 임원들이 화려한 파티를 준비할 것이라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외신에 보도된 IOC 공식 문건(이하 'IOC 문건')에 따르면, IOC 위원들은 노르웨이 왕실이 '국왕과의 칵테일 환영회'를 제공할 것을 요구했다. 또 IOC 위원을 위한 '특별 전용도로 차선이 보장된 자동차와 전속 운전기사'를 기대했다. IOC 위원들에게 특권을 주도록 노르웨이는 교통신호를 조정해야 하며, 삼성 휴대전화를 제공하라고 요구했다.
IOC 위원이 묵을 호텔에 있는 바(bar)들은 '연장 영업'을 해야 하고, 개·폐회식 행사가 열리는 동안 올림픽 경기장의 VIP 라운지는 IOC 위원들에게 양질의 음식과 '풀 바(full bar)'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올림픽 조직위원들은 공식 스폰서가 효율적으로 광고 공간을 사용할 수 있도록, 전 경기기간 내내 광고 공간 통제권을 달라고 요구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IOC의 요구사항 리스트는, 그렇지 않아도 올림픽 유치에 대한 대중 반대에 부딪혔던 노르웨이 정치인들에게 최후의 결정타를 날렸다"고 분석했다. 이 매체는 "IOC의 이런 요구들은 과거에는 대부분 올림픽 개최 희망 도시들에서 관철됐을지 몰라도, 안 그래도 올림픽 비용에 대한 불안감이 컸던 노르웨이 입장에서는 도가 지나친 것들이었다"고 꼬집었다.
노르웨이의 집권 보수당 의회에서는 이전까지 올림픽 유치 찬성 의견이 미세하게 우세했으나, 노르웨이 최대 일간지
IOC는 이른바 'IOC 문건' 보도가 과장됐다고 항변했다. 크리스토퍼 두비 IOC 전무이사는 "노르웨이 고위급 정치인들이 절반만 진실이며 부정확한 사실에 근거해 (유치 철회) 결정을 내렸다"며 "노르웨이가 기회를 놓친 것"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파이낸셜타임스>는 크리스토퍼 두비 전무이사의 이 발언에 대해 "뻔뻔스럽게도"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오슬로보다 탐탁지 않은 베이징과 알마티
1998년 나가노 올림픽을 반대했던 에자와 마사오 '올림픽이 필요 없는 사람들 네트워크' 대표는 지난달 11일 방한해 "동계올림픽 인기가 많이 떨어져서, 이제 동계 올림픽을 유치하려는 국가는 한국, 중국, 일본 정도인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이제 IOC에 남은 2022년 동계올림픽 개최지 후보군은 카자흐스탄 알마티와 중국 베이징 두 곳이다. 두 후보군 모두 겨울 스포츠 행사를 열기에 적절한 곳은 아니다. 2008년 하계올림픽을 치른 베이징은 겨울철에 눈이 잘 내리지 않고, 카자흐스탄은 올림픽을 치를 인프라가 부족하다.
특히 카자흐스탄은 세계적인 장기 독재자로 꼽히는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 1990년부터 지금까지 다스리고 있다. '올림픽 정신'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을 확률이 높다. IOC로서는 매력적인 '겨울 스포츠의 메카' 오슬로가 유치 신청을 철회한 것이 뼈아프게 남는 이유다.
외신들은 IOC를 비판했다. <뉴욕타임스>는 "아무도 당신들(IOC) 파티의 개최지가 되고 싶지 않아 하면, 경기 중계권료로 수십억 달러를 버는 데 무슨 소용인가?"라며 올림픽 개최 도시들이 세금으로 '빚잔치'를 하는 동안 IOC는 경기 중계권으로 수조 원의 돈을 챙겨간다고 간접적으로 꼬집었다.
이 매체는 "올림픽 유치 신청을 철회한 도시들은 IOC가 제시한 긴 목록의 요구사항들이 터무니없이 쓸데없다고 느꼈다"며 "IOC는 수년간 자신들의 지나치게 엄격한 기준이 절대 도전받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오산이었다"고 진단했다.
한 반 물러선 IOC, 예산 1조 원 아낀 일본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IOC가 지난해 12월 내놓은 궁여지책이 바로 '올림픽 분산 개최' 허용을 뼈대로 한 '아젠다 2020'이다. 핵심은 기존 경기장 시설을 최대한 활용함으로써 올림픽 개최 비용을 절감하자는 것이다. IOC가 "터무니없다"고 비판받았던 요구들에서 한 발 물러선 것이다.
2020년 도쿄 하계올림픽을 준비하는 일본은 발 빠르게 대처했다. 일본은 지난달 27일 새 경기장 3곳을 짓는 대신 기존 시설을 이용하거나 아예 짓지 않기로 IOC와 협상을 벌여 올림픽 예산 10억 달러(1조1000억 원)를 절감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분산 개최를 촉구하는 시민모임은 "강원도와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는 IOC를 핑계로 무리한 시설 투자를 고집하고 있다"며 "지금이라도 분산 개최를 추진하기에 늦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참고 문헌
At Glacial Pace, Olympics Weigh Change, 2014-11-19, <뉴욕타임스>
IOC hits out as Norway withdraws Winter Olympic bid, 2014-10-02, <파이낸셜타임스>
Norway rejects Oslo 2022 Winter Olympics bid over IOC's demands and perceived arrogance, 2014-10-05,<폭스뉴스>
Tokyo to rejigger three Olympic venues in cost-cutting drive, 2015-02-28, <재팬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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