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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이대로라면 테스트 이벤트도 불가능"

[최동호의 스포츠당] 올림픽은 스포츠가 아니다

스포츠의 사회적 기여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던 20세기 초, 카네기재단의 회장이었던 헨리 S. 프릿크트(Henry S. Pritchtt)는 "스포츠와 관계하고 있는 모든 청년은 도덕적인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스포츠도 철학적 고민을 통해 발전해 온 것이다. 고대로부터 철학자들은 몸과 마음의 상관관계를 사유의 주제로 삼아왔다. 유물론이든 유심론이든, 일원론이든 이원론이든 인간의 정신과 육체를 해석하고 정의했다. 이후 '스포츠는 무엇인가?', '스포츠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와 같은 좀 더 근본적인 스포츠의 철학적 고민은 체육운동이 사회개혁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따지고 보면 근대민족국가의 출현과 제국주의 시대의 국력 배양을 위한 전체주의 체육교육도 스포츠를 통한 사회개혁이었고 근대 올림픽 역시 그리스문명의 인문주의 부활과 청년개혁을 위한 사회운동이라 할 수 있다. 20세기 들어선 YMCA가 체육활동을 통한 새로운 인간상의 구현을 제시했다. 헨리 와드 비이처(Henry Ward Beecher)는 "왜 기독교 청년회는 젊은이들에게 육체적 활력과 건강을 부여하는 일을 통하여 저들을 악의 유혹으로부터 분리시키는 일을 하려하지 않는가? 이야말로 복음 바로 그것이 아닌가!"라고 제안할 정도였다. YMCA 역시 산업혁명 시기 피폐화된 노동자의 삶을 구원하기 위한 새로운 운동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YMCA의 체육운동도 사회개혁운동이었음은 부인하기 힘들다. 사회개혁도 체육운동도 구체제의 모순을 극복하고자 하는 인간의 도전이자 응전인 셈이다.

ⓒ연합뉴스

평창동계올림픽은 이미 구체제에 갇힌 '구시대의 유물'이 돼버렸다. 해외에서의 올림픽운동이 개발과 외형경쟁의 한계를 실감한 뒤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있음에도 평창은 여전히 개발에서 헤어나오질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평창의 올림픽 준비는 경제효과가 불분명한데도 인구 4000명 횡계리에 4만석 규모의 개‧폐회식장을 새로 짓는 식이다. 늘어나는 적자부담에 조직위원회는 스노보드 경기장을 보광 휘닉스 파크에서 하이원 리조트로 변경했다. 장 프랑코 카스퍼 국제스키연맹 회장이 2월 10일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대로라면 평창은 테스트 이벤트도 불가능하다"고 얘기할 정도로 이미 평창동계올림픽은 곳곳에서 위기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

시대는 변한다. IOC(국제올림픽위원회)도 환경 보호와 경제적 부담 최소화를 목표로 한 '아젠다 2020'을 발표했다. 시대에 대한 응전, 변화를 선택한 것이다. 그럼에도 평창은 분산개최를 거부하며 개발에 매달리고 있다. 평창은 왜 변하지 않는 것일까? 평창동계올림픽이 구체제에 갇혀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올림픽이 스포츠가 아니기 때문이다. 올림픽은 정치고 경제다. 당연히 의사결정은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에 묶여 있다. 정치적, 경제적 이해를 셈하며 여론을 호도하고 예산을 낭비하는 무책임한 의사결정 시스템이 바로 구체제가 아닌가? 포퓰리즘, 여론 왜곡, 난개발이 난무하는 사이 지역 정치인들은 가리왕산 스키 활강 경기장, 횡계리 개·폐회식장을 추진하며 거짓을 일삼았다. IOC가 환경 보호와 경제적 부담 최소화를 위해 활강 경기장과 개·폐회식장 이전에 긍정적이었다는 것을 정치인과 체육귀족들은 숨기고 또 숨겼다.

서울과 무주의 기존 시설을 활용하는 국내 분산개최, 또는 북한의 마식령스키장을 이용하는 남북 분산개최는 구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사회개혁일 수밖에 없다. 거짓을 일삼으며 이해관계 속에 휘둘리는 정치인을 심판하고 의사결정 시스템의 투명성을 높이는 개혁운동이기 때문이다. '스포츠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 또 스포츠의 사회적 기여에 대해 고민한다면 지금이라도 한국 스포츠계는 올림픽운동의 새로운 도전에 동참해야 한다. 정치와 경제의 구체제 극복이란 점에서 분산개최는 시민사회에 던져진 과제이기도 하다. 행동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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