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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인, 너무나 정치적인 소치 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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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인, 너무나 정치적인 소치 올림픽

[주간 프레시안 뷰] 소치 올림픽의 스포츠 정치학

<주간 프레시안 뷰>는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만의 차별화된 고급 칼럼지입니다. <프레시안 뷰>는 한 주간의 이슈를 정치/경제/남북관계·한반도/국제/생태 등 다섯 개 분야로 나눠 정리한 '주간 뉴스 일지'와 각 분야 전문 필진들의 칼럼을 담고 있습니다.

정치는 임경구 프레시안 정치 선임기자 및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번갈아 담당하며, 경제는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남북관계·한반도는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국제는 이승선 프레시안 국제 선임기자, 생태는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 맡고 있습니다.

이 중 매주 한두 편의 칼럼을 공개하고자 합니다.

※ 현재 <프레시안 뷰>는 프레시안 조합원과 후원회원인 프레시앙에게 무료로 제공되고 있습니다. 그 외 구독을 원하는 분은 프레시안 협동조합에 가입하거나 유료 구독 신청(1개월 5000원)을 하면 됩니다.(☞ <프레시안 뷰> 보기)

스포츠의 세계는 순수하지 않습니다. 권력과 자본이 정치적, 상업적 목적으로 이용하기 때문이죠. 앞으로 한 달 뒤, 2월 8일부터 2월 24일까지 17일간 열릴 소치 동계올림픽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다수 한국인에겐 김연아 선수가 올림픽 2연패의 위업을 달성할까, 얼마나 우아하고 멋지게 피겨 여왕의 모습을 보여줄지가 초미의 관심사겠죠.

하지만 소치 올림픽은 "세상이 다 그렇지, 뭐"라고 눈감아 버리기에는 '불편한 진실'이 너무나 많은 대회입니다.

지금 소치 올림픽을 둘러싸고 러시아 내에서는 '동상이몽'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현대판 차르'로 불리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소치 올림픽을 자국과 자신의 위상을 선전할 축제로 만들려고 엄청 공을 들여왔습니다. 반면, 분리 독립을 외쳐온 러시아 내의 자치공화국들은 소치 올림픽을 망치게 함으로써 자신들의 입장을 세계에 알릴 절호의 기회로 삼고 있습니다.

역사상 올림픽을 자국 체제의 우수성을 과시하기 위해 노골적인 '정치 이벤트'로 활용한 가장 유명한 사례는 1936년 베를린 하계올림픽입니다. 당시 독일의 독재자 히틀러는 올림픽을 통해 나치 체제를 세계에 과시했죠. 2014년 소치 올림픽은 '제2의 베를린 올림픽'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계올림픽으로 가장 정치적인 행사였던 것이 베를린 올림픽이라면, 동계올림픽 사상 가장 정치적인 행사가 될 것이라는 말들이 나옵니다.

게다가 소치 올림픽은 매우 위협적이기도 합니다. 분리 독립 반군들이 소치 올림픽을 '테러의 제물'로 삼겠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죠. 이미 지난해 말 이틀 연속 소치로 들어가는 교통 요지인 볼고그라드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해 34명이 사망하고 60여 명이 다쳤습니다.

소치 올림픽은 자칫하면 '테러 공포'와 인권 문제 등으로 개막식에 서방국 정상들이 거의 참석하지 않는 '반쪽 개막식'으로 시작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1980년 모스크바 하계올림픽은 미국과 서방이 당시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항의, 불참하면서 반쪽 대회로 치러졌었죠.

러시아는 소치 올림픽까지 개최하면서 하계와 동계 올림픽을 개최한 일곱 번째 나라가 됩니다. 하지만 소치 올림픽도 엉망이 돼 "하계와 동계 올림픽을 모두 '반쪽 행사'로 개최한 나라"라는 굴욕적인 기록을 세우게 될지도 모릅니다.

▲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8일 태릉 선수촌을 찾아 소치 동계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들을 격려했다. ⓒ연합뉴스

너무나 정치적인 개최지 결정

'평화의 축제'라는 올림픽 개최지로 소치가 선정된 것 자체가 얼마나 정치적으로 개최지가 결정된 것인지,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얼마나 정치적인 조직인지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2014년 신년사 메시지가 여실히 보여줍니다.

푸틴은 신년사에서 "테러리스트들과 끝까지 싸우겠다"고 강조했습니다. 볼고그라드에서 연쇄 폭탄 테러가 발생하는 테러 위협이 고조되자 강경 대응 의지를 밝힌 것이죠.

푸틴은 "볼고그라드 테러 희생자들 앞에 머리를 숙인다. 우리는 테러리스트들이 전멸할 때까지 맹렬하고 끈질기게 싸울 것"이라면서 "볼고그라드 테러와 극동 지역의 자연재해 등 엄청난 시련을 겪었지만 러시아는 어려운 시기일수록 똘똘 뭉쳐 이겨냈다"고 역설했습니다.

도대체 올림픽을 개최하는 국가에서 대회를 두 달도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테러가 빈발하고,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테러리스트 박멸"을 외치는 살벌한 곳이 '평화의 제전'을 개최할 자격이 있는 것일까요?

러시아에서 올림픽이 개최될 경우 이렇게 테러 위협에 시달릴지 IOC 위원들이 몰랐을까요? 2007년 7월 과테말라시티에서 열린 IOC 총회 1차 투표에서 큰 표로 소치를 눌렀던 평창은 급히 현지에 날아온 푸틴 대통령의 '로비력'에 밀렸습니다. 당시 2차 투표에서 승부가 극적으로 뒤집혔던 것을 기억하시나요? 51대 47, 네 표 차이로 소치는 평창을 누르고 2014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결정됐죠.

푸틴은 평창과는 상대가 안 되는 120억 달러의 자금을 투입하겠다는 약속으로 IOC 위원들의 지지를 끌어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500억 달러로 예산이 불어났다고 합니다. 물론 그중 200억 달러 이상은 푸틴의 측근들이 사실상 '횡령 잔치'를 벌이고 있다는 소문도 무성합니다.

어쨌든 소치 올림픽에 투입된 예산은 비정상적일 정도로 많습니다. 역대 동계올림픽 최대 예산은 1998년 나가노 올림픽의 175억 달러입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이 420억 달러의 예산을 들였다지만, 경기 종목 수가 3배가 넘는 하계올림픽이라는 점에서 역시 소치 올림픽과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사상 최악의 올림픽이 될 가능성"

이렇게 돈을 물 쓰듯이 쓴다고 해서 소치 올림픽이 성공적으로 치러질지는 미지수입니다. 푸틴 정권이 '테러 위협'을 통제할 능력이 있는지 의문이기 때문이죠. 지난 연말 연쇄 폭탄 테러 용의자는 러시아 남부 코카서스 지방 북부에 있는 다게스탄공화국 이슬람 반군 소속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소치가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결정되자마자 많은 전문가들은 러시아로부터 분리 독립을 추구하는 반군세력이 자신들의 위상을 전 세계에 드러내 보일 좋은 기회로 삼아 개최일이 다가올수록 테러 공격이 기승을 부릴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연말의 연쇄 테러로 이런 경고는 현실이 됐습니다. 그뿐이 아니죠. 러시아의 드넓은 땅에서 올림픽 개최지인 소치만 철통 보안을 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주변 곳곳에서 테러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는 사실상 힘들 것이라는 경고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특히 지난 20여 년 동안 피비린내 나는 분리 독립 투쟁을 벌여왔던 체첸공화국 이슬람 반군들은 '피의 보복'을 다짐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알카에다', '러시아의 빈 라덴'이라고 불리는 체첸의 이슬람 무장 단체 '카프카즈 에미리트'와 지도자 도쿠 우마로프는 지난해 7월 "러시아가 '무슬림의 유골' 위에 올림픽을 개최하려 한다"면서 "우리는 전능하신 알라가 허락한 모든 수단을 이용해 저지할 의무가 있다"고 성전을 촉구했습니다.

우마로프는 소련 붕괴 후 분리 독립을 위한 투쟁을 주도하고 지난 2006~2007년 체첸의 5대 대통령을 지내기도 했으나, 지금은 미국과 러시아로부터 '테러리스트'로 수배된 인물입니다.

2009년 네프스키 고속철 폭탄 테러(28명 사망), 2010년 모스크바 지하철 폭탄 테러(40명 사망), 2011년 모스크바 공항 테러(36명 사망) 등도 우마로프가 이끄는 '카프카즈 에미리트'의 소행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때문에 소치 올림픽 기간 중 비극이 벌어질 경우 푸틴과 IOC의 무책임한 '스포츠 정치'가 참사를 초래했다는 책임론이 불거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미국의 저명한 러시아 전문 언론인 데이비드 새터는 볼고그라드 연쇄 테러 직후, CNN 방송 기고문에서 "소치 올림픽이 올림픽 역사상 최악의 재앙이 될 가능성을 보여준 불길한 조짐"이라고 경고했습니다.

(☞ Attacks show Sochi Olympics under grave threat)

새터는 "소치 올림픽을 찾을 12만 명 중 많은 사람들은 사실상 전쟁터로 걸어 들어가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점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면서 "소치로 들어가는 교통 요지인 볼고그라드에서 테러를 막지 못했다는 것은 러시아 당국의 무능력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IOC가 소치를 택한 배경

새터는 "푸틴이 2007년 IOC 위원들이 소치를 선택하도록 설득할 때, IOC는 거절할 충분한 이유가 이미 있었다"면서 "러시아 대표단은 러시아가 '젊은 민주주의'를 구현하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정치적 반대자들은 탄압받고 심층 보도를 하던 언론인들은 살해되는 상황이었다. 동시에 이슬람 반군은 소치와 근접한 코카서스 북부에서 세력을 키워가고 있었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새터는 "IOC가 소치를 개최지로 선택한 것은 푸틴의 로비와 다른 경쟁 도시 두 곳이 제시한 예산의 두 배에 달한 120억 달러 예산 덕이었다"면서 테러 위협이 높아진 러시아의 소치를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한 IOC의 무책임한 결정을 비판했습니다.

새터에 따르면, 체첸의 상황은 심각합니다. 2005년 체첸의 분리 독립 지도자 아슬란 마스하도프를 러시아군이 살해한 이후 도쿠 우마로프가 반군 지도자로 급부상했고, 우마로프는 '흑해에서 카스피해에 이르는 이슬람 국가 건설'을 위한 성전을 선포하면서 테러 공격을 주도해왔다는 것이죠. 그래서 새터는 "소치 올림픽 방문객들은 IOC가 다른 개최지를 선택했더라면 피할 수 있었던 위험에 직면하게 됐다"고 엄중하게 경고합니다.

새터는 이 위험을 반군의 공격에서만 찾지 않았습니다. "러시아 치안군이 제기하는 위험"도 있다는 겁니다. 사실 러시아군은 인질 테러 사건이 벌어지면 인질의 생명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진압 작전으로 악명이 높죠.

지난 2002년 모스크바 극장 인질 사건 당시 러시아군은 수천 명의 인질이 있는 상황에서 독가스를 살포한 진압 작전을 감행해 순식간에 129명이 사망했었죠. 2004년 베슬란 초등학교 체육관 인질 사건 때는 수류탄과 화염방사기를 동원한 진압 작전으로 수백 명의 어린이를 포함해 334명의 인질이 사망했습니다.

새터는 "1994년 당시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체첸 진압 작전을 벌여 '짧은 승리'를 거뒀지만, 이후 19년 동안 수많은 희생자를 낸 갈등을 촉발했다"면서 "IOC가 선전 이벤트를 개최하려는 푸틴의 욕망에 영합하는 무책임한 결정으로, 이제 더 많은 희생자가 초래될 무대가 마련된 것일지도 모른다"고 경고했습니다.

이미 올림픽에 참가하려는 선수들 중에는 최소한 개막식만큼은 참석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미국 스노보드 올림픽 메달리스트 세스 웨스콧 같은 유명 선수도 "과격 단체들이 개막식을 가장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기회로 볼 것"이라면서 "정말 걱정된다"고 토로했습니다.

푸틴, 막판 '사면 카드'까지 동원

푸틴이 소치 올림픽으로 국제적 이미지를 높이려는 기대 때문에 러시아가 '인권 탄압 국가'로 낙인찍힐 것을 피하려고 좌충우돌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외국인까지 적용된다는 '동성애 반대법'을 공포했던 푸틴은 국제 사회의 비판이 거세자 "동성애 선수들의 참가를 환영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혹시 소치 올림픽 방문객으로 러시아에 갔다가 "최고"라는 의미로 엄지를 치켜세우지 말아야 한다죠? 러시아에서는 이 동작이 "나는 동성애자"라는 표시라고 하니, 봉변을 당하지 않으려면 알아두어야 할 여행 정보가 되겠네요.

지난달 푸틴은 자신에게 도전해 10년간 감옥살이를 했던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 전 유코스 회장을 갑자기 석방하고, 푸틴을 비판한 죄로 투옥된 여성 밴드 '푸시 라이엇', 그리고 러시아의 북극해 유전 개발에 반대하다 체포된 그린피스 회원도 잇달아 풀어줬습니다. 소치 올림픽 기간에 해당 지역에서 집회 및 시위를 전면 금지하려던 방안도 돌연 철회했습니다.

하지만 올림픽 개막일을 앞두고 속 보이는 이런 조치들로 푸틴의 '차르' 이미지가 개선되거나 소치 올림픽의 테러 위협이 줄어들어 성공적인 대회가 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입니다.

이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나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요아힘 가우크 독일 대통령 등 서방의 정상들이 "소치 올림픽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호주는 아예 자국의 선수들을 소치 올림픽에 보내지 않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소식도 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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