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계올림픽을 유치할 당시 한 연구소는 일본이 올림픽에 1조5000억 엔을 투자하면, 2조3000억 엔의 경제 효과가 생긴다고 했습니다. 올림픽이 가져다주는 경제 효과가 자연 파괴로 오는 손실보다 더 크다고 홍보됐습니다.
하지만 지금 나가노를 찾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스케이트장은 텅 비었습니다. 막대한 시설 유지비가 들고 있습니다. 나가노현에는 1조7000억 엔(17조 원)의 빚만 남았습니다. 불과 2주일간의 올림픽 경기를 위해서 이처럼 막대한 비용을 쓰고, 환경을 파괴해도 되는지 의문입니다."
일본 나가노 동계올림픽 예산 전문가인 에자와 마사오(江沢 正雄) 씨가 녹색연합 등 환경단체의 초청으로 11일 한국을 방문했다. 에자와 대표는 일본 시민단체인 '올림픽이 필요 없는 사람들 네트워크' 대표이자 <올림픽은 돈투성이-나가노 올림픽의 이면>이라는 책의 저자이기도 하다.
에자와 대표는 이날 서울 중구 환경재단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1998년 동계올림픽을 치른 후 17년이 지났지만, 나가노현은 여전히 환경 훼손과 재정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며 "평창 동계올림픽도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시민이 선택하도록 하지 않는다면, 나가노와 같은 전철을 밟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나가노 올림픽 유치위원회는 기존 시설을 사용하겠다고 계획했으나, 정작 유치 이후에는 경기 시설 대부분이 새로 건설됐다. 그 결과 예상보다 자연훼손이 심각해졌고, 애초 3325억 엔(약 3조3000억 원)으로 책정됐던 올림픽 관련 예산은 5214억 엔(약 5조2000억 원)으로 늘었다. 이 부담은 고스란히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의 빚이 됐다.
유지비 30억 원, 애물단지 루지·봅슬레이 경기장
경기장 건설비용도 애초 계획했던 것보다 늘어갔다. 일례로 나가노현 이즈나 고원에 1996년에 완공한 루지·봅슬레이 경기장이 있다. 올림픽을 유치할 당시에 경기장 공사비는 24억 엔(약 240억 원)으로 책정됐으나, 완공됐을 때 총 공사비는 그 세 배가 넘는 93억 엔(약 930억 원)이 들었다.
완공된 지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이 경기장은 노후화돼 '유지비용만 잡아먹는' 애물단지가 됐다. 에자와 대표는 "경기장 콘크리트 밑에 우레탄으로 된 단열재가 있는데, 우레탄이 깨져서 딱따구리가 구멍을 뚫고 있다"며 "배관이 노후화돼 위험한 상태"라고 말했다.
게다가 이 경기장은 1300미터의 콘크리트 미끄럼대에 파이프를 사용해 냉매를 순환시켜 인공적으로 냉각시켜 운영하는데, 일차 냉각에는 극약 물질인 암모니아를 사용한다. 아직 사고가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그는 "만약 암모니아가 유출되면 주변 생태계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림픽이 끝나도 유지비용이 든다. 이 경기장의 냉각 장치를 가동하는 데 하루 전기료만 100만~200만 엔(1000만~2000만 원), 겨울 시즌 3개월 동안 유지비로는 평균 3억 엔(30억 원)이 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지비는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가 절반씩 부담하고 있다.
"세계적 스키리조트 홍보했지만"…텅 빈 스키장, 얼어붙은 경제
다른 경기장도 애물단지가 되기는 마찬가지다. 나가노현에는 스케이트 경기장, 프리스타일 스키장, 점프 장소 등이 조성됐지만, 에자와 대표는 "거의 이용하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올림픽이 끝나고 나가노현의 경제는 얼어붙었다. 에자와 대표는 "올림픽을 유치하면 나가노는 세계적인 스키리조트가 될 수 있다고 홍보됐지만, 나가노를 찾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나가노 올림픽 때문에 고속도로가 세 개 뚫렸고 신칸센도 생겼지만, 새로운 일자리 창출은 안 됐다"며 "올림픽 때 지은 시설이 지금은 그냥 시내 주차장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나가노에서 이제 올림픽은 과거의 이야기이고, 사람들이 관심도 없는 상황"이라며 "그냥 나가노 현과 시에 빚만 남았다"고 덧붙였다.
나가노현의 빚은 현재 1조8000억 엔(약 18조 원)에 달한다. 기계적으로 계산하면 가구당 140만 엔의 빚(세금)이 있는 셈이라고 에자와 대표는 주장했다.
동·식물 서식지 파괴…'무늬만 녹화사업'
환경 파괴 문제도 심각하다고 그는 지적했다.
점프 시설물이 설치된 하쿠바 마을의 '기후쵸'라는 나비 서식지에는 나비의 먹이가 되는 식물인 '미야 칸 아오이'의 군락이 파괴됐다. 그는 "올림픽 유치 전 중학교 스키부 학생을 동원해서 이 식물을 다른 지역으로 옮겨 심고, '자연 보호'한다고 홍보했었지만, 실제로는 자연이 파괴됐다"고 주장했다.
하쿠바 점프 경기장은 본디 논과 시냇가가 있었던 곳에 13미터 정도 흙을 덮어서 지었다. 그는 "이 경기장 근처가 습지인데, 그런 곳에 경기장을 지으면 습지가 빗물을 묶어두는 힘이 없어져 강 하류에 (범람) 위험이 생긴다"며 "그런데 (정부가) '하쿠바 지역에 경기장을 많이 지어서 하천을 관리해야 한다'면서 강 하류에 콘크리트 공사를 해버렸다"고 꼬집었다.
이즈나 고원의 프리스타일 스키 경기장은 국립공원 인근 지역에 지었다. 관계 당국은 이 지역에 '녹화 사업'을 했지만,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에자와 대표는 "토사가 약해서 산사태가 잘 일어나는 지역인데도, 프리스타일 스키 경기장을 지었다"며 "이후 '환경을 배려한 올림픽'이라는 명목으로 스키장 인근에 '외래종 클로버' 씨앗을 뿌렸지만, 그마저 비가 오면 흙이 흘러내려 와서 씨앗이 소멸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밖에 주변이 멸종위기종 서식지였던 야마노우치마치와 시카 고원에는 대규모 교량과 터널 등이 건설됐다.
"가리왕산 벌목 마음 아파"
기자간담회가 끝나고 에자와 대표는 단 3일간의 스키 경기를 위해 500년 된 가리왕산의 나무 5만여 그루가 벌목됐다는 소식을 듣고 "일본 언론들이 평창 동계올림픽의 가리왕산 벌목 소식을 전하지 않아 자세한 소식은 잘 모르고 있었다"며 "마음이 아프다, 안타깝다"고 거듭 말했다.
그는 "평창 올림픽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한국 시민들이 판단할 문제지만, 시민들이 자기 의견을 갖기 위해서는 한국 정부와 올림픽 유치위원회가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며 "시민의 요구로 올림픽 계획이 변경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봅슬레이만 안 하겠다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제안하는 것도 가능하다. 1976년 개최지였던 미국 덴버는 동계올림픽 자체를 반환한 바 있다"고 조언했다.
* 가리왕산 사진 이미지 프레시안으로 더 보기 (바로 가기 ☞ 가리왕산 500년의 숲 vs 단 3일의 경기)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