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규명에 있어 유족 여러분들이 여한이 없도록 하겠다."
"지난 4월 16일 사고가 있기 전과 그 후의 대한민국은 완전히 다른 나라로 태어날 수 있도록 노력을 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후 딱 한 달 만인 지난해 5월 16일, 이날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유가족과 청와대에서 처음 대면했다. 박 대통령의 제안으로 성사된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위 대화는 박 대통령이 직접 유가족 앞에서 약속한 내용이다. 유가족들은 이날 박 대통령의 음성을 들었고, 그의 눈물을 보았다. 국민들 역시 그날 박 대통령의 약속을 기억하고 있다. (☞관련 기사 : 靑, 朴대통령-유족 면담 전문 공개한 까닭은?)
시간이 흐르고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보름여 앞두고 있는 지금, 유가족들은 다시 청와대에 면담을 요구하고 나섰다. 지난 30일에는 '416시간 농성'을 선포하고 광화문 광장에서 청와대로 행진했다. 이날 몇몇 유가족들은 경찰과 대치하다 공무집행 방해혐의로 체포돼 연행되기에 이르렀다. 유가족들이 다시금 집단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는 불과 11개월 전 박 대통령이 했던 '눈물의 약속'이 깨졌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잠재적 조사대상인 공무원이 위원회 업무 총괄?"
지난 27일 해양수산부가 발표한 시행령안은 유가족들에게는 또 다른 '참사'였다. 지난해, 기소권과 수사권이 보장된 특별법을 요구하던 유가족들은 국회와 정부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혀, 결국 조사권만을 보장한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구성에 합의했다. 그러나 이번 시행령안은 불완전한 조사권조차도 무력화하는 것으로, 사실상 정부가 '진상규명 포기'를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게 유가족들의 생각이다. (☞관련 기사 : "세월호 특조위 무력화 철회"…유가족 416시간 농성 돌입)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피해자 가족협의회(가족협의회)'는 이번 정부 시행령안 문제점을 보다 차근히 살펴보기 위해 3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긴급토론회를 개최했다.
발제를 맡은 유가족 법률대리인 박주민 변호사는 크게 △지휘·감독 권한 설정 잘못에 따른 독립성 훼손, △조직 축소, △업무 범위 축소, △구성인원 불균형 등 네 가지 문제를 짚었다.
특조위가 지난달 17일 정부에 송부한 시행령에 따르면, 위원회 산하 진상규명·안전사회·피해자 지원 소위원회 등 3개 소위원회 위원장은 지원국의 업무를 각각 지휘·감독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정부안에서는 이 조항이 삭제됐고, 대신 기획조정실장과 그 아래 기획총괄담당관이 위원회 업무의 종합 조정 역할을 하도록 명시했다.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기획조정실장과 기획총괄담당관은 모두 파견공무원이 맡는다는 점이다. 이는 '업무와 사무의 분리'를 강조한 특조위 원안과 정면으로 배치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박 변호사는 "잠재적 조사대상인 정부 부처에서 파견된 공무원들이 각 소위 업무를 종합하는 것은 위원회가 조사 대상으로부터 독립돼야 한다는 원칙을 훼손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파견공무원인 기획조정실장과 기획총괄담당관이 특조위 핵심 업무인 진상규명 총괄 업무도 맡게 됐다. 박 변호사는 이 점을 언급하며 "진상규명 소위원회가 다른 소위보다도 더 유명무실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조직·인원 대폭 줄이고 안전 대책 마련은 뒷전으로
조직은 '3국'에서 '1국 2과'로 대폭 변경됐다. 진상규명국만 위상을 원안대로 두고, 안전사회국과 지원국 등 두 국의 급을 과로 낮춰버렸다. 사무를 보좌하는 기획행정담당관은 기획조정실로 오히려 급을 높였다. 이는 정부의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한 시도로 보인다는 것이 박 변호사의 설명이다.
국민대책위 안전대책팀에서 활동한 이진우 사회진보연대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은 이와 관련, '안전사회국'에서 '안전사회과'로 위상이 격하되면서 관련 업무 또한 축소됐음을 지적했다. 원안에서는 '재해·재난의 예방과 대응방안 마련 등 안전한 사회 건설을 위한 종합대책 수립', 즉 총괄적인 재난 방지 대책을 마련하도록 했으나, 정부안은 4.16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사항만으로 축소한 것.
이 연구원은 "세월호 사건은 구조적인 원인 때문에 발생한 사고라는 점에서 그 배경에 대해서 제대로 진단하고 조사해야 하는데, 정부안은 이를 봉쇄하고 있다"며 "정부의 안전 철학이 얼마나 미천한지를 보여주는 구상"이라고 비판했다.
정부 시행령안은 진상규명 과제 또한 '4.16 세월호 참사의 원인 규명에 관한 사항'에서 '4.16 세월호 참사의 원인 규명에 관한 정부 조사 결과의 분석 및 조사'로 축소시켰다. 박 변호사는 "세월호 참사의 원인이나 정부의 구조·구난 작업의 적정성에 대해 폭넓게 조사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은 진상 규명을 방해하는 작업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위원회 구성 인원수도 크게 줄었다. 원안에서 제시한 직원 정원은 120명이었으나, 정부안은 그보다 35명이나 줄어든 85명이다. 구체적인 증원계획도 없다. 박 변호사는 "짧은 조사 기간을 염두에 둘 때 초기부터 120명 인원을 둘 필요가 있다는 점에 비춰보면 특조위를 약화시키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해수부, 해경이 조사…위원회, 거수기로 전락하나 "
인원 구성도 문제다. 비서와 운전원 4명을 제외하면, 파견 공무원은 42명, 민간인은 39명으로, 파견 공무원이 다수를 차지한다. 여기에, 파견 공무원 중 가장 많은 수인 9명을 해수부가, 그다음으로 많은 8명을 해경이 속한 국민안전처가 파견하도록 돼 있다. 박 변호사는 "명백한 조사 대상인 부처에서 파견한 공무원들이 다수를 점한다면, 독립적인 조사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결국 위원회는 정부가 발표한 것을 승인하는 거수기 역할밖에 하지 못할 것"이라며 "대통령이 처음 약속했던 것처럼 유가족이 여한 없이 조사하겠다는 약속을 지킬 마음이 있다면 당장 시행령을 철회해야 한다"고 했다.
토론에 나선 특조위 조사위원인 장완익 변호사는 "지난해 위원회 구성과 관련 여야 논쟁이 있었지만, 여당에서 내놓았던 특별법안 또한 국회 산하에 특별위원회를 두는, 정부가 위원회 구성에서 배제된 것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시행령안은 그러한 특별법 취지를 완전 무시한 것으로, 정부 시행령안은 정부가 새로운 입법행위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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