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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제조업 83%, 치명상 입는다"

[살림이야기]개방‧③ 한중 FTA, 농업과 중소 제조업에 재앙

지난 11월 10일 박근혜 대통령은 중국 베이징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나 한중 FTA의 실질적 타결을 선언했다. 상당수 언론은 "한국의 경제 영토가 세계 3위 수준으로 넓어졌다"고 환호했다. 기본적으로 FTA란 수출산업 종사자들의 이익을 확대하기 위해 내수산업의 희생을 요구하는 제도다. 언론이 '경제 영토' 운운하며 요란한 반응을 보여도 되는지 모르겠다. 일각에서는 한중 FTA 덕분에 우리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5년 이후 최대 1.25퍼센트(%) 높아질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대다수 시민은 이렇게 '훌륭한' FTA에 관심을 가지지 않거나 냉소적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토록 떠들썩하게 체결된 한미 FTA나 한-EU FTA로 우리 경제가 얼마나 좋아졌는지 체감한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한국 제조업 상품의 83%가 치명상 입을 수 있어

한중 FTA의 가장 바람직한 시나리오는 FTA를 통해 관세율이 떨어지면서 대중(對中) 수출이 많이 늘어나는 것이다. 정부가 배포한 한중 FTA 참고자료를 보면 그런 기대로 가득하다. 이 자료를 보면 한중 FTA가 발효되는 경우, 관세절감 효과(관세 인하로 낼 필요가 없어지는 자금 규모. 그만큼 상품을 싸게 팔 수 있다)가 연간 미화 54억4000만 달러(약 6조 원)에 이른다. 관세절감액이 1조 원 남짓인 한미 FTA의 5.8배, 1조5000억 원 남짓인 한-EU FTA의 3.9배다.

그런데 앞으로 한국산 제품을 중국에 얼마나 더 수출할 수 있을까? 수출을 많이 해야 관세절감액도 늘어날 것이다. 만약 FTA로 인해 중국산 수입이 크게 늘어나는데 대중 수출은 많이 늘지 않으면, 국내 경기와 고용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결국 한국산과 중국산의 경쟁력 문제다.

일단 가격 경쟁력에서 한국산 제품은 중국산을 도저히 능가할 수 없다. 지난 10여 년 동안 중국의 임금 수준이 많이 올라갔다지만 아직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다. 기술 경쟁력은 어떤가? 만약 한국이 중국에 대한 기술 격차를 유지하거나 더 크게 벌릴 수 있다면 대중 수출을 더욱 늘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최근 상당수 품목에서 한국과 중국의 기술 격차가 크게 좁혀졌거나 사실상 사라졌다는 연구 결과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이런 부문에서는 한국 업체의 중국시장 점유율이 이미 급감하고 있다.

거꾸로 중국 제품들은 한국시장으로 치고 들어온다. 중국 휴대전화 시장에서 삼성전자를 꺾은 샤오미 제품들이 한국시장으로 쏟아져 들어오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의 중국시장 점유율이 지난 10년 동안 컴퓨터 34%P, 신발 31.7%P, 휴대용품 12.8%P, 안경 9.5%P, 섬유제품 5.4%P 감소했다.

그동안 여러 FTA에 우호적이었던 경제 전문지에서 한중 FTA에 대해서만큼은 위험성을 경고하기도 했다. <이코노미스트>를 보면, 제조업 상품 1만2000여 품목 중 83%인 1만여 품목이 한중 FTA로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고 한다. 그야말로 한국 경제의 명줄을 쥐고 있는 제조업이 '중국 제조업발 쓰나미에 쓸려' 내려가는 사태다.

ⓒ살림 이야기
중국산 김치, 다진 양념 등 가공식품 수입 크게 늘 것

농업 부문에서도 정부 장담과 달리 국내 농가 피해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한중 FTA에서 농산물 개방을 최소화(역대 FTA 중 최저 개방)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체 농산물 1611개 품목 중 1030개 품목의 관세가 20년 안에 철폐되지만, 나머지는 관세 인하 대상에서 제외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중 FTA에 따른 농가 피해가 다른 FTA에 비해 크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정부의 말이다. 그러나 이 같은 외형적인 수치만으로 농가에 예상되는 피해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비교적 급속하게 관세가 인하되는 참깨, 콩 등은 국내 수요가 꽤 큰 농산물이다. 가공품의 관세도 급속히 줄어든다. 중국산 김치나 다진 양념 같은 가공품이 한국시장에 밀물처럼 들이닥칠 것이다. 쇠고기, 돼지고기는 관세 인하 대상이 아니지만 살아 있는 소나 돼지를 중국에서 수입하는 길도 열렸다. 중국산과 경쟁 관계에 있는 농산품의 관세율은 꽤 높은 편이었는데, 높은 관세를 낮은 관세로 돌리는 과정에서 농가에 가해질 충격은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한중 FTA가 이미 한-칠레, 한미 등 각종 FTA로 피폐해질 만큼 피폐해진 한국 농업에 결정타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비유하자면 권투시합에서 잽을 많이 허용한 선수는, 경기 후반에 이르러 약간의 충격에도 쉽게 무너질 수 있다.

실제로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한중 FTA 체결로 인한 우리 농수산업 생산이 2020년엔 최대 20%까지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 금액으로는 3조3600억 원으로, 정부가 집계한 한미 FTA에 따른 농업 피해액 8150억 원의 4배가 넘는다. 한중 FTA 체결로 인한 농업 피해가 이렇게 클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는 중국산 농산품의 가격 경쟁력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한국은 중국산 농산품에 대해 이미 100~500%에 이르는 높은 관세율을 적용해 왔다. 그런데도 중국산은 이미 우리 농산품 시장의 상당 부분을 잠식하고 있다.

정부는 일방적 홍보보다 피해대책 마련에 힘써야

우리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한중 FTA가 사실상 타결되었는데도 기업과 농민들은 혼란에 빠져 있다. 정부가 기본적인 정보도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법규 검토가 필요하다거나 중국과 공개하지 않기로 약속했다는 등 구차한 변명만 늘어놓고 있다. 국민과 소통하는 데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정부라면 협상문 전체가 아니더라도 품목별 관세율표 변화 내역 정도는 공개해야 하지 않을까?

미국 정부는 다른 나라와 FTA를 추진할 때 대내협상과 대외협상 과정을 거친다. 여기에서 대내협상은 FTA로 이익을 보는 산업 대표와 피해를 보는 산업 대표, 그리고 정부 및 의회 대표가 모여 협상범위와 피해대책 등을 사전에 미리 협의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 나온 합의 사항은 의회에서 법률로 제정되어 협상단의 협상 권한을 통제하는 데 활용된다.

박근혜 정부는 한중 FTA 이후에도 양자 간 혹은 다자 간 FTA를 다수 추진할 계획이다. 그렇다면 우리 역시 대내협상 절차를 보장할 법률이 필요하다. FTA로 이익 보는 산업 종사자들이 더 많은 세금을 내고, FTA로 손해 보는 산업 종사자들이 더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정교한 제도적 장치도 만들어야 한다. 지금까지처럼 FTA의 긍정적 효과만 일방적으로 홍보하면서 잠재적 피해자들의 반발을 억누르기에 바쁜 한국 정부는 결코 시민들의 신뢰를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우리나라 대표 생협 한살림과 함께 '생명 존중, 인간 중심'의 정신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한살림은 1986년 서울 제기동에 쌀가게 '한살림농산'을 열면서 싹을 틔워, 1988년 협동조합을 설립하였습니다. 1989년 '한살림모임'을 결성하고 <한살림선언>을 발표하면서 생명의 세계관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살림은 계간지 <모심과 살림>과 월간지 <살림 이야기>를 통해 생명과 인간의 소중함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살림 이야기>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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