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한중 정상은 양국 정상회담에서 자유무역협정(FTA)이 실질적으로 타결됐다고 공식 선언했다. 무엇이 그리 급한지 연신 연내 타결을 외치더니, 공교롭게도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 시기에 딱 맞춰 협상을 타결하면서 양국 정상을 활짝 웃게 했다. 마치 이런 극적인 장면을 연출해 내기 위해 긴 시간 준비해 온 것처럼 말이다.
개인적으로 한중간 FTA 협상은 그 어느 국가와의 협상보다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래서인지 큰 잡음 없이 협상이 타결되고 나니 조금은 어리둥절하기까지 하다. 협상 타결 후, 한국 정부가 보도 자료를 통해 발표한 협상내용을 보니, 역시나 양국이 민감하게 생각하는 분야에 대해서 피차 양보를 한 모양새다. 연내 타결이라는 시간표에 맞추려면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물론 총 협상 기간이 30개월로 짧은 기간도 아니고, 더 길게 끌고 간다고 해서 별로 달라질 것은 없었겠지만, 국내적 합의 없이 조용히 협상이 진행된 것이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는다.
많은 경제전문가들은 이번 협상이 한미, 한·EU 보다 개방 수준이 낮다고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이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며 세계 최대 시장인 점을 감안하면 한중 FTA가 미치는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협상 전에는 잠잠하다가 협상이 타결되고 나니 누가 이기고 졌느냐, 개방수준이 높니, 낮니 등 말이 많다. 사실 "협상"에서 이기고 지고는 크게 의미가 없다. FTA 타결이라는 목적을 위해서 양국이 서로 이기고 지는 것을 나누어 가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개방수준의 높낮이도 세계무역기구(WTO), FTA를 통해서 이미 많은 품목에서 관세율이 많이 낮아져 있는 상태이다. 관세율을 더 낮춘다고 해서 미치는 영향이 현저하게 변하는 것도 아니고, 높인다고 해서 개방이 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단지 시간을 잠깐 더 버는 것일 뿐이다.
FTA는 협상보다 이행 및 활용이 훨씬 더 중요하다. 그렇다고 협상은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협상은 기간이 정해져 있지만, 이행은 협상 이후 계속적으로 이루어지는 부분이면서, 우리가 실질적으로 FTA를 몸소 느끼게 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비가 철저히 이루어 져야 한다는 뜻이다. 아직 협상의 내용이 완전히 공개되지 않아 구체적인 협상 내용은 알 수 없지만, FTA 이행에 있어서 다음에 대해서는 주의하여 대응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우선, 중국 국유기업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중국의 국유기업은 중국 기업 총생산의 40%(2014년 기준)를 차지할 정도로 중국 경제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중국 국유기업에는 한중 FTA의 중국 측 초민감 품목인 기계, 화학, 전자 등의 제조업 분야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한중 FTA를 통해 우리가 경제적 이득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 분야도 이 분야이다.
중국 국유기업은 개혁개방 이래 줄곧 정부로부터 여러 종류의 보조금을 지급 받아 왔다. 보조금은 주로 재정·금융, 조세 특혜, 원자재 수급, 인력보조 등의 형태로 지급되었다. 따라서 중국 국유기업 진출 분야는 자동적으로 경쟁이 억제되어 국유기업의 독과점이 유지되고 있다. 2001년 WTO 가입 이후에 국제무역 질서에 있어 불공정을 야기하는 보조금은 상당 부분 철폐되고 있지만, 지방정부 차원의 보조금은 여전히 존속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중 FTA 협상 내용에 중국 국유기업에 대해 경쟁법상 의무가 적용되도록 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내 우리 기업과 중국 국유기업 간 공정경쟁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우려되는 점은 원칙적으로 양국이 합의했다 하더라도 과연 이것이 이행될 수 있을지 여부다. 중국 중앙정부 차원에서 경쟁원칙을 준수하려 해도 지방정부 차원에서 이를 무력화 시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여러 보조금이 상당 부분 지방정부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면 양국이 원칙에 합의했다 하더라도 우리 기업은 현실에서 여전히 불공정 경쟁 상태에 놓이게 될 것이다. 실제 협상 내용에 이에 대한 내용도 함께 있기를 기대하지만, 만약 없다면 향후 중국 지방정부가 FTA에서 합의한 사항을 이행하도록 하기 위한 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투자자-국가소송제, 일명 ISD의 활용이다. 한미 FTA 협상 시 국가의 사법권을 무력화시키는 제도라고 협상에 있어 가장 큰 쟁점이 됐던 사안이다. ISD는 정부가 투자협정 및 투자계약 등을 지키지 않아 외국인 투자자가 손해를 볼 경우, 외국투자자는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제소를 할 수 있고, 해당 정부는 그 결과를 받아들이겠다는 것을 합의한 제도이다.
한미 FTA와 같이 큰 소란은 없었지만, 한중 FTA 협정문 내용에도 ISD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한중간 ISD는 이미 2014년 발효된 한중일 투자보장협정(「대한민국 정부, 중화인민공화국 정부 및 일본국 정부 간의 투자 증진, 원활화 및 보호에 관한 협정」)에 포함된 것이 한중 FTA에 그대로 계승된 것이다. 한중간 ISD 범위는 협정위반에 대해서만 제소권을 행사하도록 되어 있어 계약까지 투자자 권리를 폭넓게 인정하고 있는 한미 FTA보다 강도는 약하다.
FTA 협정문이 향후 국회 비준을 통해 본격적으로 이행되면, 서로 상이한 법률 조항으로 인해 양국 간 분쟁이 발생할 소지가 다분하다. 최근 중국은 법치국가 건설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관 및 당의 재량권의 작용이 크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ISD를 잘 활용할 경우, 중국 정부 정책에 의한 피해에 대해서는 ICSID를 통해 구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우리나라 정부도 중국 기업에 대해 ISD를 이용해 제소당할 수 있음을 상기시킬 필요가 있다. 특정 언론에서는 중국을 '비법치국가'라 일컬으며, 법률도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국가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는 오산이다. 중국은 사회·경제 변화에 따라 법률의 제·개정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법률의 안정성을 문제 삼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다고 법률 자체가 우리나라 법률보다 한참 후진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선진적인 부분도 많다. 다만 법률의 이행 부분에 있어서는 아직 서구식 법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양국의 법률 조항 상이로 분쟁의 발생 소지가 있는 국내법 조항을 다시 한 번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한중 FTA 협상 타결로 13억의 거대 경제국으로 들어가는 문의 빗장이 열렸다. 한중 FTA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웃는 얼굴과 우는 얼굴로 나눠질 것이다. 이제 정부는 최소한 적극적으로 FTA를 활용하려는 이들이 FTA가 제대로 이행되지 못해 피해를 받는 일이 없도록 사전에 대비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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