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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경쟁력 비교? 허망한 숫자 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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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경쟁력 비교? 허망한 숫자 놀음!

[좋은나라 이슈페이퍼]<55> 통상현안과 민주적 통상거버넌스

* 이 글은 한중FTA가 체결되기 전에 작성된 글입니다.

TPP(환태평양FTA), TTIP(대서양FTA), RCEP(ASEAN+6FTA)등 글로벌 메가FTA가 맹위를 떨치는 국제경제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이와 함께 2014년 한국의 통상환경 역시 여러 쟁점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 글에서는 현시기 주요 통상현안을 점검해 보고, 여기에 대한 대안으로 ‘신통상정책’의 대강을 짚어 보고자 한다.

전면개방된 쌀시장

우리 농업 중심에 쌀이 있음은 다 안다. 그나마 쌀이라도 있어 식량자급률이 20%대를 유지하고 있음도 다 안다. 나머지는 수입이다. 밥을 안 먹으면 거의 다 수입이다. 이제 그 하나 남은 쌀, ‘관세화’라는 어색한 이름을 달고 이제 개방의 길로 들어선다. 누구라도 원하기만 한다면, 관세만 내면 어느 나라 쌀이든지 수입해 시장에서 팔 수 있다는 말이다. 지난 10여 년에 걸쳐 쌀 생산량, 생산면적, 생산자는 각각 18%, 22%, 35% 감소했다.

그 결과 쌀 소비량에 비해 생산량이 부족해졌다. 하지만 이와 비례해 쌀 수입량은 약 400% 증가했다. 이미 우리는 쌀을 수입하지 않으면 쌀에 대한 수요를 충족할 수 없는 지경에 도달했다는 말이다. 그러나 쌀 생산량이 20% 가까이 감소하는 동안 농가소득은 2.5% 증가했다. 그래서 순경제적 관점에서만 보자면 쌀 생산은 더 이상 산업이라고 부를 수 없으며, 쌀농사만을 통해 생계를 영위하는 일은 사실상 자살적 경제행위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미 쌀이 부족해 수입해 먹어야 하는 우리, 하지만 지금까지 쌀 수입은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거나, 대부분 WTO 협정에 따른 의무수입물량이었다. 이제 쌀 관세화, 곧 쌀시장 완전개방이 되면 어찌 되나. 확인된 3가지 객관적 추세는 이러하다. 즉 첫째, 쌀 생산량, 생산면적, 생산자는 감소하고 있다. 둘째, 쌀은 부족하다. 셋째, 쌀 수입은 급증한다. 그래서 쌀 시장 완전 개방은 가능한 모든 개연성을 놓고 볼 때 방금 말한 3가지 객관적 추세를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기본적으로 나는 2014년 관세화 유예 만료를 앞두고, 설사 우리가 관세화 전환을 하지 않더라도 반드시 국제법적 의무 위반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래서 정해진 게 없으니 일단 협상이라도 당장 시작하자고 요구했다. 그러자 일부 경제학자, 법학자들이 나서 나의 ‘무지’를 강하게 질타했다. 그런데 얼마 전 WTO 사무총장이 다녀갔다. 그의 말의 요체는 모든 것이 “회원국 간의 협상에 달려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제대로 된 협상 한 번 안 하고, 정부는 결국 관세율 513%로 쌀시장을 전면 개방하기로 WTO에 통보했다.

하지만 관세상당치 513%가 모든 것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쌀 관세화에 반대하는 농민단체 중에도 만일 쌀 수입관세 500%가 유지만 될 수 있다면 기존 입장을 재검토할 수도 있음을 비치기도 한다. 그러나 쌀 고율관세화론의 가장 큰 문제는 과연 이 고율관세가 지속가능한가 하는 점에 있다. 쌀 고율관세는 주로 두 가지 측면에서 그 안정성이 위협받을 수 있다.

첫째, 지금의 쌀 고율관세론은 쌀 관세화의 구체적인 조건, 곧 그것이 FTA 환경에서 진행 중이라는 점과 FTA 리스크를 과소평가하고 있다. 지금 정부는 한중FTA협상을 진행 중이고, 또 향후 미국 주도 TPP ‘가입’을 위한 예비협상을 진행 중이다.

한중FTA의 경우 양허협상을 통해 품목수의 10%를 개방예외로 두기로 양국이 현재 합의한 상태이다. 따라서 쌀의 경우 초민감품목으로 분류되어 있다. WTO 쌀관세화 문제와 FTA와 관련성에 대한 정부입장의 핵심은 두 가지가 ‘별개 사안’이라는 데에 있다.

쉽게 말해 쌀을 FTA 양허대상에서 제외하면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모든 FTA협상은 먼저 자국의 양허안(offer)이 있고 상대방에 대한 양허요구안(request)이 있기 마련이다. 설사 우리가 우리 측 양허안에서 쌀을 제외하더라도, 상대방의 요구가 있으면 협상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통상협상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대개 우리가 쌀을 아예 협상대상에서 빼고자 하면 대신 다른 무엇을 제공해야 한다. 쌀이 우리의 최대 약점인 것을 모를 리 없는 상대방으로서 양허요구안에 쌀을 포함시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따라서 한중FTA에서도 쌀관세율이 쟁점화될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이 글은 한중FTA가 체결되지 전에 작성됐습니다.)

TPP로 가면 문제는 더욱 힘들어진다. 의무수입쌀 부담 때문에 일본은 1999년 관세화로 전환한 바 있다. 현재 주식용 쌀 관세는 778% 수준이며, 가공용은 가공 정도에 따라 34~550%가 부과된다. 연간 소비량은 밥쌀용이 715만t, 가공용이 60만t 정도다. 처음 TPP협상에 들어가면서 일본 정부는 밥쌀용 쌀 관세는 그대로 유지한 채 센베이와 사케에 사용되는 가공용 쌀 관세를 내리는 데 동의할 것이라고 보도된 바 있다. 물론 일본정부의 이러한 초기입장이 관철될지 여부는 전혀 불투명하다. 왜냐하면 미국이 주도하는 TPP와 같은 이른바 ‘21세기형 FTA’는 ‘모든’ 상품의 관세철폐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일본 쌀 사례는 TPP에 그것도 훨씬 불리한 조건으로 ‘가입’하기를 원하는 우리의 경우와 비교하기는 어렵다. 협상 참여가 아니라, ‘가입’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우리는 TPP협상에서 ‘을’의 입장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일본은 자신의 약점인 농산품을 방어하기 위해 미국의 약점인 자동차라는 빅딜 카드라도 있지만, 우리로서는 한미FTA 당시 다 써먹은 터라 이마저도 없다. TPP 예비협상에서 현재 미국은 그저 쌀을 의제화하는 것만으로도 추가적인 이익을 기대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둘째는 여전히 답보상태인 DDA (도하 개발 어젠다) 협상이다. 이 협상에서 우리가 개도국지위를 부여받으면 쌀이 ‘특별품목(Special Product)’으로 분류되어, 관세감축 예외를 적용, WTO에 신고한 관세상당치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또 의무수입물량을 늘려야 하는 위험도 준다. 그러나 만에 하나 그렇지 않고 선진국 지위를 부여받으면 WTO 신고관세를 대폭 내려야 하고 의무수입물량도 현재보다 20만 톤가량 더 늘려야 한다. 물론 가까운 장래에 DDA 농업협상이 타결될 가능성이 아주 높지는 않다. 그러나 쌀과 관련된 정부의 DDA 대책은 개도국 지위를 받도록 노력해 보겠다는 수준 이상이 아니다.

정부가 말하는 고율관세론도 지금과 같은 통상환경에서는 불확실성을 제거하기보다, 새로운 불확실성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 그저 고율관세에 기대는 쌀시장개방만으로는 제대로 된 대책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나마 성난 농심을 진정시키고 나아가 정부의 고율관세론이 진정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무언가 새로운 대안적 접근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본다. 쌀고율관세 유지에 대한 확고한 약속을 담은 특별법을 제정하든지 아니면 기존의 법률을 개정해서 관련 조항을 삽입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농업계와 정부가 쌀관세 뿐만 아니라 종합적인 쌀산업대책을 담은 농⦁정(農政)협약을 체결하고 이것의 이행을 국회가 보증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지 않을까 한다.

▲ 지난 7월 3일 청와대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 이후 회담 결과를 발표하고 있는 박근혜(오른쪽)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중국은 이 회담에서 한국에 AIIB에 참여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AP=연합뉴스

한중FTA의 대차대조

가장 큰 현안 중 하나인 한중FTA, 그 예상 성적을 간단히 짚어 보자. 첫째, 한중FTA가 농·축·수산업에 미칠 영향은 지금까지의 다른 모든 FTA 등 통상협정의 피해를 다 합한 것과 비교될 만큼 클 것으로 본다. 우선 그 규모를 비교해 보자 (2009년 기준). 농림어업 종사자를 보자면 우리가 180만 남짓인데 중국은 약 3억이다. 경지면적도 우리가 174만 헥타르라면 중국은 1억6000만 헥타르이며, 곡물생산량도 555만 톤 대 4억 8000만 톤이다. 채소생산량도 1033만 톤 대 6억2000만 톤, 과일은 288만 톤 대 2억4000만 톤으로 규모만 놓고 보자면 60배에서 160배까지 차이가 난다.

특히 한중FTA는 수산업에도 막대한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까지의 FTA와는 달리 한중FTA는 수산업을 대표적인 피해산업으로 만들고 있다. 규모만 놓고 보자면, 우선 어선 수에 있어(2009년 기준), 우리가 7만8000척인데 비해 중국은 104만 척이다. 그리고 수산물 생산량을 보더라도(2011년 기준), 우리가 약 300만 톤이라면 중국은 약 5100만 톤이다. 그리고 양식도 우리가 130만 톤(2011년)인 데 비해 중국은 3480만 톤(2009년)이다.

규모만 차이 나는 게 아니다. 생산품의 가격 역시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주요 곡물인 쌀, 보리, 밀이 5배가량 차이가 나고, 콩은 약 7배, 감자 역시 약 7배의 차이가 난다. 사과를 보더라도 kg당 3454원 대 465원, 배는 2172원 대 254원, 포도 3217원 대 446원, 감귤 1409원 대 373원등의 차이가 난다. 육류를 보자면 쇠고기의 경우 1만3321원 대 2500원으로 약 5배 차이가 나고, 반면 중국인들이 즐겨 먹는 돼지고기는 약 2배 정도 차이다.

수산물이라고 조금도 다르지 않다. 양국 간 수산물 49개 품목의 가격을 비교할 경우, 재첩은 12.1%, 주꾸미 (냉동) 22.5%, 민어 (활어) 24.2%, 낙지(활, 신선) 28.2%, 꽃게(냉동) 44.3%, 뱀장어(활어) 36.5% 등으로 5배정도의 차이는 보통이다.

둘째, 한중FTA효과를 산업별로 보면 농수산, 가공식품 철강 운송, 전기전자 및 기타 제조업에서 한국에 불리한 반면 섬유의류, 석유화학 및 기계 산업은 유리한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하지만 우려스러운 점은 철강, 전기전자 산업의 생산이 한중FTA로 인해 일반적인 예상과 달리 감소될 수 있다는 것이다. 주력 산업의 생산 저하는 한중FTA에 대한 경제효과의 전망을 한층 어둡게 하고 있다. 우선 자동차산업의 경우 한중FTA로 현대기아자동차 등 완성자동차의 경우 이미 대부분 국내업체의 현지화 (북경, 상하이)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완성차나 부품의 수출과 국내 생산이 증가할 것이라는 기대는 어려워 보인다. 반면 자동차 부품업 예컨대, 타이어 산업의 경우 현재에도 대중국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하고 있으며 국내 3대 타이어업체의 중국 현지 생산이 증가하고 있어 국내산 수출의 증가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이들 업체의 생산증가와 가격경쟁력 확대로 인해 중국산 타이어 수입의 증가 가능성 크다고 할 수 있어 국내 타이어산업의 생산 감소가 예상된다.

철강 생산 역시 감소가 예상된다. 철강 산업의 경우 중국은 세계 전체의 조강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으며 세계 1위 철강생산국이면서 최대 철강시장에 해당한다. 따라서 한중FTA가 한국의 철강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양면적 성격을 갖고 있다. 한편에서 한중FTA가 철강산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주장되고 있다. 한국은 대다수 철강제품에 대한 관세를 철폐해 오고 있으나 중국은 여전히 5%의 수입관세를 부과하고 있어 한중FTA로 인해 한국이 유리한 입장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중국은 그간 국영철강사에 대한 정부의 지속적인 지원과 설비의 신설 및 증설로 중국산 철강재가 국내 시장에 급격히 유입될 것이라는 전망이 더 우세하다. 이러한 철강재 수입은 결국 국내 철강산업의 생산을 위축시킬 수 있다.

전자산업은 어떤가. 관세가 높은 품목의 경우 한국 기업의 중국 투자와 현지화로 이하여 한중FTA에 따른 중국의 수입관세 철폐가 국내 수출을 증가시킬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중저가 제품과 범용기술을 사용하는 상품의 경우 중국산 수입수요가 FTA의 관세철폐로 매우 증가할 수 있다. 특히 2012년 국내 TV 시장이 디지털로 전환되면 중국의 중저가 디지털TV에 대해 국내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보여진다. 이처럼 양국 간 기술격차가 크지 않고 국내 기업의 가격경쟁력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중저가 가전 및 범용 부품 등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은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투자를 보면 차이나 머니가 문제가 된다. 여기서 한중간의 자본이동을 한번 짚어 보자. 한국은행 국제투자대조표(IIP)를 보면, 2013년 한국의 대중 직접투자(FDI)는 550억 달러에 달한다. 꾸준한 증가세다. 반면 중국의 대한 직접투자는 2010년 11억 달러에서 2013년 21억 수준이다. 절대량에서 우리와 비교해 아주 낮은 수준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의 대중 증권투자가 2010년 103억 달러에서 2013년 78억 달러로 감소한 반면, 중국의 대한 증권투자는 같은 기간 85억 달러에서 206억 달러로 급증 우리의 3배 수준이다. 한국의 대중투자가 중국경제의 선순환을 지지하는 그린필드형이 압도적이라면, 중국의 그것은 주식시장에 집중되어 있다. 상대적으로 단기차익을 노린 먹튀 가능성이 높고, 휘발성도 강하다.

주식, 채권 등 우리 증권시장에서 차이나머니는 이미 외국인 순매수의 약 30%를 차지할 정도로 ‘키플레이어’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여기에는 중국의 막대한 외환보유고, 중국의 성장률둔화, 중국내 임금상승, 중국 내 중복 과잉 투자 등 중국 내 요인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향후에도 이 경향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이런 말이다. 농·축·수산업을 놓고 한중 간 경쟁력을 비교하는 것은 그저 허망한 숫자 놀음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왜냐하면 아예 비교되지 않기 때문이다. 자유무역이란 본디 서로 비교우위에 있는 상품을 자유로이 교역해서 소비자들의 이익을 최대화하자는 것이다. 한중간 농·축·수산업처럼 아예 비교가 불가능한 것은 자유무역의 대상이 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비교할 수 없는 양자를 비교해서 서로 경쟁을 하라는 것은 그저 국가폭력과 무엇이 다를까. 마찬가지 제조업부문도 하이엔드 일부 품목을 제외한 로우엔드, 미드엔드 품목의 경우 결코 낙관하기 어려우며, 특히 우리 주력품목뿐만 아니라 중소 제조업의 피해 역시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투자부문 역시 중국의 대한 투자는 FDI보다는 주식, 채권 등 FPI 중심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결국 우리 경제의 전 부문에 걸쳐 한중FTA가 미칠 영향에 대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TPP '가입‘의 정치경제학

한국의 TPP 가입문제는 그저 경제적인 문제만은 아니다. 큰 그림은 자못 복잡하다. 한국 외교는 동아시아의 역설 곧 정치군사적 긴장과 경제적 상호의존간의 비대칭이라는 조건에서 매우 난해한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할 숙제를 안고 있다. 기본적으로 한국외교는 미국의 아시아전략의 종속변수다. 미국의 '아시아 리밸런싱(rebalancing)' 전략 개념은 아시아에서 미국이 중국에 밀린다는 인식을 전제로 하고 있다. 즉 미국외교가 중동, 이란‧이라크 문제에 몰입하느라 아시아를 중국에 내줬다는 인식 말이다.

따라서 힘의 균형을 복원해야 하는바, 이는 곧 중국 견제와 같은 말이다. 한국은 아시아라는 ‘거대한 체스판’에 ‘졸’이다. 한‧미‧일 삼각 군사동맹은 바로 이 지점에 위치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북한 북핵 문제를 놓고 보면, 특히 우리는 중국이라는 레버리지가 미국보다 더 절실하다. 미국이 원하는 한‧중‧일 삼각동맹을 통한 아시아 힘의 균형 복원을 위해서는 또한 한일관계의 정상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이 또한 독도와 과거사 문제로 발목이 잡혀있다.

경제 쪽으로 눈을 돌려 보자. 복잡하기는 매일반이다. TPP와 TTIP는 미국 세계시장전략의 양 축을 이룬다. 이들은 실로 오바마표 통상전략의 핵심이다. TPP와 관련 애초 우리는 협상 ‘참여’를 원했다. TPP 12개국과 테이블에 마주 앉아 서로 협상하는 그런 그림말이다. 하지만 종친 지 오래다. 12개국 협상이 다 끝난 뒤 ‘가입’하라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TPP협상은 12개국 그 중 특히 미국 등이 제시한 ‘가입’ 조건을 받을 건지 말 건지를 소위 ‘협상’하는 것을 의미한다.

TPP는 사실 오바마의 아시아 리밸런싱전략과 불가분리적인 관계다. 특히 중국이 주도하는 RCEP(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 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을 놓고 볼 때 특히 그러하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또 ‘가랑이를 찢어야’ 한다. 특히 한중FTA협상이 한창인 데다, 중국은 우리의 최대 투자국이자 최대 교역국이다. 무역흑자 대부분을 챙기는 나라다. 박근혜 정부는 자신의 통상전략을 ‘린치핀’으로 표현한 바 있다. 미국 주도 TPP와 중국 주도 RCEP 사이를 잇는 ‘연결핀’이 되겠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것이 일장춘몽이었음이 드러나기에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뭐 ‘당랑거철(螳螂拒轍)’을 연상하면 되겠다.

우리에게 있어 동아시아 정치경제 지형도는 결국 이러하다. 경제 실익은 중국에서 챙기고, 안보 이익은 미국에서 구한다. 하지만 이런 형세는 잘하면 대박이요, 못하면 쪽박이다. 왜냐하면 이 조건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우선 미국에 경제적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리고 중국의 입장에서 이런 한국의 이런 ‘얄미운’ 처신을 한없이 묵인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TPP는 전대미문의 초대형 ‘밀실협상’인지라 지금까지 뭐가 협상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관측컨대 TPP협정문이 한미FTA를 기본모델로 하고 있기 때문에 ‘한미FTA 플러스’, ‘마이너스’가 조합될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국영기업관련 장이 추가되는 것으로 보아 이는 한미FTA 플러스가 되어 우리한테 불리하고, 상품무역 쪽은 ‘한미FTA 마이너스’가 되어 우리한테 불리해지는 쪽으로 마무리될 가능성 역시 적지 않다. 특히 TPP로 인한 대일 무역적자 확대도 마이너스 요인이다.

현 단계에서 때만 되면 되풀이되어 온 CGE모형에 입각한 TPP GDP효과 추정치 2.5~2.6%는 별다른 의미를 갖기 어렵고, 그보다는 차라리 TPP=한일 FTA라고 할 때, 한국제조업의 주력 자동차와 한국 통상정책의 최후의 보루이자 2015년 쌀시장 전면개방을 앞둔 쌀도 안심할 수 없는 지경이다. 최악에는 대미 서비스무역적자와 대일 상품무역적자 동시심화 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이 과연 판을 벌일 때인지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재검토해 볼 시점이다 (어차피 협상 '참여'하고 싶어도 받아 주지도 않을 것임). 지금까지의 '동시다발적 FTA'전략은 그나마 미미한 FTA 효과를 오히려 잠식한다고 부단히 지적되어 왔지만 한 번도 진지하게 경청한 적이 없으며, 오히려 지금은 'FTA 리스크'를 관리해야 할 때라는 의미이다.

TPP는 이른바 비밀유지협약(confidentiality agrement)을 구실로 철저한 밀실협상으로 진행됐다. 심지어 미 의회마저도 배제해 버렸다. TPP는 그 절차에서뿐만 아니라, 목표에서조차도 '규범적으로' 정당화되기 힘든 모델이다. 우리의 입장에서 그것은 신자유주의적으로 추동되는 한미FTA의 태평양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결국 미국의 초국적 제약회사와 헐리우드를 위한 협정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지 의문이다.

소위 '높은 수준의, 21세기형 FTA'의 전범이라는 TPP는 공정하고, 포용적이며(inclusive), 지속가능한 그런 것은 전혀 아니다. 이 낡은 신자유주의 FTA는 이제는 그나마 통상의 도구이자 수단이던 데에서 탈피, 그래서 본디 '자유무역협정'이지만 점차 '자유무역'에서 조차도 분리되어 그저 초국적 자본의 기득권과 사욕을 맹목적으로 충족시키기 위한 '새로운 폭군(a new tyranny)'로 진화하고 있다.

‘ISD시대’의 개막

론스타 vs Korea ISD 중재재판이 올해 개시될 것으로 보인다. 예상된 일이다. 론스타는 물론 한미FTA가 아니라, 자신들의 페이퍼 컴퍼니가 소재한 벨기에와 우리와의 투자협정을 근거로 일종의 우회제소를 선택했다. 2006년 12월 서명한 뒤 한참이 지난 2011년 3월에야 발효된, 정식 명칭이 ‘대한민국 정부와 벨기에-룩셈부르크 경제동맹 간 투자 상호증진 및 보호에 관한 협정’인 한-벨기에 투자협정은 적어도 그 문언만 놓고 보면 한미FTA와 비교해 그나마 좀 ‘착한’ 편에 속한다. 하지만 이는 협정의 적용범위, 절차 등 일반적인 의미에서 그렇다는 것이지, 론스타가 한국정부를 상대로 재판을 진행하기에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 돌이켜 보건대 론스타로서도 자신에 대한 매우 좋지 않은 국내 여론 등 각종 ‘정치적’ 고려 끝에 이런 꼼수를 부리지 않았을 까 싶다.

론스타 측이 밝힌 것처럼 중재재판은 미 워싱턴 DC에 소재 세계은행 산하기구인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서 진행될 것이다. 물론 당장 우리 정부를 대표해 법무부가 세계은행에 불려간 것은 아니다. 지금은 한-벨기에 투자협정 제8조에 나와 있는 아래 단계를 거쳐 이제 본안에 들어간 상태다. “어느 한쪽 체약당사자와 다른 쪽 체약당사자 투자자 간의 모든 분쟁은 처음 행동을 취하는 분쟁당사자가 서면으로 통보하며, 가능한 한 분쟁당사자 간에 우호적인 방법으로 해결한다. 통보에는 충분히 상세한 각서가 첨부되어야 한다”는 제8조에 의거 론스타 측은 이미 벨기에 한국 대사관에 ‘통보’를 했고, 이제 소위 ‘가능한 한 우호적인 방법으로’ 분쟁 해결을 모색했지만 결론은 없었다.

아무튼 론스타가 제기한 쟁점은 2가지다. 첫째, 론스타는 과거 외환은행을 국민은행, HSBC은행에 매각하고자 했지만 금융당국의 반대에 부딪혀 계약단계에서 실패했고, 최종적으로는 올 1월 하나금융지주에 매각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론스타는 4조6634억 원의 차익을 남겼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 론스타는 지금껏 한국 금융당국의 매각 반대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필요한 시간 보다 수년 더 길게 주식을 보유하게 되었고 그래서 가격이 극적으로 하락했다”고 주장한다.

둘째, 론스타의 양도차액에 대한 국세청의 과세가 “자의적이고 위법적이며 몰수적”이라는 주장이다. 이미 론스타는 외환은행 매각에 대한 양도소득세 3900억 원을 돌려달라며 국세청에 청구한 상태다.

그래서 이제 누군지도 모를 3인의 중재 재판관이, 그들끼리 세계은행 밀실에 모여 앉아 우리 금융당국의 외환은행 매각 불승인이 옳았는지를 판정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가슴 졸이며 그저 그 결과를 기다릴 뿐이다. 대한민국 국민 99%는 ISD가 뭔지도 모르고 관심도 없다. 또 이로부터 터럭만큼의 혜택 받을 일도 없다. 하지만 재판에서 패소한다면 4조6000억 원을 ‘먹고 튄’ 론스타라는 사모펀드에 다시금 피 같은 세금을 모아 배상을 해 주어야 한다. 혜택 볼 일은 없지만, 물어줘야 할 의무는 있다.

먹튀자본에 대한 금융당국의 공익적 결정과 론스타의 사익 추구 사이의 분쟁이 이번 사태의 본질이다. 초국적 자본의 사익 앞에 공익과 공공성이 끊임없이 위협받는 새로운 신자유주의적 일상이 이제 탄생하고 있다는 말이다. ISD가 논란이 될 때마다 정부 측은 말했다. 우리가 체결한 수많은 투자협정이나 FTA에 ISD가 포함되어 있지만 단 한 번도 소송을 당한 적이 없다고 말이다. 이제 이들이 발언하게 하자. 만에 하나 대한민국 제1호 ISD소송에서 패소하면 어떻게 할 건지를 말이다.

‘신통상정책’으로의 전환을 위하여

한때 남미등지에서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이 지배적일 때, 다분히 예외적으로 ‘발전국가(developmentalist state)형’ 압축성장의 성공사례로 꼽혔던 한국은 이제 세계 초대형 경제권의 시장쟁탈전의 전장이 될 전망이다. 물론 여기에는 과거 압축성장을 주도했던 경제관료들이 재빠르게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할 새로운 아이템으로 통상을 선택한 것도 적잖이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사정이 어떠하든 이제는 더이상 FTA에 대한 맹목과 시대에 동떨어진 낡은 통상거버넌스를 가지고서는 새로운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그 대안 통상정책의 몇 가지 출발점을 언급해 본다.

첫째, FTA의 경제효과에 대한 진정으로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검증이 시급하다. 한EU FTA 3년 만에 우리는 무역적자국으로 바뀌었다. 마찬가지 한캐나다, 한호주 FTA 같은 예정된 적자 FTA가 버젓이 체결되고 있다.

둘째, FTA위주의 통상정책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글로벌경제의 통상은 결코 수출증대라는 기능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이미 글로벌경제는 수출, 생산, 일자리증가, 소득, 투자의 선순환 고리를 해체시킨 지 오래다. 수출이 늘어도 고용이 늘지 않고, 성장을 해도 고용이 늘어나는 그런 순환이 해체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통상정책의 포괄범위는 단순히 수출증대 수준을 한참 벗어나, 산업, 금융, 금리, 투자, 농축수산, 검역 그리고 서민들의 일상생활에 직결된 각종 공공서비스부문 등에 이르기까지 국민경제의 모든 영역을 매우 촘촘히 관할하고 있다.

셋째, 이 과정에서 통상관료의 권력 또한 과히 '통상독재'를 우려할 만치 광역화되어 버렸다. 선출된 적도 없고, 위임된 적도 없는 이들 통상관료 권력은 거의 무소불위라 할 만큼, 심지어 초헌법적 양상으로까지 확장되었다. 그런 점에서 민주적 통상거버넌스의 확보가 관건적이다. 이런 점에서 과거 외교통상부시절 통상관료의 이해가 주로 관철된 현 ‘통상절차법’은 더욱 민주적으로 개정되어야 한다.

넷째, FTA가 경제민주화의 사각이 될 수가 없다. 그런 점에서 예컨대 농축수산업 등 특정산업, 특정 계층이나 지역 그리고 세대의 희생을 당연시 하고 또 사후약방문식의 재탕, 삼탕식 대책만 되풀이 하는 식의 접근은 더 이상 안 된다. 이런 점에서 통상을 통해 이익이 발생한다면 그 이익을 사회적으로 공유하는 ‘무역이익 공유제’등 통상의 재분배기능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통상정책과 조세정책을 연계하는 정책 개발이 있어야 한다.

다섯째, 새로운 통상정책은 장기적으로는 ‘정의로운 무역(Just Trade)’으로의 패러다임 교체를 지향한다. 그것이 무엇인지 이제 토론이 시작되어야 할 시점이다.


(1) "A new tyranny is thus born, invisible and often virtual, which unilaterally and relentlessly imposes its own laws and rules. An even worse development is that such policies are sometimes locked in through trade rules negotiated at the WTO or in bilateral or regional FTAs. "(Statement of the Vatican at WTO MC9) http://www.scribd.com/doc/189515950/Statement-of-the-Vatican-at-WTO-MC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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