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전 경기도지사가 태풍의 핵으로 떠올랐다.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의 룰과 시기를 둘러싼 갈등이 좀처럼 해소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손 전 지사 측이 "경선안에 대한 합의가 안 되면 불출마를 심각하게 고려할 수 있다"는 강한 압박을 가하고 있기 때문.
'여권행'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손 전 지사 본인이나 캠프 관계자들 모두 부인하고 있지만, 자신이 주장하는 쪽으로 경선방식의 개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모종의 결단'에 나설 수도 있음을 시사한 발언이다. 박근혜-이명박 진영의 분열 가능성과 맞물려 손 전 지사가 한나라당 '3월 위기설'의 한 축으로 본격 등장한 것이다.
손학규 "이대로 가면 뭐 하러 이런 것 하나?"
손 전 지사는 26일 "이대로 (경선구도가) 간다면 내가 무엇 하러 이런 것을 하고 있겠느냐"면서 "본선에서 이길 사람을 뽑자는 차원에서 특정 후보를 위해 (다른 후보를) 들러리 세우는 경선 룰과 절차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거듭 주장했다.
손 전 지사는 이날 목포 상공회의소 초청강연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경선불참 가능성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나는 대세론적인 분위기에 대해 온 몸으로 싸우는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한나라당의 정체성 문제도 다시 한 번 건드렸다. 그는 "한나라당의 집권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밝히고 국민을 하나로 아우를 수 있는 것이 되도록 구태정치와 과거회귀에 대해 싸울 것"이라며 "지역에 기초한 대립과 반목의 정치가 5년 더 간다면 선진 대한민국의 꿈을 이루기 어렵다. 영·호남을 뛰어넘고 고루 아우르는 최초의 국민통합정부를 세우는 것이 이번 대선의 필수과제"라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여권이 지리멸렬하니 한나라당은 벌써 대세론에 빠져 줄세우기 등 구태정치를 일삼고, 과거회귀적인 기류가 기승을 부리는 상황"이라며 "거듭된 대선패배 직후 국민의 용서를 구하던 모습은 싹 없어지고 말았다"고 발언 수위를 높였다.
경선방식 관철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치면서 이명박-박근혜 등 선두주자들에 대한 직격탄을 날린 셈이다.
특히 이 전 시장을 둘러싼 검증 논란과 관련해 "한나라당에서 검증 얘기가 되고 있는데 떳떳하게 나오라"면서 "왜 못들은 척 하고 숨나. 정정당당하게 문제제기 되는 것 중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하고 맞는 것은 잘못했다고 하면 된다"고 몰아붙였다.
이어 그는 "이 전 시장이 경부운하를 만든다고 하다가 경상도만 발전시키냐고 하니 허겁지겁 호남운하도 만든다고 한다"면서 "나는 (호남운하가) 선거용이라고 치부한다. 호남에 줄 하나 그어 놓는 게 국가 지도자가 할 일이냐. 개발지역 표 얻으려 하고 건설업자 표 얻으려는 것"이라고 공격하기도 했다.
'경선 룰' 갈등, 태풍의 핵은 손학규?
자신의 탈당가능성과 관련해서도 그는 "그런 예측이 있는지 나는 모르겠지만 정도를 걷겠다"고 완전히 부인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정도'가 여권행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독자적인 행보에 나서겠다는 것인지는 여전히 모호한 상태.
이수원 공보특보는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온 몸을 던져 싸우겠다는 뜻으로 이해해 달라"고 했다. 그는 경선 불참 가능성을 열어둔 발언에 대해 "비장한 각오로 싸우러 나가는데 우리가 진다는 상황은 생각하지 않는다. 경선방식을 관철시킬 수 있다"고만 말했다.
실제로 손 전 지사 측의 최근 강도 높은 압박성 발언은 대선후보 경선 시기는 늦추고 국민참여비율은 확대하자는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한 목적이 일차적이라는 분석이 많다.
그러나 이명박-박근혜 두 세력의 분열 가능성을 내다본 포석의 의미도 분명해 보인다.
이날 오전 "우리가 먼저 당을 나가는 일을 없다"고 못을 박았던 정문헌 의원은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만일 이명박-박근혜 양대 세력이 갈라서는 상황이 온다면 우리의 정치상황이 완전히 바뀌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 내의 갈등양상에 따라 독자적인 행보를 취할 가능성을 크게 열어둔 것.
이수원 공보특보도 "최종 본선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경선의 규칙을 만들자는 입장이지 탈당 여부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다"면서도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가 갈라서는 상황이 오면 경선방식을 둘러싼 논쟁도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국민참여비율과 관련된 경선 룰은 양보할 수 없다"는 박근혜 전 대표 측과 "시기는 6월로 하고 국민참여의 폭을 대폭 넓히자"는 이명박 전 시장 측의 주장이 평행선을 긋고 있다.
이에 따라 어차피 열흘 여밖에 시간이 남지 않은 경선준비위의 활동시한(3월10일까지) 내에 각 대선주자 진영의 흔쾌한 합의도출이 난망한 만큼 '게임의 법칙'을 둘러싼 한나라당 대선주자들 간의 갈등은 장기화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그러나 '9월 연기론'을 폈던 박 전 대표 측에서 6월 실시 방안을 수용할 수도 있다는 입장으로 다소 유연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양측이 6월 경선 실시에 합의하면 손 전 지사의 주장과는 다른 방향으로 정리되는 셈이다.
이에 따라 경선 룰과 관련해 자신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손학규발(發) 정치권 빅뱅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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