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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도 교과서!?" 민족주의가 아닌 민주주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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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도 교과서!?" 민족주의가 아닌 민주주의로!

[프레시안 books] 김한종의 <역사교육으로 읽는 한국현대사>

<역사교육으로 읽는 한국현대사>(김한종 지음, 책과함께 펴냄)를 일단 잡고 나니 표지에 박힌 필자의 이름에 오래도록 눈길이 머문다. 김.한.종. 한국 역사교육계를 대표하는 학자였던 그는 금성출판사 '한국근현대사' 교과서를 대표 집필한 덕에 지난 10여 년간 역사전쟁의 한복판에서 온갖 고초를 겪어야 했다. 그 역경을 꿋꿋하게 버텨낸 그가 '지금 여기' 역사교육의 현실과 역사학자로서의 처지를 23개의 역사교육 관련 사건을 통해 되짚으며 한국현대사의 민낯을 드러내 보인 책이 바로 <역사교육으로 읽는 한국현대사>이다.

▲ <역사교육으로 읽는 한국현대사>(김한종 지음, 책과함께 펴냄). ⓒ책과함께
객관의 시선으로 사건을 증빙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나름의 시선으로 재구성하여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새삼 그가 역사교육사의 산증인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저자는 이렇게 표현한다. 이 책은 '일반적인 기록이 아니라 내가 보고 느낀 기록이다.'

지금의 역사전쟁은 '정권이 바뀌면 교과서 내용도 달라져야 하나'라는 이 책 마지막 장의 제목보다 더 처참하다. 역사교육의 잣대로 보면 교학사 교과서 논란은 '이런 책도 교과서로 써야 하나'라는 원초적 질문부터 던져야 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 수구적 사태는 곧 민주주의 퇴행의 반영물이다.

<역사교육으로 읽는 한국현대사>가 선정한 사건들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역사교육의 주체는 국가다. 해방 이후 오래도록 제도교육이 역사교육을 독점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한 국가 독점형 역사교육의 근간을 흔들며 시민 주도형 역사교육이 부상한 것은 민주화 이후의 일이다. 지금의 역사전쟁을 대개는 보수와 진보 간 이념 갈등의 산물로 보지만, 민주주의의 시야에서 보면 국가와 시민 간의 역사교육의 주도권을 둘러싼 쟁투의 일환이다.

이 책은 역사교육의 흐름을 해방 전후부터 1960년대까지, 196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까지,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현재까지 등 세 시기로 나누고 23개의 사건을 선별하여 서술하고 있다. 아쉽게도 이들 전체 사건을 아울러 묶어 낼 수 있는 얼개를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각 사건마다 충실한 설명과 적절한 해석을 겸비하고 있어 저자가 이끄는 대로 사건을 좇다보면 해방 이후 역사교육이 민주주의의 너울을 타고 넘으며 부침하는 길을 걸어왔음을 간파하게 된다.

국가 독점형 역사교육이 가장 극성을 부린 때는 유신독재 시절이었다. 박정희 정부가 내놓은 국사교육 강화 정책의 요체는 검인정이던 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고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국사를 필수화하는 것이었다. 목표는 자명했다. 일제시기 일본이 군국주의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국사교육을 체제수호의 도구로 활용했듯이, 박정희 정부는 국사교육을 독재를 합리화하는 이념적 수단으로 삼았다.

역사학자 중에는 반대 의견을 피력한 이들도 있었지만, 역사교육의 강화를 위해서는 불가피한 필요악이라며 수용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해방 이후 줄곧 민족사 교육이 홀대받았다는 민족주의적 정서에 압도당하여 이 정책이 갖는 민주주의적 결격 사유에는 애써 눈감았던 것이다.

역사교육을 매개로 한 역사학계의 독재와의 타협에 대한 반작용은 예상외로 거셌다. 1980년대 민주화의 진전과 함께 민중사학을 표방하며 등장한 소장 학자들은 기성 역사학계를 비판하는 동시에 학술단체를 조직하여 그동안 외면당했던 한국근현대사 연구에 집중했다. 또한 본격적인 역사 대중화 운동에 나서 시민 주도형 역사 교육의 장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역사 교육 현장에서 역사 교과서로 직접 학생을 가르치는 일을 도맡아 역사교육의 엄연한 주체임에도 불구하고 이제껏 자신들의 견해를 제대로 피력한 적이 없던 역사교사들도 시민 주도형 역사교육의 확장에 동참하여 '살아있는 삶을 위한 역사교육'을 모토로 모임을 꾸리고 연구소를 차렸다. 1990년대 역사대중화의 바람 속에 시민 주도형 역사교육은 급속히 영토를 넓혀가며 국가 독점형 역사교육에 제동을 걸었다. 그리고 마침내 국정의 봉인이 풀리며 한국근현대사를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검정 교과서 '고등학교 한국근현대사'가 탄생하게 된다.

이렇게 민주화의 진전과 함께 저물어가던 국정 교과서 시대가 지금 다시 부활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고등학교 한국근현대사'를 둘러싼 역사전쟁에서 뉴라이트 편을 들며 부당하고 편파적인 개입을 서슴지 않아 소송사태까지 야기했다. 지금 박근혜 정부는 국정이라는 핵폭탄을 만지작거리며 이 전쟁에 뛰어들 타이밍을 엿보고 있는 듯하다. 흔히 이런저런 현상을 두고 유신의 부활을 말하지만, '국정'이란 두 글자만큼 민주주의의 퇴행을 상징하는 확실한 카드는 없을 듯하다.

▲ 지난 9월 5일 '친일독재미화와 교과서 개악을 저지하는 역사정의실천연대' 등 시민단체와 학부모들이 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모여 "친일, 독재를 미화한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는 한국판 '후소샤(扶桑社) 교과서'"라며 검정 합격을 즉각 취소할 것을 교육부에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불행하지만, 우린 국가 독점형 역사교육의 부활을 막아내기 위해 고강도 역사전쟁을 치러야 할지 모른다. 이 비극은 박근혜 정부가 한국사교육 강화 방안의 일환으로 한국사의 수능필수과목화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과정을 볼 때, 충분히 예견 가능한 사태이다.

이번에도 한국사교육 강화 방안이 민주주의적 절차와 합의를 무시한 채 추진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교육 강화=당위의 차원에서 찬성을 표하는 역사학자들이 있었다. 하지만 시민 주도형 역사교육을 개척하거나 그 세례를 받으며 성장한 역사학자들은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한국사 교육의 강화가 정말 필요한지, 필요하다면 어떻게 강화해야 할지에 대한 시민적 공론의 수렴을 생략한 채 국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한, 지금의 한국사교육 강화 방안은 또다시 표류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저자 역시 이를 우려하고 있다. 국가의 정책 의지가 아니라 학교와 사회의 요구에 근거하여 역사교육이 강화되지 않으면 사회 분위기가 조금만 달라져도 학교 역사교육의 경우 돌이킬 수 없는 위치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민 주도형 역사교육은 국가 독점형 역사교육이 완전한 부활을 도모하는 가운데 위기에 처한 듯 보인다. 후자가 전자에 씌운 프레임은 이명박 정부 때부터 줄곧 '민중사관을 가진 친북좌파'였다. 민중이 역사의 주체라는 지극히 민주주의적이고 상식적인 잣대를 북한을 추종하는 세력의 역사관이라 맹공을 퍼부었다.

하지만 시민 주도형 역사교육은 건재하다.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대 7종의 한국사 교과서라는 대립 구도가 형성되면서 후자의 경우, 또다시 친북좌파로 매도되는 고초를 겪고 있지만, 이들 교과서를 들여다보면 합의가능한 시민적 역사 상식들로 채워져 있다. 시민과 상식은 분명 그들의 편이다.

장황하게 또한 미흡하나마 국가 독점형 역사교육과 시민 주도형 역사교육을 거듭 대비한 이유는, 이 책에서 역사교육의 주체로서의 국가권력, 즉 '정부'는 자주 거론하고 있으나 시민 혹은 민주주의적 시야에서 관련 사건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해석하지 않은 데 대한 아쉬움 때문이다. 그럼에도 역사교육의 사건사를 기성의 낯익은 민족주의라는 잣대로 설파하려 하지 않은 점은 이 책의 신선한 미덕이다. 역사교육의 역사는 민족주의의 부침과 운명을 같이 한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너울을 타고 넘으며 오늘에 도달했다! 여전히 민족주의적 안목에서 한국현대사를 해석하고자 하는 역사학의 풍토에서 이 책이 시사하는 바를 거듭 곱씹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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