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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민영화 반대' 의사협회, '밥그릇 싸움' 넘어서려면…

[기자의 눈] 의협, '살인적 의료비'에도 목소리 내야

사람들이 한 장소에 모여 집회를 열고 '투쟁'을 외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사람들이 전국 각지에서 모인 의사 2만 명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선망받는 직업인들이 모인 이유는 나름대로 절박할 것이다.

일요일이었던 15일 엄동설한 속에서 대한의사협회 소속 의사 회원 2만 명이 서울 여의도 공원에서 '전국 의사 궐기 대회'를 열었다. 애국가를 무려 4절까지 틀어놓는 등 형식은 딱딱했지만, 그들의 표정은 진지했다. 마지막에 노동 현장에서나 들을 법한 투쟁가를 들었을 때 기자는 귀를 의심하기도 했다. (☞관련 기사 : 의사 2만 명, 한목소리로 "원격 의료와 영리 병원 반대")

의사들 '의료 민영화' 반대하지만…

집회에 참가한 의사 개개인은 '원격 의료' 도입에 분노하고 있었다. 한 내과의는 "노인과 애들은 '대면 진료'를 해도 의사소통이 잘 안 된다"며 "하물며 모니터로 어떻게 진료할 것이며, 노인들이 IT 인프라를 어떻게 다룰 것이냐"고 걱정했다. 정부가 대형 병원의 수익 사업을 위해 동네 의원들을 죽이면서까지 의료 산업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관련 기사 : 국내 첫 '원격 진료' 허용, 대형병원 상업화 포석?)

한 마취과 의사는 "철도 민영화도 반대하지만, 병원에 영리 자회사? 이건 아니죠"라고 고개를 저었다. 그는 "대형 병원이 돈을 끌어들이고 돈을 빼낼(투자자들에게 이익을 분배할) 합법적인 길을 터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내과의는 "복지국가가 되려면 이런(민영화) 시스템에서는 안 된다"고 했다. (☞관련 기사 : 정부, 병원에 영리자회사 설립 허용…의료민영화 논란)

그들은 전문가로서, 현장에 몸담은 의사로서 진지하게 설득하려고 노력했다. 구구절절이 옳은 말이다. 그리고 그 분노는 "의사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정책을 결정하는 정부"를 향해 있었다. "정부는 의사들이 절대 한목소리를 내지 않는 걸 너무 잘 알아요. 그걸 이용하는 거예요."

대형 병원과 중소 병원, 동네 의원의 이해관계는 다르다. 전공의와 개원의, 의대 교수의 이해관계도 다르다. 그런 의사 대부분이 공통으로 미워하는 대상은 정부다. 그날 의사협회가 내건 '관치 의료 철폐'라는 표현이 이를 잘 대변한다.

▲ 의사협회 회원 2만 명이 15일 서울 여의도 공원에서 '전국 의사 궐기 대회'를 열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관치 의료 철폐? 저수가 개혁?

여기서부터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의사협회는 원격 의료, 영리 병원, 의료 민영화 등 모든 잘못된 의료제도가 '관치 의료' 때문이라고 한다. 노동계도 '의료 민영화'에 반대하지만 '관치 의료'라는 표현은 쓰지 않는다. '관치'라는 표현은 정부의 개입 자체가 원천적으로 잘못됐고 (의사들이 아나키스트가 아닌 한) '시장'의 결정이 옳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사협회는 왜 그렇게 정부의 개입을 싫어하는가? 의사협회의 투쟁 결의문을 보자.

"국민건강보험 제도가 도입된 이후 정부와 건강보험 공단은 원가에도 턱없이 못 미치는 낮은 수가로 의료계의 숨통을 조여 왔다. 그럼에도 36년간 의사들은 국민 건강을 지키겠다는 사명감 하나로 '살인적인 저수가'의 고통을 감내해왔다. 그렇게 대한민국 의료는 우리 의사들의 일방적 희생에 의존해 유지돼 왔다."

이날 의사협회는 '살인적인 저수가'를 조장하는 잘못된 건강보험제도를 개혁하라고 요구했다. 한국의 의료 수가 실태는 어떨까. OECD가 내놓은 자료를 보면, 2011년 기준으로 한국의 1인당 의료비 지출은 2198달러로 OECD 평균인 3322달러보다 낮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2000~2009년 국민의료비 연평균 증가율은 9.3%로 OECD 국가(평균 4.1%) 가운데 가장 빠르다.

의사들이 '살인적인 저수가'에 시달릴 때, 환자는 '살인적인 의료비 부담'으로 신음한다. 왜 그럴까. 한국은 경상 의료비 가운데 가계 직접 부담 비율이 35.2%로 OECD 회원국 가운데 4위다. 다시 말해, 전체 의료비 가운데 정부가 지출하는 공공 부담과 비교해 가계가 내는 의료비 부담이 크다. 한국은 칠레와 멕시코, 미국 다음으로 공공 재원 비율이 낮다.

▲ 15일 의협 회원들이 '관치 의료'라고 적힌 관을 들고 여의도 공원 연단으로 향하고 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살인적인 의료비'엔 소극적인 의협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가 병원의 효자 수입원이자 환자들의 고통을 가중시킨다는 점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의사들이 '살인적인 저수가 체제' 하에서 굶어 죽지 않는 이유다. 한국고용정보원이 2010년부터 2011년까지 국내 759개 직업 종사자 2만6000여 명을 분석한 결과, 직업별 연봉 순위 상위 20위 안에 8개 분야는 성형외과·외과·치과·정신과 등 의사 직종이 차지했다.

그러나 의사협회는 '저수가'만 이야기할 뿐, 건강보험 보장성을 높이자는 주장은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싫어하는 그 '관치 의료'보다 '미국식 시장 의료'가 민영 보험사의 간섭으로 의사들의 선택권을 더 옥죄리라는 점은 간과한다. 의협의 '저수가 개선, 관치 의료 철폐'와 같은 주장이 복지국가를 바라는 국민에게 동의를 얻기 어려운 이유다. 복지국가가 되려면 어느 정도 정부의 힘이 필요한 것도 현실이다.

물론 한국에서 "사람값이 지나치게 싼 것이 문제"라는 데 동의한다. 의사들의 노동 가치가 적고 의사들의 노동 시간이 길다면 다른 노동 문제와 마찬가지로 개선해야 한다. 따라서 한국의 의료 수가가 저수가라면 올릴 수 있다고 본다. 단, 조건이 있다. '아파도 돈이 없어 치료를 못 받는 국민'은 없을 정도로 국민 건강보험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 그래야 국민의 동의를 얻는다.

2009년 경만호 전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현행 건강보험 제도에 헌법 소원을 걸어 '건강보험 쪼개기'를 시도했다는 의혹을 받았던 과거는 묻지 않겠다. (☞관련 기사 : 위기의 '건강보험', 통합재정 위헌 결정나면…) 지금 의협에 묻는다. '살인적인 저수가' 체제하에서 의료계는 수가 인상을 얻는 대신 '비급여 진료비'를 포기할 각오가 돼 있는가? 의사들이 '밥그릇 싸움'을 넘어 '시민과의 연대'를 얻어낼 열쇳말은 여기에 있다.

[프레시안 민영화 기사 간추려 모아보기]

① 프레시안은 대선 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MB에서 박근혜로, '6대 민영화' 몰려온다

② 꾸준한 의혹 제기
"朴정부, 철도민영화 '2단계 비밀 추진' 전략 있다"

③ 철도 민영화 심층기사
50여 명 죽인 '돈 먹는 하마'…한국 철도도?-영국인이 말하는 영국 철도 민영화
국토부, 철도도 '4대강' 꼴 만들 셈인가-현직기관사가 본 '수서발 KTX'의 실체

④ 의료 민영화 심층기사
"돈 없어 치료 못받고 죽는 국민" 개탄하던 노무현은 왜…
정부, 병원에 영리자회사 설립 허용…의료민영화 논란
박근혜 야심작 '의료 관광', 실은 독(毒)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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