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의 의사 성과급제는 외래·수술 실적에 따라 지급되는데, 그 재원이 되는 돈이 바로 선택진료비다. 서울대병원의 선택진료 수당 규정을 보면, 신규 환자에는 선택진찰료의 100%, 재진 환자는 50%, 공휴일·토요일·야간 근무는 30%, 수술·처치·검사 등에는 9.5%를 선택진료 수당으로 지급한다.
'실적 경쟁' 내몰린 의사들…연봉 2억 이상 5년간 58.2% 증가
서울대병원 간호사들은 200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병원이 이렇게까지 '실적'을 중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ㄱ 간호사는 "예전에는 교수에게 (돈과는 무관한) 권위가 있었는데, 요즘은 '돈을 얼마나 벌었나'로 의사들 서열이 정해진다"며 "의사 성과급제가 문제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수술이 많은 의사는 의국 내에서 파워도 세다"며 "그래서 교수끼리 실적 경쟁하고, 과별로 싸우고, 같은 과 안에서도 교수끼리 싸운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 의사 임금에서 성과급이 차지하는 비중은 작지 않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박성호 새누리당 의원이 28일 공개한 '최근 5년간 서울대병원 의사 연봉 2억 원 이상 수령자 현황'을 보면, 2012년 기준 2억 원 이상 수령자 평균 연봉의 29.3%가 선택진료 수당이었다.
서울대병원에서 2억 원 이상 연봉을 받는 의사는 2008년 79명에서 2012년 125명으로 58.2% 증가했다. 그만큼 의사들이 진료·수술 실적을 많이 냈다는 방증이다. 이는 수천억 원대의 병원 건물 신축을 추진하며 지난 7월부터 '비상 경영'을 선언한 서울대병원 경영진의 판단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 관련 기사 : 수천억 건물 올리는 서울대병원, '저질 의료재료' 논란)
▲ 서울대병원 노조(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 서울대병원분회)가 파업에 돌입한 지난 23일 서울대병원 안에 현수막이 걸려 있다. 서울대병원 노조가 파업에 돌입한 것은 6년 만이다. ⓒ프레시안(김윤나영) |
"주말 수술에 응급 환자 피해…'피 주머니' 달고 퇴원하기도"
서울대병원 노조는 "의사 성과급제가 가속화한 실적 경쟁의 피해는 환자들이 받는다"고 지적한다.
ㄴ 간호사는 "타과에 빈 방이 생기면 수술 환자를 아무데나 갖다 꽂는다"며 "무리하게 수술을 계속 넣으니 회복실 앞에 환자들이 줄을 설 때도 있다"고 말했다. 병상 가동률도 덩달아 빨라졌다. 그는 "다른 환자를 받아야 한다고 해서, 수술 환자들이 '피 주머니'를 달고 퇴원하는 일이 일반화됐다"고 말했다.
ㄱ 간호사도 "항암 치료한 환자를 다른 환자를 받아야 한다고 해서 강제로 퇴원시켰는데, 그 환자가 그날 열이 나서 다시 응급실에 실려 온 적이 있었다"며 "종양 병동도 꽉 차서 못 보내고 일반 병동에 보냈다"고 거들었다.
수술이 주말에도 이어지면서 정작 응급 환자가 피해를 받는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ㄷ 간호사는 "주말 근무자는 응급 수술을 위주로 최소한으로 구성됐는데, 당장 바로 안 해도 되는 수술을 주말에 하다가 진짜 응급 환자가 닥치면 수술이 지연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28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배재정 민주당 의원은 "전국 10개 국공립대학병원의 응급 환자 체류 시간을 확인한 결과, 서울대병원의 경우 20.8시간으로 우리나라 평균 응급실 체류 시간인 4.2시간의 5배나 됐다"고 밝혔다.
▲ 서울대병원 노조 조합원이 서울대병원 벽에 붙인 호소문. ⓒ프레시안(김윤나영) |
"교수 한 명이 수술 3개 동시에…환자는 마취 상태"
의사 성과급제가 이른바 '3방 동시 수술'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나왔다. ㄷ 간호사는 "정규 수술이 끝나는 저녁 시간대에 수술방 서너 개를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한꺼번에 열고, 교수는 핵심적인 수술만 하고 이 방 저 방을 왔다 갔다 한다"며 "환자 안전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ㄷ 간호사는 특히 "한 환자를 수술하는 동안 옆 방 환자가 깨어있는 상태이면 불만이 생기니 마취과에서 재운다"며 "연달아서 방 4개를 열어서 옆방 수술 기다리느라 마취 상태가 아니어도 되는 환자가 마취 상태로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성과급제가 아니면 교수가 그렇게 무리하게 서너 방을 수술할 이유가 없다"며 "간호사들도 덩달아 오버 타임(초과 근로)을 하게 되는데, 차라리 (휴일·야근) 수당을 안 받고 그냥 집에 가고 싶은데도 못 간다"고 말했다.
▲ 서울대병원 노조 조합원이 서울대병원 벽에 붙인 호소문. ⓒ프레시안(김윤나영) |
"신규 환자 진료 일정에 재진 환자 밀려"
외래 환자들도 대기 시간에서 차별을 받는다고 했다. ㄴ 간호사는 "초진 환자는 진료 일정을 빨리 잡아주고, 재진 환자는 뒤로 밀린다"며 "다른 병원에 가기 전에 고민할 때 받아주면, 한 번 검사하고 나서 초진 환자는 (그 병원에) 계속 다니게 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신규 환자를 유치하려는 병원의 경영 정책은 의사 성과급제에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신규 환자를 보면 선택진찰료의 100%를 선택진료 수당으로 주지만, 재진 환자이면 수당이 절반으로 깎인다.
환자들이 긴 시간 기다려 진료실에 들어가도 불만족하기는 마찬가지다. ㄴ 간호사는 "환자들은 지방에서 꼭두새벽부터 올라와 기다렸는데, 진료는 1분 만에 교수 눈도 못 마주치고 끝난다"며 "그런데 명세서에는 선택진료비가 찍혀 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니 피해를 보는 건 원무과 직원"이라며 "번호표를 집어 던지는 분들은 다수고 심지어 원무과 직원을 지팡이로 때리는 분도 봤다"고 말했다.
초진 환자가 재진 환자에게 밀리듯이, 입원 환자는 다시 외래 환자에게 밀린다. ㄴ 간호사는 "MRI나 CT는 24시간 가동할 수 있는데, 낮 시간 검사에는 주로 외래 환자를 배치하고 입원 환자는 순서에서 밀려서 새벽 1시, 2시에 검사를 받는다"며 "오밤중에도 찍어대니 다인실 환자들은 선잠을 자고, 간호사들은 한시도 못 쉰다"고 설명했다.
ㄱ 간호사는 특히 "환자와 수술방은 늘어나는데 인력 충원은 없다"며 "2011년 암 병원을 개원했지만 인력은 턱 없이 부족하고, 병원은 또 비정규직 간호사를 받는다"고 호소했다.
앞서 지난 23일 파업에 돌입한 서울대병원 노조는 △인력 충원 및 적정 진료 시간 확보 △의사 성과급제 폐지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의료 공공성 강화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서울대병원 측은 29일 실무교섭에서 "안을 준비하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서울대병원 "의사 수당 제도 개선 방안 검토 중"
임종필 서울대병원 홍보팀장은 "의사 수당(성과급)제가 야간·주말 수술을 증가시켰다기보다는, 서울대병원이 다른 '빅4 병원'에 비해 수술방의 수보다 진료받으려는 환자가 많다는 점이 근본적인 문제"라며 "반대로 의사들이 정규 근무 시간에만 수술하면 환자들의 대기 시간이 길어진다"고 말했다.
재진 환자보다 초진 환자를 우대하는 것에 대해서는 "돈이 안 돼서 재진 환자를 밀어내는 게 아니라, 초진 환자를 보는 것이 급성기·중증환자를 진료한다는 3차병원 취지에 더 적합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임 팀장은 "선택진료 수당을 폐지하고 싶은 건 병원도 마찬가지"라며 "하지만 원가에 못 미치는 보험 수가를 보존하라는 정부의 정책적 배려가 있는데, 병원 경영도 어려운 상황에서 (서울대병원 선택진료비 수익인) 600억 원을 먼저 포기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진료와 수술 실적에 비례한 성과급제를 폐지하고 직급별로 지급하는 방안에 대해서 임 팀장은 "진료량에 비례해 수당을 지급하는 방식을 개선하는 방안을 병원도 검토 중"이라며 "그러나 환자가 직접 선택한 교수에게 지급하는 수당을 직급에 따라 똑같이 주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다는 우려도 일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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